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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가게 여수점에서 만난 사람들

등록|2008.08.04 10:34 수정|2008.08.04 10:34

▲ 여수 아름다운가게 모습 ⓒ 오문수




아름다운가게는 시민들이 기증한 물건을 싼값에 팔고 그 수익금으로 어려운 이웃과 함께하는 나눔과 순환의 공익적 사회 활동을 하는 곳이다. 기증가능 물품은 의류, 책, 신발, 가방, 음반, 주방용품, 가전용품, 레저, 스포츠용품, 예술장식품, 잡화류, 유아용품 등 집에서 사용하는 모든 물품이 대상이다.

현재 전국에 83개의 매장이 있으며 2005년 한 독지가의 기증으로 오픈한 여수 둔덕점은 3년 만에 약 1억 원의 수익금을 지역의 어려운 이웃들에게 지원했다. 올해로 4년째 여수 둔덕점을 지키는 이선행 간사는 특별한 사명감이 있어서 아름다운가게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남편 친구인 서인권 광주전남 본부장이  권유해서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사명감과 보람을 느끼고 있다.

"첫해 수익나눔 후 웅천 사시는 할아버지가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인데 돈이 없다는 소식을 듣고 가게에서 수술비 백만 원을 지원해 줬어요. 그 분이 수술이 끝나고 찾아와 수술비 지원이 없었더라면 죽었을 거라며 기증품을 가져오고 진심으로 고마워 하셨죠. 또 점점 입소문이 나면서 사람들이 '이런 가게도 있구나!'하면서 '나도 집에서 가져와야겠다'고 하며 기증 문화가 확산될 때 보람을 느껴요."   

"작년에 영국 옥스팜 연수 때 매장 매니저가 한 말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전 주민의 70%가 기증에 참여할 정도로 기증문화가 일상화 돼있어요."

영국의 옥스팜은 1942년 영국 옥스퍼드의 주민들이 나치스 치하에서 고생하는 그리스인을 구호하기 위해 결성한 빈민구호단체다. 르완다 난민의 식수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한 이래 난민구호에 주력하고 재정 수입의 40%는 자체 중고품 점포에서 충당해 중고품을 나눈다. 옥스팜은 '아름다운 가게'의 모태가 됐다. 

▲ 여수 아름다운가게 이선행 간사 ⓒ 오문수


하지만 작년에 수익 나눔을 받았던 분이 "백만 원밖에 못 받았어요"하며 서운해 할 때는 속상했단다. 그 분은 백만 원을 모으는 데 얼마나 힘드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가게에서 여름옷은 2천원, 겨울옷은 3천원 정도에 팔아 모은 돈을 나눠 준다. 앞으로 유동인구가 많고 접근성이 좋은 곳에 2호 매장을 계획하고 기왕이면 앉아서 커피를 마시며 대화할 수 있는 넓은 가게가 있으면 좋겠다는 게 그녀의 희망이다.


아름다운가게에서는 자원봉사하시는 분들을 활동천사라 한다. 조정순씨는 매주 목요일마다 가게에 나와 자원봉사를 한다. 동기를 묻자 "아이가 하나라서 시간이 남아 지체장애대상 학교인 여명학교에 봉사를 다니다가 교회 가까운 곳에 있는 아름다운가게를 알았다"고 한다.

"남에게 봉사할 수 있는 건강을 주셔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는 그녀는 "일반인들이 입을 수 없는 옷이라고 생각하는데 그걸 사가지고 가면서 만족해 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수익 나눔에 참가해 어려운 이웃을 직접 방문했을 때 우리 주위에 그렇게 어려운 사람들이 많다는 게 놀랍고, 그런 분들을 진작 돌아보지 못했다는 것에 미안한 생각이 든다는 그녀. 남편이 봉사하러 다니는 것에 대해 말리지 않느냐는 질문에 "남편도 봉사하고픈 마음인데 바빠서 못한다. 오히려 남편한테서 배운다"고 말했다.

▲ 김아무개씨가 사는 산자락의 골목길 ⓒ 오문수


이 같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아름다운 가게는 이웃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전하고 있다.

김아무개씨는 고향이 여수 돌산이다. 자동차 세차를 하다 30세쯤에 배를 타기 시작했다. 16년쯤 배를 탔지만 지병으로 그만두고 곧 군입대할 아들과 아빠 병간호를 위해 중학교만 졸업하고 직장에 다니는 딸이 하나있다.

그는 부인의 낭비와 도벽으로 홧김에 술로 생활하다가 간경화로 집에서 요양 중이다. 치료비가 부족한 그는 제때 치료가 안돼 뇌졸중과 당뇨 합병증으로 힘들다. 낮에는 통증이 없다가 밤에는 아파서 잠을 못 잔다. 통증이 오면 발작하다가 마비가 오고 기절까지 하기 때문에 두 평쯤 되는 방에서 딸이 항상 응급상황을 대기하며 잔다.

두 사람이 겨우 누울 수 있는 방에서 딸과 함께 자고 살림 때문에 혼자 누울 수 있는 공간만 있는 옆방에서 아들이 잔다. 가스 배달을 하는 아들이 한 달에 팔구십 만원하는 병원비를 조달한다. 이마저도 10월이면 군 입대를 해야 하니 아빠로서는 괴롭다.

"어쩔 때는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조용히 죽어 버렸으면 한다"는 김씨는 한달에 십만원하는 사글세와 수도세까지 밀려 나가라는 집주인의 독촉에 세상을 원망한다.

동사무소에서는 현재 부양할 수 있는 아들과 딸이 있기 때문에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에도  지정될 수가 없단다. 아들 월급이 백이십 만원이고 딸이 하루 종일 일하고 받는 월급이 40만원이다. 부엌은 슬레트만 얹어서 비바람만 피할 수 있는 구조이고 연탄보일러도 땔 수 있는 구조가 아니어서 1년 내내 전기장판을 꽂아놓고 산다. 아름다운 가게는 김씨에게 간병비 백만원을 지원했다.

"아름다운가게에서 제 어려운 형편을 어떻게 알고 도와줘서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이런 걸 봐서 얼른 나아 나보다 못한 사람을 도와야죠."
덧붙이는 글 남해안신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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