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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무장지대에서 낮잠 한번 자고 싶다

대한해협을 건너온 <종소리>

등록|2008.08.12 11:49 수정|2008.08.12 22:05
고향에 대한 그리움

벌써 10여일째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오늘 아침, 이 더위를 가시게 하는 한 줄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있다. 장대비 속에 집배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와서는 우편물을 우편함에 넣고는 빗속에 사라졌다.

▲ <종소리> 제35호 ⓒ 박도


곧 바로 확인하자 우편함에 담긴 우편물은 4통으로, 그 가운데는 멀리 일본 도쿄에서 대한해협을 건너 날아온 시집 <종소리> 제35호도 있었다. 일본에 사는 <종소리> 시인 회원들은 재일동포로 일본에 귀화하지 않고, 우리 말 우리 얼을 고집스레 지키면서 살아가고 있다.

나는 이 분들을 2005년 7월 21일 남북작가회의 이튿날 대동강 쑥섬에서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 인연으로 당신들이 계절마다 펴내는 시 동인지 <종소리>를 강원도 산골까지 줄곧 보내주고 있다.  
<종소리>에 담긴 이들 동포의 시심은 온통 고향(고국)에 대한 그리움이요, 분단의 아픔이요, 통일에의 소원이요, 겨레의 무궁한 발전에 대한 기원들이었다.

이번 호에는 모두 23편의 주옥같은 시가 실렸다. 먼저 눈에 띄는 두 편만 소개해 본다. 더 이상의 군소리는 줄인 채.

낮잠 한번 자고 싶다
             
              정화흠(1923 경북 열일 출생)

38선
비무장지대에
거적때기를 깔아놓고
낮잠 한번 자고 싶다

텁텁한 막걸리에
얼근히 한 잔 되어
큰 대(大)자로 누워서
코를 골며 자고 싶다

무기 없는 공간인데
무엇이 겁나겠나
뛴들 뒹군들
벌거벗고 춤을 춘들

벌떼에 쏘여도 좋다
사슴의 발꿈치에 채여도 좋다
총포 없는 내 땅에서
낮잠 한번 자고 싶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단 한번만

고향에서

               서일순

칠순 넘으신 아버지를 따라
일곱 살까지 사셨다는
고향 진주를 찾아갔네

흐르는 강물, 푸른 산줄기
마을 어귀의 두 그루 나무
시대의 풍파를 이겨내며
65년의 시간을 톺아 오른
아버지를 한품에 안아 반겨주네

연분홍 복숭아꽃 새하얀 살구꽃
시냇물 따라 오른 뒷동산 오솔길
고향이야기 들으며 그려보던 곳
바로 이곳이었구나

귀에 익은 경상도말
잘 왔다 따뜻이 맞아주신 이웃들
푸짐히 차려주신 밥상에서
풍겨나는 산나물향기
추억 속에 되살아나는
할머니집의 음식 향기

나에게도 고향이 있었구나
이역의 하늘 아래 그려보던
예가 바고 나의 고향
꿈속에서 그려보던 나의 고향

이제야
온 몸으로 느끼는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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