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이명박 대통령이 우리를 밖으로 부른다"

[현장] '공영방송 위기' 속에 촛불 든 사람들... "방송장악분쇄"

등록|2008.07.22 01:28 수정|2008.07.22 15:40

▲ 21일 밤 KBS 본관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 송주민



21일 밤에도 KBS 본관 앞에는 '촛불'이 환하게 켜졌다. 지난달 11일 "KBS 특별감사 반대"를 외치며 시작된 촛불은 40일이 넘게 하루도 빠짐없이 KBS 앞을 비췄다. 20~30명만이 현장에 남아 '쓸쓸하게' 밤을 지센 적도 있었지만 촛불은 꺼지지 않고 연일 타올랐다.

이처럼 촛불은 매일 밤마다 한결같이 공영방송 앞을 지켰다. 특히 이날 모인 200여 '촛불들'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더욱 묻어나 보였다. 이들이 팔과 머리 등에 동여 맨 노란색 천에는 '방송장악분쇄', '방송통신위원회 해체하라'는 등의 문구가 적혀 있기도 했다.

왜 유독 이날은 '촛불'이 비장해 보였을까?

신태섭 KBS 이사의 의문스러운 해임, 박재완 청와대수석의 'KBS는 정부산하기구' 발언, 검찰의 정연주 사장 전방위적 압박 등 최근 이명박 정부의 공영방송 장악 음모가 점차 노골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촛불 시민'들은 전했다. 급박한 상황 속에서 위기의식을 느낀 KBS 일부 직원들도 '촛불'을 들고 시민들 가운데 몸을 섞었다. 

'공영방송의 최대 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봤다.

[시민들] "KBS는 국민의 것... 뺏기지 않으려고 있는 것"

이날 KBS 앞에 모인 사람들은 매우 다양했다. 20대 대학생들과 30대 젊은 직장인들이 조금 많았으나 10대 청소년들부터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온 주부들, 그리고 배가 불룩 나온 중년의 아저씨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여 KBS 앞 인도에 자리를 잡았다.   

대학원생인 안준모(29)씨는 홀로 앉아 촛불을 들고 있었다. 그는 "방송과 언론은 무엇보다도 공영성이 중요하고 정치적인 목적에 의해 논조가 좌우되면 안 됨에도 불구하고 최근 KBS 정연주 사장을 내쫓기 위한 정권 차원의 압력이 심화되고 있다"며 "정권의 입맛에 맞추는 영혼을 잃은 방송을 막기 위해 작은 힘이나마 보태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나왔다"고 전했다. 

금융회사에 다닌다는 이준호(42)씨도 "신태섭 이사를 법적 근거도 없이 해임을 시키는 등 현 정권이 정 사장을 밀어낸 후 자기사람을 심으려고 거의 '올인'을 하는 것 같다"며 "공정 보도를 하는 것이 언론의 사명인데 공정성을 해칠 가능성이 농후한 사건들이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씨와 함께 앉아 있던 서강대 재학생 오승현(25)씨는 "YTN에 낙하산이 임명되고 그 다음이 KBS와 MBC가 될 것이라는 촛불의 우려가 현재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며 "이런 식으로 그간 이룩해 온 민주화의 성과를 후퇴시키는 행위들을 정부에서 밀어붙인다면 분명히 촛불의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오씨는 특히 박재완 청와대수석의 KBS 발언과 관련 "도대체 청와대가 구현하려는 철학이 무엇인지가 정말 궁금하다"며 "말은 앞으로 하고 일은 뒷구멍으로 처리하는 것이 정부가 말하는 철학인가"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초등학교 교사인 김순자(48)씨는 9살난 아들과 함께 KBS 앞을 찾았다. 그는 "KBS는 국민의 것이므로 빼앗기지 않기 위해 이렇게 왔다"고 말했다. 공영방송이 국민이 아닌 정권의 손아귀에 들어가게 되면 과거 5공 시절의 '땡전뉴스'로 돌아가지 않겠냐는 것. 

김씨는 "국민의 방송을 국민들이 자신의 물건처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나 같은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올바름과 정의를 가르쳐야 하고, 언론은 국민들에게 진실과 진리를 알려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KBS직원들] "올림픽 전에 '정연주 축출' 끝내자는 각본에 의해 움직이는 듯"

▲ 21일 밤 KBS 본관 앞에서 촛불을 들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 ⓒ 송주민


한편 양승동 한국PD연합회장(KBS PD협회장)과 김현석 KBS기자협회장 등 일부 KBS 직원들도 촛불을 들고 시민들 틈에 들어가 공영방송의 위기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눴다.  

양승동 회장은 "그 동안 이명박 정권이 공영방송을 '준 관영방송' 정도로 여기고 있는 줄 알았는데 최근 들어서는 완벽하게 관영방송으로 여기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며 "박재완 수석의 말처럼 KBS를 일반 산하기관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은 KBS가 정권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양 회장은 "이명박 정권이 올림픽 개막 전인 7월 말부터 8월 초까지 미리 각본(정 사장 축출)을 짜놓은 상태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며 "개막 전에 다 처리하고 그에 대한 논란은 올림픽 분위기에 묻어 넘어가려 하는 것은 아닌지 하는 위기감이 든다"고 말했다. 

