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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길 따라 걷다, 지리산 종주산행

지리산 종주산행(성삼재~천왕봉~백무동)

등록|2008.08.07 20:09 수정|2008.08.08 14:06

노고단...군락을 이룬 노고단의 꽃들... ⓒ 이명화


보고 또 보아도 보고 싶은 산,  돌아서면 다시 그리워지는 산인 지리산이 그리워 찾았다. 지난 4월, 5월에 만나 그리웠던 지리산을 이번엔 종주하기로 한 것이다. 사실, 지리산 종주는 꼭 한번 해 보고 싶었지만 불볕더위가 계속되는 8월 폭염 속에서 가능할까 생각만 해도 숨이 턱에 닿는 듯했다. 아무렴 어떠하랴, 폭염보다 그리움이 앞섰다. 지리산, 네가 그리워 다시 간다.

[첫째날(8월4일) 이야기] '니가 그리워 다시 간다'

우리는 새벽을 깨우며 집을 나선다. 우리의 발걸음 소리, 숨결 소리에 아침은 그 두터운 어둠의 빗장을 열며 깨어나고 있다. 새벽 5시의 고속도로는 어슴프레하다. 남양산IC를 벗어나 서순천IC를 거쳐 구례로 향한다. 처음으로 가보는 전남 구례가 가까워질수록 안개가 짙어진다. 구례 공영버스터미널에 도착했을 땐 오전 8시 10분, 마침 성산재행버스가 8시 20분에 있어 반갑다.

이른 아침부터 안개가 자욱해 날씨가 흐릴까 내심 걱정했는데 버스가 출발하고 조금 지나자 아침 햇살이 퍼지기 시작한다. 성삼재까지 가는 길은 아주 험하다. 버스는 화엄사 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잠시 정차, 버스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을 싣고 달린다. 버스가 춤추듯 이리 휘고 저리 휘면서 위험천만한 급경사에 급커브 길을 몇 번이나 넘어질 듯 돌면서 아찔한 순간을 만난다. 얼마쯤 지났을까.

“지금부터는 문화재보호구역입니다. 1인당 1600원씩 준비 해 주시기 바랍니다.”

무슨 말이지? 얼떨결에 1600원을 준비한다. 버스는 천은사 앞에 잠시 정차, 남자가 버스에 올라 요금을 받고 입장권을 내민다. 그런데, 우리가 1600원씩 지불하고 본 것은 천은사 입구뿐이다. 왜 1600원을 내야 하는지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돈을 지불했다.

“지금부터 성삼재까지 10.5km(1100m) 올라갑니다. 잘 잡으세요. 60도 이상 돌아갑니다.”

위험천만한 난코스의 급커브 길을 지나 성삼재에 당도한다. 오전 9시다. 노고단 입구에 도착했을 땐 쨍하고 날씨가 맑다. 땡볕이다. 노고단 탐방지원센터에서부터 노고단 올라가는 길엔 산책하듯 편안한 차림에 어떤 이는 슬리퍼를 신고 잘 닦아놓은 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부모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아이들 모습도 보인다.

지리산 종주산행노고단...저 아래로 섬진강이 흐르고... ⓒ 이명화


노고단 정상은 생태보호를 위해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만 개방하고 있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출발한다. 노고단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경들은 하늘 정원을 걷듯 완만하고 편안하고 아름답다. 이곳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는 25.5km에 이르는 장엄한 지리산 종주 능선길이 시작된다. 노고단에서부터 천왕봉까지 이어질 작은 나무문을 통과하니 기분이 아주 묘하다.

노고단 고개에서는 반야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저 멀리 구름에 싸인 천왕봉 역시 조망된다. 2박 3일 동안의 기나긴(?) 노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지리산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내가 한발 한발 내딛을수록 천왕봉은 더 가까워지고 있다. 다시 밟는 지리산, 그러나 이쪽에선 처음이다. 지리산 종주 길은 좁은 길로 계속 이어진다. 짙은 숲 그늘이 햇볕을 가리고 있어 시원하고 걸음이 상쾌하다.

