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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쟁이가 사진기 안 들고 사진 안 찍기

[사진말 (11) 사진에 말을 걸다 52∼58] 사람사진과 풍경사진

등록|2008.07.28 11:29 수정|2008.07.28 13:09

헌책방에서 찍고 걸고2000년에 처음으로 열었던 ‘헌책방 사진잔치’ 모습. 헌책방에서 사진을 찍고 헌책방에서 사진잔치를 여는 일을 올해까지 모두 열한 차례에 걸쳐서 했습니다. ⓒ 최종규



[52] 일곱 번째 사진잔치 2 : 그동안 여섯 번이나 사진잔치를 하면서 놓친 대목이 많다. 나는 내 사진을 뽑아서 사진잔치를 하면서 '남이 보기에 괜찮다' 싶은 사진만 골라 왔다. 내가 헌책방을 찍는 흐름과 손길과 눈길을 보여주지 못했다. 내 나름대로 본 헌책방 흐름이라면, 헌책방이 있는 모습 그대로이다. 이 있는 모습 그대로를 헌책방마다 문을 열고 꾸리고 닫는 때와 곳에 맞게 내가 그곳에 맞추어서 찍었다. 그런데 정작 내 사진잔치 여섯 차례에서는 그 흐름과 눈길과 손길이 제대로 못 담겼다. 참 바보 같은 짓만 한 셈이다. 그렇지만 뭐 어떠랴. 한때는 바보처럼 굴며 살 수도 있고, 바보처럼 살던 지난날을 느꼈으면 이제는 바보처럼 안 살면 되지 뭐.

내 골목길 사진내 골목길 사진에는 사람 모습이 얼마 없습니다. 사람을 찍기 수월하지 않기도 하지만, 사람 모습을 담아야만 사람사진이 아니라, 사람이 손과 몸을 움직여서 이루어 놓은 자취를 담아내어도 사람사진이 됨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 최종규



[53] 사람사진과 풍경사진 1 : 사진은 "사람을 찍은 사진"과 "사람이 없이 찍은 사진"으로도 나눌 수 있습니다. 앞엣것을 '사람사진'이라 하고 뒤엣것을 '풍경사진'이라 이름 붙일 수 있어요. 이때 어떤 사람이 찍은 사람사진에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깁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찍은 사람사진에는 아무 냄새도 빛깔도 없곤 하더군요. 사진에는 사람들이 나오지만 사람이 아닌 풍경으로만 사람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구경꾼으로.

어떤 사람이 찍은 풍경사진에는 사람이 하나도 보이지 않거나 나오지 않으나, 참 구수하고 빛접으며 살갑기까지 합니다. 풍경을 찍은 사진이지만, 그 풍경에는 우리들이 부대끼고 복닥이며 어울리는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사람을 찍은 사람사진이지만 사람 냄새가 없는 사진이 있고, 풍경만을 찍은 풍경사진인데도 사람 냄새가 짙게 묻어나는 사진이 있구나 싶어요.


내 골목길 사진 2호젓한 골목은 말 그대로 사람 발길이 드문 곳입니다. 이곳을 지나다니는 사람을 한참 기다리며 사진으로 담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반드시 들어가는 모습으로 엮어내는 사진으로만 틀에 맞추기보다는, 골목에 어떤 삶이 깃들어 있는가를 나 스스로 느끼고 담아내는 데에 힘을 쏟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울 홍제동 언덕받이 골목길에서) ⓒ 최종규


[54] 사람사진과 풍경사진 2
: 사진책을 볼 때 처음에는 사람이 담긴 사진책만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람이 담긴 사람사진책 가운데 거짓말을 하는구나 싶은 느낌이 들고, 사람 냄새가 나지 않는구나 싶은 책이 하나둘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풍경만을 담은 어느 사진책을 보다가 눈물이 났습니다. 왜지? 뭘까? 하고 한참 생각을 했으나 아무런 실마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돌아가신 분이 쓰던 낡은 안경을 만지작거려 보고 시계도 만지작거려 보고 원고지와 다 쓴 볼펜을 만지작거리게 되었습니다.

아하, 사람은 떠나고 없으나 그 사람이 남긴 자취와 자국이 이렇게 짙게 남아 있군요. 이 자취와 자국을 언제나 곁에서 따뜻하고 그윽하게 바라볼 수 있다면, 풍경을 찍은 사진이지만 사람을 찍은 사진과 견줄 수 없도록 따뜻하고 그윽한 냄새를 풍길 수 있지 않으려나. 그렇지만 사람을 아무리 대놓고 크게 담고 많이 집어넣는 사진이라고 해도, 그저 멀거니 팔짱끼듯 하는 마음으로 사진기를 들었다면, 이 사람사진은 한낱 풍경조차 아닌, 소모품이 아닐까 싶고. 배경도 아니요 정물마저도 아닌, '작가 이름 하나 높이려고 끼워넣은 물건'이라고 할까요. 사람사진을 찍을 때 꼭 사람을 앞에 앉혀 놓고 찍을 까닭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풍경사진을 찍으면서 굳이 사람이 안 들어가도록 찍을 까닭이 없음을 새삼 알게 됩니다.


