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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구 타다 죽었다는 사람도 있다카던데..."

[이 여름을 시원하게] 휴가 내내 잔차로 거창을 샅샅이 돌아오다

등록|2008.08.07 15:35 수정|2008.08.12 10:34

황강거창 남상면 전척리, 일원정 앞에서 바라본 황강이에요. 이 물줄기가 합천호로 뻗어가더군요. ⓒ 손현희


"야호! 이제 다 왔나 보다!"
"저기까지만 올라가면 되겠네."
"……."
"……."
"아니, 뭐야? 또 돌아?"
"애고, 끝이 아니네. 아직 더 올라가야 하나보다."
"에휴~! 나를 잡아라, 잡아!"

가도 가도 끝없는 오르막길, 날씨는 왜 이다지도 더울까? 아주 푹푹 찌는구나! 기상청에서는 비소식이 있더니만 비는커녕 웬 날씨가 그리도 더운지 35℃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때문에 자전거를 타고 예까지 왔다는 게 얼마나 후회스러웠는지 몰라요.

2008년 여름, 처음 휴가가 잡힌 건 딱 사흘뿐이었어요. 일터 식구들이 하루만 더 달라고 시위(?)하여 하루를 더 얻어냈지요(7월26일~29일까지). 이참에 우리 부부는 오로지 자전거만 타고 경남 거창을 한 바퀴 돌아오기로 했지요. '구글어스' 위성지도에 거창군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대충 오고가는 거리만 가늠하고 길을 떠났지요.

우리는 둘 다 태어나서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거창군에 자전거를 타고 다녀오게 되리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답니다. 여기에는 우리가 좋아하는 산골 풍경과 나름대로 역사가 깊은 곳이라서 그 발자취를 따라 가보려고 겁 없이 대뜸 계획을 세웠던 것인데…. 아, 거창이 그렇게나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있는 곳인 줄 정말 몰랐어요. 무려 1000m가 넘는 높은 산이 스무 개쯤 있다는 건 미리 알았으나, 가는 곳마다 끊임없이 오르막과 싸워야 할 줄이야! 게다가 온종일 뜨겁게 내려쬐는 땡볕과 씨름하며 다니는 일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답니다.

오르막길거창엔 웬 오르막이 그렇게나 많은지, 나흘 내내 산을 몇 개나 넘었는지, 고개는 또 얼마나 많이 올라갔는지 몰라요. 죽을 만큼 힘들어도 아름답고 멋진 풍경을 보면 힘든 것도 금세 잊어버려요. 우리가 자전거를 타고 이렇게 다니는 것도 바로 이런 기쁨 때문이지요. ⓒ 손현희


밤티재남상면에서 끈끈한 오르막길을 올라가니, 신원면 밤티재란다. 450m! 그러나 이보다 더한 오르막이 얼마나 많았는지 몰라요. 땡볕에 오르막을 올라가는 건... ⓒ 손현희


"거창아! 기다려라 우리가 간다!"

26일 오전 6시, 서둘러 집을 나섰어요. 구미에서 성주로 가는 고갯길을 넘어가려면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가야 했어요. 처음엔 새벽 4시쯤에 떠나려고 했는데, 휴가가 하루 더 길어졌다고 조금 느긋하게 여겼지요. '룰루랄라' 낯선 곳에 찾아가는 기쁨과 설렘은 그 무엇과도 견줄 수 없지요.

신나고 즐거운 마음으로 힘차게 발판을 밟고 갑니다. 나흘이라는 시간동안 얼마나 값지고 재미난 일들이 우리를 기다릴지 생각만 해도 신이 났어요. 자전거를 타고 거창군을 구석구석 돌면서 온갖 문화재와 산골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들을 생각을 하면서 달리는 기분, 여러분은 상상이 되나요?

아뿔싸! 이 신나고 즐거운 상상은 성주군 수륜면을 지나 가야산 꼭대기까지 올라가는 길목에서 그만 꺾이고 맙니다. 아침도 길가 쉼터에서 김밥 한 줄씩 나눠먹고 고갯길을 올라가는데 처음엔 아무 걱정 없었지요.

"까짓 거, 가보자! 지가 높아봐야 가야산 아래겠지."
"그럼, 그래도 지금까지 잔차 탄 경력이 있는데, 이깟 오르막쯤이야 쉽게 올라가주지 뭐."