노고단...맑고 푸른 하늘...그 아래 '노고단 할매'와 하늘 길을 걷는 모습들... ⓒ 이명화


가끔 햇볕에 노출될 때마다 뙤약볕에 젖은 땀을 그늘이 말려준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지리산 종주 산행길은 시원하다. 바람 불어 시원한 지리산 종주 길에 햇볕은 순하게 느껴지고 등산객들이 많아 걷는 길 또한 즐겁다. 굴곡 없는 길로 계속 이어진다. 짙은 녹음으로 물든 지리산, 피아골 삼거리(1336m)에 이른다. 우린 지금 1300m 이상의 산 능선을 따라 걷고 있다. 피아골 삼거리(1:05)에 도착, 임걸령(1320m)에서 임걸령 옹달샘 물을 마시고 쉬어간다. 물맛이 좋다. 시원한 바람 상쾌하다.

지리산에 오르기 전엔 산에 올라 더위 먹지 않을까 걱정도 했건만 시원 상쾌한 공기, 솔솔 불어오는 바람, 햇살을 가린 숲 그늘, 이곳이 바로 여름 무더위를 잊을 수 있는 최고의 장소가 아닌가. 8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았다. 자주 맞닥뜨리는 사람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걷는다. 우릴 앞질러 가는가 싶으면, 그들이 쉬어갈 때 우리가 또 추월하고, 엎치락뒤치락 하며 산길을 걷는다.

여름 무더위에 지리산 산행, 이것이 가장 좋은 피서법이 아닐까 싶다. 한 여름 무더위에 지리산이 이렇게 시원할 줄은 예전에 미처 몰랐다. 보통 지리산 종주라하면 화대종주(화엄사-대원사)라 한다. 우린 성삼재에서부터 노고단을 거쳐 천왕봉까지 간다. 노루목(1498m)에 도착, 반야봉, 노고단, 천왕봉 갈림길이다. 삼도봉(1550m), 여기는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 등 세 도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지리산 종주 길은 지리산의 중심, 그 심장부를 걷고 있는 것이다. 깊고 깊은 산길을 건너고 있다. 멀리라도 사람 사는 집이라곤 보이지 않고 산산이 에워싸 첩첩산중이다. 삼도봉에서 우리가 걸어 온 노고단이 멀리 보이고 반대편에는 제석봉, 촛대봉까지 조망된다. 삼도봉에서 화개재 구간까지 잇는 목재데크는 길고 경사진 내리막길이다.

다리가 후들거린다. 이 계단은 길이 240m, 폭이 1.5m에 이른다. 화개재에 도착, 3시 45분이다. 화개재는 지리산 능선에 있던 장터 중 하나로 경남에서 연동골을 따라 올라오는 소금과 해산물, 전북에서 뱀사골로 올라오는 삼베와 산나물 등을 물물교환하던 장소라 한다. 어떻게 이렇게 높은 곳까지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오르내렸을까.

화개재서부터는 또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연하천까지. 내 몸이 지치기 시작하면서 걸음이 자꾸 허방을 짚는다. 토끼봉에 도착, 표시석도 없다. 연하천에 도착하기까지 화개재서부터 나는 힘들게 걸어야 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던 사람들은 모두 먼저 우릴 앞질러 가 버리고 겨우 오늘의 목적지인 연하천(1440m)에 도착했을 땐 저녁 7시 정각이다.

미리 예약을 하지 못해 비박을 결심하고 오긴 했지만 놀랍다 놀라워. 작은 연하천 대피소 안팎으로 가득한 사람들, 먼저 온 사람들이 연하천대피소 마당 좋은 장소는 다 차지해 자리를 깔고 침낭을 펴고 있거나 즐거운 저녁식사를 하고 있다. 하룻밤을 묵을 수 있는 장소를 물색해 보지만 마음에 드는 곳이 나타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한쪽 구석에 자리를 깐다. 일단, 자리를 펴고 짐을 부려놓는다. 하루 산행을 끝내고 남편이 끓여주는 라면을 먹고 앉아 쉰다. 저녁 이슬이 내린다. 몸이 축축해진다. 사람들이 비닐을 덮어쓰고 있는 것이 궁금했는데 바로 이슬 때문이란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남편은 사무실로 달려간다. 예약자가 나타나지 않았는지 우리는 안에서 잘 수 있게 되었다. 오늘은 저녁 이슬을 피해 잘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피소는 안팎으로 차고 넘친다.

