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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 무엇입니까?

실상사 템플스테이 참가기

등록|2008.07.28 14:51 수정|2008.07.28 14:51

▲ 실상사 보광전과 삼층석탑 ⓒ 김치민


일상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한가함을 누리고 싶은 것은 오늘을 사는 사람들이 꿈꾸는 작은 소망이다. 지난 겨울부터 절집에서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다. 이곳저곳은 기웃거리다 실상사 여름 수련회에 참가하기로 했다.

속옷 몇 벌, 간편복 한 벌, 세면도구, 책 한 권 등을 챙겼다. 카메라 가방과 준비물 가방을 메고 현관을 나서는데 아내가 따라 나선다. 별 일이다. 앞서 가는데 뒤통수에 대고 아내가 한마디 한다.

"담배 끊고 와!"

요즘 아내는 신났다. 큰 녀석은 군 생활을 하고, 둘째는 기숙사에서 생활하다 보니 아내와 단 둘이 생활한다. 담배 냄새 나는 남편은 강 건너 불이다. 더위가 오면서는 아예 건넌방에서 생활한다. 딱히 아내에게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왠지 아침에 일어나면 기분이 좋지 않다. 미운 아내의 외마디 소리에 심통이 난다. 대답 없이 자동차에 올랐다. 그러고 보니 아내와 말없이 지낸지 한참 되었다.

요즘 기름 값이 비싸다. 구례 가는 길에 가장 쌀 것 같은 주유소에 들러 가득 채웠다. 밤재 터널을 지났다. 휴게소에 멈춰 차를 마시는데 주유소 기름 값이 40원이나 더 싸다. 가장 싸다고 가득 채웠더니……. 씁쓸한 마음에 한숨만 크게 쉬었다. 실상사는 처음 가는 길이다.

대충 지도에서 길을 익혔지만 이정표가 그리 많지 않아 굽어지는 갈림길마다 고개를 내밀고 길을 물어야 했다.  실상사. 꽤 유명한 절이라 생각했는데 이정표가 통 보이질 않는다.

지리산 자락을 타고 넘는 길이 고개를 넘으며 산자락 모양 그대로이다. 실상사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산내면의 넓지 않은 들판 한 가운데 개천을 넘어 있었다. ‘해탈교’라는 이름을 가진 다리를 건너면 못생긴 장승이 버티고 서서 방문객을 맞는다.

▲ 해탈교 앞에서 지키는 돌장승 ⓒ 김치민


▲ 천왕문 앞에 피어난 연꽃 ⓒ 김치민


등록을 하니 황토 염색을 한 수련복과 함께 수저, 젓가락, 수련회 자료, 메모장 등을 준다. 서두르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되는 입제식 연습이 끝났다. 4일 동안 지도해주실 스님은 원묵, 응묵 스님이다. 간사는 이상빈 보살님. 평안하고 살가운 인상에 마음이 편하다.

얼굴에 평온한 웃음이 가득한 원묵스님이 실상사를 한 바퀴 돌면서 안내를 한다. 신라 흥덕왕 3년(828년) 흥척국사가 개창한 최초의 선종 가람으로 창건 당시 지실사였으나 흥척국사의 존칭인 '실상선정국사'의 앞머리를 따서 고려 초부터 실상사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전각과 탑들을 돌며 설명하는데 무슨 사연이 그리도 많은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수련회에 함께한 사람들은 모두 12명이다. 단출한 식구가 함께한다. 그동안 살아온 이런 저런 이야기를 담아 자신을 소개하지만, 아직은 마음 한 구석에 풀어놓지 못하는 이야기들이 남은 느낌이다. 그래도 생경한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반장과 부반장을 뽑았다. 절집이라 그런 위계를 생각지 않았는데 사람이 모이는 곳의 모양은 어디나 같은 모양이다.

▲ 물풀 가득한 연지 ⓒ 김치민


밥 먹는 것을 '발우공양'이라한다. 그야말로 끽 소리 없이 먹고, 설거지 하고, 설거지물까지 마신 다음, 청수로 헹군다. 그냥 허투로 편하게 먹던 밥이 수행의 한 과정이다. 갑갑해 체하는 줄 알았다. 발우에 담은 음식은 고춧가루 하나라도 남기면 안 된다.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생각하며 모든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공양하세요.”

당연한 주문이지만 평상의 생활과 다른 모습에 갑갑하고 힘들다. 한 끼 밥을 먹을 먹으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밥을 먹는 과정 자체가 수양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나는 밥 먹는 속도가 빠르다. 긴 자취 생활과 군대 생활, 그리고 결혼 직전 하숙 생활을 하면서 생긴 습성이다. 차분히 음식 맛을 음미하며 꼭꼭 씹어 먹어야 한다고 하지만 나는 그저 생존을 위해 음식을 입에 넣는다. 그래서 가끔 양이 부족해 빨리 끝나는 것으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반찬을 음미하면서 천천히 먹는 아내와는 마주 앉아 식사를 시작해도 끝까지 함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늘 아침 풍경도 그랬다.

