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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을 잃어버렸다, 순간 울컥했다

잃어버린 소중한 추억들은 어떡하나

등록|2008.07.26 12:05 수정|2008.07.26 13:36
장마 때문인지 태풍 때문인지 이유도 알지 못하는 비가 매일 같이 내린다. 비를 맞고 현장을 누비는 동안 <오마이뉴스> 인턴 과정도 2주가 다 되어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취재 지시를 받았다. 장소는 바로 용인의 한 고시텔. 새벽에 화재가 발생해서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로 그곳이다.

인턴 동기 한 명과 함께 용인행 버스에 올랐다. 운전석 뒷자리에 자리를 잡은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꾸벅꾸벅 잠이 들었다. 그랬다. 우리는 잠이 모자랐다. 인턴이란 게 생각만큼 재밌고 생각보다 힘들었다. 역시 가장 힘든 건 수면 부족.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렸다.

아뿔싸! 지갑을 놓고 내리다

버스가 눈앞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때, 깨닫고 말았다. 지갑이 없다는 것을. 기억을 더듬어보니 난 손에 지갑을 쥐고 졸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걸 바닥에 떨어뜨리고만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아찔했다. 지갑을 잃어버린 건 난생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옆에 있던 동기는 내게 2만원을 건네 주었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버스 회사에 연락을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단어들을 총동원하여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를 끊은 후, 지갑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재 현장으로 이동했다. 용인의 그 고시텔 상태는 건물 바깥에서 보기에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았다.

▲ 화재가 일어난 용인의 고시텔은 창문 몇 개가 깨져있었다. ⓒ 이덕만


화재현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감식 중"이라며 경찰들이 건물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 지갑에 대한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제발, 친구로부터 지갑을 찾았다는 연락이 오길!' 7명의 목숨을 앗아간 현장답게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로 건물 앞은 몹시 붐볐다. 이 중에 인턴기자는 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자,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부탁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버스 회사에서 종점으로 들어온 모든 버스들의 내부를 다 뒤져봤지만 지갑은 찾지 못했단다. 막막했다. 너무나 꼼꼼한 성격 때문에 태어나서 지갑 같은 건 한 번도 잃어버린 적 없는 나였기에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실수라고 하기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천원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던 나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강화도로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난 그곳에서 대포 모양의 열쇠고리를 샀는데 가격은 천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세어 봤다. 분명히 2천 원이 남아야 하는데, 천원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순간 생각났다. 열쇠고리를 살 때 두 장으로 포개진 지폐를 냈다는 것을. 비록 천원을 잃어버린 셈이지만 난 울고 말았다. 그랬던 나다.

▲ 오랜만에 만져본 지하철 종이 승차권. ⓒ 이덕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어떡하면 찾을 수 있느냐고. 친구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먼저 카드부터 정지시켜!" 바로 행동에 옮겼다. 처음으로 분실신고라는 것을 해봤다. 어차피 그런 건 못 찾으니까 빨리 잊어버리라는 친구도 있었고, 며칠 기다리면 지갑만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 앞에는 만원짜리 지폐들이 둥실둥실 부유하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은 항상 몰려다닌다더니, 버스를 타기 직전에 ATM에서 5만 원을 출금했다. 교통카드 안에 들어있는 돈을 포함해 총 10만 원에 가까운 현금이 내 손을 떠나고 만 것이다. 비록 20여 년 전에는 천원에 울었던 나이지만 이번엔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선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

현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다

사실 현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지갑 안에는 많이 있었다. 일단 지갑 자체가 예전 여자 친구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이다. 그 친구와 사귀었을 당시 우리 누나에게 굉장히 좋은 지갑이 선물로 들어왔는데, 누나는 지갑이 필요 없다며 나에게 주었다. 그건 남자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벅찬 디자인이라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줬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쓰던 지갑을 나에게 주었다. 그 당시 내가 쓰던 지갑은 상당히 허름했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지갑은 그 친구와 웃고 울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소중한 물건이다. 물론 여자 친구와의 추억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갑 안쪽에는 세상에서 단 한 장뿐인 가족사진이 들어있다. 7년 전이었던가. 누나의 대학교 졸업식에서 네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은 군대에 있을 때도 자주 훔쳐보던 사진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학생증 또한 정말 아까운 물건이었다. 2000년에 만들어진 그 학생증은 이제 더 이상 만들지 못하는 구형 디자인인데, 왠지 내 대학생활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밖에 사촌형이 선물로 줬던 외국 지폐도 지갑의 몸체와 함께 내 곁을 떨어져 나갔다. 행운의 지폐라며 주었던 건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 교통카드까지 잃어버리는 바람에 환승할인은 받지 못했다. ⓒ 이덕만


취재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는 힘든 귀가 길이 이어졌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정말 오랜만에 종이 승차권을 샀다. 교통카드가 없으니 살 수밖에. 종이 승차권의 촉감은 정말 낯설었고, 개찰구에 승차권을 집어넣고 다시 집을 때의 느낌은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 세계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정작 문제는 교통카드가 없으니까 환승할인을 받을 수 없다는 거였다. 버스를 탈 때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할인은커녕 더 비싼 요금을 내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세 시간 가까운 이동 끝에 집에 도착했다. 취재 하느라, 밥 먹느라, 차비 하느라 돈을 다 써서 결국 남은 건 1300원뿐이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 힘든 하루를 마치고 1300원이 남았다. ⓒ 이덕만


지갑만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오늘 같은 금요일 밤은 술 한 잔 할 수 있었는데 아쉽기만 했다. 그래도 한 친구의 말처럼 현금은 없어지더라도 지갑만 다시 돌아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추억이란 것은 다시 채우기 힘들기 때문에. 설령 지갑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새 지갑에 새로운 추억을 담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덕만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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