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 때문인지 태풍 때문인지 이유도 알지 못하는 비가 매일 같이 내린다. 비를 맞고 현장을 누비는 동안 <오마이뉴스> 인턴 과정도 2주가 다 되어간다. 오늘도 어김없이 취재 지시를 받았다. 장소는 바로 용인의 한 고시텔. 새벽에 화재가 발생해서 7명의 목숨을 앗아간 바로 그곳이다.
인턴 동기 한 명과 함께 용인행 버스에 올랐다. 운전석 뒷자리에 자리를 잡은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꾸벅꾸벅 잠이 들었다. 그랬다. 우리는 잠이 모자랐다. 인턴이란 게 생각만큼 재밌고 생각보다 힘들었다. 역시 가장 힘든 건 수면 부족.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렸다.
아뿔싸! 지갑을 놓고 내리다
버스가 눈앞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때, 깨닫고 말았다. 지갑이 없다는 것을. 기억을 더듬어보니 난 손에 지갑을 쥐고 졸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걸 바닥에 떨어뜨리고만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아찔했다. 지갑을 잃어버린 건 난생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옆에 있던 동기는 내게 2만원을 건네 주었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버스 회사에 연락을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단어들을 총동원하여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를 끊은 후, 지갑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재 현장으로 이동했다. 용인의 그 고시텔 상태는 건물 바깥에서 보기에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았다.
화재현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감식 중"이라며 경찰들이 건물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 지갑에 대한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제발, 친구로부터 지갑을 찾았다는 연락이 오길!' 7명의 목숨을 앗아간 현장답게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로 건물 앞은 몹시 붐볐다. 이 중에 인턴기자는 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자,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부탁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버스 회사에서 종점으로 들어온 모든 버스들의 내부를 다 뒤져봤지만 지갑은 찾지 못했단다. 막막했다. 너무나 꼼꼼한 성격 때문에 태어나서 지갑 같은 건 한 번도 잃어버린 적 없는 나였기에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실수라고 하기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천원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던 나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강화도로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난 그곳에서 대포 모양의 열쇠고리를 샀는데 가격은 천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세어 봤다. 분명히 2천 원이 남아야 하는데, 천원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순간 생각났다. 열쇠고리를 살 때 두 장으로 포개진 지폐를 냈다는 것을. 비록 천원을 잃어버린 셈이지만 난 울고 말았다. 그랬던 나다.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어떡하면 찾을 수 있느냐고. 친구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먼저 카드부터 정지시켜!" 바로 행동에 옮겼다. 처음으로 분실신고라는 것을 해봤다. 어차피 그런 건 못 찾으니까 빨리 잊어버리라는 친구도 있었고, 며칠 기다리면 지갑만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 앞에는 만원짜리 지폐들이 둥실둥실 부유하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은 항상 몰려다닌다더니, 버스를 타기 직전에 ATM에서 5만 원을 출금했다. 교통카드 안에 들어있는 돈을 포함해 총 10만 원에 가까운 현금이 내 손을 떠나고 만 것이다. 비록 20여 년 전에는 천원에 울었던 나이지만 이번엔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선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
현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다
