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영화제로 진화한 촛불... 그 이후는?

7월 22일, 청계광장에서 촛불의 미래를 묻다

등록|2008.07.23 10:14 수정|2008.07.23 10:15
나는 직업기자를 희망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인지 주위에서 어려운 질문들을 많이 받곤 한다. 최근에 받았던 것 중 가장 어려웠던 질문은 "'촛불'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느냐"이다.

사실 그간 '촛불'이 정당성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분명 그것이 다수의 목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미 국민들이 반대하던 미국산 쇠고기가 유통된 지 며칠이 지났고 최근에는 몇 만 명씩 모이는 촛불집회도 없었다. "'촛불'이 아직도 다수의 목소리인가?"라며 사람들이 '촛불의 미래'에 대한 질문들을 쏟아내는 것은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가 아닐까.

쉽게 말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답은 현장에 있는 경우가 많다. 나는 적당한 답을 찾기 위해 22일, 76번째 촛불문화제가 열리고 있는 청계광장을 찾았다.

▲ 7월 22일 촛불문화제 시작 전, 전경들이 청계광장을 점거한 채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다. ⓒ 김동환


7월 22일 오후 6시 30분, 전경들이 청계광장을 점거·포위했다. 저녁 7시로 예정되어 있던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공동행동'의 촛불문화제를 막기 위해 불시에 들이닥친 것. 전경을 제외한, 청계광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당황했다.

"황당하죠. 경고방송도 없이 갑자기 쑥 밀고 들어왔어요. 청계광장에서 이런 일이 없었는데…."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공동행동'의 홍석만(38) 집행위원의 말이다. 이날 촛불문화제는 '비정규직 철폐'를 소주제로 이뤄질 예정이었다.

▲ 청계광장을 점거한 전경을 보고 놀란 외국인들에게 한 시민이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 김동환


놀란 것은 시민들 뿐만이 아니었다.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전경들을 지켜보았다. 근처에 있던 시민 이민석(40)씨가 외국인들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이씨에게 외국인들의 반응을 들어보았다.

"한국에서는 신고 없이 2명 이상이 모여서 시위하면 위법이라고 설명하니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더군요."

같은 시각 청계광장 건너편, 광화문 감리회관 앞에서는 '기독교대한감리회 장로회 서울연회 연합회'에서 주관하는 특별 기도회가 열리고 있었다. 참여 인원도 촛불문화제와 비슷한 수준. 그러나 청계광장과는 대조적으로 그곳에는 전경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 미스바 나라사랑 특별 기도회. 기도회는 7시 30분부터 11시까지 계속됐다. ⓒ 김동환


시민들과 대치하기를 30여분. 청계광장을 점거하고 있던 전경들이 갑자기 철수했다. 전경들이 철수한 청계광장에는 근처에 있던 3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시민들은 대부분 전경들의 점거를 지켜보고 흥분한 상태다. 우선 청계광장에 자리를 깔고 앉았다.

▲ 청계광장을 점거하던 전경이 빠지자 성난 시민들이 빠르게 자리를 메우고 있다. ⓒ 김동환


경찰에게 통행권을 제약당한 시민들은 날카로워져 있었다. "청계광장이 점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불광동에서 바로 뛰쳐나왔다"는 한 시민은 인터뷰 의사를 묻는 기자에게 "어디 기자유? 청와일보 아녀?"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곧이어 진행된 촛불문화제에서는 곧바로 시민들의 자유발언이 이어졌다. 아고라 닉네임 '잎의 향기'를 쓴다는 한 시민은 "오늘 전경에게 깃발을 뺏기는 과정에서 깃대가 부러졌다"며 "오늘까지 뺏기고 부러진 깃발이 7개째인데 앞으로 5년동안 100개, 200개가 깨져도 계속 들고 나오겠다"라고 말해 시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이날 청계광장에서 경찰측의 움직임은 최근들어 가장 적극적이었다. 저녁 8시 10분경, 경찰측은 동아일보 앞에 서 있던 전경들의 뒤에서 비디오 카메라로 시민들의 얼굴을 촬영하다가 시민들에게 발각돼 잠시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실랑이는 근처에 있던 시민들과 진보신당 '칼라TV'가 합세하면서 전경들의 철수로 일단락됐다.

▲ 동아일보 앞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시민들을 카메라로 채증하던 경찰이 시민들과 마찰을 빚고 있다. ⓒ 김동환


촛불문화제에 이어 밤 9시부터 열린 촛불영화제에는 100여명의 시민들이 청계광장에 남아 <안녕? 허 대짜 수짜님!>을 관람했다. "재미있게 보았다"는 것이 전체적인 평. "현실적으로 드문 해피엔딩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날카로운 지적도 있었다.

▲ '공공부문 사유화저지 공동행동'에서 주최한 촛불영화제에는 이틀연속 100여명의 시민들이 참여했다. ⓒ 김동환


재미있는 것은 저녁 8시 50분을 기점으로 전경들이 단계적으로 청계광장에서 철수하면서 촛불문화제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숫자도 점차 줄어드는 양상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날 청계광장에는 어제(21일)보다 100여명 많은 400여명이 촛불문화제에 참여했다.

촛불영화제가 끝나고 영화를 관람한 시민들에게 "'촛불'이 계속되어야 할까요?"라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어느것도 틀렸다고 말 할수 없을 다양한 답변이 되돌아왔다.

"아직 광우병 쇠고기가 전혀 해결되지 않았잖아요. 당연히 계속되어야지요."(이정석·남·25세)

"정부가 국민들이 반대하는 정책을 계속 추진하는 걸 보면 많이는 못 모이더라도 계속 유지되면 좋을것 같아요."(김혜지(가명)·여·22세) 

"계속 되고 말고가 아니라, 이미 촛불은 꺼트릴 수 없는 단계에 접어 들었다고 생각하고요. 지금은 집회에 나오는 사람이 많이 줄었지만 언제든 필요하면 다시 나올 수 있는 상태라고 봐요."(이원배·남·32세)

"사람들이 계속 촛불을 들다보니 조금 피로해 하는 것 같아요. 촛불을 드는 방식에 약간 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오늘 같이 영화제 형식도 괜찮은 것 같아요."(장경민·여·29세)

▲ 촛불은 이미 '꺼지지 않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말하는 시민들 ⓒ 김동환


22일 행사를 주최한 '전국 불안정노동철폐연대'의 유현경씨는 "오늘 400여명 왔는데 참여인원이 아쉽지 않냐"는 기자의 질문에 "인원보다는 우선 촛불문화제를 계속할 수 있도록 맥을 이어간다는 것이 중요하고 내일(23일)에는 요즘 첨예하게 다뤄지는 주제기 때문에 더 많은 분들이 참여하실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23일 청계광장에서는 '공공방송 사수'와 '의료민영화 반대'를 소주제로 저녁 7시부터 촛불문화제가 열린다.
덧붙이는 글 김동환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인턴기자 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