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행을 풍성하게 했던 것은 못생긴 너였구나!
[포토에세이] 못생긴 발에 대한 단상
▲ 발강물에 발을 담그니 온 몸이 강물의 기운을 받는다. ⓒ 김민수
발바닥이 아닌 내 몸 어디에 굳은 살이 있는가? 그나마 농촌에서 생활할 때에는 손바닥에도 굳은 살이 있었는데, 지금의 손바닥은 굳은 살 없는 가녀린 여인네의 손바닥이다. 부끄러웠다. 노동으로 단련된 사람들의 손과 발, 육체노동을 통해 만들어진 근육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런데 지금 내 몸은 가진 굳은살이 박힌 발바닥 하나 뿐이다.
못생긴 것들, 누구도 봐주지 않는 것들, 관심의 대상이 아닌 것들, 그러나 우리 삶에 없어서는 안되는 것들. 이 땅의 민초들이요, 소외되고 헐벗은 사람들이 오버랩된다. 이 시대는 얼마나 그들을 멸시하고, 그들의 인내심을 시험하고 있는가?
▲ 덩굴손그들이 부여잡은 것으로 인해 그들의 삶을 지탱해 갈 수 있을 것이다. ⓒ 김민수
민초들의 손과 발은 거칠다. 굳은 살 투성이에다 주름살 투성이다. 쩍쩍 갈라져 풀물이 들고, 기름때가 갈라진 틈바구니에 문신처럼 남아있다. 그들 덕분에 곱상한 손과 발을 가진 우리들이 살아가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 시대는 그들에게 더 많이 인내할 것을 요구하고, 그들의 처절한 외침을 몇 마디 이념적인 단어들-반미, 친북, 좌파 등등-로 치부함으로 그들에게 더 큰 짐을 질 것을 요구한다.
덩굴식물은 덩굴손이 있어 비바람에도 넉넉하게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그들이 없었다면 바닥만 기다가 비가 오면 빗물에 잠겨 애써 피운 꽃을 잃고, 애써 열매를 맺은들 곯아버릴 것이다. 모두가 꽃과 열매만 바라볼 때에도 덩굴손은 묵묵히 뭔가를 잡는 일에 골몰한다.
부드럽던 덩굴손은 한 번 잡으면 절대로 놓지 않고, 제대로 잡았다 싶으면 부드럽던 덩굴손을 포기하고 굳어간다. 제 철이 지나 모든 삶의 여정을 마친 후에도 덩굴손은 바짝 굳어 자기가 붙잡은 것을 놓지 않는다. 굳어 단단해진 덩굴손, 마치 굳은 살로 감각이 둔해진 못생긴 발바닥의 한 부분처럼 느껴진다.
강물은 쉼없이 흐르고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입맞춤을 하듯 못생긴 발에 키스를 퍼붓던 송사리들이 물에서 발을 들자 사방으로 흩어진다. 뜨거웠던 발바닥이 시원하다 못해 얼얼할 정도로 차갑다.
'발아! 미안하다. 그리고 발 같은 이 땅의 존재들이여, 죄송합니다! 내 발을 애정있게 바라보고, 아루만지듯 당신들의 삶도 에정있게 바라보고, 어루만져야 하는데 나 혼자 살기에도 퍽퍽하다고 한숨쉬며 나약하게 살아갑니다. 이 모두가 내 삶의 굳은 살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미안합니다.'
내 삶의 여행을 풍성하게 했던 것, 그것은 바로 못생긴 발바닥이었다. 아침 저녁 손과 얼굴에 스킨을 바르듯하지는 못할지라도 너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는 일을 잊어서는 안되겠구나.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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