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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아름다운 공원을 고발합니다

실종된 시민정신,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등록|2008.07.14 14:26 수정|2008.07.14 14:26

아름다운 동네 공원그러나 자세히 들여다 보면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 우광환


전주시 완산구에 위치한 삼천공원은 기자가 사는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다. 삼천도서관이 붙어 있는 이 공원은 멋들어진 분수대와 운동기구, 농구코트, 심지어 어르신들이 즐기는 게이트볼장까지 갖추고 있다. 숲 잔디 사이로 곳곳에 벤치가 놓여 있어, 근처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는 더 할 나위없는 장소다. 게다가 한 귀퉁이에 요즘 보기 드문 '맹꽁이 서식지'가 있어 초여름 한동안은 그 울음소리가 정겨웠다.

바로 옆이 찻길이라 들려오는 소음이 만만치 않지만 지난봄 이곳으로 이사를 결정한 것은 별채(?)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관과 앞마당(공원)이 마음에 들어서였다. 이사 온 뒤로 새벽마다 공원에 나가 운동과 산책을 즐기는 버릇이 생긴 덕분에 몸무게가 7kg나 빠지는 개가를 올렸고, 푹푹 찌는 무더운 휴일 한낮엔 아예 시원한 도서관으로 피서를 가기도 한다.

시설 좋고 아름다운 공원을 지켜내지 못하는 우리

그러나 이 공원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언제 와도 공원 곳곳이 쓰레기투성이라는 점이다. 언제나 아침이면 관리인이 쓰레기를 치우지만 함부로 버려지는 쓰레기양은 거의 매일 변함이 없다. 잔디밭에 버려진 과자 봉지들과 페트병, 바람에 굴러다니는 비닐봉지, 멋들어진 정자 마루엔 맥주 깡통과 소주병, 그리고 안주부스러기들이 항상 널려 있다.

▲ 새벽이면 공원 곳곳에 전날 버려진 쓰레기가 널려있다. ⓒ 우광환


게다가 새벽 시간 공원 화장실은 아예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일을 보고 물을 내리지 않은 채 그냥 방치해두는 것도 모자라, 화장실 바닥이나 벽에까지 온갖 오물을 묻혀두기 일쑤다. 관리인이 쉬는 토요일과 일요일이면 특히 심해서 월요일 새벽엔 냄새가 진동할 정도다.

휴지가 바닥이나 세면대에 뭉텅이로 뽑혀서 널려있는 모습도 언제나 같다. 휴지들이 어째서 바로 옆 휴지통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거기서 뒹굴어야 하는지 도대체 이해를 할 수 없다. 혹시나 해서 들여다 본 여자 화장실도 똑같은 풍경이었다. 조금 기다렸다가 공원청소관리를 하는 김양순(가명) 아주머니의 말을 들어봤다.

공원 화장실휴지가 왜 바닥에 나뒹걸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변기는 민망해서 차마 찍지 못했다. ⓒ 우광환

공원 화장실 세면대청소관리인이 아무리 열심히 청소해도 시민의식 부재 앞에서는 아무소용이 없다. ⓒ 우광환


"미치것당께. 비누 풀어서 변기들이랑 화장실 바닥이랑 죽겄다구 닦아놔도 담날 아침에 와 보면 이렇게 된당께. 일부러 지저분하게 만들려고 작정한 사람들처럼 이게 뭐냔 말이여. 사람이 하루죙일 지키고 서 있을 수도 없구 말이지."

공원엔 운동을 하다가 땀을 씻거나 목을 축이기 위한 수도시설도 있다. 그러나 물 빠지는 구멍이 모두 흙으로 막혀 항상 불결한 물이 고여 있다. 땅바닥에서 1m 이상 위에 위치한 그곳까지 어떻게 흙이 올라갈 수 있었는지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수도를 틀면 고인 물이 튀어서 불쾌한 나머지 사용하지 못할 정도다. 최근엔 아예 수도꼭지에 호스를 달아 밑으로 늘여놨다. 덕분에 사용할 수는 있게 됐지만 참으로 꼴불견이다.

수도시설멋들어지게 만들어진 수돗가가 물 빠지는 곳이 막혀 호스를 연결했다. 덕분에 꼴사나운 모습이 되었다. ⓒ 우광환


"쓰레기통이 많지 않아요"  그렇다고 함부로 버려도 되는 건가?

