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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야 고맙다, 잼이 되어 줘서!

'불량 주부' 순악질 아빠의 토마토잼 도전기

등록|2008.07.17 21:50 수정|2008.07.18 19:38

▲ 이 말랑말랑한 토마토로 잼을 만들었답니다. 대단하죠? ⓒ Flickr

여름철이면 과일 중에 토마토(채소지만 그냥 과일이라고 해두자)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 오이나 가지처럼 대충(?) 키워도 수확이 좋기 때문일 게다.

젊었을 적에 사과 과수원에 있었던 경험에 의하면, 사과를 수확하기 위해선 추울 때 가지를 전지하고, 외바퀴 손수레로 거름을 주고, 꽃이 피어 열매가 맺기 시작하면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솎아 줘야 한다.

그리고 더워지면 연일 농약 주기에 바쁘고, 열매가 커지면 까치와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하는 등등 일 년 내내 애지중지 가꾸어야 한다. 그에 비하면 토마토는 간편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값이 싸다고 해서 영양가가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타 과일보다 영양가면에선 월등히 우월한 게 과학적으로 증명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풋풋한 냄새 때문에 아이들이 썩 내켜하지는 않지만, 세상 만물에 완벽한 것이 어디 있으랴. 맛은 사소한 부분일 뿐이다.

토마토는 비타민이 풍부하여 그냥 먹어도 좋지만, 가열해서 먹으면 토마토에 함유된 항산화제 역활을 하는 리코펜이 인체에 더욱 흡수가 잘 된다고 한다. 또한 리코펜은 지용성이기 때문에 기름에 조리했을 때도 잘 흡수가 된다. 항암효과, 노화 억제, 치매 예방 등에 가장 좋은 과일이다. 이에 어느 누구도 반론을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인터넷에 들어가 검색해 보면 그 효능에 대해서 쉽게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는 그만 줄이겠다.

싱글대디, 인스턴트와의 전쟁을 선포하다

▲ 홈런볼과 콘칩, 썬칩 등 낯익은 과자들이다. 5월부터 유전자조작 옥수수를 원료로 아이들이 즐겨 찾는 과자와 음료수, 빵 등의 가공식품을 생산한다는 업체의 입장이 드러나 시민단체들이 반대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장윤선

어쨌든, 2년 전 암 투병을 하던 아내를 결국 하늘로 보내고 본의 아니게 '싱글 대디'가 된 뒤 아이들 둘(중3 여자아이와 초등 6학년 남자아이)을 키우면서 가장 걱정스러운 게 먹을거리였다.

더구나 큰놈이 아토피가 좀 있어 음식을 고르는 데 나도 모르게 결벽증적으로 예민해질 수밖에 없다. 물론 고집스런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나름대로 먹을거리에 대한 철칙을 만들어 이행해 왔다.

우선 라면으로 대표되는 인스턴트 음식과 과자, 빙과류 등은 절대 사 먹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치킨, 도넛, 탕수육, 튀김 등 기름에 튀긴 것 또한 얼씬도 못하게 하고, 육류도 최소한으로 줄이고 있다.

아이들 엄마가 있을 때는 부담 없이 먹던 그러한 음식을 어느 한 순간 딱 끊어 버렸다. 당연히 아이들의 반발이 뒤따랐다. 몰래 라면 먹다 흔적이 발견되면 야단맞기 일쑤고, 아이스크림이나 과자 사달라고 하면 어르고 달래 무마시켰으며, 치킨이나 햄버거 먹고 싶다고 징징거리면 마음 아프지만 매정하게 등을 돌려댔다.

한동안은 인스턴트 금단 현상으로 아이들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물론 그러한 음식을 전혀 안 먹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빠나 친척들한테 받은 용돈으로 몰래 군것질을 할 것은 안 봐도 뻔했다.

하지만 그것까지 쫓아다니며 통제할 수 없는 노릇이고, 그 정도는 숨구멍을 터놓아야지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내심 자조를 했다. 하여튼 지금은 시장에 장보러 같이 가더라도 아이들은 과자나 아이스크림을 사달라고 하지 않는다. 이젠 포기했을 것이다. 순악질 아빠!

첨가물 범벅 딸기잼, 순악질 아빠도 어쩔 수 없네

얘기가 조금 빗나갔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토마토 얘기를 하자. 아침밥을 챙겨주면 좋겠지만 서울로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여건상 그러지는 못하고 혼합곡식 식빵으로 아침밥을 대체해 왔다.

그런데 문제는 '잼'이었다. 빵집에서 파는 잼이라는 게 첨가물이 안 들어가고는 3, 4천 원에 팔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한 때는 잼 없이 식빵만 구워 먹였는데 녀석들은 먹는 둥 마는 둥 입술을 석자는 내밀었다. 그렇다고 맛있는 내용물을 만들어 샌드위치를 해 줄 수 있는 부지런함이 아빠에게는 없었다. 희망사항이었다. 여하튼, 그나마 사온 잼을 발라주면 불만 없이 잘 먹었다.