부산을 떨며 준비한 아침상에 밥그릇이 하나다. 밥 먹으라는 채근이 있지만 혼자 앉아 먹는 밥상이 서럽다. ‘약을 먹어서 30분 후에 밥을 먹어야 하거나, 출근 준비를 해야 하거나, 밥상을 차린 후 밀린 설거지를 해야 한다.’는 둥 핑계가 많다. 함께 밥을 먹자는 말을 해보기도 하지만, 자업자득이라는 아내의 핀잔이 따라오기 일쑤다. 내심 서운하고 억울하다.

아내가 차려주는 밥상. 함께 앉아 먹지 않음을 서운해 하는 모습. 제 마음대로 먹고, 설거지통에 가득한 그릇들을 빌미삼아 원망만하는 모습. 이런 지경이니 아내의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당연할 수밖에.

저녁 예불 시간이다. 어렸을 때 원불교에 드나들어서 인지 삼귀의, 반야심경은 귀에 익은 소리이지만, 꼭 군 생활을 갓 시작한 이등병이 된 기분이다. 생소한 불교의식에 용어도 다르고 절하는 예법도 새로 배웠다. 처음으로 석가모니 부처님 상이 있는 보광전 안에서 합장을 하고 섰다. 전각에 들어서자 어리둥절하다. 그냥 밖에서 보던 느낌과는 아주 다르다. 함께 온 사람들이 모두들 합장하고 절을 하는데 나는 어찌해야하는지 모르겠다. 지금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른다. 그저 앞에 계신 스님 뒤통수만 보면서 따라 하기도 바쁘다. 등에선 땀이 흐른다. 꼭 더워서 그런 것 같지는 않다.

▲ 실상사 천왕문 앞 연지에 피어난 연꽃이 청초하다. ⓒ 김치민


법일 스님의 반야심경 강론이 시작되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오온(五蘊)이 모두 공함을 비추어 보고 모든 괴로움을 여의었으니 그게 행복 아닙니까?
색(色)수(受)상(想)행(行)식(識)은 오온(五蘊)이고 물질세계와 마음세계를 말합니다.
안(眼)이(耳)비(鼻)설(舌)신(身)의(意)는 육근(六根)이라하고 육근으로 인하여 색(色)성(聲)향(香)미(味)촉(觸)법(法)이라는 육경(六境)이 발생합니다. 공(空)이란 비유비무(非有非無)이며 전무(全無)가 아닙니다. 즉 자존(自存)입니다. 따라서 물질세계와 마음세계에서 해탈을 이루면 행복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음으로 저것이 없다. 연기설이다. 존재란 언어화, 개념화, 형상화, 차별화의 과정을 통해 규정되는 것이고, 업보(業報)라는 말은 어떤 행위의 의도된 결과를 말한다. 행복이란 행위의 순간에 만족하는데서 오는 것이지 훗날에 예견된 결과가 행복은 아니다'라면서 스님은 반야심경은 결국 사람들의 행복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한다.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강론이 진행될수록 생각은 오리무중이다. 알쏭달쏭한 내용들이 이리 저리 머릿속을 오간다. 3일 동안 진행될 예정이니 차분히 들어볼 일이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는 말인 듯한데…….

▲ 비었지만 가득한 실상사 화엄학림 모습 ⓒ 김치민


벌판 가운데 있어도 절집은 절집이다. 9시가 지나자 지나는 이 하나 없는 고즈넉한 풍경이다. 속세의 새벽도 이렇지는 않다. 절집에 들어온 지도 벌써 여러 시간이 지났다.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하루 한 갑도 넘게 피우던 담배를 피우지 못했다. 머리가 띵하고 벌써 금단 현상이 생긴다. 몰래 절집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웠다. 정신이 혼미하고 하늘이 빙 돈다. 샤워한 후 잠자리에 든다. 벌써 10시가 가까워온다. 속세 같으면 한창 활동할 시간이지만 혼자서 불 켜둔 내 방 창호지가 왠지 어색하다.

생각의 대상은 그냥 있는 것이고, 있는 그것을 느끼고 판단하여 인식하는 것은 사람들의 몫이고 이것이 마음이라는 말이 다시 맴돈다. 아내가 미운 것도 원래 미워서 미운 것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 미움이 생겨서 미운 것이고, 더 싼 기름을 넣지 못해 씁쓸한 것도 내가 그런 마음을 가졌으니 씁쓸한 것이다.

아! 모두 내 마음 탓이다.

▲ 수련 법우들의 실상사 작은 학교 방문 길 ⓒ 김치민


실상사 풍경

ⓒ 김치민

덧붙이는 글 실상사 여름 수련회는 7월 23일부터 26일까지 4일간 진행되었습니다. 1차부터 4차까지 진행되며 현재는 3차과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매회 참가 최대인원은 20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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