[55] 갖은 어려움을 다 겪으면서 찍은 사진 : 갖은 어려움과 괴로움을 이겨내면서 찍은 사진이라고 해서 훌륭하거나 좋거나 아름답거나 반갑거나 볼 만한 사진이 되지는 않습니다. 아무 힘든 일 없이 찍은 사진이 외려 참 훌륭하거나 좋거나 아름답거나 반갑거나 볼 만한 사진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즐길 수 있는 마음, 사진 하나에 고이 담으려는 뜻을 어떻게 다스리려 하느냐는 몸가짐 때문일까요. 사진을 즐기는 마음과 사진 하나 찍어내는 기쁨을 먼저 추스르지 않으면서 그저 죽을 고생만 신나게 하면, 오로지 고생만 남을 뿐 사진은 안 남습니다. 홀가분하게 놀면서 사진을 찍더라도 사진기 든 자기 마음결을 알뜰히 다독일 수 있다면, 얼핏 보기에는 가벼움만 느낄 테지만 지긋이 들여다보면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움이 배어 있는 사진이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찍는 마음에 따라개발업자와 개발부서 공무원이 판치는 한국 사회에서 끔찍한 막공사를 막기란 참 어려운 노릇. 동네 망가뜨리는 공사를 막는 주민들이 공사터에서 ‘야외 미사’를 드리면서 반대하는 뜻을 몸으로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공사터 모습을 두루 담으려고 가파른 비탈을 타고 올라가 힘들게 사진을 찍었습니다. 저는 이렇게 올라가서 찍었지만, 가까이에서 사진을 담으면서도 주민들 뜻을 잘 담아낼 수 있어요. ⓒ 최종규



[56] 헌책방에서 사진 찍기 : 헌책방이라면 어느 곳이든 조그마한 걸상 하나, 오래 묵은(헌책방 나이만큼) 사다리 하나 있습니다. 아무리 작은 헌책방이라 해도. 이 걸상이나 사다리에 올라가서 두리번두리번 둘러보셔요. 새롭고 놀라운 세상을 만나고 싶으시면.

헌책방 사다리아무리 조그마한 헌책방이라고 해도, 이곳에 있는 작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아래를 내려다보거나 책방을 두루 살펴보면, 퍽 남다른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눈높이에 따라서 우리한테 느껴지는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때로는 사다리 타고 올라가고, 때로는 무릎 꿇고 눈길을 낮추어 사진을 찍습니다. ⓒ 최종규



[57] 사진기 안 들고 사진 안 찍기 : 내가 좋아서 사람을 만납니다. 내가 좋으니 밥을 먹습니다. 내가 좋으니 아리따운 아가씨와 잠자리를 함께하고 싶고, 내가 좋으니 아무 데나 벌렁 드러누워 하늘을 올려다보고 싶습니다. 내가 좋으니 글을 씁니다. 내가 좋으니 아이들하고 장난도 치고, 내가 좋으니 마음에 드는 책을 거리낌없이 사요. 내가 좋으니 그림도 끄적거려 보고, 내가 좋으니 사진도 찍습니다. 내가 좋기 때문에 필름에 헌책방 모습을 담아 보는데, 필름에 안 담는 모습도 많습니다. 헌책방 이야기를 글로도 쓰지만, 굳이 글로 안 쓰는 이야기가 더 많아요. 꼭 글로 남겨야 하고, 반드시 사진으로 새겨야 하지는 않거든요. 내 눈에, 내 머리에, 내 마음에, 내 가슴에, 내 손과 발에 담기도 합니다. 때로는 이렇게 눈과 머리와 마음과 가슴과 손과 발에만 담는 헌책방 이야기와 모습이 더 마음에 들고 즐겁습니다. 역사에 남기려는 사진 찍기가 아니요, 내 생각을 남들한테 알리고 발자취니 적바림이니 남기려고 쓰는 글이 아니거든요. 우리는 역사에 남는 사진을 찍지 않아요. 저마다 좋아하는 사진을 찍고 함께 즐기면서 살아갈 뿐입니다. 남들이 가는 길을 똑같이 따라가는 사진이 아니라, 자기한테 가장 즐거울 보람 하나, 좋아할 만한 꿈 하나를 찾는 사진입니다.

사진감은사진감은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길고양이를 찍을 수 있고 집고양이를 찍을 수 있으며, 집안식구를 찍을 수 있고 이웃사람을 찍을 수 있습니다. 사진기 들지 않고 스스럼없이 만나는 내 가까운 사람과 일터가 바로 나한테 가장 사랑스럽고 속깊은 사진감이 되어 주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우리 집 울타리에 앉아 있는 길고양이) ⓒ 최종규



[58] 사진을 찍지 않아도 : 사진을 찍지 않아도 사진기는 늘 들고 다닌다. 하나가 아닌 두 대나 석 대를. 다른 일이 없어서 사진기를 집에 놓고 나올 수 있으나 굳이 들고 나온다. 무겁다고 느낄 만한 장비를 어깨에 메지 않으면 몸이야 가벼울 테고 술 마시다가 자칫 잃어버리지 않을 테며, 책을 읽다가 버스나 전철에 놓고 내릴 일도 없겠지. 그러나 언제 어느 곳에서 찍어야 할 일이 생길지 모른다. 나는 사건이나 사고를 찍는 사람이 아닌 터라 갑자기 땅이 꺼지든 하늘이 무너지든 비행기가 고꾸라지든 배가 잠기든, 이런 모습을 딱히 사진으로 찍지는 않을 듯하다. 그렇지만 언제 어느 때에 뜻하지 않던 헌책방을 만나거나 찾아가게 될는지 모를 일이요, 사람을 만날지 모를 일이다. 늘 들고 다니는 사진기는 적금이라고 할까? 여느 때엔 쓸 일이 없어서 은행에 묵혀 두고 있는 돈 같은. 또는 안 쓰고 꽁꽁 감쳐 둔 돈. 비상금?

늘 들고 다니면사진기를 늘 들고 다니면, 시간 움직임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지는 ‘내 사진감 모습’을 느낄 수 있습니다. 아침과 낮 다르고, 저녁과 밤이 다르며, 새벽과 해질녘이 다릅니다. 이 다름을 느낄 수 있으면 비로소 내 사진도 넉넉해집니다. ⓒ 최종규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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