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호미, 김매기의 일등공신

세상에는 작지만 큰일을 하는 물건도 있다

등록|2008.07.14 16:51 수정|2008.07.14 16:51
내가 그 이름을 알지 못한다고 모든 풀을 “잡초”라고 부르는 것은, 내 이름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나머지 사람”에 나를 포함시켜 무시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모든 풀을 싸잡아 “잡초”라고 부르지 않았다. 이름을 모르기에 그냥 풀이라고 부른다.

나는 농사를 시작하면서 조금은 게으르게 가급적 풀과 함께 살겠다는 다짐을 하면서 “내가 의도적으로 심고 가꾸는 식물을 괴롭히는 풀만 뽑자”는 나름의 원칙을 정했다. 그래서 비록 자리를 잘못 잡아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풀을 씨를 말려야 할 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물론 제초제를 쓰지 않았고 또 앞으로도 쓰지 않을 작정이다. 모든 풀을 싸잡아 “잡초”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무지요, 우선 편하다고 제초제를 쓰는 일은 후손들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고 생각을 버리지 않고 살 작정이다.

농촌에서 여름철 김매기의 어려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오죽했으면 조선 시대 사람들도 “곡식의 성장은 오직 김매기의 공에 달려 있다”고 했을 것인가! 때문에 곡식에 덤비는 풀을 잡기 위해서 조상들은 여러 가지 농기구를 만들었는데, 무더기 풀을 쳐내기 위한 괭이, 풀의 줄기를 베는 낫, 곡식 주변을 정리하는 호미 등이 그러한 농기구 아닌가 한다.

그중에서도 호미는 모든 농민들이 김매기의 일등공신으로 꼽는 농기구다. 생각 없이 만난 사람에게 호미는 덩치도 작고 볼품없으며 힘도 없게 보인다. 그렇지만 농작물을 다치지 않고 곡식 가까이 자라는 풀들만 정확하게 뿌리까지 제거할 수 있는 농기구는 호미밖에 없다.

그리고 호미는 풀을 베는 낫의 기능까지 갖춘 작은 쟁기로 농작물의 주변을 일구어 뿌리에 숨통을 열어주는 큰일을 해내는데 삽이나 괭이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장점이라고 본다.

우리집에 있는 두 종류의 호미 오른쪽 날이 넓은 호미는 북돋울 때, 왼쪽 날이 좁은 호미는 거친 땅에서 김맬기를 할 때 효율적이었다. ⓒ 홍광석


또한 호미는 예부터 힘없는 농민과 애환을 함께 한 가장 친숙한 농기구이다. 늘 낮은 곳에서 자기를 희생하여 손쉽게 모종을 옮기고, 막힌 곳은 트고, 터진 곳은 막으며 농민과 함께 살아왔다 그래서 일찍 호미의 다양한 기능과 희생을 알아차린 조상들은 “호미 끝에 백가지 곡식이 달렸다”라고 했는데 정말 정확한 지적이라고 본다.

이러한 호미가 지역에 따라 모양이 조금씩 다른 이유는 지역의 토양을 고려한 지혜의 반영이기 때문이다. 대개 역삼각형의 날에 약간 긴 목이 있고 목의 끝부분에는 나무 손잡이를 단 점이 공통이지만 지역에 따라 날의 폭이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다. 돌과 자갈이 많은 제주도에는 거의 갈고리 형태의 호미를 쓰지만 남도에서는 날이 넓은 호미를 쓰는 것이 하나의 사례가 아닌가 한다.

물론 남도의 호미도 김매기에 적합한 뾰쪽날의 늘씬한 호미가 있는가 하면 풀을 매면서 고랑 사이의 흙을 긁어 곡식을 북돋아 주는 날이 넓은 호미도 있다. 그런데 요즘 호미는 소수의 공장에서 생산한 탓인지 지역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 마을 아주머니들이 들고 다니는 호미를 봐도 지역 토양을 고려한 호미라기보다 사용자의 취향에 따라 선택한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괭이와 삽 힘든 일을 할 때 없어서는 안 될 농기구이다. ⓒ 홍광석


현재 농촌에는 사라진 농기구들이 많다. 내가 어릴 때만 해도 집집마다 볼 수 있었던 쟁기, 써래, 고무래, 곰방매, 가래, 지게, 장군, 두레 같은 농기구는 농업 박물관에서나 찾을 수 있는 골동품이 되었다. 고작 삽, 괭이, 낫, 호미, 쇠스랑 등이 눈에 띄지만 그 중에서도 호미는 아직도 농민들은 물론 텃밭을 가꾸는 도시민들의 소중한 벗이 되고 있다.

앞으로도 아무리 농촌이 기계화된다지만 호미와 다소 진화된 형태로 남아 우리 농촌을 지킬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농촌이 아주 사라지지 않는 한 여름철 김매기는 이어질 것이고, 그 김매기에는 호미를 따를 만한 농기구가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세상에 맨손으로 밭에서 김매기를 하겠다고 덤비는 농민은 없다. 또 논두렁의 풀을 잡겠다고 쇠스랑을 들고 설치는 농민은 없다. 그리고 콩밭에서 괭이를 휘두르는 아낙네도 없다. 농민들은 토양에 맞는 농기구, 작물을 다치지 않고 풀을 이길 농기구가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풀베는 기계현대화된 풀베는 장비. 효율성이 높으나 위험 부담이 따르는 단점이 있다. ⓒ 홍광석


그런데 요즘에는 가끔 불도저로 김매기를 하겠다는 바보와 포클레인으로 농작물 주변의 풀을 뽑을 수 있다고 믿는 덩치만 큰 멍청이들이 설치는 것을 본다. 또 이름 석자를 앞세워 풀이 쓰러지지 않는다고 호령하는 얼간이 같은 사람들도 본다. 잔디 깎는 기계를 잘 다룬다고 농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면. 가만히 앉아 입으로 풀을 다스릴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생김새가 호미만도 못한 인간이 스스로 불도저라고 큰소리치고 있는 세상이니 그걸 보며 웃지 않을 사람이 있을 것인가?

호미는 아녀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농기구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천박하고 무지한 인간들은 호미 들고 일하는 백성을 제대로 대접하지 않으려 한다. 가장 작은 농기구이면서 곡식을 괴롭히는 갖가지 풀을 송두리째 뽑아내는 공이 큼에도 더러는 높은 사람들에게 외면당하고 가끔은 소중함을 잊히는 호미, 그리고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그 호미를 든 백성이 없었다면 이 나라가 있었을 것이며, 또 당장의 배고픔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몇 안 남은 고려가요 중 “사모곡”을 소개하며 이 글을 마무리 지을까 한다.

사모곡(思母曲)
호미도 날이 언마는
낫같이 들 리도 없어라.
아버지도 어버이시지마는,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이가 없어라.
아소 임이시여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분이 없어라.

위 노래에서 호미를 아버지로 낫을 어머니로 비유했는데 의미를 새기는 것은 독자들의 몫으로 넘기겠다. 그리고 전반적인 주제나 의의와 뜻은 국문학자들의 해석에 맡긴다. 여기서는 다만 호미와 낫이 거의 천 년 전 고려 가요에도 나타난 것처럼 그것들이 옛날부터 우리 민중들의 생활 속에 친숙한 농기구였다는 점을 알 수 있기에 소개한다. 덧붙여 우리나라에도  호미 같은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담는다.
덧붙이는 글 농사를 짓다보면 작지만 큰일을 하는 물건이 있는가 하면 덩치는 커도 쓸모없는 물건도 있다. 호미는 손에 쥘만큼 작지만 김매기에는 그것을 따를 농기구가 없기에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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