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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집엔 '짬짜면', 우리집엔 '치자 콩국수'

유둣날 장모님께 만들어드린 콩국수... "자네 덕에 잘 먹었네!"

등록|2008.07.18 11:11 수정|2008.07.18 11:46

▲ ‘치자 냉콩국수’. 제가 찍은 사진이지만 보기만 해도 시원하게 느껴지고 먹음직스럽게 보이네요.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직접 만들어 드시면 알게 될 거예요. ⓒ 조종안


오래전부터 하루 이틀에 한 번꼴로 '치자 냉콩국수'를 만들어 먹으며, '기회가 있으면 장모님에게도 맛을 보여 드려야지'라고 생각을 해오다 동쪽으로 흐르는 물에 머리를 감는다는 유둣날(17일)에야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더위가 절정에 달하는 유둣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를 먹으면 더위를 타지 않고 건강하게 여름을 날 수 있다고 하여 유두국 유두밀떡 등을 만들어 먹었던 선조들의 지혜가 떠올라 날짜를 맞췄던 것입니다. 

'치자 냉콩국수'는 여름의 문턱에 들어선다는 입하(立夏)를 넘기면서 적은 비용으로 어떻게 하면 올여름의 무더위를 이길 수 있는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을까 생각한 끝에 몇 차례의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개발해낸 저만의 여름 음식입니다.    

아내가 보내주는 생활비로 혼자서 밥을 해먹으며 돈을 아끼려고 냉면 먹는 날도 정해놓고, 자장면 먹는 날도 정해놓고, 장모님과 잡채밥 먹는 날도 정해놓고 지켜왔는데요.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더라고요. 자장면을 먹으려면 냉면이 생각나고, 잡채밥을 먹으려면 유산슬밥이 생각나는 걸 어찌할 도리가 없더라고요. 

중국집 주인들이 '자장면을 먹으면 짬뽕이 울고, 짬뽕을 먹으면 자장면이 운다'라는 손님들의 하소연을 듣고 개발해낸 것이 '짬짜면'이듯, 값도 싸고 면발도 냉면처럼 쫄깃쫄깃한 치자국수로 냉콩국수를 만들어 먹어보았더니 치자의 향긋한 향과 시원한 맛이 그만이어서 '아하, 바로 이거구나!'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더라고요. 해서 이름을 '치자 냉콩국수'라 붙이고 날이 무덥거나 밥맛이 없을 때 만들어 먹고 있습니다. 

단백질과 지방질이 풍부한 콩을 좋아하게 된 배경에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어머니는 평소 콩은 '밭에서 나는 쇠고기'라고 하시면서 여름에는 된장, 겨울에는 청국장을 콩으로 만들어 먹는데 "일 년에 콩 한 말을 먹으믄 소 한 마리 잡아먹은 거시나 다름없다"라는 말씀을 자주 하셨거든요.

'콩 볶아 먹는 날'(음력 2월 1일)에는 거르지 않고 검은 콩을 볶아 주시면서 1년 동안 하루도 빼놓지 않고 생콩을 먹으면 '무병장수'한다는 말씀도 해주셨으니 콩에 매력을 느낄 수밖에요. 마흔아홉에 큰 병치레를 하시고, 환갑만 넘겨도 오래 사시는 거라고 했던 어머니가 팔순을 훌쩍 넘기도록 건강하게 살다 돌아가신 것도 몸과 마음 관리를 잘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장모님과 맛있게 먹은 '치자 냉콩국수'

▲ ‘치자 냉콩국수’를 맛있게 드시는 장모님. 국수를 저보다 훨씬 많이 담아드렸는데, 많다는 말씀도 없이 모두 드시더라고요. 맛도 있었지만, 시장하셨던 모양입니다. ⓒ 조종안


전에도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모든 음식은 첫째 정성이 들어가야 맛도 더합니다. 해서 장모님에게 가기 전에 목욕도 하고 면도도 했습니다. 얼굴에 핏기도 돌고 깔끔해야지 후줄근하게 생긴 사람이 만든 음식을 누가 맛있고 기분 좋게 먹을 수 있겠습니까.

아침을 먹기 전부터 '치자 냉콩국수' 재료와 도구들을 꼼꼼히 챙겼습니다. 저도 건방증이 있거든요. 해서 간단히 요기를 하고 치자국수와 콩 국물을 비롯해서 볶은 참깨, 노란 설탕, 오이, 겉절이 등 재료와 반찬까지 준비해두었다 가져갔습니다. 

아파트에 들어서니까 장모님이 "콩국수는 안 먹어도 되는디···. 더운디 무거운 걸 이렇게 들고 왔댜"라며 에어컨을 켜시더라고요. 제가 땀을 흘리니까 미안했던 모양입니다. 해서 저도 "치자 냉콩국수는 더운디서 먹어야 더 맛있습니다"라며 한마디 했습니다. 혼자 계실 때는 선풍기만 틀어놓고 지내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 데 큰 대접을 받은 셈이지요.

