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설악산 대청봉에서 바라보면 백두대간 공룡능선이 보인다. ⓒ 안준철
산은 ( )이다. 산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산에 대한 느낌이 다르고, 산도 산 나름일 터이니 ( ) 속에 들어갈 글자는 무궁무진하리라. 왜 산에 가는가? 아마 이 질문에 대한 대답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사람마다 산에 가는 이유가 다 다를 것이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의 경우는 계절에 따라 산을 찾는 이유도 사뭇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7월 21일, 산을 좋아하는 ‘올뫼산악회’ 8명은 설악산(대청봉) 산행에 나섰다. 산행 하루 전날, 집에서 배낭을 꾸리고 있는데 휴대폰 벨이 울렸다. 받아보니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시인이었다. 이런 저런 얘기 끝에 근황도 알릴 겸 내일 설악산에 간다고 했더니 대뜸 하는 말이 왜 하필이면 여름에 설악산을 가느냐는 것이었다. 설악산은 가을이 제격이 아니냐는 말도 덧붙였다.
가을은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계절이다. 거기에 설악산은 내 마음의 이상향 같은 곳이라고나 할까? 가끔 동료교사의 차를 얻어 타게 되면 “이대로 설악산이나 가지!” 하는 식으로 실없는 농담을 할 정도였다. 그러니 가을과 설악산이란 두 단어의 환상적인 조합인 ‘가을 설악산’은 말하자면 내게 지상천국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후배시인의 말에 선뜻 공감하지 못했다. 그것은 아마도 산을 찾는 이유가 달랐기 때문이리라. ‘산은 ( )이다’ 라는 일종의 등식을 머리에 떠올린 것도 바로 그 순간이었다.
▲ 누구의 주제일까? 왜 이런 아름다운 자연을 우리에게 주신 것일까? ⓒ 안준철
‘산은 (그리움)이다.’
그렇다. 산은 내게 그리움이다. 어릴 적 나는 동네 뒷산에 자주 올라 ‘메기의 추억’이란 노래를 목청껏 부르곤 했었다. 그래서 유년시절의 추억이 그립듯 산이 그립다?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산이 내게 ‘그리움’인 것은 산이 내게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고통이란 말이 무겁게 느껴진다면 고생이라고 해도 좋다.
고생하기 위해서 산에 오른다는 말은 틀린 말이기도 하고 맞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이 산을 좋아하는 것은 일상에서 느낄 수 없는 어떤 쾌감 때문이리라. 그런데 그 자유의 감정에 가까운 쾌감은 대체로, 아니 거의 필연적으로 ‘고통’ 뒤에 오기 마련이다. 그 고통이 극점에 달할 때 인간은 단순해진다.
이때의 단순함이란, 그것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혹은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한 소극적인 방어본능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해도 인간이 적극적으로(혹은 탐욕적으로) 돈으로 구매할 수 있는 어떤 풍성한 행복보다도 더 깊고 매력적이고 본질적이다. 그래서 산은 내게 ‘그리움’인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상 속에서 한없이 가벼워지기만 하는 나로서는 더욱.
▲ 이름을 아는 것도 있고, 모르는 것도 있다. 설악산은 야생화의 보고이기도 하다. ⓒ 안준철
설악산은 지리산으로부터 시작되는 백두대간의 마지막 종착지이다. 어떤 이는 설악산을 백두대간의 출발지로 삼기도 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통일이 되어 한반도에 드리워진 이념의 장애물들이 제거된다면 사정은 달라지리라. 다음은 인터넷에서 검색해본 ‘백두대간’에 대한 설명이다.
‘백두산에서 남으로 맥을 뻗어 낭림산·금강산·설악산·오대산을 거쳐 태백산에 이른 뒤 다시 남서쪽으로 소백산·월악산·속리산·덕유산을 거쳐 지리산에 이르는 한국 산의 큰 줄기를 망라한 산맥이다. 즉 한반도 산계의 중심이며, 국토를 상징하는 산줄기로서 함경도·평안도·강원도·경상도·충청도·전라도에 걸쳐 있다.’
백두대간의 종착지인 지리산이 지척거리인 남도 순천에서 남한으로만 보자면 백두대간의 출발지라고도 할 수 있는 설악산까지는 꽤 먼 길이다. 21일 아침 6시 30분경에 순천을 출발하여 푸른 물굽이가 넘실대는 동해를 두루두루 구경하며 돌아오다 보니 설악산의 명물인 울산바위가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이는 속초에 도착한 것은 저녁 시간이 가까운 늦은 오후쯤이었다.
저녁 8시 경, 숙소에서 저녁을 지어먹고 난 뒤에 우리 일행은 밤하늘을 바라보며 다음날 아침 일기가 고르기만을 학수고대하고 있었다. 그런 간절한 바람은 산행을 불과 사나흘 앞두고 태풍 갈매기가 한반도를 강타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할 때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다행히도 태풍이 차츰 소멸되었지만 장마전선이 다가오고 있어서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 대청봉 일출을 볼 수 있을까? ⓒ 안준철
다음날 아침, 하늘을 올려다보니 검고 흰 구름이 반반씩 섞여 있었다. 갑자기 비만 뿌리지 않는다면 여름산행을 하기에는 오히려 제격인 날씨였다. 산행 코스는 외설악에서 내설악으로 방향을 잡았다. 설악동 매표소를 출발하여 청동좌불상과 금강초롱교를 지나 비선대자연학습탐방로로 접어들자 우리나라 전통 소나무(적송)들이 우거진 숲길을 만날 수 있었다.