우린 오늘 총 10.5km를 걸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오르는 것일까. 이 무더운 한 여름에 높고 높은, 결코 만만치 않은 지리산을 오르고 또 오를까. 여름엔 너무 많은 사람들이 대패소마다 차고 넘치고 예약하기 때문에 예약자체가 힘들 정도로 폭주하는 현상을 빚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무엇이 이토록 지리산으로 사람들을 이끄는 것일까. 나는 한 사람 한 사람 붙잡고 묻고 싶은 마음이다. 나는 또, 왜 왔는가.

[둘째날 이야기] '넌, 어쩜 9살에 지리산 종주를 다하니?'

새벽 5시가 되자 여기저기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5시 30분쯤 되자 밥 짓고 세면하느라 부산스럽다. 천천히 또 출발을 서두른다. 또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오늘은 더 많은 길을 걸어야 한다. 오전 7시 25분, 다시 출발, 연하천대피소여 안녕, 어제 밤엔 밤이슬 맞지 않고 잘 수 있게 해 주어서 고맙다.

지리산 종주산행촛대봉에 올라... ⓒ 이명화


천왕봉까지는 못 가더라도 오늘은 적어도 장터목대피소까진 가자. 하기야 장터목대피소에 잠자리 예약을 해 놓은 것도 아니니,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걷는 데까지 걸으면 된다. 걷고 쉬고, 또 걷고 쉬면서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가다보면 가는 데까지 가겠지. 장터목대피소까지 못 가면 세석대피소에서 비박하면 되지 않는가. 예약에 묶여 있지 않으니 말이다.

길을 걸으며 아침 안개가 천천히 걷히는 것을 본다. 첩첩산중 지리산 종주 능선길을 오늘도 걷는다.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까지 계속 걷고 걸을 길이 바로 앞에 있다. 한 발 한 발 나아간다. 높고 높은 지리산 능선 길을 따라 걷는다. 나는 왜 여기 이 길을 걷고 있는 것일까. 사람들은 왜 여기 와 있는가. 뭐라고 명명하기 힘들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산산이 에워 싼 깊은 지리산에 지금 있다는 것, 그리고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뿐이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뒤돌아서면 다시 보고 싶고, 다시 그리워지는 까닭이라는 것, 힘들어서 다시는 안 와야지 하다가도 돌아서면 망각하고 다시 그리움이 깊어져서 찾는다는 것.

지리산 종주산행9살 난 건영이...부럽다 부러워 ^^ ⓒ 이명화


잠시 전망바위 위에서 쉰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엎치락뒤치락 하던 사람들이 우리 먼저 와서 바위 위에 쉬고 있다. 부모와 어린 꼬마 둘, 참 신선한 충격이다. 바위에 올라 앉아 먼산바라기를 하며 참새처럼 떠드는 아이한테 나는 신기하여 묻는다.

“몇 살이니?”
“9살요.”
“넌 어쩜 9살에 지리산 종주를 다하니? 나는 인제서야 하는데!”

아이 엄마가 웃는다. 아이 아빠는,“다 부모 잘 만난 덕분이지요”하고 말한다. 모두 한바탕 웃는다. 옆에 앉은 여자애는 꼬마 건영의 누나로 4학년이란다. 나는 9살 나이에 지리산 종주를 다 하는 건영이가 부러워 시샘이 날 정도다. 이제 인생을 시작하는 어린 나이에 살아가는 날 동안 얼마나 소중한 추억이 될까. 후일, 보석처럼 빛나는 소중한 이때의 추억을 꺼내보며 흐뭇해 할 것이 부럽다.