소파에 앉으면서 장모님에게 "오늘이 유둣날인데 젊으셨을 때는 뭣을 만들어 잡수셨어요?"라고 물었더니 "먹기는 멀 먹겄는가. 밥도 먹기 힘든 시상이었는디, 논일 허기도 바쁜디 무슨 날이라고 혀서 챙길 정신이 있었간디"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듣고 생각하니 평생 일만 하면서 살아온 양반에게 제가 질문을 잘 못한 것 같더라고요.  

시간을 보니 이른 저녁으로 국수를 만들어 먹으면 좋을 것 같더라고요. 해서 얼음도 준비하고 가져간 겉절이와 오이는 냉장고에 넣어놓고, 두 시간 정도 장모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팔순을 넘긴 노인에게는 '치자 냉콩국수'보다 대화 상대가 더 중요할 수도 있거든요.

▲ ‘치자 냉콩국수’를 먹으면서 젓국으로 담근 겉절이가 없으면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습니다. 해서 익지 않은 겉절이는 필수인데요. 집에서 담근 겉절이 같으면 말할 것도 없겠습니다. ⓒ 조종안


국수가 만들어지는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재료를 준비만 해놓으면 15분이면 되거든요. 장모님은 처음엔 주방에서 제 수발을 들어주더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구경만 하고 계시더라고요. 제 손놀림이 믿을 만했던 모양입니다.

정성을 다한 끝에 '치자 냉콩국수'는 만들어졌고, 시원한 거실에 마주앉아 먹는데 "시원허다"는 말씀을 반복하시는 장모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더라고요. 상을 물리시고는 연거푸 "시원허고 맛있고만, 자네 덕택에 잘 먹었네!"라고 하셔서 더욱 보람이 있었습니다.

유두날에는 장모님과 함께 만들어 먹었으니, 생일이 며칠 남지 않은 큰 누님과 일주일 후에 집에 오는 아내에게도 '치자 냉콩국수'를 만들어 대접할 계획입니다.

'치자 냉콩국수' 만드는 비법을 공개합니다

'치자 냉콩국수'를 만들어 먹으려면 첫째 수돗물을 믿고 먹는 습관부터 들여야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있습니다.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로 국수를 씻고 얼음을 얼려먹어야 하니까요. 저도 대통령은 믿지 못하지만, 수돗물은 믿고 마시는데요. 대신 끓이거나 숭늉으로 만들어 식힌 후 냉장고에 넣어놓고 시원하게 해서 마십니다.    

'치자 냉콩국수'를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 ‘치자 냉콩국수’를 만드는 과정. 국수는 먹은 후에 서운할 정도로 넣고, 콩국물과 얼음을 많이 넣으면 최고의 ‘웰빙음식’이 될 것이라 확신합니다. ⓒ 조종안


1. 먼저 국수에 들어갈 얼음을 얼려두시고요. 콩국수에 넣을 시원한 물도 준비한 다음 큰 냄비에 적당량의 물을 끓입니다.  

2. 팔팔 끓는 물에 국수를 조금씩 넣고 긴 나무젓가락으로 저어가며 약 3~4분 정도 끓인 다음 채반 위에 올려놓고 탈탈 털어가면서 찬물로 헹궈 사리로 만들어 얼음이 담긴 냉면 그릇에 담습니다.

3. 국수에 적당한 양의 콩 국물과 시원한 물, 그리고 설탕, 볶은 참깨, 오이 고명을 얹습니다. 그리고 콩 국물과 찬물이 뒤섞이면서 설탕이 녹을 때까지 휘저어주고 나서 먹으면 치자 향과 가끔 씹히는 고소한 깨소금 그리고 쫄깃쫄깃한 면이 씹히는 맛이 일품입니다. 여기에 땅콩가루를 조금 넣으면 고소하고 몸까지 시원해지는 것을 느끼며 더위가 언제 달아났는지 모르지요.    

치자국수 2000원짜리 하나면 3~4명이 먹을 수 있으며, 콩 국물은 국내산을 재료로 하는데, 1.8리터짜리 페트병 하나(3500원)면 세 그릇을 만들고 조금 남습니다. 남은 콩 국물로 등산, 헬스, 골프 등 격렬한 운동을 하고 콩 음료를 만들어 먹으면 피로와 스트레스를 완화시키는데 그만이라고 합니다. 설탕은 노란 설탕이 더 좋다고 하는데요. 당뇨가 있으신 분은 설탕 대신 소금을 타 먹으면 좋습니다. 

'치자 냉콩국수'를 만들어 먹기 시작하면서 닷새에 한 번 정도는 부산 구포시장 내에 있는 '李가네 구포국수'집을 찾는데요. 주인에게 '치자 냉콩국수'를 만들어 먹게 된 사연을 얘기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연구해볼만 하다고 하더라고요.

주인의 설명에 의하면 '구포국수'는 말리는 과정에서 염분이 섞인 바닷바람이 스며들어 면발이 쫄깃쫄깃하고 약간 짠 맛이 특징이라고 합니다. 밀면과 더불어 부산의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었는데, 1990년대 이후 고임금과 대기업의 본격적인 식품사업 진출로 인해 지금은 3~4곳의 국수 공장만이 가동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도 국수 애호가들은 끊임없이 찾고 있더라고요.

▲ 구포 시장 내에 있는 '李가네 구포 국수' 입구. 덕천 사거리에서 구포 역 방향으로 약 5분 거리에 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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