사실 현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지갑 안에는 많이 있었다. 일단 지갑 자체가 예전 여자 친구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이다. 그 친구와 사귀었을 당시 우리 누나에게 굉장히 좋은 지갑이 선물로 들어왔는데, 누나는 지갑이 필요 없다며 나에게 주었다. 그건 남자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벅찬 디자인이라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줬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쓰던 지갑을 나에게 주었다. 그 당시 내가 쓰던 지갑은 상당히 허름했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지갑은 그 친구와 웃고 울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소중한 물건이다. 물론 여자 친구와의 추억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갑 안쪽에는 세상에서 단 한 장뿐인 가족사진이 들어있다. 7년 전이었던가. 누나의 대학교 졸업식에서 네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은 군대에 있을 때도 자주 훔쳐보던 사진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학생증 또한 정말 아까운 물건이었다. 2000년에 만들어진 그 학생증은 이제 더 이상 만들지 못하는 구형 디자인인데, 왠지 내 대학생활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밖에 사촌형이 선물로 줬던 외국 지폐도 지갑의 몸체와 함께 내 곁을 떨어져 나갔다. 행운의 지폐라며 주었던 건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취재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는 힘든 귀가 길이 이어졌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정말 오랜만에 종이 승차권을 샀다. 교통카드가 없으니 살 수밖에. 종이 승차권의 촉감은 정말 낯설었고, 개찰구에 승차권을 집어넣고 다시 집을 때의 느낌은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 세계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정작 문제는 교통카드가 없으니까 환승할인을 받을 수 없다는 거였다. 버스를 탈 때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할인은커녕 더 비싼 요금을 내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세 시간 가까운 이동 끝에 집에 도착했다. 취재 하느라, 밥 먹느라, 차비 하느라 돈을 다 써서 결국 남은 건 1300원뿐이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지갑만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오늘 같은 금요일 밤은 술 한 잔 할 수 있었는데 아쉽기만 했다. 그래도 한 친구의 말처럼 현금은 없어지더라도 지갑만 다시 돌아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추억이란 것은 다시 채우기 힘들기 때문에. 설령 지갑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새 지갑에 새로운 추억을 담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인턴 동기 한 명과 함께 용인행 버스에 올랐다. 운전석 뒷자리에 자리를 잡은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꾸벅꾸벅 잠이 들었다. 그랬다. 우리는 잠이 모자랐다. 인턴이란 게 생각만큼 재밌고 생각보다 힘들었다. 역시 가장 힘든 건 수면 부족.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는 허둥지둥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가 눈앞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는 그때, 깨닫고 말았다. 지갑이 없다는 것을. 기억을 더듬어보니 난 손에 지갑을 쥐고 졸고 있었고, 어느 순간 그걸 바닥에 떨어뜨리고만 것이다. 그것도 모르고 버스에서 내려버렸다. 아찔했다. 지갑을 잃어버린 건 난생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에 몹시도 당황스러웠다. 옆에 있던 동기는 내게 2만원을 건네 주었다.
금세 정신을 차리고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그 버스 회사에 연락을 취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표현할 수 있는 모든 단어들을 총동원하여 내가 처한 상황을 설명했다. 전화를 끊은 후, 지갑에 대해 생각할 겨를도 없이 화재 현장으로 이동했다. 용인의 그 고시텔 상태는 건물 바깥에서 보기에 그렇게 나빠 보이진 않았다.
▲ 화재가 일어난 용인의 고시텔은 창문 몇 개가 깨져있었다. ⓒ 이덕만
화재현장 안으로 들어가고 싶었지만 "지금은 감식 중"이라며 경찰들이 건물 입구를 막아서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내 머릿속에서 지갑에 대한 생각은 끊이지 않았다. '제발, 친구로부터 지갑을 찾았다는 연락이 오길!' 7명의 목숨을 앗아간 현장답게 수많은 언론사 기자들로 건물 앞은 몹시 붐볐다. 이 중에 인턴기자는 나밖에 없을 거란 생각이 들자, 뭔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부탁했던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버스 회사에서 종점으로 들어온 모든 버스들의 내부를 다 뒤져봤지만 지갑은 찾지 못했단다. 막막했다. 너무나 꼼꼼한 성격 때문에 태어나서 지갑 같은 건 한 번도 잃어버린 적 없는 나였기에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실수라고 하기엔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천원 때문에 울음을 터뜨렸던 나
초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학교에서 강화도로 소풍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난 그곳에서 대포 모양의 열쇠고리를 샀는데 가격은 천원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주머니에서 돈을 세어 봤다. 분명히 2천 원이 남아야 하는데, 천원 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순간 생각났다. 열쇠고리를 살 때 두 장으로 포개진 지폐를 냈다는 것을. 비록 천원을 잃어버린 셈이지만 난 울고 말았다. 그랬던 나다.
