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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 세 여자는 환생한 삼존불?

<밀짚모자의 답사여행 이야기...서산>

등록|2008.08.04 18:31 수정|2008.08.05 10:17

서해대교서해안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행담도 휴게소에서... ⓒ 이성한


한 동네 사는 선배와 간밤에 기분 좋게 마신 생맥주의 양이 과했을까.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간신히 정신을 차려 아쉬운 잠을 털어버리고 이내 자리를 박차 일어났다.

새벼 5시 40분, 벌써 창 밖은 푸르스름한 텅스텐 색감의 빛이 희미하게도 가득했다. 아내와 쌍둥이 두 따님을 조심스레 깨웠다. 그리고 주섬주섬, 후다닥 서둘러 채비를 하고 일찌감치 집을 나섰다.

서해안 고속도로에는 가는 비가 오락가락 했다. 달리는 중간 차창에는 고운 입자의 투명한 모래가 순간순간 한 줌씩 흩뿌려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서산 IC(나들목)을 빠져나와 운산 방면으로 향해 자동차를 몰았다. 10여 분, 아니 한 20분 정도를 한눈 팔지 않고 쉼 없이 미끄러져 갔다. 어느새 인적이 드문 언덕을 올랐고, 저수지의 둑이 보이는 짧은 터널을 통과하니 오른쪽에 용현계곡 입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흐르는 계곡을 따라 구불구불 이어진 좁은 길을 쉬지 않고 뒤쫓았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서산마애삼존불’의 위치를 일러주는 조그만 이정표 하나를 볼 수 있었다. 마침 마애삼존불로 오르는 계곡 옆에 차를 멈춰 세웠다. 그런데 그곳에는 충청도 별미 ‘어죽’을 파는 OO골 식당 전용주차장이라는 표지판이 군데군데 보초를 서듯 여기저기 달려 있었다. 나는 그것들이 ‘매식’을 강요하듯 무언의 압박으로 호객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는 불온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서산 마애삼존불백제문화의 홍보대사이신 서삼 마애삼존불이 천 년의 미소를 짓고 계신다. ⓒ 이성한


서산 마애삼존불과 우리 집 세 여자생김새와 웃는 모습이 마애삼존불과 꼭 닮은 우리 집 세 여자 ⓒ 이성한


그늘진 숲길을 따라 시원스레 계단을 오르니 불과 몇 분만에 세 분의 마애불이 머물고 계신 암벽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곳에 계신 삼존불은 외진 숲과 계곡 속에 파묻혀 있으면서도 천 년 이상의 세월을 살며 여전히 살갑고, 인간미(?) 넘치는 너그러운 미소를 은근하고 진하게 발산하고 계셨다.

그 중에서도 가운데 본존불은 한눈에 보아도 온화함과 후덕함이 넘치는 둥글고 도톰한 얼굴을 하고 계셨다. 양 옆에 계신 두 분 보살(협시불)상의 어린애 같은 표정도 너무나 친근하게 우리 가족을 맞아주고 계셨다. 삼존불은 평온하고 인자한 시선으로 세 여자를 극진히 모시고 찾아온 순박한 사내를 위로하는 듯 나를 바라보시며 자애로운 미소를 흠뻑 안겨주셨다. 나는 왠지 모르게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으로 보이는 세 분의 삼존불을 알현하면서 혼자 속으로 생각했다.

‘아, 이것이 백제를 찾는 사람들을 꼼짝 없이 단박에 매료시키는 완소녀의 미소로구나!’

나는 마애불 암벽 앞에 앉기도 하고, 좌우로 움직여가며 천천히 꼼꼼하게 백제의 신비로운 미소를 넉넉히 감상했다. 때론 등을 땅에 대고 누워서 위를 쳐다보기도 하고, 가까이에서 멀리 오가며 마애불의 신비로운 인상을 각인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아내와 두 딸아이는 가만히 지켜봐 주었다. 어쩌면 자기들이 마치 환생한 삼존불인 양 보이려 했는지 아무런 불만 없는 너그러움을 미소로 담아 의미심장하게 내게 주었다. 나는 아침과 저녁으로 햇빛의 방향에 따라 그 미소와 표정을 달리하며 오롯이 천 년 역사를 살고 계신 백제문화의 홍보대사 ‘서산 마애삼존불’을 그렇게 흡족하게 만났다.

삼존불의 머리 뒤편으로 연꽃 위에 은은히 타오르고 있는 두광배의 불꽃이 나를 겸허하게 하였고, 나의 얕은 안목을 손질하도록 이글이글 담금질해 주었다. 나는 나를 성숙하게 하는 풍성한 소득을 머리와 가슴에 한 아름 채워 하산할 수 있었다.

