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가 필요해, 자신을 죽여가며 하는 일"
중요무형문화재 채상장 서한규 옹과 대와의 질긴 인연
▲ 삼합채상일일이 수고로운 수작업으로 탄생한 명품 채상 ⓒ 조찬현
채상은 대나무를 종잇장처럼 얇고 가늘게 다듬어 여러 색깔로 염색하여 짜 만든 대나무상자이다. 겉대와 속대를 모두 쓸 수 있는 질 좋은 왕대를 골라야 좋은 채상을 만들 수 있다. 채상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대나무는 토질 좋은 황토밭에서 자란 속살이 보드랍고도 차진 대나무를 동지에 채취해 대나무가 마르기 전에 다듬어 작업을 해야 한다.
이 대나무 상자에는 처녀의 혼수감을 담거나 여인의 반짇고리로 사용하였으며 아름다운 문양과 색상이 특징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전통염색 기법을 활용하여 천연염료를 사용하는 염색 또한 아주 중요하다. 씨대와 날대를 놓고 바닥 잡기를 한 다음 상자를 짜는 채상 짜기는 대나무 예술의 진짜배기다.
▲ 가늘게 쪼갠 대나무청색과 홍색 등 다양한 색채로 염색을 해 그 무늬가 정말 아름답다. ⓒ 조찬현
전남 담양 죽녹원 근처에 위치한 채상장 전수교육관은 전통공예인 죽공예를 통해 대나무 올로 꽃과 비단을 짠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3호로 지정된 채상장 서한규(78)옹과 서옹의 딸이자 전수조교인 서신정(49)씨가 운영하는 죽제품 전시관. 내부에는 아기자기한 대나무 소품과 죽부인, 대나무핸드백, 대나무상자 등의 각종 채상 작품들이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다.
이곳 작업실에서 서한규 옹의 손을 거쳐 대나무가 새롭게 태어난다. 대나무를 칼로 몇 번 훑어내자 대살이 종잇장처럼 얇아졌다. 채상장 서 옹과 전수자인 서신정씨가 만들어낸 작품을 보면 그 아름답고 정교함에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온다. 고운 색상으로 염색해 놓은 길게 늘어진 대나무 가닥을 보기만 해도 그저 탄성이 나올 정도이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채상은 일반 죽제품과는 분명 다르다. 비교를 거부하는 진기한 명품이다. 그 명성에 걸맞게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옻칠 삼합채상 한 세트 가격이 무려 470만원이나 한다. 삼합 세트는 전수자인 딸과 함께 꼬박 10일 이상을 매달려야 만들 수 있다고 하니 그 값어치를 논한다는 그 자체가 어쩌면 결례가 되는 것이 아닐까 조심스럽다.
▲ 채상상 서한규 옹열여섯에 푸르른 대의 소리에 매료되어 60여년을 대나무와 함께 살고 있다. ⓒ 조찬현
▲ 대나무 수작업곱게 다듬어 결이 매끄럽고 때깔이 고운 대나무 ⓒ 조찬현
서한규 옹은 죽물의 본고장인 전남 담양 벌뫼마을에서 1930년에 태어났다. 당시 벌뫼마을에는 100여 호가 살았었는데 80호가 죽석, 삿갓, 부채, 등의 죽물을 만들었다고 한다.
"대 쪼개고 그런 걸 이웃 어른들 등 너머로 배웠어. 그때가 15세였어. 제일 작은 부채부터 시작해 삿갓, 죽석 그렇게 했어요."
대나무를 칼로 훑고 있는 서옹에게 대나무 결이 실오라기 같다고 하자 "그게 기술이죠. 손재주에 매였습니다. 최소한 2년은 대를 다뤄야 뜨죠"라며 기계로도 할 수 없어 일일이 수작업을 해야 한다고 한다.
끊임없는 갈등으로 8번 집 옮겨 "담양 떠나 이 일을 안 하제"
▲ 삼합채상화려하면서도 중후한 분위기다. ⓒ 조찬현
"담양을 떠나버려야 이 일을 안 하제 그러고 집을 팔고 8번이나 이사를 갔습니다."
날마다 새벽 4시 30분이면 일어나 냉수마찰과 조깅을 한 다음 냉수 2잔을 마시는 게 건강을 유지하는 비결이라고 말하는 서옹의 얼굴은 댓잎처럼 청초하다. 작업 중에는 세상과 소통하고 무료함을 달래주는 텔레비전이 그의 유일한 친구가 된다.
지금은 채상을 배우려는 사람이 없다. 부유층 일부만이 제품을 찾아 소비처가 없는 것 또한 큰 문제다. 60평생을 대나무와 함께 살아온 그는 작업 시 단 1mm의 오차도 허용치 않는다.
죽제품을 만드는 일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채상은 대나무를 일일이 하나하나씩 얇게 훑어 종잇장처럼 만들어야한다. 하지만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이 일을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배울라고 하는 사람이 없어요. 워낙 짜기도 어렵고, 고가라 찾는 사람이 없으니."
채상은 이제 부녀의 삶... 한국 채상의 명맥 이어가
▲ 채상 부녀한국 채상의 명맥 이어가는 채상은 이제 부녀의 삶이다. ⓒ 조찬현
이제 채상은 그의 삶이자 일의 전부가 됐다. 취재 도중에도 그의 손놀림은 계속 이어진다. 단아한 기품이 깃든 채죽 노리개, 채죽 안경집, 채죽 핸드백, 채죽선 등은 물론 각종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아주 다양한 죽제품들. 전통공예품은 아버지가, 채죽 작품은 딸이 주로 만든다.
서옹의 둘째 딸이자 전수조교인 서신정씨의 작품에는 우리 고유의 정서와 생활이 오롯이 담겨있다. 전통문살에 채상을 이용한 '고향', 죽녹원의 대밭을 옮겨놓은 듯한 '대밭', 삼베에 채상과 바느질기법으로 자연을 담은 '자연은 축복입니다' 등의 작품은 한 번 시선이 닿으면 결코 쉽게 눈길을 거둘 수가 없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작은 상자는 손에 안 잡히니까 나를 죽여야 돼요. 자신을 죽이면서 작품을 합니다."
평생을 대나무와 함께 살아온 채상장 서한규 옹과 자신을 죽여 가며 작품에 몰입하는 전수조교 서신정씨. 그들 채상장 부녀의 열정이 전남 담양의 채상장 전수교육관에서 한국 채상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 대나무죽녹원의 푸르른 대나무 ⓒ 조찬현
▲ 고향서옹의 둘째 딸이자 전수조교인 서신정씨의 작품, 전통문살에 채상을 이용한 ‘고향’ ⓒ 조찬현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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