건영은 하나도 지치지 않는 표정이다. 목소리엔 강한 에너지가 실려 있다. 지리산 종주하면서 계속해서 많은 잠자리 떼들을 본다. 가을인 줄 아는 모양이다. 잠자리들은 이제 곧 물가에 가서 앞을 낳고 죽겠지. 형제 바위에 도착, 나란히 서 있는 높고 우람한 바위가 우리 앞에 버티고 서 있다. 형제바위를 돌아가는 어린 꼬마 둘이 있다. 역시 형제인 모양이다. 벽소령 대피소에 도착, 10시 5분이다.

벽소령에서 구백소령까지는 평지 걷듯 걷는다. 선비샘(1456m)에 도착, 여기서 많은 사람들이 쉬어간다. 간만에 시원하고 물 맛좋은 샘물을 마신다. 건영이네 가족은 우리 먼저 와서 앉았다가 다시 일어난다. 우린 짐을 내려놓고 물통에 물을 담는다. 건영이 엄마가 남편 배낭을 들다 말고 하는 말.

“당신 짐은 왜 이렇게 무거워요?”
“남자잖아, 아빠잖아!”

가슴이 뭉클해진다. ‘남자잖아, 아빠잖아’라는 그 말이 가볍게 들리지 않는다. 그 말 속에 담긴 수많은 뜻을 나는 생각하며 괜시리 마음이 뜨뜻해진다. 삶의 무게, 남자의 책임과 무게, 남편으로서 아이들 아빠로서 또, 알 수 없는 무게까지 다 내포하고 있는 말...그들이 가고 우리도 다시 걷는다. 아까 했던 그 말이 자꾸 생각난다. 여운이 남는, 그 안에 슬픔까지 포함된 말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지리산 종주산행세석평전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 ⓒ 이명화


얼마나 갔을까. 계속 오르막 내리막 또 오르막, 힘겹게 오른다. 가파른 바위를 밧줄로 잡고 올라가는 사람들을 본다. 우리도 뒤 따라 올라간다. 아니 9살 난 건영이보다 더 어린 유치원생 가방을 멘 아이도 섞여 있다. 밧줄 잡고 겨우 올라가 부모와 함께 쉬고 있는 아이들에게 나는 궁금하여 말을 건다.

“재미있니?”
“힘들지만 재미있어요.”
9살 여자아이가 힘차게 말한다.

“어디까지 갈거니?”
“꼭대기까지 가야죠. 천왕봉까지요.”

자기가 말 해놓고 웃는다.

“제가 대장으로 뽑혔어요. 힘이 좀 세거든요. 남자 애들도 이겨요.”
“그래?”
옆에 있던 남자애가 여자애 말을 거든다.
“엄청 힘이 세요.”
그러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차례로 아이들을 소개한다.

“제가 소개할게요. 얘는 일곱 살, 1학년, 3학년...”

부모와 함께 이 높은 지리산까지 올라 온 어린 아이들, 내겐 아주 신선한 충격이다. 그 외에도 참 많은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혹은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지리산에 오른 것을 나는 이번 지리산행에서 보았다. 칠선봉(1558m)에 도착, 급경사 오르막길로 이어지고 영신봉(1651m)에 도착, 영신봉에서 천왕봉까지는 거의 그늘이 없고 햇볕 속을 걷는다.

대신 탁 트인 조망이 탁월하다. 세석대피소(3시 정각)에 도착한다. 이곳 역시 많은 사람들이 지리산을 걷다가 쉬어 가고 있다. 이곳에서 종주하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맞닥뜨렸던 눈에 익은 얼굴들을 만나 반갑다. 아무도 뒤처지지 않고, 낙오되지 않고 오고 있는 것 같다. 세석대피소(1545m)에서 점심을 먹고 출발한다. 내리 쏘는 여름 햇살이 제법 뜨겁다.

