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아 농구부, 도서관에 간 까닭은?
[영화 속 도서관 ①] 맹자에게 서당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도서관이 있다
▲ 영화 <코치카터> 포스터 ⓒ 파라마운트 픽쳐스
사실 이런 설정은 그동안 많은 영화에서 다루어졌기에 살짝 식상하기도 합니다. 문제 학생, 스포츠하면 언뜻 떠오르는 것이 문제 학생들이 우여곡절을 겪고 대회에서 승리한다는 공식과도 같은 내용입니다.
하지만 영화 <코치카터>는 기존의 이러한 영화적 공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승리를 위해 내달리지 않습니다. 승리, 우승이라는 구체적 결과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그 과정 속에서 흘린 땀과 패배하더라도 그 패배에서 성장을 일구어내야 한다는 것을 궁극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점이 <코치카터>가 기존의 학교 스포츠 영화와 차별성을 가지는 대목이자 미덕입니다.
이 영화가 승리보다는 아이들의 올바른 성장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농구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농구보다 '교육'의 중요성을 더 강조합니다. 새로 부임한 농구코치(사무엘 L. 잭슨 분)는 농구부원들에게 C 이상의 평점을 받아오라고 합니다. 평점이 C 이하로 떨어지면 농구를 아무리 잘해도 선수로 뛸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코치는 농구부 애들을 데리고 '도서관'으로 갑니다. 농구부원들은 이런 조치에 처음에는 거세게 반항을 합니다. 그러다 차츰 도서관 환경에 익숙해지고, 또 여러 선생님들과 친구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결국 모두 평점 C를 넘기게 됩니다.
제가 도서관 사서이다보니 영화 속 이러한 장면들이 꽤 흥미롭게 와 닿았습니다. 왜냐하면 영화에서 도서관을 통해 농구부원들이 학습능력과 성적을 향상시켰듯이 도서관은 우리 실제 삶에서도 교육능력을 향상시켜주기 때문입니다.
▲ 새로 부임한 농구코치(사무엘 L. 잭슨 분)는 농구부원들을 도서관으로 데리고 공부의 중요성을 열심히 설명하고 있다. ⓒ 파라마운트 픽쳐스
세 살배기 세림이의 도서관 정복기(?)
불현듯 제가 근무하는 도서관을 가끔 찾는 친구의 딸아이(이름이 '세림이'입니다. 이후부터는 그냥 세림이라고 부르겠습니다.)와 도서관 아르바이트 학생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 아이들을 보면서 도서관이라는 환경이 사람을 어떻게 성장시키는지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먼저 세림이 얘기부터 해보겠습니다. 제 친구가 세 살이 된 세림이를 데리고 도서관에 처음 왔을 때였습니다. 세림이는 아장아장 걸음으로 도서관에 들어서서는 한참동안 도서관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책꽂이로 가서 책을 한 권 뽑아들고는 마치 암벽등반 하듯 도서관 테이블의자에 올라서는 뽑아 온 책을 펼치는 것이었습니다.
세림이의 행동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도서관이라는 곳을 처음 와 본 세림이는 많은 책들과 책을 읽고 있는 언니, 오빠, 아저씨, 아줌마들이 참 신기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참동안이나 도서관 입구에 서서 살펴봤던 것입니다.
또 세림이가 책을 뽑아들고 읽으려고 한 것은 도서관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책을 펼쳐서 읽고 있으니 세림이도 으레 그렇게 해야 되는 줄 알고 따라 한 것입니다.(아이에게는 보이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흔히 주변에서 어른들의 말투나 행동을 따라 하는 아이들을 쉽게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림이는 누가 가르쳐주지 않았음에도 혼자 알아서 책을 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런 세림이의 행동은 도서관이 어떻게 학습에 대한 동기부여를 하는지 여실히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과 거리가 멀다더니... 무협지로 시작해 중국 철학책까지
그럼 도서관 아르바이트 학생은 어떨까요? 이 친구는 도서관에서 1년 넘게 일을 했었는데, 처음 왔을 때 자기는 책하고는 너무 안 친해서 도서관 일을 잘 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스럽다고 할 정도로 책과는 거리가 먼 친구였습니다.
그의 말마따나 처음 한두 달은 책을 나르는 것 이외에는 책을 전혀 만지지 않았습니다. 여유 시간에는 인터넷을 하거나 졸거나 그랬습니다. 그러다 두 달쯤 지나자 이 친구가 여유시간을 그냥 보내기가 아깝다며, 또 인터넷하기도 이제 지겹다며 재미나게 읽을 만한 책이 없냐고 저에게 묻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게 웬 떡이냐 싶어 얼른 재미난 만화책을 추천해 주었습니다.
만화책이 재미있었던지 도서관에 있는 만화책을 모조리 다 읽은 아르바이트 학생은 또 저에게 만화책 말고 다른 읽을 책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인기 있는 무협소설을 추천해주었고 그 학생은 무협소설류를 또 다 읽어버렸습니다.
▲ 황석영 평역 <삼국지> 겉그림 ⓒ 창비
책이라면 거부감부터 생긴다던 아르바이트 학생이 '무협소설-삼국지-중국역사-중국철학'으로 이어지는 독서수준 향상은 본능적인 인간의 지적호기심과 그 호기심을 무한정 충족시켜줄 수 있는 도서관이라는 환경이 함께 만들어 낸 성장인 것입니다.
세림이와 아르바이트 학생의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영화 <코치카터>에서 농구부원들이 도서관을 통해 성적을 올린다는 설정은 꽤 설득력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궁극적으로 환경이 인간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맹자의 어머니가 아들 맹자의 교육환경을 위해 공동묘지·시장·서당 옆으로 세 번 이사했다는 일화에서 유례 된 말입니다. 맹모삼천지교는 교육환경이 사람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맹자가 위대한 유학자가 될 수 있었던 것도 환경의 중요성을 확실히 간파한 어머니의 역할이 컸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서관은 우리 주변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좋은 교육환경입니다. 사람의 무궁무진한 호기심을 해결해 줄 방대한 자료가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어느 누구도 "공부해라!", "독서해라!"라고 강요하지 않는 자율이 있습니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 취미를 자유롭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또한 누구나 다 책을 보는 공간이다 보니 공부, 독서에 대한 동기부여도 자연스럽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저는 도서관을 한 번도 찾지 않는 이들이 영화 <코치카터>의 농구부원들처럼 자의든 타의든 일단 도서관에 한 번 와 보길 권합니다. 그리고 도서관에서 놀기도 하고, 다양한 지적욕구도 충족시켰으면 합니다. 또 나아가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도 해보길 바랍니다.
맹자에게 서당이 있었다면 우리에겐 도서관이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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