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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문구' 떼쓰다가 핵펀치 맞은 이명박 정부

외교의 기본도 합의체의 성격도 모르고 '떼'만 쓰더니...

등록|2008.07.26 16:04 수정|2008.07.26 18:44
아세안안보지역포럼, 알고 보니 '비중 큰 외교 무대'

아세안안보지역포럼(ARF), 백과사전에서는 아래와 설명이 나온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유일한 정부간 다자간 안전보장 협의체로 아세안(ASEAN)의 확대외무장관회의(PMC)를 모태로 1994년 창설됐다.

아-태 지역의 포괄적인 안보현안에 대해 각 정부간 솔직하고 건설적인 대화 및 협의를 통해 이 지역의 안보와 안정성을 추구하는 것이 이 협의체의 기본 목표이다.

ARF는 집단안전보장체제와는 달리 분쟁 등에 공동대응하는 등 적극적인 개념은 아니지만 다자안보대화가 착실히 이루어져 대규모 군사훈련에 대한 사전정보 제공 등을 통해 군사적 신뢰를 구축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군비통제 분쟁방지 효과를 거둘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는 국가안위와 직결된 안보문제는 미국과의 상호방위 조약을 근거로 해결하면서 다자간 안보대화로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출범단계부터 적극 참여해왔다.

한반도와 중국-대만의 양안(兩岸) 관계 등 ▲지역안보 논의 ▲회원국의 친선도모 ▲역내 평화안정 기여 ▲역내 정치.안보문제 논의 등이 이루어진다."


주목할 부분은, 한미상호방위 조약을 안보문제 해결의 핵심 근거로 삼으면서, 이 '아시안지역안보포럼' 참여로써 다자간 안보대화 형식을 갖추기 위해 우리나라가 출범단계부터 '적극 참여'해왔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로서는 비중이 큰 외교무대이며,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다자간 안전보장 협의체라는 점에서도 이 무대에서는 신중한 주의를 요구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자간 협의체에서 떼쓰다가 '망신'

앞서 거론했듯이, ARF의 주된 논의 화제는 '지역안보 논의'와 '역내 평화안정 기여'다. 게다가, 남북한 모두 참여해있기에 남북한과 관련된 일련의 평화적 선언 및 조치에 대해서는 어떤 분위기에서 논의될지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ARF가 채택한 의장 성명에서는 10·4 선언에 대한 지지가 예정돼 있었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상부가 '금강산 사건'에 대한 성명 반영을 천명하면서 북한이 요구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상부는 이것을 저지하기 위해 사력을 다했다.

하지만, 2000년 7월 27일에 열렸던 ARF 제7차 외무각료 회의가 채택한 의장성명 중 한반도 조항인 21조항의 내용을 살펴보게 된다면,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상부는 머쓱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외무장관들은 한반도 상황의 긍정적 발전에 만족을 표시했다. 그 긍정적 발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ARF 수개 회원국과의 대화와 교류증진도 포함된다.

장관들은 특히 2000년 6.13-15일간 평양에서 개최된 남북한 지도자들 간의 역사적인 정상회담을 환영하고 1945년 한반도 분단 이후 두 지도자들이 서명한 최초의 합의문인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였다.

이와 관련, 장관들은 동 정상회담이 남북한 관계의 전환점이 되고 이와 같은 대화와 교류의 모멘텀이 지속 발전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궁극적으로 한반도 통일이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는 데에 견해를 같이했다.

장관들은 또한 남북한간 대화, 북·미, 북·일회담, 4자회담 등의 체제내에서의 모든 당사국의 노력과 기타 광범위한 국제적 노력의 증진에 대한 기대를 표명하였다.

또한 미사일 시험발사에 대한 북한의 잠정적 유예와 관련한 가일층의 긍정적 진전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를 포함, 1994년 제네바 합의의 완전한 이행에 대한 기대를 표시하였다."


어떤가? 6·15 남북공동선언에 대한 '지지 표명'이 드러나 있으며, '1945년 한반도 분단 이후 두 지도자들이 서명한 최초의 합의문'이라는 친절한 주석까지 달려있었다. 뭘 말할까? 두 번째로 한반도의 두 지도자가 만나 서명까지 남긴 합의문인 '10·4 선언'에 대한 지지를 표하는 의장 성명에 대한 예상을 쉽게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상부는 이런 전례를 검토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 10·4 선언 지지 문구를 저지하는 전략을 급히 채택하면서 밀어붙였을 것이다. 하지만, ARF에는 남북한이 모두 참여해 있다. ARF의 주된 구성 목적 중 하나는 '회원국의 친선도모'다.

