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16일 서울 청계광장 인근 청계천에서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전국여성노동조합연맹 회원들이 물가폭등과 최저임금동결, 물 사유화에 반대하며 빨래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연합뉴스 진성철
물가가 무섭게 치솟고 있다. 그런데 최근의 물가 상승이 단지 양적인 면에서의 상승뿐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어 그 심각성이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우리의 물가 상승 속도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상당히 빠른 편이라는 점 ▲서울과 지방의 편차가 확대되면서 지방의 물가상승은 훨씬 크게 증폭되고 있다는 점 ▲물가상승률이 경제성장률을 역전했다는 점 ▲물가상승률이 임금상승률 또한 뛰어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7월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5.9%로 10년 만에 최고치였다. 그럼에도 지난주 기획재정부는 통계청 물가상승 발표 해설 자료를 통해 물가상승률이 "미국은 17년 만에 최고, EU는 16년 만에 최고, 일본은 15년 만에 최고"라면서 우리의 물가상승률은 선진국에 비해 가파르지 않다는 식의 발표를 한 바 있다. 과연 그럴까?
8월 4일 OECD가 발표한 '회원국 연간 물가상승률'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6월 중 30개 회원국의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4.4%였다. 우리나라는 5.5%였으니 평균에 비해 무려 1.1%p나 높은 셈이다. 상승률이 높은 순서로 보면 한국이 30개 회원국 가운데 상위 6번째였고 그 뒤를 멕시코(5.3%)-그리스(4.9%)-슬로바키아(4.6%)-폴란드(4.5%) 등이 잇고 있다.
그런데 상황을 더 구체적으로 보자. 외환위기 시기인 1998년 7.5% 상승한 것을 제외하면 물가 상승률이 5.9% 이상 올랐던 적은 6.3%를 기록했던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히 이 시기는 경제성장률이 평균 7%를 훨씬 웃돌던 성장기였던 점이 감안되어야 한다.
더욱이 현재 시점이 양극화 상황이 그 어느 때보다 심해 물가상승 압력을 차별적으로 받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10년 만에 최고의 물가상승이 선진국에 비하면 나은 편"이라는 재정부의 발표는 상당히 무책임한 것이다. 또한 아래 그림에서 보이듯이 올해 우리의 물가상승률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빠른 추세를 보이고 있다.
▲ 2007~2008년 주요국 소비자 물가상승률,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의 상승률이 훨씬 가파름을 할 수 있다 ⓒ 새사연
강원·경북·제주 등지 물가상승률 7% 넘어
5.9%라는 7월의 물가상승률은 전국 평균 수치일 뿐이다. 아래 그림을 보면 전국 평균을 밑도는 지역은 서울 5.0%, 부산 5.8%밖에 없으며 강원·경북·제주 등지는 이미 7%를 넘었다.
이들 지역에서 피부로 느끼는 물가 상승이 두 자리 수에 도달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그 어려웠던 외환위기 시절인 1998년에도 평균 물가상승률이 7.5%였던 것을 상기한다면 지방 서민이 느끼는 물가 체감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다.
▲ 2008년 7월 전국 소비자 물가상승율, 서울이 가장 낮으며 강원과 경북, 제주 등지는 7%를 넘어섰음을 알 수 있다 ⓒ 새사연
물가상승률 5.2%, 경제성장률 3.9%로 스태그플레이션 진입 확실
물가가 이렇게 급등한 반면 기업경기와 내수·소비는 심각하게 위축되고 있다. 상반기 성장률이 1·2분기 각각 전년 동월대비 5.8%와 4.8%로 나온 것은 2007년 1·2분기 성장이 워낙 저조했기 때문이다. 6·7월 발표된 경기동향 지수들을 보면 하반기 경기침체는 예상을 훨씬 상회하여 진행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듯이 이미 7월 초에 발표한 한국은행 전망치를 기준으로 해도 올해 하반기 물가 상승률은 5.2%, 성장률은 3.9%로 양자의 관계가 역전되고 있다.
한국은행의 전망치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산정에 의한 것임을 고려할 때 물가상승과 경제성장률의 역전, 나아가 그 격차가 확대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이 온 것이 확실하다. 물가 상승도 문제지만, 경기침체 역시 심각한 문제로 다가오고 있다.
▲ 연도별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추이 비교, 2008년 2/4분기부터 물가와 성장률이 역전하고 있다 ⓒ 새사연
임금인상률보다 물가상승률 높은데 임금상승 억제해야 한다?
물가상승의 기세는 여기서 멈추지 않않다. 경제성장률 뿐 아니라 임금인상률까지 앞지른 것이다. 월별 임금인상률 추세선을 알아보기 위해 노동부가 매월 집계하는 협약 임금인상률 추이를 보면, 2000년 이후 임금 인상률이 경향적으로 낮아지면서 2004년 이후에는 5% 미만 수준에서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면 물가의 경우 2005년 이후 2~3% 사이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관리되던 것이 지난해 10월부터 3% 벽을 넘어서 4~5%까지 가파르게 올라갔고, 조만간에 심리적 한계선인 6%도 뛰어넘을 전망이다. 아래 그림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6월부터 물가상승률(5.5%)이 임금인상률(5.1%)을 뛰어넘었다.
▲ 임금인상과 물가상승 증가율 추이 비교, 2008년 6월부터 물가상승률이 임금인상률을 뛰어넘었다 ⓒ 새사연
여기서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와중에 '기대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임금인상을 억제해야 한다, 자칫 잘못하면 물가상승과 임금인상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은 1970년대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임금인상과 물가상승의 악순환에 빠진 사례라는 지적도 잊지 않고 덧붙인다.
그러나 지난 하반기 이후 현재까지 뛰고 있는 물가상승에 임금은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등록금 인상이나 하반기 공공요금인상이 물가상승을 재촉할 전망이다.
오히려 이런 상황에서는 물가상승의 충격을 견디고도, 내수경제가 돌아갈 수 있도록 일정 정도 임금인상률을 높여주어야 한다. 대신 공공요금의 인상을 억제하여 물가상승 요인을 관리하는 것이 타당하다.
노동자들은 고물가·고금리에 이어 물가상승률을 밑도는 낮은 임금인상율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 상황에 이르렀다. 정부와 재계는 하반기의 힘든 경제상황을 헤쳐나가기 위한 현명한 정책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며, 노동자들 역시 현재 상황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새사연, www.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기사를 쓴 김병권 기자는 새사연 연구센터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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