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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들의 신념이 국가 권력에 휘둘리지 않기를...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

등록|2008.07.28 12:04 수정|2008.07.28 12:04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양심에 따라 총을 들기를 거부한 내부 망명자들의 소박한 바람과 목소리가 진솔하게 담겨있다. ⓒ 철수와 영희


촛불집회에서 진압에 동원됐던 의경 이길준 이경이 복귀를 거부하며 27일 기자회견을 통해 양심선언을 했다.  '전의경 제도 폐지를 위한 연대' 공동대표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이덕우 변호사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이 연대 지지발언을 하고 젊은이들의
신념을 멍들게 만드는 ‘전.의경제도’를 폐지할 때까지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는 흔히 병역거부하면 대개 여호와증인을 떠올리게 된다. 

종교와 상관없이 평화를 위한 선택으로, 혹은 개인의 신념과 양심의 소리에 따라  병역을 거부하거나 대체 복무를 요구하는 사람들에 대해 잘 모른다는 이야기이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자 30인의 기록을 담은 <총을 들지 않는 사람들>이 철수와 영희 출판사에서 출간되었다.  나도 그 책을 읽기 전까지는  누군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했었다는 기억만 어렴풋이 떠올랐을 뿐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다.

신념에 따라 총을 들기를 거부한 사람들은 지난 70년간 한결같은 마음으로 병역거부 운동을 실천해 온 여호와 증인들과 안식교도들이다. 종교와 상관없이 평화를 위한 선택으로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01년 12월 오태양씨의 양심선언과 병역거부가 시작이다. 그 후  지난 6년간 30여 명이 병역을 거부해 감옥을 다녀오거나 아직도 감옥 안에 있다.

한홍구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인권과 관련된 활동을 하고 있으면서 1600명의 양심수들이 병역거부 문제로 감옥에 갇혀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에 대해 부끄럽다는 고백을 했다. 민주화 운동으로 감옥에 갇혔던 인권운동가, 군법무관으로 근무하며 여호와 증인 재판에 참여했던 인권변호사들 역시 자신들의 기억 상실의 부끄러움을 고백했다고 밝힌 바 있다.

‘촛불 집회’가 장기화되자 매일  거리에서 무장을 하고 서있는 전경을 마주치게 된다. 어쩌다 눈길이 마주치면  ‘ 저 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이 자신의 양심의 소리와 싸우며 괴로워할까’에 생각이 미치면서  그들의 앳된 얼굴이 무척이나 안쓰러워 보였다

 종교적 신념이든, 개인의 양심에 다른 선택이든, 군복무를 대체할 선택 기회 없이 무조건 그들을 범죄자처럼 감옥에 가두어 두는 행위는 비인격적, 비윤리적인 국가 권력의 횡포에 다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총을 잡지 않고 군사훈련을 받지 않는다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감내하며 다른 방식으로 국가에 헌신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양심의 소리를 따랐던 젊은이들에게 주어진 방식은 단 하나 1년 6개월의 감옥생활이었다.  범죄자도 아니고 의무 자체를 거부하는 것도 아닌 다만 다른 형식으로 의무를 이행하게 해달라는 이유만으로도 수감생활을 하는 것은  거대한 국가 권력의 무자비한 횡포다.

30인은 전쟁 없는 세상 서로에게 총질을 하지 않는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선량한 젊은이들로 교사로, 평화활동가로, 평범한 대학생으로 살아가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감옥을 선택하기까지 수많은 날들을 얼마나 갈등하며 힘들게 보냈는지를 이렇게 고백하고 있다.

마음이 약간 복잡해졌습니다. 그저께까지만 헤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 어제부터는 약간은 초조하고 약간은 긴장되고 약간은 결심이 생기고 또 약간은 느슨해지곤 합니다. (중략)

한동안 사람들을 만나지 않다가 재판을 앞두고 갑자기 많은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모두 한결같이 고마운 격려와 힘을 보태주었습니다. 죄송스러운 마음입니다. 무슨 특별한 양심이라고 , 신경써주시는 것에 많이 쑥스러웠습니다. 어찌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양심이고 생각인데 유난히 떠벌인다는 생각도 듭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병역거부자들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우리 사회의 현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최근에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그런 우려를 보여주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모두 감사히 받았습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일지라도 우려와 인정을 함께 말씀해 주시는 것이 저의 오만과 자만을 깨어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민주주의는 이러한 수많은 생각들이 인정될 수 있는 난장판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생각이 다르더라도 병역거부자들의 진심만은 알아주시면 족합니다.

