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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운하는 죽은 김일성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우석훈의 <직선들의 대한민국>

등록|2008.08.19 14:25 수정|2008.08.19 15:00

▲ 대한민국의 심란한 현실을 드러낸 불편한 진실, 직선들의 대한민국 겉그림 ⓒ 웅진지식하우스


지난 18일 이명박 대통령과 야후닷컴의 인터뷰는 구호로 시작해 구호로 끝났다. 대통령은 "물가가 올라 서민들에게 큰 어려움을 주는 것이 무엇보다 가슴 아프다"고 했고, "1년 정도는 힘들지만 함께 잘 견뎌나가자는 부탁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도 했다.

대통령의 말에는 '어떻게'와 '무엇을'이 빠졌다. 무엇을 함께 견디자는 것인지, 어떻게 풀겠다는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 아, 있다. 공공부문 개혁과 관련해 "국가발전을 위해서 올바른 길이 있다면 다소 힘들더라도 일관되게 정책을 확고히 밀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민영화라는 말 대신 선진화를 부르짖는 정부에서 구체적으로 피력한 것은 겨우 공기업 민영화 정도였다. 하긴 '어떻게'에 대한 구체적인 제안 없이 그저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로 당선된 이명박 정부이므로 인터뷰 내용은 일견 당연하다.

우리 어머니 세대(비밀투표이긴 하지만, 우리 어머니가 그를 찍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니까 비가 와도 투표는 국민의 의무니까 해야 하고, 눈이 와도 일단 투표는 하고 보는 세대들에게 이명박 대통령은 '청계천'과 직결된다. 낡고 꽉 막힌 고가도로를 없애고 물고기와 오리 떼가 동동 떠다니는 조깅 코스를 만들어준 '친환경' 후보, '진취적인' 대안이었다.


그들에게 저자가 청계천이 '하천'이 아니라 거대한 어항이라는 사실을 이실직고 해봤자 달라질 것은 그리 많아보이지 않는다. 큰 비가 내리면 청계천에 죽은 물고기들이 둥둥 떠내려간다는 것, 그 물이 수도꼭지에서 트는 물이라는 것은 '경제 종교' 신봉자들에게 좌빨이 거는 시비일 뿐이니까.

전작들에서도 이 나라에 대한 저자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지만, 현안에 대해 빠른 템포로 써내려간 <직선들의 대한민국>(우석훈 지음, 웅진지식하우스 펴냄)에서도 발 딛고 서 있는 땅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다. 우석훈은 이 책을 통해 '메갈로마니아'의 나라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대안까지 부추긴다.

지금 우리가 보는 한국 사회는 일종의 '경제 종교'가 움직이는 단계에서의 악몽이다. 아무리 땅값과 집값이 올라도 집이 없는 50퍼센트에게는 경제적으로 아무런 이익이 없고, 뉴타운이 결정되더라도 그 당시에 결정을 한 사람들 가운데 10퍼센트만이 원래 동네에서 살 수 있다는 명백한 현실이 그들의 마음을 바꾸는 데 전혀 작용하지 못한다는 것.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 아파트 값이 오르면 전세보증금이 오르고, 그보다 더 높은 비율로 월세가 오른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국민 50퍼센트는 집값이 오르면 손해다.

그러나 그것은 일반 원칙일 뿐이고, 많은 사람이 자기 동네 집값이나 땅값이 오르면 자기가 잘 살게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좋게 이야기하면 마음씨가 너무 좋은 것이고, 정확히 말하면 비경제적 행위에 의한 반계급적 현상이다. 자신의 계급을 스스로 배신하는 현상. 이 과정을 통해서 가난한 사람들은 더 가난해지고, 일상에서 그렇게까지 고통을 느끼지 않았어도 좋았을 사람들이 더 고통받는 일이 벌어진다.

부동산 투기의 악랄함은 정작 투기꾼 자신들이 국민 대다수를 향해 저지르는 횡포를 구체적으로 실감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당장 필요하지 않지만, 사두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들이 뭉쳐 집 없는 빈자에게 폭탄이 된다.

타인의 주거권 박탈을 딛고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것, 뉴타운 개발로 이웃이 피눈물 흘리며 시 외곽으로 밀려난다는 것, 서민들의 길어지는 출퇴근길이 생활을 지옥으로 만든다는 것을 모르지 않을 텐데 투기를 멈추지 않는다. 아마 링 위에서 1대1로 맞붙어 피흘리게 때려주는 복싱 경기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다수를 상대로 작은 펀치를 하나 추가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두지 못하는 것이라 믿고 싶다.

저자는 비정규직이 비정규직을 강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건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도 경제이성보다는 특정 정당에 대한 종교적 믿음이 더 강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2008년 한국에서 경제는 종교가 되었다'는 말이 아프게 들리는 이유는, '파란 표'를 모으면 "경제가 살아난다"는 부활 예언이 작동하는 나라가 분명하기 때문이다. 경제 종교가 할 수 있는 것은 몇몇 광신도를 배불리는 것과 그렇지 않아도 배고픈 새 신도의 헌금을 낼름 접수하는 것 뿐이다.

