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삯, 정몽준, 국회의원, 쇠밥그릇, 책값, 서민 삶
[책이 있는 삶 68] 70원과 1000원
지난 6월 27일, 어느덧 한 달하고 반이 조금 안 되게 지나간 일입니다. 그때 국회의원 정몽준 씨가 ‘한나라당 대표 경선 토론회’자리에서 “정 최고위원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 안 한다는데 서민들이 타고 다니는 버스 기본요금이 얼마인지 아느냐”는 물음을 받고는, “굉장히 어려운 질문을 했는데 요즘은 카드로 타지요. 한번 탈 때 한 70원 하나?”하고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아는 분은 다 아는 이야기요, 어느덧 한물 간 이야기로 느낄 수 있습니다만, 유행처럼 손가락질 한 번 하고 지나칠 만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느껴서,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는 이제 와서 차분하게 그때 일을 되짚으려고 합니다).
어른 버스삯이 70원 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때는 1982년이고, 이때 국민학생 버스삯은 60원이었습니다. 저는 학교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며 버스삯을 아끼곤 했습니다. 50원짜리 빵을 군것질하기도 하고, 50원 하는 오락 한 판을 하기도 하며, 50원짜리 쇠돈 하나와 10원짜리 쇠돈 하나를 나란히 들고 동네 은행에 가서 차곡차곡 모으며 지냈습니다.
1982년에 국민학생 버스삯이 60원이었으니(인천에서), 어른 버스삯이 70원이었을 때는 1970년대 끝머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어렴풋이 떠오르는데, 1982년에 인천 숭의야구장에서 삼미슈퍼스타즈 경기를 보러 갈 때면, 어린이는 200원을 내고 들어갔습니다. 이틀치 버스삯을 아끼고 걸어다니면 야구장에 갈 돈이 마련되는 셈이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자니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퍽 놀래키는 말씀을 하셨기에 그렇습니다. 사범고를 나와서 스물이 안 된 나이에 교사일을 한 아버지는 제가 중학생이 되던 때까지 스무 해 가까이 시외버스를 타고 일터를 오갔습니다. 호봉이 낮은 평교사였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교사 일삯은 아주 낮고 대접도 형편없었습니다. 더구나 인천에서 교사를 하지 못하고 경기도를 돌아야 했습니다. 인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광명까지 콩나물시루 버스에서 하루 네 시간을 시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형과 저는 한 시간 남짓 종아리며 허벅지며 허리며 주무르면서 풀어 주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오랜 ‘버스 통근’을 마치고 자가용을 장만하게 되면서, 하루이틀 대중교통하고 멀어지셨습니다. 그렇게 자가용을 몰면서 살아가신 지 스무 해쯤 되다 보니, 아버지도 버스삯을 잊으셨습니다. 전철삯도 잊고 택시삯도 잊으시더군요. 물어 보나 마나입니다만, 라면 한 봉지 값을 아시겠습니까. 배추 한 포기 값을, 무 한 뿌리 값을, 시금치 한 묶음 값을 아시겠습니까. 고등어며 멸치며 꽁치며 오징어며 얼마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느 낱권책 하나에 얼마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 책꽂이에 새책이 꽂히는 모습을 오랫동안 못 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몽준 의원한테만 나무랄 일이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 새 대통령 이명박 씨는 출퇴근길 전철이 얼마나 미어터지며 끔찍한 줄을 알고 있으려나요. 예전 대통령 노무현 씨는 전철하고 담벽을 맞닿고 지내는 서민들이 얼마나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리는 줄 알고 있으려나요. 서울시장님은, 부산시장님은, 대전시장님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외로움과 눈물을 얼마나 살갗으로 받아들이고 있을는지요.
적지 않은 공무원 분들이 ‘쇠밥그릇’이라는 소리를 듣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공무원 분들 스스로 자기가 맡은 ‘민원’을 일터 바깥에 나가서 몸으로 부대끼거나 느끼거나 알아보지 못하거나 않기 때문입니다. 동사무소든 구청이든 시청이든 군청이든 읍사무소이든, 이렇게 ‘주민이 먼걸음을 해서 찾아올 때면’ 책상 앞에 앉아서 ‘바쁜 일처리’로만 받아들일 뿐이니, 쇠밥그릇이 될밖에 없습니다. 민원창구까지 오지 못한 사람들, 민원창구로 간다 한들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아예 두 손 든 사람들, 민원창구로 가면 도움받을 수 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리네 공무원 분들이 얼마나 다가서려고 애쓰고 있었을까요. 애쓰고 있기나 한가요. 공무원시험을 쳐서 찰싹 붙은 다음 일자리를 얻기까지, 고시책을 펼쳐 놓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짜내어,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이웃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헤아려 본 적이 있었는지요. 옆집 사람 삶이 어떠한가 들여다본 적 있었는지요. 처음 공부를 하던 때부터 이웃과 어깨동무를 할 뿐더러, 이웃 삶을 속속들이 받아들이는 매무새를 갖추지 못했다면, 공무원이 되고 난 다음부터라고 해서 훌륭하거나 아름답게 일을 하기는 어렵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도, 대통령이 되어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관용차가 나오고 비서가 딸립니다. 손수 차를 모는 분도 있을 터이나, 운전기사가 따로 나옵니다. 국회의원한테 관용 자전거를 준다든지, ‘1년치 전철 정액권’을 준다든지 하는 법은 없습니다. 이렇게 관용 자전거를 준다 하여 국회의원이 된 분들이 몸소 자전거로 국회로 오갈는지요. 전철을 타고 국회로 다니거나 ‘자기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러 다닐는지요.
