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김옥희 사건' 수사는 청-검이 짠 각본대로?

'검찰 전성시대', 의혹 커지는 사건배당·수사결과

등록|2008.08.04 12:37 수정|2008.08.04 18:58

▲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의 사촌 언니 김옥희씨가 1일 오후 서울지검에서 호송차량에 오르기 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김씨는 국회의원 공천 청탁 명목으로 30억원을 챙긴 혐의로 구속됐다. ⓒ 연합뉴스 한상균

이명박 정부와 검찰의 관계가 첫 시험대에 올랐다. 정권 출범 5개월 만이다.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의 사촌언니 김옥희(74)씨가 한나라당 국회의원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3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된 것과 관련, 야당은 "청와대가 이번 사건을 '개인비리'로 축소하려는 것 아니냐"며 특검을 추진할 태세다.

검찰이 이번 사건을 공직선거법 위반 건을 다루는 공안부가 아닌 금융조사부에 배당한 것 등을 두고 사건축소 의혹을 제기하는 한편, 그 배후로 청와대를 지목한 것이다. 특히 서울시의원까지 지내는 등 정치권 생리를 잘 아는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이 '70대 할머니'에게 속아 거액의 돈을 건넸다는 검찰 수사 결과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검찰 수사를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는 측은 새 정부 들어 청와대 사정라인에 검찰 출신 인사들이 대거 포진하는 등 이른바 '검찰 전성시대'의 도래와 무관치 않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이번 수사의 방향과 결과는 향후 4년 7개월간 이명박 정부와 검찰의 관계를 규정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노무현 전 정권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검찰이 겉으로는 '정치적 중립'을 내세우면서 이명박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만들어 나갈지 주목된다.

이명박 정권은 '검찰 출신 전성시대'

이명박 정부 들어서 국가정보원장과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법무부장관 등 이른바 '사정(司正) 라인'의 요직에 검찰 출신 인사들이 대거 중용됐다.

김경한 법무부장관은 서울고검장 출신이고, 김성호 국정원장도 특별수사통 검사 출신이다. '특별수사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이종찬 전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도 서울고검장을 지냈다. 

이종찬 전 민정수석 산하에 있던 민정비서관 2명도 모두 검찰 출신 인사였다.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담당하는 민정1비서관에는 장용석 전 서울지검 특수2부장이, 고위 공직자 비리 등 특별감찰 업무를 맡은 민정2비서관에는 김강욱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중수2과장이 각각 기용됐다.

쇠고기 파동을 겪으면서 새롭게 출범한 청와대 비서진 2기에서도 검찰의 약진은 두드러졌다. 정동기 전 대검찰청 차장이 민정수석에 임명됐다. 특히 정동기 수석은 대검 차장 시절인 지난해 8월 '도곡동 땅 의혹'과 관련, "땅 실소유주가 이명박 후보라고 볼 증거가 없다"고 이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인연'이 있다.

전임 이종찬 수석과 달리 사실상 검찰에서 곧바로 청와대 민정수석으로 옮겨왔다고 할 수 있다. 정 수석과 함께 새로 발탁된 조성욱 민정2비서관과 권성동 법무비서관 역시 모두 검사 출신이다.

취임 직후 법무부장관과 대통령 민정수석비서관, 국정원장에 판사 출신 인사 등을 기용하면서 상대적으로 검찰 출신 인사를 기피했던 노무현 정부 시절과는 다른 양상이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 등으로 검찰과 갈등을 빚었다.

또한 김성호 국정원장을 비롯해 이종찬 전 민정수석과 임채진 검찰총장, 어청수 경찰청장 등 4대 사정기관장 자리가 전원 영남 출신으로 채워졌다는 점도 구설수에 올랐다. 사정기관장을 특정지역 출신이 장악할 경우 상호 견제 기능이 무너져 권력형 비리에 대한 첩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자진 도태되거나 왜곡될 가능성이 높다. 과거 정권이 사정기관장 자리 만큼은 지역 안배에 신경을 쓴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가 검찰에 이첩한 사건 전말은?

민정1비서관실에서 관리하는 대통령 친인척들은 모두 1200여명이다. 참여정부 때 관리했던 대통령의 친인척이 900여명이었던 것에 비해 훨씬 많은 숫자다. 검찰, 경찰, 감사원 등에서 파견된 10~15명의 행정관들이 이들을 관리한다. 대통령의 8촌 이내 친족, 대통령의 외가쪽 6촌 이내, 김윤옥씨 6촌 이내 등이 관리 대상에 속한다.

