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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법주사 왕맷돌, 구경 한번 해보세요

등록|2008.07.28 19:20 수정|2008.07.28 19:20
왕맷돌로 유명한 법주사

법주사(경북 군위군 소재)는 신라 21대 소지왕 15년(493)에 창건했으며, 조선 인조 원년(1623)에 화재로 소실돼 현종 원년(1660)에 재건했다.

입구에는 석불 입상 1구가 서 있는데 판석으로 가늘게 새겨진 불상으로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법주사 입구 불상법주사 입구 길가에 있다. ⓒ 김환대


법주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큰 규모의 보광명전을 만난다. 화려한 단청에 어느 절 건물보다 큰 규모에 압도된다. 작은 사찰 같지만 규모면에서는 거의 대찰급이다.

군위 법주사 보광명전법주사의 중심건물인 보광명전은 건물 규모가 대단히 크다. ⓒ 김환대


내부에는 주불로 아미타불을 모시고 좌우 보처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법주사에서 가장 눈 여겨 보아야 하는 것은 왕맷돌이다.

현존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왕맷돌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112호로 지정된 왕맷돌은 절 남쪽 200미터 가량 떨어진 밭두렁에 반쯤 묻혀 있던 것을 50여 년 전 신도들이 발굴해 이곳으로 옮겨 놓았다고 한다.

왕맷돌법주사의 명물 왕맷돌이다. ⓒ 김환대


원형으로 장정 20여 명 이상이 아니면 운반할 수 없을 정도이며, 국내에서는 가장 큰 맷돌로 알려져 있다. 현재는 보호각에 보존되고 있으며 특징은 구멍이 네 개 나 있다는 것이다.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옛 건물 앞에는 오층석탑만

옛 법주사의 중심 건물인 보광명전은 현재 사용되지 않고 있으며 앞에는 오층석탑이 있는데 복원되어 있다. 복원되기 전 모습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주변에는 각종 석재들이 널려 있다. 강희(康熙) 30년 신미(辛未, 1690년)년에 중건하였으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아담한 건물로 2008년 3월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었다.

오층석탑옛 보광명전 앞에있는 고려시대 오층석탑 석탑 앞에는 소원비는 간돌이 있다. ⓒ 김환대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7호인 석탑은 1층 옥신 남쪽 면에 문비와 명문이 음각되어 있다. 고려시대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사과 연구소 내 불상

군위군 소보면 위성리 농촌진흥청 연예원구소 사과시험장. 흔히 대구 사과나무 연구소라고 불리는 곳에 가면 고려시대의 석불 입상이 있다. 연구소에서 500미터정도 떨어진 곳에 있으나 표지판이 예전에 비해 잘 정비되어 있어 찾기는 쉽다.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222호로 거대한 판석에 새겨진 입상인데 광배를 같이 조각했다.

사과나무시험장 불상사과나무 시험장 안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입상 주변 고목과 잘 어울린다. ⓒ 김환대


광배는 입상 둘레에 2단으로 표현되었는데, 원형에 가까운 주형(舟形) 신광(身光)과 두광(頭光)으로 구분된다. 광배 안쪽에 화려한 당초문(唐草紋)이 복잡하게 새겨져 있고, 바깥쪽은 화염무늬가 음각되어 있다. 사각형의 얼굴에 큼직한 코, 꽉 다문 입 등은 비교적 박력 있는 모습이다.

머리 없는 석불좌상사과나무 연구소 건물에 가려져 있어 찾는이 들은 거의 없다. ⓒ 김환대


비지정인 석불좌상이 건물 뒤편에 있는데 이 곳은 원래 초등학교 자리인 듯 학교가 폐교된 것을 알리는 표지석이 있다. 석불은 목이 없지만 우수한 조각수법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 불상으로 추정되며 주변에 마멸이 심한 석상이 있다. 

군위 지역에 채색된 마애불상

사과시험장 가기 전에 도로변을 보면 ㄱ자로 꺽인 바위에 1992년 발견되어 화제가 된 불상 전면을 채색한 마애불이 있다. 일명 위성동 마애불이라 한다. 계명대 박물관에서 조사하였으며 불상 윤곽만이 일부 보이며 마멸이 디소 심한 편이다. 풀이 너무 많이 자라 접근은 현재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고 겨울에는 접근 가능하다.

군위 위성동 마애불채색된 불상으로 알려졌으나 아무런 표지판이 없어 모르는 이들이 더 많다. 현재는 풀이 우거져 거의 접근이 불 가능하다. ⓒ 김환대


주변에는 바위면에 조선시대 비석이 새겨져 있다. 이 마애삼존불은 붉은색을 주조로 하여 얼굴과 옷, 광배 등에 노랑, 녹색, 검정 색조 등의 광물성 안료 등 다섯 가지 이상의 색으로 채색됐다는 것이 발견 당시와 조사 이후에 알려진 사실이다.

마애불 주위에서 연꽃문양의 채색된 그림 8개와 모양이 확인되지 않은 여러 형태의 채색 흔적을 발견했다며 국내 조각과 회화사를 다시 써야 할 만큼 대단한 발견이라고 당시 기사화된 적이 있다.

7세기 중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마애삼존불은 이후 문화재로 신청할 예정이었으나 이후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다. 현재는 비지정으로 작은 표지판이 하나 세워져 있는 상태이다. 전국이 그러하지만 군위 지역에도 볼 만한 유적은 역시나 많다. 날씨가 더운 관계로 예정된 일정은 다음으로 미루고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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