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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내리는 조계사 "촛불은 마라톤이다"

시국문화제서 울려퍼진 '흔들림 없는 희망 노래'

등록|2008.07.24 09:35 수정|2008.07.24 10:12
"불교에서 비는 '진리'라고 합니다. 비는 누구에게나 내리지 않습니까. 낮은 데로 흘러가고, 막히면 돌아가는 비는 바로 소통을 의미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진리나 원칙도 깨닫지 못한 채 획일화된 논리만 강요하는 '그 어떤 집단'이 떠오르네요."

23일은 조계사에서 '주권재민과 정교분리, 헌법수호를 위한 시국문화제'가 있는 날. 오후부터 흐려진 하늘에는 조금씩 비가 내리고 있었다. 행사가 있는 날에 비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그러나 지난 두 달간 촛불집회로 인해 경찰에 수배돼 조계사에서 천막을 치고 19일째 농성중인 '수배자 7인(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 박원석 외 6명)'의 타는 목마름을 적셔 주기에는 충분했다.

조계사 앞에 모인 군중들250여 명이 모여 촛불을 밝히며 문화제를 즐기고 있다 ⓒ 박유미


행사 시작 시간 저녁 7시 30분 전부터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동시에 조계사 입구에는 굶고 있는 북한 아이들을 위한 서명이 이뤄졌다. 김유식 불교문화정보원 이사의 "민주의 함성을 들어봅시다!"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와!" 하는 함성으로 행사가 시작됐다.

김 이사는 이날 저녁 7시 30분부터 밤 9시 15분까지 시국 법회추진위원회의 주최로 진행된 '주권재민과 정교분리의 헌법정신수호를 위한 시국문화제' 사회를 맡았다. 이날 문화제는 조계사에서 농성 19일째를 맞은 촛불수배자들과 그 가족 그리고 불자들과 시민 모두를 위로하기 위해 마련된 작은 콘서트이기도 했다.

문화제가 시작할 무렵이 되자 시민들은 주최 측이 마련한 하얀 우비를 차려입고 속속 자리에 앉았다.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250여명의 사람들이 장내에 모였다.

좌석의 첫째 줄은 조계사 스님들과 각 단체 대표자들, 둘째 줄은 촛불수배자 농성단과 그 가족들이 자리를 채웠다. 서울시 교육감 후보인 주경복 건국대 교수도 눈에 띄었다.

대한불교조계중 호계원장인 법등 스님이 문화제의 첫 문을 열었다. 법등 스님은 "촛불집회의 시작은 비록 정부에 대한 불신이었지만, 이제 이 촛불은 시민자치행동으로 진화하고 생명과 평화의 국제적 진원지가 되었다"며 "우리 국민과 시민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서 민주주의는 성인으로 아름답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등 스님의 준엄한 목소리에 장내도 덩달아 숙연해졌다.

다음 순서로 퓨전음악가인 대금연주자 전명신씨가 등장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전씨는 '배 뛰어라'와 '희망가'를 연달아 부르며 흥을 돋웠다. 전씨의 노랫소리에 자리에 앉은 시민들은 추임새를 넣고 박수를 치며 함께 했다. 사회를 본 김 이사는 "오늘 시국법회의 주제인 흔들림 없는 희망 노래와 어울린다"며 극찬했다.

"우리 어머니는 어제 제가 수배됐다는 걸 아셨어요"

'촛불 수배자 7인'촛불 수배자 박원석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 김광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 백은종 (안티 2MB카페 부대표), 권혜진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 한용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 김동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씨가 천막농성 19일째, 근황소개 및 자유발언 하는 모습. ⓒ 이덕만


사회자가 수배 이후 조계사에 머물고 있는 촛불수배자 농성단을 소개하자 7명의 농성단이 올라왔다.

"19일 전 조계사에 처음 들어올 때만 해도 준비가 되지 않아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은 총무원, 조계사, 신도들의 따뜻한 배려로 편안하게 지내고 있다."