백운동합천 해인사를 가려면, 이곳을 거쳐가야 해요. 백운동인데요. 가는 내내 끝없는 오르막길이라 매우 힘들었는데, 바로 이 곁에 시원한 약수터가 있어 잠깐 쉬어갑니다. 옥수수가 어찌나 맛있는지 몰라요. 가방이 무거워 넣고 가지는 못해도 뱃속에 채우고는 갈 수 있지요. ⓒ 손현희


저 멀리 가야산 꼭대기에 희뿌연 안개가 걸쳐 있고 대충 봐도 높이가 어마어마하다는 건 가늠이 되었답니다. 가야산 국립공원 높이가 1430m이니까 그보다 낮은 곳에 있는 해인사까지는 너끈히 올라갈 수 있으리라 믿었어요.

그러나…. 백운동 계곡을 지나 야천삼거리까지 가는 동안 내리막은 딱 3분! 무려 4시간을 죽어라고 오르막만 올라갔어요. 그나마 이날은 볕이 그리 따갑지 않아서 수월하게 갔는데도 말이에요. 다행히 생각보다 차가 많이 다니지 않았지요. 나중에 백운동에서 길가 옥수수 파는 아줌마한테 들어 알았지만, 기름 값이 갑자기 오르고 난 뒤부터 여기 올라오는 차가 많이 줄었답니다.

해인사…. 그 씁쓸함

국보 제32호인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있는 해인사! 어렸을 때부터 많이 들어왔던 절집이지요. 들머리부터 왼쪽으로 골짜기를 따라 시원한 물소리가 무척 좋았어요. 무엇보다 엄청스럽게 큰 바위에다가 갖가지 글자를 새긴 게 매우 많았는데, 그 옛날 누가 저 많은 바위에 글자를 새겼을까? 퍽이나 신기하고 놀라웠지요.

여기부터는 희한하게도 차가 많이 올라가네요. 나중에 보니, 해인사 절집 마당까지 찻길이 놓여있는데, 오르막길 내내 차를 피하느라고 한쪽으로 바짝 붙어서 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우와~! 저 물소리 좀 들어봐! 사람들은 저렇게 차만 타고 다니니까 이렇게 좋은 소리, 좋은 경치를 다 놓치고 가잖아. 어찌 보면 참 딱하다."

남편이 골짜기 아래에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사진을 찍다 말고 얘기했어요. 듣고 보니, 정말 그렇더군요. 해인사까지 모두 차를 타고 가는데,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소리를 어떻게 들을 것이며, 아름답고 멋진 풍경은 또 어떻게 느낄는지요.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거나 걷는 이를 보지 못했답니다. 편한 것만 좇다 보니, 놓치는 것도 퍽 많구나! 하는 생각에 조금 안타까웠어요.

해인사에는 듣던 대로 매우 크고 넓은 절집이더군요. 사람들이 매우 많았는데, 마침 방학이라 아이들이 단체로 나와서 불교문화를 배우고 있는 듯했어요. 무엇보다 꽤 남달라 보였던 건,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마당에 여러 갈래로 칸을 만들어놓고 그 길을 따라 두 손을 모으며 빙빙 도는 모습이었어요. '저 어린 아이들이 무슨 생각을 하면서 돌까?'하는 생각도 했답니다.

지금까지 문화재를 찾아다닌다고 여러 절집을 다녀봤지만, 이름나고 큰 절집일수록 그다지 마음에 남는 게 없어요. 의성 고운사, 예산 수덕사, 또 여기 합천 해인사…. 어쩌면 우리가 '불교신자'가 아니라서 그렇겠지요?

해인사 가는 길홍류동 계곡이랍니다. 해인사로 가는 길에는 커다란 바위가 매우 많았어요. 바위마다 한문으로 글자를 새긴 게 무척 많더군요. 물소리 시원하고 풍경이 아름다운 이 골짜기에서 잠깐이라도 걸으면서 느껴보면 좋겠어요. 자동차는 편할 지는 몰라도 때때로 좋은 볼거리들을 놓칠 때가 많답니다. ⓒ 손현희


끊겼다는 길을 못 찾아 두 시간을 헤매다

길이 끊겼다.여기는 거창군 가북면에서 해인사 쪽을 보며 찍은 사진이에요. 길을 내는 공사를 하다가 끊어지고 말았어요. ⓒ 손현희

해인사 구경을 하고 또 다시 산꼭대기로 올라갑니다. 6km쯤 더 올라가서 거창군 가북면으로 가는 길을 찾아야 하지요. 이곳은 거창과 합천의 경계가 되는 곳인데, 올해 이른 봄에 자전거 모임 식구들 둘이서 갔다가 길이 끊겨 산길로 넘어왔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다행히 끊긴 곳은 100m밖에 안 된다고 하더군요.