김윤옥씨의 사촌언니인 김옥희씨는 당연히 민정수석실의 주 감시 대상이었다. 그러나 청와대 측은 김옥희씨가 4.9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비례대표 공천을 받게 해주겠다며 수십억원을 받았다는 첩보를 인지한 시점이 6월이라고 밝혔다. 이후 김옥희씨에 대한 내사를 거쳐 7월 14일에서야 대검찰청에 사건을 이첩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옥희씨가 김종원 이사장으로부터 현금이 아닌 수표로 세 차례에 걸려 30억원을 받은 시점은 지난 2~3월이다. 무려 3개월이 지난 뒤에 청와대가 관련 첩보를 입수했다는 것은 사실상 '직무유기'라고 볼 수 있다. 당시 민정수석실이 갖고 있던 내부감찰 기능을 한 때 '이상득 라인'인 박영준 전 기획조정비서관이 가져가면서 내부 권력다툼 양상을 보인 것이 '직무유기'에 영향을 미쳤는지 주목된다.

청와대가 내사를 통해 확인했다는 김옥희씨의 범죄 사실 내용도 의문이다. 이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검찰수사 결과를 발표할 때 자세하게 알리겠지만 지금 단계에서 밝히는 건 적절치 않다"며 "다만 기본적 사안의 골격에 대해선 대부분 파악해 넘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청와대로부터 사건을 이첩받은 검찰은 통상 대통령 친인척 비리 사건을 맡는 특수부나, 공직선거법 위반을 다루는 공안부가 아니라 금융사건을 다루는 금융조세조사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검찰은 또 김옥희씨가 김종원 이사장에게서 총선 공천 알선 대가로 수십억원을 받았는데도 공직선거법 위반 대신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의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

청와대와 검찰이 이번 사건을 '개인 비리'로 축소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미 청와대가 내사 단계에서 '사건의 골격'을 단순 사기 사건으로 가이드라인을 특정해서 검찰에 넘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월 새로 제정된 공직선거법 47조의 2에 따르면, 누구든 공천과 관련해 금품을 주고받거나, 그런 의사를 표시하거나, 금품 수수를 약속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실제 검찰은 지난 5월 "15억원을 주면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받게 해 주겠다"며 돈을 요구한 혐의로 한나라당 중앙위원 원아무개(60)씨를 구속기소하면서 이 조항을 처음으로 적용했다.

그럼에도 검찰이 김옥희씨 등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하는 바람에 공천을 받기 위해 수십억원을 건넨 김 이사장은 피해자 신분이 됐고, 김옥희씨는 단순 사기 혐의자가 됐다.

이와 관련 검찰 측은 "김옥희씨 등이 공천에 개입할 능력도 없었고, 의사를 표시하지도 않았고,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진술해 사기 혐의를 적용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측 설명대로라면 김 이사장은 '공천 개입 약속'도 하지 않은 김옥희씨에게 30억원이라는 거액을 건넨 셈이어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공천과 관련이 없는 돈이라면 김 이사장이 공천에서 탈락한 뒤 김옥희씨에게 대부분의 돈을 돌려준 이유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청 민정수석 옛 부하검사가 대통령친인척 담당?

물론 김수남 서울중앙지검 3차장은 <한겨레> 보도에서 "구속영장은 사기 혐의로 청구했지만, 조사 과정에서 공천을 위한 구체적 시도가 드러나면 선거법을 적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김옥희씨 등의 집을 압수수색한 검찰은 수표 계좌추적과 휴대전화 통화 내역 등을 통해 실제 김씨가 공천을 위한 로비를 벌였는지 조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 '개인 비리'로 출발한 수사가 '권력형 비리'에 대한 의혹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한편 이번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우병우 금융조세조사부 2부장검사는 지난 2004년 정동기 청와대 민정수석이 대구지검장으로 근무할 때 부하직원(특수부장)으로 함께 근무한 인연을 맺고 있다.

이와 관련 최재성 민주당 대변인은 "이 사건은 공안부나 특수부로 다시 옮기지 않으면 그 하나만으로 특검감으로 충분하다"며 "왜 예외를 뒀는지 납득할 수 없기에 친인척 비리 사건을 담당할 검찰 부서에 분명하게 두는 것으로부터 현 정부의 수사의지를 알아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