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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민, 은행통장 만들기 한번 어렵네

'고객주의 의무제도'로 금융계좌 개설 절차 까다로워

등록|2008.07.23 14:11 수정|2008.07.23 16:49

▲ 결혼이주민은 통장 만들기도 힘들다. ⓒ 김시연


결혼이주민 틔이는 얼마 전 농협에서 통장을 개설하려다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을 했다. 창구 직원은 틔이가 외국 국적임을 확인하자, "먼저 번호표에 직장 이름과 직장 전화번호를 적으라"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창구 직원의 요구대로 적어 내자, 이번에는 통장 개설은 뒤로 하고 번호표에 적힌 번호로 전화부터 하는 것이었다.

그에 대해 동행했던 틔이의 직장 동료는 너무나 황당해서 "왜 통장을 개설하는데 직장에까지 전화 확인을 하죠?"라고 물었다고 한다. 그러자 이번에는 지점장이 나서서 "외국인은 금융사고가 많아서 회사에 확인해 봐야 한다"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답변했다.

틔이는 결혼하여 한국에 온 지 5년이 넘는 사람이다. 지역 여성결혼이주민네트워크 회장도 맡고 있고, 이주노동자쉼터에서 베트남어 상담과 결혼이주민들을 위한 한국어교실 간사로 일하고 있다.

국적을 취득할 수 있는 기한이 지났지만, 굳이 불편함이 없어 국적을 취득하지 않고 있었는데, 결혼이주민은 통장조차 자기 마음대로 개설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자신이 외국인임을 새삼 느꼈다고 한다. 틔의는 결국 불만을 털어놓았다.

"이런식이면 결혼이주민은 직장 없으면 통장도 만들지 말라는 말이다. 고작 32%의 결혼이주여성들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생활을 한다 해도 취업사실을 확인해 줄 수 있는 번듯한 직장을 갖고 있는 이들이 많지 않은 상황에서, 그 사람들은 통장 하나 개설하는 것도 맘대로 못 한다는 말밖에 안 된다. 현재 농촌지역에서 40%가 넘는 사람들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는데, 결혼이주민들에게 농협이 이럴 수 있느냐?"

틔이는 직장동료의 도움을 얻어 국민신문고에 통장 개설 과정에 발생했던 문제를 지적하며 시정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대해 농협중앙회는 답변을 통해 "2006년 이후 외국인에 의한 국세청 등 공공기관과 금융기관 직원을 사칭한 전화사기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으며, 이를 예방하기 위해 외국인에 대한 '고객주의 의무제도'를 강화하게 되어 발생한 문제"라고 해명했다.

'고객주의 의무제도'란 외국인 신규계좌 개설시 신원확인자료 추가징구 및 주거지 확인, 연락처 확인, 계좌개설목적을 확인하도록 하는 것으로, '특정금융거래 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하고 있다고 한다.

농협중앙회의 답변대로라면,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결혼이주민을 포함한 국내 체류 모든 외국인은 통장을 개설할 때, 위와 같은 확인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말과 같다. 한마디로 결혼이주민을 포함한 모든 외국인은 통장 하나 개설하며 잠재적 금융사고 범죄자 취급을 받는 셈이다.

"아무리 외국인에 의한 금융 사고가 있어서 제도 운용상 그렇다고 해도, 직장동료인 한국 사람이 옆에 있고, 외국인등록증에 결혼이주민이라고 알 수 있도록 F-2라고 기록돼 있는데, 사람을 앞에 두고 외국인임을 확인시키고 차별해서야 되겠습니까?"

당한 사람만큼 황당했다는 틔이 직장 동료의 말이다. 금융 계좌 개설 하나만 해도 이렇게 까다롭고 외국인임을 확인시키는걸 보면, 결혼이주민의 사회통합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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