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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노래가 날숨이라면 저녁의 시는 들숨"

나희덕 시인이 엮어서 쓴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등록|2008.08.05 09:40 수정|2008.08.05 10:21

▲ 나희덕의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 ⓒ 삼인


"아침의 노래가 날숨이라면
저녁의 시는 들숨입니다.
아침의 노래가 썰물이라면
저녁의 시는 밀물입니다.
아침의 노래가 문을 여는 손이라면
저녁의 시는 문을 닫는 손입니다."

이는 나희덕 시인이 엮어서 쓴 <아침의 노래 저녁의 시>(삼인 펴냄)에 나오는 머리말 한 토막 시다. 그녀는 이 책을 통해 자신만이 지닌 남다른 감성과 언어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시인들의 시를 모두가 음미할 수 있도록 짧지만 깊은 해설을 덧붙여 놓고 있다.

뭐랄까? 때론 시인이 써 놓은 시를 먼 산 바라보듯 관찰자의 입장에서 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시 속에 흠뻑 젖어들어 시와 하나로 몰입하는 단계 속에서 시를 대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나희덕은 그런 단계들을 뛰어넘어 시인이 느끼는 감성과 일치하되 그 원형의 체온까지도 깊이 맛보게 해 준다.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 좋은 의자 아녔냐
(하략)

이는 이정록의 <의자>라는 시다. 나희덕은 그 시를 읽으면서 함께 밥상에 둘러 앉아 밥을 먹고, 서로가 어깨동무하며 자라났던 '식구'들의 존재를 떠올리게 한다. 식구란 단지 부모의 허리가 아프고 다리가 아플 때 기대어 앉게 해 드릴 뿐만 아니라 혈육사이에 겪는 아픔과 상처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보듬어 안을 수 있는 참된 의자라는 것이다.

개미들이 도마뱀 꼬리를 먹고 있다
급한 김에
꼬리는 두고 갔는데
그것이 개미들의 식량이 되고 있는 줄
도마뱀은 알고 있을까
개미들은 알고 있을까,
그것이 벗겨진 신발이 아니라
누군가의 몸이었다는 것을.
(하략)

이는 장철문의 <창틀의 도마뱀 꼬리>라는 시다. 이 시를 따라 쭉 읽어 가면 도마뱀의 꼬리는 결코 꼬리가 아니요, 개미들에게 한껏 배부르게 할 커다란 빵과 같은 존재임을 일깨워 준다. 이에 대해 나희덕은 우리들의 상에 오르는 빵도 그렇듯 누군가의 땀과 피와 몸임을 각인시켜 준다. 그리고 우리의 육신도 머잖아 땅에 묻혀 벌레들에게 몸을 바치는 빵이 될 것이니 불공평한 일도 아니라고 자위한다.

"지구상에 실제로 말해지고 있는 3천여 개의 언어 가운데 문학을 가진 언어는 78개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러나 굳이 기록할 필요 없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입말을 근대적 문어체가 대신할 수 있을까. 문학 이전의 언어, 학교나 사전을 통해 언어를 배우는 동안 잃어버린 또 하나의 언어를 시는 되찾고자 한다. ‘한 그릇의 물’보다는 ‘한 그륵의 물’이 지닌 삶의 체온을."(64쪽)

이는 정일근의 <어머니의 그륵>이란 시를 읽고 나희덕이 나름대로 사유를 담은 것이다. 내가 태어난 전라도 신안 땅의 내 어머니도 지금까지 그릇을 그륵이라 부르고 있고, 내가 찾아뵐 때면 그 그륵에 고봉으로 밥을 담아 준다. 타지에서 배고파하며 살지는 않는지 무척 염려하면서 말이다. 그러니 나 역시 그 그륵이 전하는 체온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그렇듯 나희덕이 읽어주는 시 감상과 해설이 비록 짧긴 하지만 이 시대를 거쳐 간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겪은 여러 체온들을 깊이 있게 전달해 주고 있으니, 그것 하나 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만족과 기쁨이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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