법을 탓하고 제도를 나무라기는 쉽습니다. 바뀌지 않는 법을 바라보면서 왜 이럴까 하고 한숨 짓고 지나치기도 쉽습니다. 그래도 한 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분, 또 대통령이 된 분, 또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들 모두한테, ‘은행계좌로 넣어 주는 일삯’만 주기보다는, 이 일삯을 쪼개어 전철 정액권을 현물로 주고, ‘책만 사서 보는’ 도서상품권을 열 장씩 주며, 서민 물건값을 몸소 알아보도록 재래시장 상품권 십만 원어치를 주면 어떠랴 싶습니다. 이 전철 정액권과 도서상품권과 재래시장 상품권은 반드시 한 달 안에 자기 스스로 다 써야 하며, 다 쓴 내역서를 내도록 못박아 놓고요.
정몽준 의원은 버스삯이 70원인 줄 알았다지만, 버스삯이 50원인 줄 아는 국회의원도 있을 테고, 100원인 줄 아는 국회의원도 있으리라 봅니다. 좌석버스와 일반버스 삯은 어떠한지, 시외버스와 시골버스 삯은 어떠한지, 마을버스와 공항버스 삯은 어떠한지, 전철과 기차 탈 때 내는 삯은 어떠한지 모르는 국회의원도 무척 많으리라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여느 공무원이나 교사나 회사원 가운데에도 자가용만 타고다니는 분들은 전철삯과 버스삯을 하나도 모르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그나저나, 책값은 알까요? 여느 낱권책 한 권이 새책방에서 얼마인지, 또 헌책방에서 얼마인지 알려나요? 버스삯을 70원으로 알던 그분은, 책 한 권 값은 500원으로 알고 있지는 않을는지요?
어른 버스삯이 70원 하던 때가 언제였던가 하고 헤아려 봅니다. 제가 국민학교에 들어간 때는 1982년이고, 이때 국민학생 버스삯은 60원이었습니다. 저는 학교까지 버스를 타지 않고 걸어다니며 버스삯을 아끼곤 했습니다. 50원짜리 빵을 군것질하기도 하고, 50원 하는 오락 한 판을 하기도 하며, 50원짜리 쇠돈 하나와 10원짜리 쇠돈 하나를 나란히 들고 동네 은행에 가서 차곡차곡 모으며 지냈습니다.
우리 아버지 이야기를 꺼내자니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꺼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로서는 퍽 놀래키는 말씀을 하셨기에 그렇습니다. 사범고를 나와서 스물이 안 된 나이에 교사일을 한 아버지는 제가 중학생이 되던 때까지 스무 해 가까이 시외버스를 타고 일터를 오갔습니다. 호봉이 낮은 평교사였고,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교사 일삯은 아주 낮고 대접도 형편없었습니다. 더구나 인천에서 교사를 하지 못하고 경기도를 돌아야 했습니다. 인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광명까지 콩나물시루 버스에서 하루 네 시간을 시달리고 집으로 돌아오면, 형과 저는 한 시간 남짓 종아리며 허벅지며 허리며 주무르면서 풀어 주느라 진땀을 뺐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오랜 ‘버스 통근’을 마치고 자가용을 장만하게 되면서, 하루이틀 대중교통하고 멀어지셨습니다. 그렇게 자가용을 몰면서 살아가신 지 스무 해쯤 되다 보니, 아버지도 버스삯을 잊으셨습니다. 전철삯도 잊고 택시삯도 잊으시더군요. 물어 보나 마나입니다만, 라면 한 봉지 값을 아시겠습니까. 배추 한 포기 값을, 무 한 뿌리 값을, 시금치 한 묶음 값을 아시겠습니까. 고등어며 멸치며 꽁치며 오징어며 얼마인지 아시겠습니까. 여느 낱권책 하나에 얼마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시리라 생각합니다. 아버지 책꽂이에 새책이 꽂히는 모습을 오랫동안 못 보았습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정몽준 의원한테만 나무랄 일이 아니지 싶습니다. 우리 새 대통령 이명박 씨는 출퇴근길 전철이 얼마나 미어터지며 끔찍한 줄을 알고 있으려나요. 예전 대통령 노무현 씨는 전철하고 담벽을 맞닿고 지내는 서민들이 얼마나 시끄러운 소리에 시달리는 줄 알고 있으려나요. 서울시장님은, 부산시장님은, 대전시장님은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들 외로움과 눈물을 얼마나 살갗으로 받아들이고 있을는지요.