대운하, 북한에서도 폐기처분된 아이디어

미국산 쇠고기 반대 촛불 행진이 100일 넘게 계속됐다. 잘못된 협상이야 정부가 마음 돌려 다시 하면 되겠지만,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은 그들의 삽질이다. 한 번 뚫은 물길을 다시 메울 수도 없거니와 생태계 좀 파괴된다고 해서 한 번 뜬 삽을 내려놓을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반도 대운하를 포기하지 않고 여론 추이에 맞춰 요리조리 말을 바꾸는 그들의 끈질긴 불도저가 가장 무섭다.

그런데 이 책 재미있다. 저자에 따르면 대운하 논의가 이번이 처음이 아니란다. 시사에 밝지 않은 나만 모르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얘기였나 본데, 말로만 꾸던 꿈을 이명박 정부가 실천에 옮기려고 한 것 뿐이었나 보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한국에서 진행된 모든 운하에 대한 계획과 상상은 1960-1970년대 김일성의 꿈과 관련되어 있다. 설명은 간단하다. 반도국가인 대한민국은 북방 국경선이 휴전선으로 막혀 있어 사실상 섬나라다. 배나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국경을 벗어날 수 없는 구조로 살아왔다. … 마찬가지로 북한도 분단으로 인해 서해안과 동해안이 끊긴 구조가 되었다. 북한에서 군사력의 중요성을 이해한다면, 이 상황이 생전의 김일성에게 얼마나 큰 참담함이었을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을 것이다.

북한 해군은 서해안과 동해안에 따로 군단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데, 생각해보라. 양쪽의 배가 연결될 길이 없다. … 두 개의 군단을 운용할 수밖에 없는 북한 입장에서 동서를 관통하는 수로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김일성이 이런 수로에 집착했다는 사실이 전설처럼 내려온다.

저자는 이런 북한의 필요에 의한 아이디어가 이후 남한 정권에 두고두고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그는 한반도의 강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수로로 이어질 것이라는 이야기를 김영삼 정권 후반에 현대건설에서 일할 때 처음 들었다고 했다.

이후 김대중 정권 때는 경인운하와 관련해서 건설교통부에서 들었으며, 노무현 정권 때에도 여러 번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가 실천하겠다고 구체적으로 계획을 수립하고 불도저를 들이민 것 뿐, 우리 사회에 오랜 시간 대운하에 대한 꿈이 부풀고 있었다는 얘기다.

우습게도 많은 한국의 지도자가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 강조했다는 동서 관통 운하를 마치 신비한 미래의 예언처럼, 그들만이 아는 비밀인 듯 애지중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니 결국 북한엔 동서 관통 운하가 생겨날 것이고, 여기에 한강과 낙동강, 심지어 영산강까지 미리 관통시키는 것이 통일을 준비하고 한반도의 미래를 준비하는 거대한 평화라는 발상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 북한은 평양을 중심으로 하는 대동강변의 수로들에서 계속 퇴적되는 침전물을 관리하는 데 애먹고 있으며, 평양의 상류에 해당하는 순천갑류 위쪽으로 수로를 만드는 것은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무슨 수로 험악한 태백산맥을 뚫을 것인가? 북한의 서해안과 동해안에서 별도로 운용되는 군함들을 통합 운용하는 것은 경제성 같은 좁은 변수를 뛰어넘는 더 큰 프로젝트 일수는 있지만, 가장 강성했던 1980년대 북한 군부도 이 동서 관통 운하에 대해 계획조차 수립하지 못했다.

대운하가 죽은 김일성 주석의 숙원 사업이었으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꿈이었다는 것을 이명박 대통령이 모를 리 없을 텐데, 이쯤에서 독재자 김일성 주석을 능가하고 싶은 욕망이 없다면 그만 작심을 거두심이 어떨지 묻고 싶다. 삼면이 바다인 반도국가에서 경제성 없는 수로 사업에 국고를 탕진하는 것은 몇몇 건설회사를 먹여살리겠다는 옛정에 휘둘리는 정책일 뿐이므로, 이쯤에서 그만두자는 말이다.

경제 종교의 신도들에게 "대운하, 따져보니 국익에 손해"라고 구체적인 데이터 없이 발표해도 믿고 따를 테니, 뒷일일랑 걱정말고 깨끗이 손 털고, 물가가 올라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는 서민들 장바구니부터 좀 살펴주시길! 그리하여 '경제 대통령'이고 싶다던 슬로건이 어색하지 않기를 바란다.

앞서 펴낸 몇 권의 책으로 이제 우석훈이라는 이름만으로도 읽고 싶은 책이지만, 솔직히 이번 책은 전작들에 비해 완성도가 떨어진다. 군데 군데 반복되는 이야기들이 압축적인 힘을 실어주지 못하고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 첫 삽을 조금이라도 늦추고 싶어 속공으로 써려내갔을 저자의 마음이 느껴져 고마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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