여러 국가가 모여 구성된 협의체에서, 그것도 휴전중인 분단국가들이 동시에 참여한 협의체에서, 어느 한 쪽의 주장만을 '의장 성명'에 담아낼 수 있을까? 남은 한 쪽의 반발은 어떻게 하라는 이야기일까? 이런 기초적인 판단마저도 외면했다는 이야기일까?

'금강산 사건 문구 채택'을 노력하던 우리가 북한이 채택을 요구한 '10·4 선언 지지 문구'의 폐기를 요청했으니, 북한도 당연히 뭔가를 요구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금강산 사건 관련 문구'를 요구했을 것이다. 이 점을 감안해야 했다. 하지만 '10·4 선언'과 '금강산 사건', 국내 여론의 추이나 사태의 심각성으로 보나 무엇이 우리에게 절실했을까? '금강산 사건'이다.

이명박 정부는 다자간 협의체에서, 본인들의 당파적 판단이 담긴 외교적 사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가 역효과를 낳은 셈이다. 북한도 엄연히 회원국인 입장에서, 그런 일방적인 대처는 '외교적 무례'로 봐도 손색이 없다.

다자간 외교에서도 궁색한 '당파 외교'

이명박 정부는 '실용 외교'를 주장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만적인 표현이다. 이명박 정부야말로 그 어느때보다 강력한 '당파 외교'를 구사하고 있다. 국제무대에서도 우리나라에서처럼 당파적 선동이 통한다고 믿은 것일까?

이명박 정부가 ARF에서 '10·4 선언 지지 문구 폐기'를 밀어붙이려 했던 자체가 '당파 외교'의 근거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황당한 양상이 벌어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상부는 '10·4 선언 지지 문구 폐기'를 왜 해야 하는지, 납득시키지 못한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6·15 선언 지지 의장 성명의 전례를 봤을 때 ARF의 '10·4 선언 지지 문구 채택'은 예상할 수 있었던 일이다.

북한은, 다른 회원국들도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을 한 데에 반해, 이명박 정부는 '금강산 사건'에 대한 국내의 반발과 비판을 외교적 해결로써 무마하려다가, 본인들의 국내용 당파성이 달린 문제가 튀어나오자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유발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금강산 사건' 역시 명확한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채, 남북의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부분이다. ARF의 의장 성명에서 이에 대해 '관심을 표명한다'는 문구로 유보적인 입장을 제시하는 것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아니다. 외교의 기본, ARF의 성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당파성에만 급급했던 것에 따른 결과물이다.

청와대의 어느 핵심관계자는 "10·4 선언 부분은 우리의 대북기조에 족쇄가 될 우려가 있어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았다"는 이야기를 남겼다고 한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들 수 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기조가 뭘까? 어지간한 지능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기만적인 표현에서 고개를 내저을 '실용 외교'를 말하는 것일까?

다시 한번 주지한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 기조 및 외교적 노선은 역대 정권에서도 가장 강력한 '당파 외교'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국내외적인 변화 상황을 거의 감지하지 못한 채, 당파가 다른 이전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뒤집는다는 판단 아래, 그리고 본인들이 정권을 잡았던 시절에 한번 패착을 맛본 기조다. 그러니 '오락가락' 신세를 면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지난 11일에 "과거 남북 간에 합의된 7·4공동성명, 남북기본합의서, 비핵화 공동선언, 6·15 및 10·4선언을 어떻게 이행해 나갈 것인지에 관해 북측과 진지하게 협의할 용의가 있다"는 내용의 국회 시정연설을 한 바 있다. 그래놓고는 국제 사회에서는 여전히 '당파 외교'에 집착하다가 핵펀치를 맞은 것이다.

차라리 '실용'이란 표현 쓰지 말아야

부탁이건데, '실용'이 아닌 것을 '실용'이라고 주장하는 것부터 그만두길 바란다. 이명박 정부가 '당파 외교'에 집착하게 될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바, 넓은 의미에서는 이런 '망신'도 예상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을 '실용'이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실용은 '당파'와 '이념'을 초월해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국내 정치 지분이 달려있기에 '당파'와 '이념'을 버릴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주장하는 '실용'은 기만이다.

참고로, 이명박 정부 들어 다양한 국제망신의 가능성이 감지된다. '촛불'과 관련해서도 경찰조직의 수장이 어디에 법적 대응을 할지조자 모른 채, 국제 앰네스티에 대해 '법적 대응'을 운운하다가, 국제 앰네스티의 비정기 조사관이 파견되기까지의 '망신 과정'이 밝혀지는 일도 있었다. 그러더니 아예 다자간 협의체에서까지 '국제 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당파'와 '이념'에 눈이 먼 채로 국제관계를 바라볼 때, 어떤 부작용과 망신이 유발되는지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부, 외교에는 '선동'이 통하지 않는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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