일행 중 한 사람이 그 나무들을 미인송이라고 불렀다. 정말 미인처럼 잘 빠진 나무들이었다. 나무에 달린 표찰을 보니 나무의 정식 이름은 금강송이었다. 그렇다면 금강송이 곧 미인송인가? 그리고 적송은 또 뭐고? 궁금증에 나중에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나무를 꽤 잘 아는 듯한 분이 친절하게도 이렇게 상세하게 설명을 해놓았다.
‘소나무 속에는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 적송, 해송(곰솔, 흑송), 잣나무, 섬잣나무(오엽송), 리기다소나무, 방쿠스소나무, 스트로브잣나무 등등. 이 가운데 우리나라 고유의 통상 소나무라 부르는 종류는 적송입니다. 금강송은 유전형질이 우수한 적송의 군락지에 잘 자란 소나무(적송)를 그런 명칭으로 부릅니다. 이중 수피가 붉은색을 띠며 잘 자란 적송을 춘향목이라 부릅니다.’
무슨 말인지 알 것도 같다. 적송이 있고, 금강송이 있고, 미인송인 춘향목이 있는데 그것들은 모두 같은 나무를 말하지만 그 자람과 어여쁨이 조금 다르다는 것이겠지. 어쨌거나 무엇이든지 확실히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고백하자면 설악산을 오르기 전에는 설악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수학여행 때 가본 비선대나 울산바위의 비경이 고작이었다.
▲ 산을 오르다 눈을 돌리면 어디서나 저렇게 빼어난 바위들을 만날 수 있다. ⓒ 안준철
하지만 산을 오르면 오를수록 설악은 아름다움의 깊이가 더했다. 가을 단풍으로 유명하다는 천불동계곡을 지나면서 깎아지른 바위 협곡 사이에 다섯 개의 폭포가 연이어 떨어지며 장관을 이루는 오련폭포가 나타났는데, 그 장엄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사진기에 담아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신 내게는 신이 주신 눈이 있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신이 우리에게 눈을 주신 가장 큰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아름다운 것들을 보라고,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다운 삶을 꿈꾸라고. 아름답지 못한 것들을 씻어내라고. 저 맑은 물에 씻어내라고.
그런 한가한(?) 생각은 양폭대피소를 지나 천당폭포 위로 설치된 철계단을 올라가면서부터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름부터 뭔가 으스스한 느낌을 주는 ‘무너미고개’라는 가파른 마루턱을 올라서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설악의 아름다움이 나의 고통을 방해(?)하고 있다고 내심 건방을 떨고 있었던 것이다. 고통이 깊어져야 그리움이 더 커질 것이 아니겠느냐고.
간신히 고개를 올라서서 숨을 고르고 있는데 일행 중 누군가가 오른쪽을 가리키며 여기서부터 공룡능선이 시작된다고 귀띔을 해준다. 백두대간 종주를 하려면 공룡능선을 타야 한다. 하지만 설악산 정상인 대청봉(1708m)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는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가는 왼쪽 길을 택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예정대로 희운각 대피소로 내려가 점심을 해 먹었지만 마음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왜 이름을 '천당폭포'라고 지었을까? 외설악은 천당폭포를 지나면서 산이 갑자기 험악해지기 시작한다. 마치 여기까지가 천당이라는 듯. ⓒ 안준철
희운각 대피소에서 중청봉에 이르는 가파른 산길은 평소 잡생각이 많은 나를 단순하게 만들어주는 고마운 길이었다. 나를 찾아온 고통에 몰입하고 또 몰입했다. 의도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었다. 애쓰지 않아도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인가? 내 몸뚱어리에 돌맹이를 매달아서라도 나를 가라앉히고 싶었던, 참을 수 없이 가벼운 나를.
다음날 아침 일찍 대청봉에 올라 일출을 볼 생각이었지만 우리 일행은 곧바로 대청봉에 올랐다. 일기를 보아하니 다음날 일출은 본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닌 성싶어서였다. 하지만 다음 날, 생각보다 하늘은 맑았다. 하늘 한 편이 맑게 개어 있었다. 그 맑게 갠 하늘에서 새벽별이 하나 반짝거렸다.
▲ 중청봉 대피소와 대청봉 정상이 보인다. ⓒ 안준철
대청봉 일출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검은 구름 사이로 조금 늦게 얼굴을 내민 것뿐이었다. 다시 중청으로 내려와 아침을 먹고 소청봉으로 내려서다 보니 일출을 놓친 사람들을 위로라고 해주려는 듯, 먹구름 속에서 잠시 얼굴을 내 보인 해가 바다 한 쪽을 조명처럼 환히 비쳐주고 있었다.
봉정암을 지나 백담사로 향하는 하산 길도 아름다웠다. 수렴동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빛이 너무 고와서 사진기에 담기 위해 걸음을 멈추다보니 일행들과 일정한 간격을 두고 혼자서 산행을 하는 모양새가 되었다. 그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아름다워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혼자인 시간이 더 많아야 할 것 같았다.
▲ 대청봉 일출은 없었다. 아니, 있었다. 검은 먹구름 사이로 해가 보인다. ⓒ 안준철
▲ 해가 바닷길을 열어주고 있다. ⓒ 안준철
▲ 8시간의 대장정을 마치고 설악산 대청봉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 '올뫼산악회' 회원들. ⓒ 안준철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