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잡을 수 없는 이명박 정부 대북정책
금강산 피격-남북관계 별개라더니 이제는 '강경'...한나라당은 '회담' 제의
▲ 김중태 통일부 남북교류협력국장이 11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별관 브리핑실에서 금강산 관광객이 북한군에 피격 사망한 사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김호년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대한 조사가 완료될 때까지 금강산 관광을 잠정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 권우성
개성 관광 중단을 시사하는가 하면 세계식량기구(WFP)를 통한 대북 식량 지원도 '검토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하면서 미적거리고 있다. 더구나 20일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는 금강산 피살 사건 문제를 제기하는 '국제공조'를 통해 압박을 가할 계획이다.
이런 와중에 여권의 홍준표 원내대표와 김형오 국회의장은 뜬금없이 남북 회담을 제안했고, 외교안보라인 물갈이론까지 나오는 마당에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18~21일 필리핀을 방문해 '너무 한가한 일정' 아니냐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정부가 현대아산에 개성관광 중단을 요청했다"며 파문이 확산되자 통일부 당국자는 "금강산 관광만 중단하고 개성관광은 계속한다고 한 입장은 유효하다"고 진화했다. 그러나 이 당국자에게 기자들이 "정부가 개성관광 중단도 검토중이라고 기사를 쓰면 오보냐 아니냐"고 물었을 땐 딱 부러진 대답이 없었다.
실제로 정부 안에는 북한이 합동조사를 계속 거부한다면 개성관광까지 중단해야 한다는 의견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 쪽에서도 이런 얘기를 정부에 많이 전달하고 있다.
또 "이번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1~2년 정도 장기간 금강산 관광을 중단할 수 있다"는 게 정부 기본 입장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제 공조 통한 북한 압박? 과연...
정부가 지난 5월 중순 북한에 제의한 옥수수 5만t 지원 계획도 오리무중이다.
북한은 진작 안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정부는 북한 식량난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면 평양 당국의 요청이 없더라도 식량을 지원하겠으며, 특히 세계식량계획(WFP)의 현지 조사 보고서가 나오는대로 WFP를 통해 식량을 지원하기로 했었다.
그러나 장 피에르 드 마저리 WFP 평양사무소장이 최근 서울을 방문했고 16일 우리 정부에 북한 주민 3분의 2가 식량난으로 하루 두끼 식사를 하고 있다는 실사 보고 결과의 개요를 전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아직 입장이 결정되지 않았다, 최종 보고서가 나온 뒤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WFP는 최종 보고서를 10일 뒤 자신들의 홈페이지에 올릴 계획이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자리에서 우리 정부 당국자가 "지금은 국민적인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국민 정서상 어려움이 있다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김호년 통일부 대변인은 18일 오전 브리핑에서 이같은 보도에 대해 "옥수수 지원 여부에 대해서는 계속 검토중"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현재 정부는 박왕자씨 피살 사건이 난 뒤 금강산 면회소 비품 제공, 이달 중 북측에 제공할 예정이던 통신 자재·장비 지원도 시급하지 않다는 이유로 제공을 미루고 있다. 물론 금강산 피살 사건에 대한 국민감정 때문이다.
이런 마당에 "북한 식량사정이 어렵기는 해도 아사할 정도는 아니다"라는 판단을 가지고 있는 정부가 옥수수를 WFP를 통해 제때 지원할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오는 22일부터 24일까지 싱가포르에서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이 열린다. 정부는 '금강산 피살' 사건을 ARF 전체회의 석상에서 공식적으로 제기할 계획이다. 이른바 국제공조를 통한 압박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른바 남북문제를 국제무대로 끌고 가는 것에 대해 극도의 불쾌감을 보여왔다. ARF에서 문제를 제기한다고 해도 실질적인 효과는 없이 남북한 사이의 감정 대립만 더 격렬해질 것이다.
지난 11일 박왕자씨가 금강산에서 피살당한 날 이명박 대통령은 이 사실을 알고도 전면적인 남북대화 재개를 제의했다. "안이한 상황인식"이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청와대 관계자는 "전체적인 남북 관계와 이번 사안은 별개"라면서 "우리가 남북관계의 큰 방향을 강물의 흐름이라고 한다면 그 가운데 돌출적인 이런 저런 사안들도 생길 수 있는 것 아니겠나"라고 반문했다.
그러나 불과 1주일만에 태도가 바뀌었다. 이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 대해 '진정성이 관건'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결국 우려대로 됐다. (관련기사 보기: 이 대통령 달라진 대북 발언... 문제는 '진정성')
전문가들, 남북관계 '회복불능' 우려...유명환 장관 필리핀행도 뒷말
▲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오후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18대 국회개원식에서 시정연설을 하고 있다. 이날 이 대통령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실을 전해듣고도 전면적인 남북대화 재개 제안을 했다. ⓒ 유성호
백학순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개성관광까지 중단하면 남북한 당국의 신뢰가 되돌이키기 어려운 수준까지 악화될 것"이라며 "ARF에서 금강산 피살 사건을 제기하는 것도 남한 정부가 국제사회를 동원해 압력을 가한다는 것이어서 북한의 반발은 눈에 보이듯이 뻔하다"고 우려했다.
그는 "정부가 이런 정책을 쓰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은 말 뿐일뿐 실제로 적극적인 정책 변화는 아니었다고 북한이 판단할 것"이라며 "남북한 당국 사이의 신뢰는 더욱 떨어지게 됐다"고 밝혔다.
한 남북문제 전문가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며칠사이에 왔다갔다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남북문제에 대한 기본 전략이 없기 때문"이라며 "4강 외교가 다 실패한 상황에서 웬 국제공조며, 그런 국제공조란 미국에 읍소하는 것 말고 무슨 수단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지금 북한 입장에서는 굳이 이명박 정부와 대화를 할 필요가 없다"며 "이렇게 가면 남북대화 복원은 아마도 1~2년 뒤 6자 회담에서 경수로 비용 문제가 나올 때나 가능할 것같다"고 우려했다.
그러나 이 인사는 (남측의) 개성관광 중단시 (북측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다. 그는 "현재 북한 노동자만 3만명이 넘은데, 공단은 한번 중단시켰다 재가동하려면 부담이 너무 크다"며 "북한은 한번에 개성공단의 가동을 중단시킨다기 보다는 노동력 제공을 줄이는 등 자신의 카드를 잘게 나눠서 조금씩 사용하는 '살라미 전술'을 쓸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런 상황인데 홍준표 한나라당 원대표는 지난 14일 국회연설에서 남북 정치회담을 제안했다. 17일에는 현재 무당적이지만 한나라당 출신인 김형오 국회의장이 "1990년 이래 중단된 남북 국회회담 준비 접촉을 재개할 것을 북측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아마도 지난 11일 이 대통령의 전면적인 남북대화 재개 제안을 여권 차원에서 뒷받침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보이는데, 최근 표변한 청와대 분위기와는 별로 맞지 않는다.
한편 외교안보 라인이 무능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데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18~21일 필리핀을, 21~22일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것에 대해서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ARF 참석 길에, 내년이 필리핀과의 수교 60주년이고 미리 두 달 전에 계획된 일정이어서 간다는 게 외교부 대변인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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