여름날의 밭일도시인들이 여름휴가를 즐기는 것과는 상관 없이 뜨거운 뙤약볕에서 밭일을 하시는 아주머니 농군 ⓒ 이성한


여름날의 밭일2하루 품삯을 벌기 위해 남의 집 밭일을 하러 나오셨다며 아주머니 농군은 얘기하셨다. ⓒ 이성한


용현계곡을 따라 졸졸졸 상류로 향했다. 계곡은 더위를 피해 찾아온 많은 사람들이 곳곳을 빈틈없이 장악하고 있었다. 나는 보원사지로 향하는 도중 뜨거운 백주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흙 속에 몸을 묻은 채 밭일을 하고 계신 농군 아낙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들과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한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이 뜨거운 여름 대낮에 밭에서 일하시기 힘드실 텐데, 해 떨어진 다음에 일 하시지요?”
“우리는 괜찮아요. 남들 놀 때 다 같이 놀면 못 먹고 살아요!”

나는 아주머니의 한 마디에 경솔하기 짝이 없는 타자로서의 내 어설픈 언급을 후회했다. 그 분들의 치열한 여름날의 사활적 노동을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은 객의 참견임을 심히 자책했다. 그렇지만 한편 나는 그 분들의 숭고하고 아름다운 여름날의 노동을 뇌리 속에 강하게 그려 담아올 수 있었다.

보원사지 오층석탑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적통을 이어받은 듯한 맵시와 자태 ⓒ 이성한


보원사지 당간지주큰 딸 아이는 초록의 풀밭에 당당하게 초연히 서 있는 당간지주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이끌려 갔다. ⓒ 이성한


너른 초원 한 복판 뭉게구름 가득한 파란 하늘을 향해 보원사지 오층석탑이 가야산과 상왕산 사이의 틈새를 찌를 듯, 가를 듯 날아오르는 것처럼 서 있었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적통을 이어받은 맵시와 안정감이 몸돌과 지붕돌에 고스란히 묻어나는 흔적이 여실히 느껴졌다. 나는 탑이 주는 절묘한 대칭과 균형의 황금비례를 바라보며 평소 들쑥날쑥한 격변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깨달음에 대해 생각했다.

우리집 세 여자와 보원사 절터 곳곳을 천천히 걸으며 돌아보았다. 절 터 맨 뒤쪽으로 보이는 법인국사의 부도와 부도비를 살펴볼 수 있는 점도 좋았다. 나는 아내와 작은 아이를 보원사지 가운데를 가로질러 흐르는 시원한 냇가에 잠시 쉬도록 남겨두었다. 물가 옆으로 바람에 하늘거리는 초록의 갈대가 싱그러웠다. 나는 큰 딸 아이를 데리고 오층석탑과 일직선상으로 서 있는 보물 제103호 당간지주 앞으로 걸어갔다.

밭 한 가운데 늘씬하면서도 당당하게 서 있는 당간지주의 온전한 직립이 인상적이었다. 큰 딸 아이는 저도 모르게 끌렸는지 당간지주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다. 나는 초록의 풀밭 위에 세월과 역사를 머금은 채 초연한 모습으로 서 있는 당간지주와 딸아이의  말 없는 대화를 조용히 뒤에서 지켜보았다.

용현계곡을 빠져나와 상왕산의 개심사로 향했다. 운산 삼거리에서 ‘해미’ 방면을 향해 달려 온 지 10분도 채 안 된 시간에 개심사 입구 일주문에 도착했다. 여전히 식을 줄 모르고 맹위를 떨치는 한낮의 뜨거움이 짜증스럽게 느껴졌다. 서서히 더위에 지쳐가고 있는 우리집 세 여자들도 개심사로 향하는 언덕을 오르며 징징거리지만 웃음을 잃지 않고 있는 모습이었다.

“마애불을 알현하고 나니 세 여자의 마음이 삼존불처럼 자애로워진 걸까?”

일주문을 지나 개심사로 진입하는 입구에는 두 개의 선돌이 놓여 있었다. 한자로 쓰여진 오른쪽은 마음을 연다는 개심사(開心寺)였고, 왼쪽은 마음을 닦는 동네 세심동(洗心洞)이었다. 그러니까 마음을 열고, 마음을 닦을 준비를 하고 들어서야 하는 것이 개심사의 출입조건이자 출입자의 자격인 듯했다.

얼마간 약간의 언덕배기를 올랐다. 나무 그늘 속을 쉬엄쉬엄 올라 오솔길 모퉁이를 슬쩍 돌아서니 긴 네모꼴의 연못이 잔잔한 자세로 거기 있었다. 아기자기한 개구리밥과 수련의 조화로운 공생이 내 눈에 친근하게 들어왔다. 낮은 물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비단잉어의 자유로운 유영도 무척 부러웠다.

개심사 연못의 외나무다리건너편 사람에 대한 배려심이 없인 건널 수 없는 외나무다리 ⓒ 이성한


안양루가 있는 곳으로 오르려 연못 가운데로 난 외나무다리를 조심조심 건넜다. 가뜩이나 겁이 많은 세 여자들도 내 뒤를 졸졸 따라 다리를 건넜다. 건너면서 연못에 흐릿하게 비치는 나와 내 가족의 물그림자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스치듯 생각했다. 세 여자를 모시고 떠나온 이번 여행에서 내 아내와 내 새끼들에 대한 한층 깊어진 애모의 충심을 쌓고 싶었다.