촛대봉(1703m)에서 바위 높이 올라 상쾌한 바람 속에 쉰다. 연하봉(1730m)를 지난다. 오르락내리락 숨이 막힐 듯하다. 천왕봉은 멀리서나마 계속 조망돼서 다 온 것처럼 위안이 된다. 연하봉을 지나면서 제석봉과 천왕봉이 선명하다. 장터목대피소가 가까워지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온다. 예상했던 대로 많은 사람들이 왔나보다.

지리산 종주산행장터목 대피소...비박하는 사람들... ⓒ 이명화


드디어 장터목대피소에 도착, 많은 사람들이 장터목대피소를 채우고 있다. 늦게 도착한 우리는 비박할 사람들이 마당 가득 자리를 다 차지해 남은 장소 중에서 자리 잡는다. 해가 지면서 저녁 이슬이 내린다. 차츰 추워지기 시작한다. 오늘은 비박을 한다.

별이 빛나는 밤, 손을 뻗으면 잡힐 듯 한 별바다가 바로 위에 펼쳐져 있다. 별똥별이 떨어진다. 비박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어두워지기 전에 자리를 깔고 침낭과 비닐까지 완벽하게 덮고 잠잘 준비를 한다. 우린 비박이 첫 경험이라 모든 것이 허술하다. 그 덕분에 비박하는 하룻밤은 추위에 떨어야 했다. 밤이슬에 젖는 밤, 그래도 별을 헤며, 별을 보며 별들의 노래 소리 들으며 잠들어 좋다.

침낭을 하나밖에 준비하지 못한 탓에 남편은 이불과 우비를 덮고 자다가 추워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피곤했던 탓에 겨우 설핏 잠이 들었다가 새벽 3시에 눈을 뜬다. 별을 보며 밖에서 잠든 둘째 날 밤, 이 날을 오래오래 기억하겠지.

[셋째날 이야기] '또 만나자꾸나, 그래, 거기서!'

지리산 종주산행건영이와 건영이 누나...가족과 함께 천왕봉에 오르다... ⓒ 이명화


새벽 3시에 깨어 일어나 더 이상 잠을 잘 수가 없다. 이 시간에 노고단으로 출발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모든 것이 새벽이슬에 젖어 축축하다. 더 춥게 느껴지는 새벽, 별이 보이지 않는다. 그 많던 별들이 다 어디로 사라졌을까. 별이 다 진 것일까. 하지만 4시가 되자 다시 별빛이 초롱초롱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밤에 보던 별보다 더 빛나는 새벽별들을 올려다본다.

새벽 4시, 우린 천왕봉으로 향한다. 랜턴을 가져오지 않아 장터목대피소에서 제석봉을 거쳐 천왕봉으로 올라가는 길엔 겨우 더듬더듬 걸음 옮긴다. 앞에서 뒤에서 오는 사람들이 비춰주는 불빛 따라 겨우 걸음 옮기다 차츰 어둠이 사라지면서 걷기가 편해진다.

천왕봉에 도착(5:15), 예상대로 우리보다 먼저 온 사람들이 천왕봉 정상 바위 가득 자리하고 있다. 지난번에 보았던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의 운무를 볼 수 있을까 기대했지만 해 떠오르기 전의 풍경은 밋밋하다. 동녘 하늘을 물들이는 아침 노을도... 사람들은 동쪽을 향해 시선을 두고 해가 둥둥실 떠오르기를 기다리고 있다.

드디어 붉디붉은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붉은 햇덩이가 조금 보이자 사람들은 탄성을 지른다. 차츰 더 많이 더 크게 올라오면서 쑤욱 올라온다. 밝은 태양에 사람들의 얼굴이 등불을 켠듯 밝다. 8월 6일, 지리산 천왕봉에서 다시 일출을 본다. 지리산의 백미는 종주라 했던가. 그리고 지리산은 최고봉인 천왕봉을 보는 것 아니겠는가.

