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4) 부자(父子)

[우리 말에 마음쓰기 383] '당의(糖衣) 교육'이란 뭔 소리인가

등록|2008.07.25 10:46 수정|2008.07.25 10:47
ㄱ. 당의(糖衣) 교육

... 어려운 지식이나 개념에 달콤한 껍데기를 씌워 먹이려는 당의(糖衣) 교육, 혹은 단순한 교과교재의 생활화가 지배적이었다 ..  <교육사상사>(야나기 히사오/임상희 옮김, 백산서당,1985) 21쪽

‘혹(或)은’은 ‘또는’으로 고치면 되는데, “단순(單純)한 교과교재의 생활화(生活化)가 지배적(支配的)이었다”라는 말에서 막힙니다. 아이고. 무슨 뜻으로 쓴 말일까요. “단순한 교과교재만이 판을 쳤다”는 말인지 “그저 교과서와 교재만 볼 수 있도록 짓눌려 있었다”는 말인지 아리송합니다.

 ┌ 당의(糖衣) : 당분이 든 막(膜). 정제(錠劑)나 환제(丸劑) 따위의 변질을
 │   막고 쉽게 복용할 수 있도록 약의 표면에 입힌다
 │
 ├ 달콤한 껍데기를 씌워 먹이려는 당의(糖衣) 교육
 │→ 달콤한 껍데기를 씌워 먹이려는 교육
 │→ 달콤한 껍데기를 씌워 먹이려는 겉치레 교육
 │→ 달콤한 껍데기를 씌워 먹이려는 사탕옷 교육
 └ …

‘당의’라는 말은 한글로 적든, 한자를 밝히든, 묶음표를 치고 한자를 넣든, 알아보기 쉽지 않다고 느낍니다. 아무래도 이런 낱말을 쓰게 되면, 이 글을 읽는 사람은 국어사전을 뒤적여 뜻을 알아보거나, 아니면 글 읽기를 집어치우거나 하지 않으랴 싶군요.

 ┌ 설탕옷 / 사탕옷
 └ 달콤한 옷 / 달콤한 껍데기

‘당의’라는 낱말이 쓰인 보기글을 봅니다. 앞쪽에 ‘달콤한 껍데기’라는 글월이 보입니다. 글쓴이가 말하는 ‘당의(糖衣) 교육’이란 다름아닌 ‘달콤한 껍데기 교육’을 가리킵니다.

 ┌ 겉치레 교육
 ├ 껍데기 교육
 ├ 겉발린 교육
 ├ 겉만 번지르르한 교육
 ├ 눈가림 교육
 └ …

앞에서는 손쉽게 잘 풀어냈으나, 뒤에서는 엉뚱한 옷을 입힙니다. 말이 비틀리고 글이 엉클어집니다. “달콤한 껍데기를 씌워 먹이려는 교육”이라고 적으면 아무 말썽이 없으나, 괜히 다시 한 번 힘주어 말한다고 하다가 엉망이 되고 맙니다.

겉치레로 치닫는 교육 얼거리마냥, 우리들이 쓰는 말과 글도 겉치레로 치닫는 셈입니다. 껍데기를 씌우는 교육 틀거리마냥, 우리들이 쓰는 말과 글도 껍데기가 씌워지는 셈입니다. 눈가리고 아옹거리는 교육 짜임새마냥, 우리들이 쓰는 말과 글도 눈가림 귀가림 입가림으로 뒤죽박죽이 되는 꼴입니다.

ㄴ. 부자(父子) 2대에 걸친

.. 소설은 뉴욕에 세력권을 가지고 있는 코를레오네 일가의 부자(父子) 2대에 걸친 이야기이다 ..  <추억의 베스트셀러 101 : 미국편>(도키와 신페이/에이전트부 옮김, 신원에이전시,2006) 13쪽

‘일가(一家)’는 ‘집안’이나 ‘한 집안’으로 고쳐 줍니다. “세력권(勢力圈)을 가지고 있는”은 “힘을 뻗치고 있는”으로 손질합니다.

 ┌ 부자(父子) : 아버지와 아들을 아울러 이르는 말
 │   - 부자가 꼭 닮다 / 옆집 부자는 휴일마다 함께 등산을 한다
 │
 ├ 부자(父子) 2대에 걸친 이야기
 │→ 아버지와 아들 2대에 걸친 이야기
 │→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이야기
 └ …

한 마디로 쓰면 ‘아비아들’입니다. 그런데 ‘아비아들’이라 쓰는 분을 만나기 참 힘듭니다. 어머니와 딸을 아우르는 ‘어이딸’이라는 말도 거의 듣기 어려워요. ‘모녀(母女)’만 들을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아비딸’, ‘어이아들’처럼 쓰기 어려운가요. ‘아버지와 아들’, ‘아버지와 딸’처럼 쓰면 어딘가 안 어울리기 때문일까요.

 ┌ 부자가 꼭 닮다 → 아버지와 아들이 꼭 닮다
 └ 옆집 부자는 옆집 → 아버지와 아들은

우리들은 왜 있는 그대로 안 쓸까요. 있는 그대로 쓴다면, 묶음표를 쳐야 할 까닭이, 굳이 ‘父子’라는 한자를 넣을 일이 없어요. 글을 쓴 그대로 누구나 알아들으니까요. 더구나, ‘父子’라는 한자를 넣으면, 이 한자를 따로 배워서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쉬운 한자인 ‘父子’라고 하지만, 한자 지식이 없는 사람한테는 이와 같은 묶음표 넣기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하거나 글로 적어 놓으면, 입으로 말할 때에도 헷갈리지 않습니다. 아버지이니까 ‘아버지’라고 적고, 아들이니까 ‘아들’이라고 적으면, 글로 쓰든 입으로 말하든 아리송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부자’를 입으로 읊어 보셔요. 다른 한자말하고 헷갈립니다. 그러면 그때는 또 어떻게 풀이해서 이야기하시렵니까. 처음부터 우리 말 ‘아버지와 아들’이라고 했으면, ‘아비아들’이라 했으면, 누구나 쉽게 알아듣는 한편 말헤픔이나 글헤픔이 조금도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