                              -2003년 11월 13일 병역거부를 한 염창근님의 글 인용-

내게는 네 명의 조카와 아들아이까지 다섯 명의 남자아이들이 있다. 네 명의 조카 중 두 명은 군복무를 마치고 민간인으로 돌아왔고 두 명은 아직 현역으로 복무중이다. 이제 고 3인 아들아이에게는 군복무라는 의무가 숙제로 남겨져 있다. 조카들은 육군, 공군, 전경까지 자신들의 선택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했다. 그들에게 선택의 기회가 주어졌던 것처럼 신념에 따라 개인의 양심에 따라 총을 잡지 않을 권리와 기회도 주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군인’은 사람이 아닌, 제3의 성 그냥 ‘군인’이라는 우스개 소리를 그냥 흘러버릴 일이 아니다.  24개월이라는 의무복무기간을 꼭 군대 복무라는 길로만 채워야 하는 걸까? 자기가 선 자리에서 양심의 소리에 반하지 않으며 국가가 명한 의무를 다하는 길은 없는 것일까?  만일 자신이 원치 않는 자리에서 괴로워하는 젊은이가 바로 당신의 아들이라면 또 그가 양심선언을 하며 총을 잡기를 거부하거나 군 복귀를 거부한다면 당신은 무엇이라고 하겠는가?  사회가 아직 인정하지 않으니 범죄자 아닌 범죄자가 되어  감옥으로 가 양심 선언한 대가를 치르라고  말하겠는가?

그것은 정의가 살아있는 민주사회의 방식이 아니다. 나는 사회에 해악을 끼치지 않는 내 아이의 양심과 신념이 국가 권력에 의해 통제되고 굴절되지 않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 그것은  외롭고 힘든 길을 선택했던 용기있는 젊은이들로부터 태동된 평화에의 갈망에 이 시대의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져야 그들의 수고가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좋은 선생님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며 의무를 다하고자 했던  한 교사의 글이  각자의 마음에 물음표 하나씩을 던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제 꿈은 좋은 선생님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배운 평화와 사랑을 말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며 성장해가고 싶습니다. 제게는 평화의 신념이 있습니다. 그 신념은 비겁하고 무기력한 것이 아닌, 깨어 있는 마음과 적극적인 사랑이라고 저는 믿습니다. 온화하고 너그러우나 분명하고 단호한 선생님이 되고 싶습니다. 지금은 비록 아이들 곁을 떠나게 되겠지만, 이 행동이 진정한 의미의 죄가 아님을 알고 있으며,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 아이들 앞에 설 수 있음을 확신하므로 마음은 어둡지 않습니다. 저의 작은 행동을 통해 이 당의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평화와 신념의 의미를 되새기고 어떠한 물음을 갖게 된다면 좋겠습니다.

제가 가르치는 아이들도 저마다 다른 신념을 갖고 꿈을 키워갑니다. 군인이 되겠다는 아이도 있고 종교인이 되고 싶다는 아이도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신념과 꿈에 간섭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저마다의 신념을 소중히 여기고 다른 이의 신념 역시 존중하며 함께 평화롭고 행복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길 바랍니다.

한 남자가 오래된 온천을 촛불을 밝힌 채 건너고 있습니다. 천장에서는 물이 쉼없이 쏟아지고 촛불은 금세 꺼질 듯 위태로워 보입니다. 남자는 손 우산으로 촛불을 소중히 가리며 조심스레 걷습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는 온천을 무사히 건넙니다. 그리고 혼절하고 맙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노스텔지어」에 나오는 한 장면입니다. 근래 자주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입니다. 본래 영화에서는 이 장면이 구원에 대한 메타포로 사용되지만 저는 그것이 깨어 있음에 관한 은유처럼 여겨집니다.

우리는 저마다 촛불을 한 자루씩 갖고 있는 게 아닐까요? 환하게 타오르던 촛불은 우리의 무지와 게으름으로 인한 일상의 황폐 속에서 시나브로 사그라지는 건 아닐까요? 어느 날 문득, 꺼진 촛불을 바라보는 우리의 멍한 눈동자를 생각해봅니다.

‘나의 촛불이 꺼지지 않기를. 그리고 이 밝고 따스한 빛을 나눌 수 있기를.’

( <총을 들지 않은 사람들> 에 실린 이 글은  평택 군무초등학교에서 5년 동안 교사로 근무하다 병역거부로 논산구치소에서 수감생활을 한 후 대안학교인 과천 자유학교에서 아이들과 만나고 있는 김훈태 교사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총을들지 않는 사람들/전쟁없는 세상/한홍구/박노자 지음/철수와 영희/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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