그래, 잼을 만들자.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십여 일 전에 말이다. 특히 토마토는 제철이어서 값도 싸고 더구나 영양가는 만점이니 제격이다.

일요일(6일) 오후였다. 점심을 먹은 후 아이들을 데리고 동네 마트에 갔다. 일 주일분의 찬거리를 사면서 주먹만한 토마토 일곱 개와 황설탕도 샀다. 크기가 좀 작고 완숙된 빨간 토마토를 사려했으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그마나 조금 덜 완숙된 토마토를 사야만 했다. 아이들은 영문도 모르고 항상 그렇듯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온갖 유혹을 몸소 겪고 있었다.

'윈도쇼핑, 많이 하거라 이놈들아.'

집에 온 나는 인터넷에서 대충 암기한 순서에 따라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 만드는 음식은 좀 긴장되기 마련이다. 성공할 수 있을까? 애들의 '통관검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 군고구마나 곰탕처럼 실패의 전철을 밟지나 않을까?

"아빠, 뭐하는 거야?"

큰 놈이 물었다.

"토마토잼."
"!?…."

녀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텔레비전 앞으로 간다. 그냥 날것으로 먹는 줄 알았는데 토마토잼이라니? 녀석은 내심 썩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한마디로 못 믿겠다는 것이다. 

토마토로 잼을? 삼복더위에 난 해냈다

▲ 누구나 만드는 딸기잼.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토마토잼. 카메라가 없어 직접 보여주지 못하는 게 다만 아쉬울 따름이다. ⓒ 한살림

먼저 토마토를 깨끗이 씻은 후 머리에 십자로 칼집을 내고 끊는 물에 넣고 살짝 데친다. 껍질이 벗겨지는 게 보일 때 토마토를 건져내 조금 식힌 후 껍질을 완전히 벗겨낸다.

이때 주의할 점은 데칠 때 꼭지를 배어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 데칠 때 영양분이 빠져나간다고 하는데 사실 확실치는 않다. 그렇게 하라고 하니 '초짜'가 무슨 이견이 있겠는가.

그리고 껍질을 벗긴 토마토를 팔등분해 냄비에 넣고 중불로 끊이기 시작한다. 물은 전혀 넣지 않는다. 그 다음부터는 인내력이 요구된다. 냄비에 가득이던 토마토가 반 정도 줄 때 설탕을 넣는다.

요리책에는 토마토와 50대 50 비율로 설탕을 넣으라고 나와 있는데 요즘 같이 웰빙을 추구하는 시대에 그만한 양은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 하여 나는 25정도로 줄였다.

하여튼 그때부터는 약불에서 나무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어야 한다. 몇 분 젓다가 지겨우면 텔레비전 앞으로 가 큰 놈한데 리모콘을 뺏어 프로야구 좀 보다가 냄비 앞으로 다시 가고, 또 몇 분 젓다가 지겨우면 베란다로 가서 담배 한 대 피우고 다시 냄비 앞으로 와 젓고…. 그러기를 몇 번인가, 도대체 언제까지 저어야 잼이 되는지 토마토는 나의 인내를 시험하고 있었다.

이 더운 날씨에 뜨거운 불 앞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차라리 사먹고 말지 이게 무슨 고생이란 말인가. 서서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냥 대충 저어서 대충 먹자, 잼이 안 되면 그냥 스프처럼 찍어 먹으면 되지 뭐…. 여기서 불을 꺼버려? 그래, 이 짓거리는 오늘로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갈등은 증폭되고 있었다.

그래도 시작한 것이니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가는 데까지 가보자. 나는 다시 짜증과 갈등을 누그러뜨리고 마지막 터치라인을 향해 주걱을 힘껏(?) 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신기하게도 그 묽던 토마토는 젤 형태의 잼이 되어가고 있었다.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는 격언은 헛된 말이 아니었다.

"민정아! 이리와 봐!"

흥분한 나는 미식가인 큰놈을 불러 맛을 보게 했다. 녀석은 만족은 못하지만 먹을 만은 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럭저럭 먹을 수 있다는 말이다. 드디어 관문을 통과한 것이다. 이 기분을 누가 알겠는가!

한 냄비 가득 되던 토마토가 국그릇 하나 정도로 변한 그 잼을 나는 토종 벌꿀처럼 신주단지 모시듯이 그릇에 담았다. 그리고 그 그릇을 두 손 높이 들어 감사의 기도를 올린 후 냉장고에 고이 모셨다. 내일 아침이면 금쪽 같이 아까운 그 토마토잼은 나와 딸놈과 아들놈 입으로 사라질 것이다. 토마토야, 고맙다. 잼이 되어 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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