적지 않은 공무원 분들이 ‘쇠밥그릇’이라는 소리를 듣는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공무원 분들 스스로 자기가 맡은 ‘민원’을 일터 바깥에 나가서 몸으로 부대끼거나 느끼거나 알아보지 못하거나 않기 때문입니다. 동사무소든 구청이든 시청이든 군청이든 읍사무소이든, 이렇게 ‘주민이 먼걸음을 해서 찾아올 때면’ 책상 앞에 앉아서 ‘바쁜 일처리’로만 받아들일 뿐이니, 쇠밥그릇이 될밖에 없습니다. 민원창구까지 오지 못한 사람들, 민원창구로 간다 한들 달라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아예 두 손 든 사람들, 민원창구로 가면 도움받을 수 있으나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한테, 우리네 공무원 분들이 얼마나 다가서려고 애쓰고 있었을까요. 애쓰고 있기나 한가요. 공무원시험을 쳐서 찰싹 붙은 다음 일자리를 얻기까지, 고시책을 펼쳐 놓는 시간을 조금이나마 짜내어,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 이웃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헤아려 본 적이 있었는지요. 옆집 사람 삶이 어떠한가 들여다본 적 있었는지요. 처음 공부를 하던 때부터 이웃과 어깨동무를 할 뿐더러, 이웃 삶을 속속들이 받아들이는 매무새를 갖추지 못했다면, 공무원이 되고 난 다음부터라고 해서 훌륭하거나 아름답게 일을 하기는 어렵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국회의원이 되어도, 대통령이 되어도 크게 틀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국회의원이 되면 관용차가 나오고 비서가 딸립니다. 손수 차를 모는 분도 있을 터이나, 운전기사가 따로 나옵니다. 국회의원한테 관용 자전거를 준다든지, ‘1년치 전철 정액권’을 준다든지 하는 법은 없습니다. 이렇게 관용 자전거를 준다 하여 국회의원이 된 분들이 몸소 자전거로 국회로 오갈는지요. 전철을 타고 국회로 다니거나 ‘자기 지역구 주민들을 만나’러 다닐는지요.
법을 탓하고 제도를 나무라기는 쉽습니다. 바뀌지 않는 법을 바라보면서 왜 이럴까 하고 한숨 짓고 지나치기도 쉽습니다. 그래도 한 마디를 하고 싶습니다. 국회의원이 된 분, 또 대통령이 된 분, 또 공무원으로 일하는 분들 모두한테, ‘은행계좌로 넣어 주는 일삯’만 주기보다는, 이 일삯을 쪼개어 전철 정액권을 현물로 주고, ‘책만 사서 보는’ 도서상품권을 열 장씩 주며, 서민 물건값을 몸소 알아보도록 재래시장 상품권 십만 원어치를 주면 어떠랴 싶습니다. 이 전철 정액권과 도서상품권과 재래시장 상품권은 반드시 한 달 안에 자기 스스로 다 써야 하며, 다 쓴 내역서를 내도록 못박아 놓고요.
정몽준 의원은 버스삯이 70원인 줄 알았다지만, 버스삯이 50원인 줄 아는 국회의원도 있을 테고, 100원인 줄 아는 국회의원도 있으리라 봅니다. 좌석버스와 일반버스 삯은 어떠한지, 시외버스와 시골버스 삯은 어떠한지, 마을버스와 공항버스 삯은 어떠한지, 전철과 기차 탈 때 내는 삯은 어떠한지 모르는 국회의원도 무척 많으리라 봅니다.
모르긴 몰라도, 여느 공무원이나 교사나 회사원 가운데에도 자가용만 타고다니는 분들은 전철삯과 버스삯을 하나도 모르지 않겠느냐 싶습니다. 그나저나, 책값은 알까요? 여느 낱권책 한 권이 새책방에서 얼마인지, 또 헌책방에서 얼마인지 알려나요? 버스삯을 70원으로 알던 그분은, 책 한 권 값은 500원으로 알고 있지는 않을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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