공원엔 마침 잘 생긴 외국인 청년 둘이 조깅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새벽 공원에서 자주 보던 낯익은 사람들이었지만 대화를 나눈 적은 없었다. 오늘은 그들의 조깅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말을 걸었다.

"한국말 할 줄 알아요?"
"네 조금 할 줄 알아요."

"이 공원 멋지죠?"
"그럼요. 정말 잘 만들어진 공원입니다."

그들은 미국 유타주에서 온 모르몬교 선교사들이라며 아담스와 힐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놀랍게도 두 사람 다 한국어가 유창해서 대화가 용이했다.

"당신들 고향에도 이런 공원이 많아요?"
"공원이야 있지만 이렇게 멋지게 꾸며놓고 시설도 잘해놓은 곳은 드물죠. 처음에 와서 무척 놀랐어요."

좌로부터 힐씨와 아담스씨한국어가 유창한 그들의 가슴에서 한국사랑이 넘쳐남이 느껴졌다. ⓒ 우광환


아담스씨가 이 공원의 훌륭함에 대해 한참을 더 이야기했다. 분수대 구조물과 전체적인 공원설계가 너무 뛰어나다며 거의 입에 침이 마를 정도로 찬사를 보냈다. 그의 말이 끝나길 기다렸다가 공원에 널린 쓰레기에 대해 질문하기가 조심스러울 정도였다.

"그런데 당신들 고향에 있는 공원도 이렇게 쓰레기가 많은가요? 거기도 이렇게 지저분해요?"

아담스씨와 힐씨는 갑작스러운 내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잃고 있더니, 결국 씨익 웃고 말았다. 그들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렇지는 않죠."

아담스씨가 덧붙였다.

"우리 고향엔 공원이 대개 오래된 것들이라 시설이 여기처럼 좋지는 못하죠. 그렇다고 사람들이 쓰레기를 마구 버리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이 무서운 눈초리로 쳐다봐서 은근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거든요. 아예 직접 대 놓고 나무라는 사람도 있어요. 그래서 함부로 공공장소에 쓰레기를 버릴 수 없게 되는 거죠."

"그렇다면 당신들은 한국의 이토록 멋진 공원에 저렇게 많은 쓰레기들이 굴러다니는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이 들어요?"

솔직히 말한다면 각오하고 물었다. 그들의 입에서 한국인에 대한 어떤 욕이 나와도 참아낼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한국 사랑에 푹 빠진데다가 사람 좋게 생긴 아담스씨와 힐씨의 말투는 부드러웠다.

"조금 안타깝긴 하죠. 그런데 제가 보기에 한국은 쓰레기통이 많지 않은 것 같아요. 그건 거리엘 다녀 봐도 마찬가지더군요. 가까운 곳에 버릴 곳이 없다면 그냥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는 습관이 들지 않겠어요? 결과적으로 정치, 행정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공원 한켠의 운동시설아담스씨와 힐씨 같은 외국인도 찬사를 보내는 공원이다. 그런데 우리는 관리를 제대로 못해내고 있음이 마음 아프다. ⓒ 우광환


공공장소를 소중하게 아낄 수 있는 정신은 타인에 대한 아름다운 배려

언제부턴가 있는 쓰레기통도 철거해버리는 추세다. 이젠 거리에서 재떨이를 찾아보기도 힘들어졌다. 두 사람은 그것을 정치, 행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시민들을 긍정적인 쪽으로 행동하도록 행적적으로 유도하지 못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거리에, 공원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면서 정치 행정만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공공장소를 소중하게 아낄 수 있는 정신은 타인에 대한 아름다운 배려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입학할 무렵부터 배운 그 사실을 우리는 너무도 까마득히 잊고 있다.

우리 국민은 어떤 큰 이슈가 있으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잘 뭉치는 편이라며 세계가 놀라워하지만, 우리는 사소한 이런 일엔 무심한 편이다. 저마다 아무 생각 없이 버리는 쓰레기 때문에 아름답고 훌륭한 시설을 갖춘 공원이 쓰레기장이 된다면 이미 작은 일은 아니다.

다시 한 번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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