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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 하면 "돈을 준비하시오" 해도 너무하네

[역사소설 소현세자 76] 세자관 자금을 빼가는 청나라

등록|2008.07.24 15:02 수정|2008.07.24 16:00

세자관. 세자관으로 알려진 심양아동도서관 내부 ⓒ 이정근


목숨을 걸고 청나라를 탈출한 귀환 포로들의 쇄송 문제로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있는 고국의 슬픔과는 달리 심양의 소현세자는 모처럼 평온한 시간을 가졌다.

고국을 다녀오는 동안 잠시 헤어졌던 강빈과 해후하고 고국에 떨어져 있던 원손 석철과 함께하는 시간이었다. 더욱 경사스러운 것은 강빈이 둘째아들 석린을 회임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국에서라면 경하할 일이었지만 심양에 볼모로 와있는 몸. 강빈은 임신 사실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러한 평화도 잠시. 세자관에 대한 청나라의 경제적 압박이 밀려왔다. 세자가 고국에 다녀왔으니 돈을 두둑이 가져왔을 것이라 예단한 것이다. 역관 정명수가 세자관을 찾아 왔다. 빈객이 그를 맞이했다.

"세자가 고국에 다녀왔으니 황제를 위한 잔치를 베풀어야 할 것이요. 지금 황제께서는 전선에 계시니 돌아 오시는 대로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하시오."

홍타이지는 전장(戰場)에 있다.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시기를 예측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준비를 해야 한다.

"어느 규모로 해야 옳을까요?"
"소 16마리, 말 2마리, 양 63마리를 준비하고 그 외에 잔치 상에 올릴 여러 가지를 준비토록 하시오."
"낭패스럽습니다. 관중에 돈이 없으니 이를 어찌한단 말입니까?"
"이 잔치는 청나라 사람과 만주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번듯하게 치르고 싶다는 것이 용장군의 뜻입니다. 차질이 없도록 하시오."

부탁이 아니다. 명령이다. 세자 조선 왕래에 있어서 청나라 조정은 찬반이 분분했다. 물밑에서 적극 움직인 사람은 피파박시다. 헌데 청나라의 조선통 용골대가 공을 세우려는 복심이다.

고국에 긴급 구원을 요청한 세자관

세자관이 감당하기 버거운 짐을 내려놓고 정명수가 돌아갔다. 피해갈 수 없는 명이다. 소현과 재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의견을 나누었지만 뾰쪽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세자관에는 세자가 고국에 다녀올 때 황제에게 바칠 예물로 가지고온 천 냥과 여유 돈 천 냥이 있을 뿐이었다. 그 돈으로 잔치를 치르고 나면 빈손으로 황제를 배알해야 한다. 세자관은 본국에 긴급 구원요청을 했다.

"이곳은 돈의 가치가 흔하고 물건이 귀해 물건을 사기가 어렵습니다. 소, 말, 양을 사는데 드는 비용을 대략 계산해보니 687냥이 필요하고 그 외 닭, 돼지, 오리와 밀가루, 참기름, 흑설탕을 사려면 수백 냥이 들어 천 냥이 필요할 듯합니다. 우선 행중에 있는 여비를 빌려 쓰고 있으니 해당 관청에 있는 돈이나 관향에 있는 것을 급히 보내주시기 바랍니다. 잔치를 소홀이 열어서 저들의 기대를 저버려서는 안 될 형편이니 매우 애가 탑니다."- <심양장계>

전쟁을 치르고 있는 청나라는 물자 부족에 허덕였다. 돈은 넘쳐나는데 물건이 없었다. 평소 생업에 종사하던 팔기군이 전쟁에 동원되었으니 생산은 둔화되고 소비는 증가했다. 정벌지역에서 물건을 약탈해오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오히려 정벌지역에서 돈이 자꾸만 유입되니 돈의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장계를 받은 조정도 화끈한 대책이 없었다. 평안도와 황해도에 지시하여 꿀 25말과 약간의 과일을 보내주는 것이 전부였다. 잔치 때문에 세자관이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역관 정명수가 찾아왔다.

변칙 뇌물을 공공연히 요구하는 역관

"지난번 세자관에서 보증을 서 내보낸 포로 값을 이제야 내면서 부족하게 내는 것이 말이나 되느냐? 신성회와 김준길이 가지고온 195냥을 오늘 받고 나머지 220냥은 김준길이 조선에 가서 가져오도록 하시오. 기일 내에 돌아오지 않으면 1백 냥에 대해서 20냥씩 더 바쳐야 하오. 그것도 한 달에 20냥씩이오."