▲ 오랜만에 만져본 지하철 종이 승차권. ⓒ 이덕만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어떡하면 찾을 수 있느냐고. 친구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먼저 카드부터 정지시켜!" 바로 행동에 옮겼다. 처음으로 분실신고라는 것을 해봤다. 어차피 그런 건 못 찾으니까 빨리 잊어버리라는 친구도 있었고, 며칠 기다리면 지갑만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는 친구도 있었다. 그러나 내 눈 앞에는 만원짜리 지폐들이 둥실둥실 부유하고 있었다.
안 좋은 일은 항상 몰려다닌다더니, 버스를 타기 직전에 ATM에서 5만 원을 출금했다. 교통카드 안에 들어있는 돈을 포함해 총 10만 원에 가까운 현금이 내 손을 떠나고 만 것이다. 비록 20여 년 전에는 천원에 울었던 나이지만 이번엔 눈물을 훔치지 않았다. 다만 마음에선 폭우가 내리고 있었다. 그게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
현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을 잃어버리다
사실 현금보다 더 소중한 것들이 지갑 안에는 많이 있었다. 일단 지갑 자체가 예전 여자 친구와의 추억이 담겨있는 물건이다. 그 친구와 사귀었을 당시 우리 누나에게 굉장히 좋은 지갑이 선물로 들어왔는데, 누나는 지갑이 필요 없다며 나에게 주었다. 그건 남자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벅찬 디자인이라 여자 친구에게 선물로 줬는데, 그 친구는 자기가 쓰던 지갑을 나에게 주었다. 그 당시 내가 쓰던 지갑은 상당히 허름했었기 때문에.
잃어버린 지갑은 그 친구와 웃고 울었던 추억들이 고스란히 묻어 있는 소중한 물건이다. 물론 여자 친구와의 추억만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바로 지갑 안쪽에는 세상에서 단 한 장뿐인 가족사진이 들어있다. 7년 전이었던가. 누나의 대학교 졸업식에서 네 식구가 함께 찍은 사진이다. 그 사진은 군대에 있을 때도 자주 훔쳐보던 사진이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이별을 고할 수밖에 없게 됐다.
학생증 또한 정말 아까운 물건이었다. 2000년에 만들어진 그 학생증은 이제 더 이상 만들지 못하는 구형 디자인인데, 왠지 내 대학생활의 한 부분이 떨어져 나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 밖에 사촌형이 선물로 줬던 외국 지폐도 지갑의 몸체와 함께 내 곁을 떨어져 나갔다. 행운의 지폐라며 주었던 건데.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 교통카드까지 잃어버리는 바람에 환승할인은 받지 못했다. ⓒ 이덕만
취재를 모두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다시 버스를 타는 힘든 귀가 길이 이어졌다. 지하철을 타기 전에 정말 오랜만에 종이 승차권을 샀다. 교통카드가 없으니 살 수밖에. 종이 승차권의 촉감은 정말 낯설었고, 개찰구에 승차권을 집어넣고 다시 집을 때의 느낌은 디지털 세계에서 아날로그 세계로 돌아온 것만 같았다.
정작 문제는 교통카드가 없으니까 환승할인을 받을 수 없다는 거였다. 버스를 탈 때마다, 지하철을 탈 때마다 할인은커녕 더 비싼 요금을 내고 차에 올랐다. 그리고 세 시간 가까운 이동 끝에 집에 도착했다. 취재 하느라, 밥 먹느라, 차비 하느라 돈을 다 써서 결국 남은 건 1300원뿐이었다. 갑자기 울컥했다.
▲ 힘든 하루를 마치고 1300원이 남았다. ⓒ 이덕만
지갑만 잃어버리지 않았더라도 오늘 같은 금요일 밤은 술 한 잔 할 수 있었는데 아쉽기만 했다. 그래도 한 친구의 말처럼 현금은 없어지더라도 지갑만 다시 돌아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금은 다시 채울 수 있지만 추억이란 것은 다시 채우기 힘들기 때문에. 설령 지갑을 찾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새 지갑에 새로운 추억을 담을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덕만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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