지리산 종주산행천왕봉에서 바라본 일출...그리고... ⓒ 이명화


지리산 종주산행천왕봉 정상에 모인 사람들... ⓒ 이명화


장터목 대피소에 다시 돌아와 밤새 추위에 떨었던 몸을 하산하기 전에 천왕봉실에서 잠시 쉬고 출발한다. 이제 힘겹게 올라왔던 지리산, 해발 1915m 높은 산에서 낮은 땅까지 하산한다. 어느새 오전 10시 5분이다. 우린 백무동으로 간다. 흙길인가 싶으면 돌투성이 길, 경사진 길을 만난다. 소지봉을 지나 참샘에서 물을 마시며 잠시 휴식, 또 걷는 길, 계곡을 끼고 계속 내려간다.

백무동 계곡은 거의 말라 있는 것처럼 물 수량이 적다. 하동바위를 지나 제법 물소리가 환하다. 백무동이 가까워올수록 내 몸도 지친 것일까. 계속 되는 돌투성이 길을 내려오면서 무릎이 시큰거린다. 졸음마저 쏟아진다. 백무동 탐방지원센터에 도착, 2시 30분이다. 낮은 땅에 내려오자 단번에 모기가 몸에 붙는다.

참 이상하다. 높은 지리산에서 2박3일 동안 있다가 이곳 낮은 지상으로 내려오니, 마치 천상에서 땅에 떨어진 것처럼 기분이 묘하다. 잠에서 깨어난 듯, 꿈에서 깨어난 듯, 현실감각을 찾는데 시간이 걸린다. 드디어 낮은 땅, 사람들이 북적대며 살아가는 낮은 곳으로 온 것이다. 종주는 끝났다.

2박 3일 동안의 긴 노정이었다. 힘들기도 했지만 참으로 마음 뿌듯해지는 지리산 종주산행이었다. 다시 그리워 찾은 지리산, 종주는 끝났지만, 돌아서니 또 다시 그리워진다. 또 만나자꾸나. 그래 거기서.

지리산 종주산행(성삼재~천왕봉~백무동)

ⓒ 이명화


<산행수첩>
1.일시:2008. 8.4(월)~8.6(수)까지. 맑음
2.산행: 종주산행
3.산행기점: 성삼재
4.산행시간:32시간 10분
5. 진행:
2008.8.4(월) 맑음: 산행시간 -10시간
*성삼재(09:00)-성삼재 탐방센터(9:20)-노고단대피소(10:15)-아침식사후 출발(10:40)-노고단고개(10:55)-노고단정상(11:00)-노고단고개(11:25)-피아골삼거리(1,336미터. 1:05)-임걸령(1,320미터, 1:15)-점심식사 후 출발(1:45)-노루목(1,498미터. 2:30)-삼도봉(1,550미터, 3:05)-화개재(3:45)-연하천대피소(1,440미터, 7:00) -1박

2008.8.5(화) 약간 구름 후 맑음:산행시간-11시간 40분
*연하천대피소(07:25)-형제봉(1,452미터, 09:05)-벽소령대피소(1,340미터, 10:05)-벽소령대피소출발(10:50)-구벽소령(1,375미터, 11:10)-선비샘(1,456미터, 12:05)-칠선봉(1,558미터, 1:30)-영신봉(1,651미터, 2:45)-세석대피소(3:00)-세석대피소출발(4:30)-촛대봉(1,703미터, 5:05)-연하봉(1,730미터, 6:35)-장터목대피소(1,653미터, 7:05)-비박

2008.8.6(수)맑음:산행시간-10시간 30분
장터목대피소(04:00)-천왕봉(1,915미터, 5:15)-일출시간(5:41분)-천왕봉하산(6:10)-통천문(1,814미터, 6:25)-제석봉(1,808미터,6:50)-장터목대피소(07:10)-장터목대피소출발(10:05)-소지봉(11:45-참샘(1,125미터,12:10)-하동바위(900미터,12:50)-백무동탐방지원센터(2:30)

*지리산 종주길: 노고단-천왕봉:25.5킬로미터/노고단-세석까지 나무 그늘 산행 해서, 한 여름이라도 시원한 산행길임.
*식수: 노고단대피소, 임걸령, 연하천대피소, 벽소령대피소, 선비샘, 장터목대피소, 세석대피소, 참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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