김현석 KBS기자협회장도 "매우 우려스럽다"며 입을 연 뒤, "이명박 정권은 정 사장을 쫓아내고, 자신의 코드에 맞는 사람을 심으려고 모든 사정기관을 총동원했는데, 이게 안 되니까 법과 원칙마저 무시한 채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김 협회장은 박 수석의 'KBS 정부 산하기관' 발언에 대해 "조금이라도 공영방송에 대해 아는 사람이라면 그런 발언을 할 수는 없다"며 "이명박 정부가 이렇게까지 생각이 없는 정권인지 새삼 놀랐다"고 혀를 찼다. 이어 "(정부여당이)야당시절에는 공영방송의 가치에 대해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곤 해서 나름 생각이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 돌변한 것을 보니 아무 생각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또한 김 협회장은 오는 23일 있을 KBS 이사회 전망을 묻는 질문에 "이번에 바로 '정연주 해임 권고안' 등을 관철시키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소한의 법적 근거마저 없기 때문에 정작 추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곧이어 그는 "이 정권이 워낙 예상을 뛰어넘는 행동을 많이 했기 때문에 결과를 속단하기는 아직 이르다"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 인테리어 커뮤니티에서 알게 되 함께 촛불 문화제에 참여하고 있는 4명의 여성 시민들. ⓒ 송주민



KBS 본관 앞에는 여러 사람들이 모여 있다. 끝없는 수다를 자랑하는 '아줌마 부대'도 자주 보인다. 이들은 어린 자녀를 데리고 나와 한 여름밤을 '촛불'과 함께 즐기고 있다.

그 중 나란히 앉아 '현 시국'에 대한 끝없는 대화를 나누는 '여성 촛불'들이 눈에 띄었다. 각각 2명의 자녀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주부 이혜경(41)·배수현(43)·강은희(32)씨와 이들보다 한참 어린 미혼의 강미애(23)씨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알게 돼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이다. 회원 수만 67만에 이르는 초대형 커뮤니티다. 커뮤니티의 주목적은 인테리어, 집 꾸미기 등이다. 그런데 '쇠고기 정국' 이후로는 정치적 이슈가 커뮤니티의 큰 가십거리가 됐다고 한다.

배수현씨는 "이명박 대통령이 조기에 항복했다면 우리는 페인트칠이나 하면서 집을 꾸미고 있을 텐데 이제는 물대포를 대비해 만날 우비를 챙겨서 거리로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혜경씨도 "보자보자 하니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며 "날이 갈수록 이명박 대통령이 우릴 밖으로 부르고 있다"고 성토했다.

특히 이들은 이날 KBS 앞으로 모인 것과 관련해 "한 마디로 국민의 방송인 공영방송을 지키기 위해 왔다"며 "이명박 정부는 방송을 정권의 나팔수로 만드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하루빨리 거둬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4명의 여성 시민들이 KBS 앞에서 나눈 대화 장면을 지면에 담아봤다.      

'막내' 직장인 강미애씨
"한 마디로 공영방송 사수를 위해 왔어요. 원래 항상 청계광장으로 갔었는데 최근에 KBS 문제가 너무 심각해보여서 이리로 온 거죠. 이제는 이명박 정권을 못 믿겠어요. KBS 사장을 광의의 의미로 해석하면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다고요? 그러면 우리도 우리 손으로 뽑은 대통령을 퇴진시킬 수 있는 거네요? 정부는 만날 법질서와 헌법을 외치면서 정작 자신들은 낙하산을 날치기 통과시키고, 편법을 동원하여 법질서 무너뜨리고 있는 거 아닌가요?"

고1, 중2 두 자녀를 둔 주부 이혜경씨
"맞아요. 옛날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해요. 70~80년대 같으면 정부에서 KBS 사장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겠죠.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잖아요. 전에는 방송이 정부의 대변인 역할을 했으면 이제는 국민이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전달하는 것이 방송의 역할 아닌가요?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해야지 일방적으로 나팔수마냥 전달하는 방송을 바란다면 이는 굉장히 시대착오적인 발상이에요. 지금은 인터넷이 많이 발달해서 그런 것은 통하지도 않아요."

강미애씨
"그래도 아직까지는 인터넷 정보보다 신문이나 방송의 뉴스가 신뢰감이 더 가는 것이 사실이잖아요. 이번 사태를 통해 언론의 자유와 방송의 중요성을 절실히 느꼈어요. 이전에는 언론 개혁 이런 구호를 언론인들만 외쳤잖아요. 그런데 이제 국민들이 언론의 중요성을 깨닫게 돼 이렇게 나서고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자발적으로 나오는 거 사실 돈 주고 나오라고 해도 못하는 거예요."

고2, 중3 자녀를 둔 주부 배수현씨
"전 KBS 시사투나잇 애청자에요. 정부는 자신이 잘못하는 것과 잘하는 것을 다 알아야 해요. 그런데 지금 정부 모습을 보면 정말 애들도 아니고 자신의 귀에 듣기 좋은 것만 들으려 하고 있어요. 여기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한 사과가 진심이 아니었다는 것이 드러나는 거죠. 사과가 진심이었으면 언론을 장악할 필요가 없죠. 이건 뭐 쓴 소리를 아예 안 듣겠다는 것이 아닌가요? 이명박 대통령은 전두환도 아니고 히틀러를 지향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6살, 3살 난 자녀를 직접 KBS 앞으로 데리고 나온 주부 강은희(32)씨
"정말 지금 이명박 정권이 하는 언론정책을 보면 친정부적인 사람이 아니고서는 이해를 하기 힘든 것들 밖에 없어요. KBS가 현 정부의 철학을 구현해야 한다? 이건 뭐 대놓고 방송보고 대변인 역할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까?"

배수현씨
"친국민적인 언론도 필요 없어요. 단지 중립적인 언론을 우리는 요구하고 있는 겁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