신성회와 김준길의 아들이 심양에 포로로 잡혀와 있었다. 세자관 사서 김종일과 친분이 있는 신성회의 부탁을 받고 사서 김종일이 지불각서를 써주고 포로를 귀국시킨 일이 있었다. 세자가 부왕 병문안 차 한성을 다녀오는 길에 신성회와 김준길이 포로 속량 값을 가지고 세자와 함께 심양에 들어왔다.

포로 값 4백 냥과 연체료 15냥을 요구하는 청나라였지만 두 사람 합하여 195냥밖에 없었다. 사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눈물을 머금고 조선으로 돌아가던 그들이 봉황성에서 발이 묶였다. 호부에서 작성한 귀국자 명단에 김준길이 누락되어 있었다. 도리 없이 나머지를 세자관에서 매꾸어 주어야 했다. 며칠 후, 정명수가 다시 찾아왔다.

"용장군에게 포로로 잡혀온 종생이라는 조선 여자가 하나 있는데 공금으로 속량하기를 원한다. 나 또한 여자 포로가 하나 있는데 공금에서 속량해주면 좋겠다."

갖은 구실로 돈을 갈취하는 청나라

잔치자금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포로를 공금에서 사주기를 요구했다. 당시 청나라 조정은 청나라 관리들과 조선 관리들의 금품거래를 뇌물로 규정하고 철저히 금했다. 이러한 금지의 벽을 포로 속량이라는 형식으로 돌파하겠다는 계략이다. 도리 없이 웃돈을 붙여 3백 냥에 사주었다. 얼마 후, 정명수가 다시 찾아왔다.

"지난번 마부달 장군이 조선을 다녀올 때 마부 잘못으로 말이 죽었다. 마장군 가족들이 황일호가 베어낸 말 고기값으로 120냥을 받아달라고 한다."
"그것은 의주에서 70냥을 주어 끝난 일이 아닙니까?"
"마장군이 세상을 떠났으니 근거가 없지 않느냐? 조선의 형편을 알고 있는 용장군이 가족들을 설득하여 40냥을 깎았으니 80냥을 내놓으라."

어거지도 이런 억지가 없다. 끝난 일이지만 영수증 처리가 안되었으니 다시 내놓으란다. 생 어거지라는 것이 훤히 보이지만 정명수와 용골대가 걸쳐있다. 심기를 건드리면 불이익이 떨어진다. 세자관에서 지불하고 말았다.

마부달의 말 값을 2중 지불한 후, 정명수가 다시 찾아왔다. "전선으로 떠나는 용장군이 마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말 1필과 포로 1명을 사주기를 바란다" 하여 말 값 60냥과 포로 속량 값 110냥을 주었다. 그리고 며칠 후, 정명수가 또 찾아왔다. 세자관에 드나들며 재미를 붙인 정명수가 꿀단지에 생쥐 드나들 듯 했다.

"조선에서 기르는 말은 거세한 말이 아니어서 타는데 불편함이 많다. 지금 몽고 사람이 팔려고 내놓은 말이 5~6필이 있으니 사두는 것이 좋을 것이오."
"저희가 사둘 돈이 없습니다."
"이는 내말이 아니라 아문 대관들의 뜻이오. 조선을 위해서 하는 말이니 뒷날 일이 생겼을 때 말이 없다고 하지는 마시오."

부조한 셈 치고 두둑이 내놓으시오

사두면 구실을 붙여 빼앗아 가겠다는 뜻이다. 자금 여력이 없는 세자관이 정명수의 말 구입요구를 거절했다. 이튿날 호부 관리가 말을 가진 몽고인 1명을 데리고 공문을 가지고 왔다. 말을 사라는 것이다. 공적 문서로 강요하니 거절하면 어떤 벼락이 떨어질지 모른다. 할 수 없이 70냥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세자관에 드나들며 재미를 붙인 정명수가 또 다시 찾아왔다.

"용장군이 공금으로 속량할 포로가 또 하나 있는데 2백 냥을 받기를 원한다."
"너무하지 않습니까?"
"한사람 값이 2백 냥이라는 것이 너무 비싸다는 것은 모르지 않지만 용장군의 형이 죽어서 그 장례비용에 쓰려고 그런다. 조정에 보고를 올려 부조한 셈 치면 되지 않소."

얼굴에 철판을 깔았다. 부조금을 내라고 강요한다. 예나 지금이나 돈 밝히는 데는 선수들이다. 세자관은 울며 겨자 먹기로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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