우리도 그 길을 찾아야 하는데, 이거 길 찾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어요. 산꼭대기에 있는 해인사 고불암 둘레에서 아무리 찾아봐도 길이 보이지 않는 거예요. 좁은 등산길이 있기에 들어갔다가 사람이 다닌 흔적은 찾아볼 수 없고 온갖 잡풀과 나무들이 우거져서 도저히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지요. 끝내 다시 나와서 먼저 다녀왔던 이한테 물었지만, 말로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대답만 들었지요.

우리는 가북으로 넘어가는 길을 찾지 못한다면 어쩔 수 없이 되돌아 가야 한답니다. 그랬다면 온종일 올라온 오르막길을 또 그만큼 내려가야 하는 거였지요. 산 바로 밑에 있는 마장동 마을까지 내려가서 물었지만 대충 "어디쯤이다"라는 얘기만 듣고 다시 올라갔어요. 마침 너른 들판 앞에 있는 '파프리카 농장'에서 사람소리가 들려서 다시 물었지요. 아, 글쎄 알고 보니 바로 이 농장 앞에 있는 들판으로 곧장 가면 된다는 거였어요.

저기를 넘어가야 하는데...합천 해인사에서 거창 가북면으로 넘어가는 길이에요. 이 길을 찾지못해 두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어요. 무릎까지 자란 풀숲을 헤치고 길을 내며 갑니다. 저기 움푹 팬 곳이 바로 가북면으로 넘어가는 길이에요. 하지만 아쉽게도 길은 끊겨있어요. 쭉 이어놓아도 좋을 텐데... 왜 그랬을까? ⓒ 손현희


"저긴가 보다!"
"애고, 코앞에다 두고 두 시간이나 헤매고 다녔다."

그러고 보니, 산과 산 사이 능선에 조금 움푹 팬 곳이 눈에 띄었어요. 이젠 살았다 싶어 들판을 가로질러 들어갔는데, 무릎 위까지 잡풀이 우거져 있어 걷기가 매우 어려웠답니다. 그제야 매우 좁은 길이 보이는데, 이마저도 풀에 가려져 잘 뵈지 않더군요. 풀숲을 헤치며 도리어 길을 만들면서 나갔더니, 길 끝에 '떡'하니 가림막을 세워놓고 그것도 모자라 철조망까지 쳐놓았더군요. 참 어이없더군요. 지난날에는 거창에 사는 이들이 해인사로 오려면 이 길로 다녔다고 하던데, 왜 이렇게 모질게 길을 끊어놓고 막아놨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되더군요.

때마침, 우리와는 반대로 가북면 쪽에서 이쪽 해인사로 가려던 사람들을 만났어요. 이 사람들도 길을 막아놓은 걸 보고 몹시 화를 내었답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는 이 둘레가 모두 절집 땅이라고 하더군요. 또 이처럼 길을 막아놓은 것도 자연을 보호한다고 그랬다는데…. 글쎄요. 절집 마당까지 길 내놓고 자동차가 쉴 새 없이 오르내리도록 해놓았던데, 자연보호라…….

자연을 보호한다고?겨우 길을 찾았는데, 이렇게 길이 끊어져 있어요. 가림막으로 막아놓고도 모자라 철조망까지 쳐놓았어요. 왜 그랬을까? ⓒ 손현희


나흘 내내 오르막과 땡볕에 시달리다

휴가 첫날을 이렇게 오르막과 싸우면서 무려 102km, 그 먼 길을 달려왔는데 이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어요. 거창으로 들어와서 이 마을에서 또 다른 마을로 가려고 하면, 어김없이 높은 오르막길을 올라가야 했어요. 구미 둘레에서는 높아 봐야 500~600m쯤인데, 그것도 산꼭대기까지 가야 그런 높이가 나오지요. 그런데 거창에는 웬 고개가 그렇게나 많은지, 고갯길 하나 넘는데도 500m는 우습더군요. 게다가 이틀째부터는 뜨거운, 아니 살갗이 따가울 만큼 내리쬐는 땡볕과도 싸워야 했답니다.