농성단 중 한 명인 박원석 광우병국민대책회의 상황실장은 "수배자가 편안하다는 게 이상하겠지만 이번처럼 격려와 성원을 많이 받은 농성은 처음"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박 상황실장은 "촛불이 곧 꺼지리라는 정부, 보수단체의 선전에도 불구하고 국민대책회의는 소통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규 한국진보연대 정책국장은 "어머니께서 제가 수배중인지 모르다가 어제 아셨다"고 털어놓았다. 사람들의 탄성이 이어지자 그는 "어머니께서 제 직업이 원래 그런 것이라며 인정해주셔서 감사했다"고 밝혀 또 탄성을 일으켰다. 김 정책국장은 "지금까지 촛불이 전력질주나 이어달리기였다면 앞으로 촛불은 마라톤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광일 광우병국민대책회의 행진팀장(촛불집회 수배자)은 가족들과 다함께 오늘 문화제에 참가했다. 조카와 백부까지 한 자리에 모여서인지 그의 얼굴이 한결 여유로워보였다. 김 팀장은 계속해서 내리는 빗방울을 빗대어 "이명박 정부의 365일 소나기 속에서 우리의 촛불은 비옷과 우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백성균 미친소닷넷 대표는 "조계사에 온 지 얼마 안 돼서는 아무 생각이 없다가, 요즘에는 촛불이 꺼지지 않기를 바라면서 108배를 드리고 있다"고 이야기를 꺼냈다. 그가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한쪽에서 경을 외는 소리가 잔잔히 들려왔다. 박 대표는 "촛불을 계속해서 환히 밝혀 함께 국민 승리에 다가가자"고 당부했다. 7명의 농성단들이 이야기를 마치자 큰 박수가 터져나왔다.

저녁 8시 5분, 시·노래모임 '나팔꽃'이 '이등병의 편지' 등 네 곡을 연창했다. 빗발이 세지는 와중에도 시민들은 촛불을 흔들며 화답했다. 이어 시인 정희성의 시낭독이 이어졌다. 정씨는 "나보고 좌파라며 물러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지었다"며 '나도 내가 많이 망가졌다는 것을 안다'를 낭독해 잔잔한 깨달음을 안겼다.

촛불 집회 수배자 가족의 편지 낭독권혜진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 배우자 임현주씨가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읽고 있다. ⓒ 박유미


다음은 촛불수배자 농성단의 가족을 위한 시간이 준비됐다. 권혜진 흥사단 교육운동본부 사무처장의 부인 임현주씨는 직접 써온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조금씩 떨리는 목소리가 말로 형용하기 힘든 복잡한 심경까지 그대로 전했다. 바라보는 사람들에게도 그 마음이 절절히 다가왔다. 청중들 가운데 눈시울을 붉히거나 눈물을 닦는 이가 보였다.

열창 중인 가수 안치환'사람이 꽃보다 아름 다워' 외 3곡을 연창했다 ⓒ 김정욱

"아이가 당신에 대해 물어보면 '옳지 않음'을 '옳지 않다'고 말한 아빠가 옳다고 이야기한다. 부디 건강 조심하기만을 바란다. 농성단에게 희망과 용기를 준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안치환이 등장해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등을 불러 문화제를 뜨겁게 달궜다. 좌중을 휘어잡는 강한 카리스마가 뿜어져 나와 어느 새 모두가 입을 모아 노래를 따라했다. 그는 "농성단 여러분이 구속되는 일이 만들어지지 않게 해야겠다고 다짐한다"며 농성단을 위하여 '내 가는 길 험난하여도'를 불렀다.

밤 9시 10분, 촛불 농성단과 그 가족, 스님들이 무대 위로 올라와 '헌법 1조'를 부르며 문화제의 마지막 순서를 빛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가족들 사이에 둘러싸인 농성단은 입가에 편안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농성단은 무대에서 내려와 가족들과 함께 농성단 천막에 들러 간식을 나눠먹기도 하고 쌓아둔 이야기를 나눴다.

시국문화제가 끝난 후촛불집회수배자의 가족, 지인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 김정욱


덧붙이는 글 박유미 기자는 제 8기 오마이뉴스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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