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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홀짝제? 또 땜질식 고유가 대책

[주장] 규제완화와 친시장적 정책기조와도 안맞아

등록|2008.07.14 21:33 수정|2008.07.14 21:33

▲ 행정안전부는 "15일부터 각급 공공기관은 업무용 차량을 포함한 관용차량 전체와 소속 직원들의 보유 차량을 대상으로 홀짝제 운행제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사진은 기름값 인상을 알리는 플래카드. ⓒ 연합뉴스 한상균

단기적 땜질식 처방으로는 고유가 극복할 수 없어

고유가로 전 세계가 신음하고 있는 가운데 이제 공공기관 차량 홀짝제를 운영한다고 한다.
행정안전부는 "15일부터 각급 공공기관은 업무용 차량을 포함한 관용차량 전체와 소속 직원들의 보유 차량을 대상으로 홀짝제 운행제가 적용된다"고 밝혔다. 민간 부문과 공공기관을 방문하는 민원인 차량은 지금과 같이 요일제가 적용된다.

10부제나 5부제에 이어 홀짝제까지 할 경우 이제는 더이상 차량보험비나 보유세를 감면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절반 가까이 차 운행을 안 하는데 보험비를 감면해 주지 않으면 보험업체만 특혜를 주는 모양새가 되어버린다.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고유가 단골대책으로 차량운행통제가 또 등장했다는 점이다. 이제는 폐지된 지 오래된 '야간통행금지'처럼 차량운행을 강제로 통제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10부제와 같은 형태로 차량 운행을 정부가 통제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개인 소유의 차량에 대해 정부가 운행을 통제하는 법적 근거도 미약하다. 승용차 운행제한은 자동차관리법 제25조와 도시교통정비촉진법 20조에 의거하고 있다. 이 중 자율적 부제운행은 1998년부터 관련부처 지침에 따라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헌법적인 기준에서 볼 때 공공의 안녕과 질서를 위한 것도 아니고 전시나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가 발생한 상황도 아닌데 국민의 자유와 사유재산권 행사를 제한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기본적으로 유가 문제는 경제 영역의 문제이고, 이는 시장경제의 원칙에 따라 시장참여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문제다.

일방적으로 국민들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차량운행통제지만 구체적인 효과도 미심쩍다. 대중교통수단과 카풀제 이용을 장려한다고 하지만, 이는 어차피 고유가로 차량운행이 힘들어지면 개인들이 각자 판단해서 알아서 할 일이다.  또한 대중교통이용이 매우 어렵거나 개인사정상 출퇴근이나 업무, 영업용으로 차량을 운행하지 않을 수 없는 경우도 많다.

논란이 되었던 민간영역에 대한 실내 온도 규제와 마찬가지로 차량 운행통제는 근본적이고 실효적인 대책이라기 보다는 '주민통제를 통한 행정력 과시'에 머물 공산이 크다. 단기적으로 뭔가 하고 있다는 가시적 성과를 보여 주기 위한 땜질처방인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고유가는 갑자기 발생한 문제도 아니고, 지난 5년간 배럴당 25달러에서 100달러로 꾸준히 증가한 것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할 문제다.

행정단속보다는 정책적 유도가 훨씬 부작용이 없어

다만, 지속적인 유가상승 속에 국가적으로 에너지의 효율적 사용과 대책마련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이것을 행정단속 등으로 강제할 것이냐 정책적으로 유도하느냐이다. 결론부터 말해서, 당연히 선진국에 진입한 국가답게 시민들의 자율적 판단을 존중하고 실효성이 높도록 정책적으로 대책을 강구하는 것이 타당하다.

구체적인 정책 중 하나는 세제개편을 통해 전반적으로 차량에 대한 보유세는 낮추고 주행세를 높이는 것이다. 차량 보유세를 낮추는 만큼 도로 통행료나 기름값을 올리면, 운행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소비자를 유도하게 된다. 부수적으로 공기오염 등 환경문제도 개선된다.

다만, 이 과정에서 덤으로 전체 세수를 확대하려는 조세편의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또한, 이러한 '주행세'는 에너지 효율개선을 위한 연구개발이나 시설투자 등에 우선적으로 사용되도록 하여, 과세에 따른 명분을 십분 살려야 한다.

또한, 자동차 보유세에 대한 차별을 확대해, 연비가 낮은 대형차량에 대한 보유세를 강화하고 연비가 높은 차량이나 대체연료 사용차량에 대해 세 경감을 확대하는 것이 필요하다. 고유가 시대에 소득과 소비가 많은 계층이 보다 많은 부담을 지고 솔선수범하도록 정책적으로 유도하는 것이 대다수 국민 정서에도 부합하고 경제적, 사회적 양극화 해소에도 유익하다.

보다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대책은 국제유가변동에 따라 국내 소비자 가격을 연동 시키는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인위적 환율상승과 같은 경제정책적 실수가 다시는 없어야 한다. 적어도 국제적인 달러화 가치하락에 의한 유가 상승분은 원-달러 환율저하로 흡수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서 국제유가의 급격한 가격 등락에 따라 소비자 가격이 급등하지 않도록 국내외 전략유 비축 등을 통해 충격을 일정 부분 완충하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시장친화적인 정책이 차량운행통제와 같은 행정규제 강화보다 훨씬 국민적 공감과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규제완화'와 '시장경제'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는 현 정부의 정책기조와도 더 잘 부합한다.

배럴당 300달러 이상 고유가 장기화에 대비해야 할 때

중장기적으로는 차세대 하이브리드카 개발과 보급 확대, 차량 에너지 효율 개선, 상습 정체구간 해소와 교통정보체계 개선, 차세대 도시교통수단 개발 및 대체에너지원 개발 등에 이제 적극 나서야 한다.

지난 5년간 유가 동향을 놓고 봐도 그렇고, 앞으로도 추가 유정 개발 정체, 중국, 인도 등 신흥부국의 에너지 수요 증가, 중동과 남미 산유국의 정세불안, 기축통화로서의 오일달러 영향력 감소 등으로 5년내 배럴당 300~500달러까지 올라가는 초고유가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제 고유가 장기화에 대비한 중장기 전략을 실천할 때인 것이다.

설사 배럴당 100달러 이내로 일시적으로 떨어진다고 해도, 고유가에 대비한 중장기 대책들은 여전히 유효하다. 왜냐하면, 이미 배럴당 150달러에 다다른 이상 언제든지 100달러 이상으로 다시 올라갈 수 있기 때문이다. 또, 10~20년 후를 보면 경제성 있게 채굴가능한 석유는 희소해지지만 석유에너지 경제체제가 이 기간에 다른 에너지 경제체제로 전환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엔사무총장을 배출했고 2007년 기준으로 구매력지수(PPP)를 고려한 1인당 GDP가 2.6만불에 달하며 선진경제국 모임인 OECD 10위 경제규모에 일본의 1/2에 달하는 수출대국이 된 국가답게 전 지구적 차원의 전략과 멀리 내다보는 정책으로 고유가 사태를 극복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이는 글 임춘택기자는 KAIST 전문교수로서 과학기술 정책전문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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