우리 둘은 날이 지날수록 차츰 더운 나라 원주민이 되어가고 있었어요. 제 아무리 선크림을 바르고 친친 둘러싸 매고 다녀도 한여름 뙤약볕을 견디기가 쉽지 않았지요. 오르막에 가다가 너무 뜨거워서 손바닥만한(?) 그늘만 있어도 거기서 쉬어야 했고, 구름이 조금이라도 가려주면 또 얼른 자전거를 타고 가곤 했지요. 한줄기 바람, 한 조각 그늘이 그렇게나 고마울 수가 없어요. 그렇게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와서 아주 잠깐이지만 내리막을 달리는 기분은 말로 다 못할 만큼 즐겁답니다.

한낮 땡볕에 지쳐서 온몸에 힘이 거의 다 빠지고 도저히 갈 수 없겠다 싶으면 아무데서나 털썩 앉아서 쉬었어요.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어요. 고제면 궁항리 마을에서 쉼터가 보이기에 잠깐 더위도 피하고 눈이라도 붙였다 가려고 들어섰는데, 큰 느티나무 아래에 있던 마을 어르신들이 우리를 보고 막 나무라는 거예요.

가릇재대덕에서 김천시 증산면으로 넘어오는 길이에요. 거의 꼭대기까지 올라왔는데, 되돌아보니 참으로 높네요. 아아! 오르막아! 제 아무리 높아도 우리는 올라간다! ⓒ 손현희


"아니, 이 땡볕에 우짤라고 그카요."
"아이구 시상에! 거 테레비도 안 봤소. 얼마 전에 자장구 타다가 죽었다카는 사람도 있다카던데…."
"날 더운데 집에 가마이 있는기 최고지, 뭐할라꼬 이리 고생을 사서하요."

우린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어요. 더구나 구미에서 예까지 와서 며칠째 다닌다고 했더니 그만 입을 떡 벌리고 혀를 내두르셨어요. 우리가 생각해도 이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지요. 이 더운 날, 시뻘겋게 달아올라 땀을 뻘뻘 흘려가며 산골짜기 오르막을 수도 없이 오르내리고 있으니, 그야말로 자전거에 미치지 않고는 못할 일이겠지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우린 이게 좋은 걸…. 하하하!!!

나흘 동안 구미에서 성주를 거쳐 합천 해인사, 거창군을 구석구석 돌아 산청, 함양, 김천, 경계와 경계를 얼마나 넘나들었는지 모른답니다. 그러면서 산을 몇 개나 넘었는지 몰라요. 높은 고갯길을 셀 수도 없을 만큼 넘어 다녔어요. 모두 330km나 되는 먼 길을 다니면서, 거창군의 남다른 '정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과 산골 사람 살가운 이야기도 듬뿍 담아왔지요. 오가는 길에서 만난 푸근하고 정이 넘치는 사람들, 거창의 슬프고도 가슴 아린 역사까지 가슴 깊이 담았답니다.

끊임없는 오르막과 뜨거운 땡볕과 싸운 나흘 동안 길을 못 찾아 산속에서 헤매기도 하고, 더위를 먹어 지칠 대로 지치고 힘들었지만 온 삶을 다해도 잊지 못할 추억을 켜켜이 쌓고 왔답니다. 남편과 함께 거창으로 자전거 나들이를 다녀온 이야기는 제 연재기사, '두 바퀴에 싣고 온 이야기보따리'에서 하나 하나 풀어놓으렵니다.

자전거를 타고경남 거창군 나들이 이야기는 뒤이어 들려드릴게요. ⓒ 손현희

덧붙이는 글 [2008 이 여름을 시원하게] 응모글입니다.

<a href='http://www.eyepoem.com/' title='http://www.eyepoem.com/' target=_blank > 이야기와 더욱 많은 사진은 한빛이 꾸리는'우리 말' 살려쓰는
이야기가 담긴 하늘 그리움(http://www.eyepoem.com)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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