“이번 여행만큼은 삼존불을 모시는 지극정성의 마음으로 세 여자를 모셔보리라.”

안양루로 올라 마루의 남쪽으로 난 창 밖을 조망했다. 너무나 진하게 하얀 햇빛의 쨍쨍함이 눈부셨다. 하지만 범종각 모서리 처마에 걸린 자그마한 풍경이 먼 산과 하늘에 점으로 걸려 있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평온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그야말로 마음이 열리는 것 같은 개심(開心)의 순간이었다.

안양루 안에 걸린 불전사물을 둘러보았다. 법고와 목어, 운판, 그리고 범종각에 걸린 범종을 조용히 감상했다. 부처님의 말씀을 세상에 전하는 네 개의 사물인 ‘불전사물’은 스스로의 역할과 몫을 다하기 위해 자기가 있어야 할 제자리에 있었다. 안양루 마루에 올라 정면계단 위에 앉아 있는 대웅보전을 감상했다. 단출한 맞배지붕의 소박한 내림선과 규칙적인 기와의 기하학적 흐름, 게다가 주심포식과 다포식이 혼합된 기둥과 공포의 양식이 아름다웠다.

상왕산 개심사'상왕산'이라선지 꼬끼리 '상'자를 길게 늘어뜨려 쓴 편액이 걸려있다. ⓒ 이성한


개심사 범종각에서 바라본 풍경대담하게 휘어진 자연목을 기둥 삼아 세워진 범종각에서 처마에 걸린 풍경을 바라보았다. ⓒ 이성한


대웅보전으로 다가가서 안을 들여다보았다. 높은 불단 위에 연꽃 대좌가 있고, 그 위에 아미타불이 앉아 계셨다. 양 옆에는 지장과 관음보살입상이 맑고 정연한 품새로 함께 계셨다. 나는 대웅보전 안의 삼존불을 바라보다 또 우연히 우리집 세 여자의 얼굴이 겹치는 듯한 야릇한 느낌을 받았다.

항상 웃음을 잃지 않고 따뜻한 미소로 나를 지켜봐주는 본존불 내 마누라, 천진난만한 표정과 애교어린 몸짓으로 아빠를 늘 행복하게 만드는 소녀동자 협시불 두 딸내미…. 나는 그들과의 이승에서의 오붓한 관계와 사랑을 통해 매일매일 행복한 남편으로, 즐거운 아빠로 거듭나고 있다는 생각이 사무치게 들었다. 

‘ㅁ’ 자 모양으로 자리 잡은 개심사의 가람배치는 소박하고 단출했지만, 간결했다. 웅장하고 위압적이지 않았으며, 괜하게 방문객들을 주눅 들게 하지도 않았다. 대웅보전의 왼쪽 옆에는 휘어진 나무를 자연 그대로 살려 기둥으로 쓴 심검당이 있었다. 그리고 맞은편에는 지붕 기와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초록의 이끼와 몇 포기의 풀이 듬성한 무량수전이 있었다. 나는 대웅보전의 가운데 정면 기단에 서서 파노라마처럼 좌우를 바라보며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주는 살아 있는 미학에 대해 심취할 수 있었다.

나는 세 여자를 데리고 명부전 아래 약수터로 이끌었다. 꼭지를 틀자 싱싱하게 솟아나는 맑고 차가운 샘물이 얼굴을 적셔주었고, 시원하게 목을 축여 주었다. 상왕산 개심사의 약수는 일상의 먼지 낀 마음을 깨끗이 닦을 수 있도록 목구멍을 타고 마음 속으로 흐르는 세심(洗心)의 생수였다. 

하루 종일 뜨거운 열기를 헤치고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그늘진 나무 아래에 앉아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짧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부터 바삐 이어진 서두름과 이동의 강행군에 대해서도 말을 했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하루 우리집 세 여자와 함께한 이번 여행이 즐거웠음을, 소중하고 행복했음을 과장 없이 솔직히 그녀들에게 고백했다. 그리고서 나는 세 여자의 모습을 정성스레 한 장의 사진에 담아 주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카메라 LCD 화면에 보이는 세 여자의 모습은 아까 마애삼존불에서 보았던, 또 개심사 대웅보전 안에서 보았던 삼존불의 모습과 너무도 흡사하지 않은가? 순간 나는 우리집 세 여자가 혹시나 환생한 삼존불이 아닐까 하는 찰나의 혼돈에 빠져들었다.

환생한 삼존불?우리 집 세 여자의 표정과 미소가 마치 환생한 삼존불처럼 예뻤다. ⓒ 이성한


덧붙이는 글 지난 8월2일 서산으로 가족여행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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