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도가 마신 술의 본질은 알콜? 도수?
대학생 전공병 천태만상... 당신은 어떤가요
오랜만에 학교 친구 혜민이(23)를 만났다.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띵동'하고 혜민이 휴대폰에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메시지를 한참 들여다보던 혜민이는, 무슨 문제가 있는지 심각한 표정으로 나에게 휴대폰을 건넨다. 그녀의 남자친구로부터 도착한 문자였다.
'늦으면 안 되.'
메시지를 보자마자, 혜민이의 심기가 불편해진 이유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 되'가 아니라 '안 돼'인데….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에서 틀린 맞춤법이 혜민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국문과] '늦으면 안 되'라고 하면 안 돼
"아…얘 계속 틀려."
"으이구, 또 전공병 발동했네.(웃음)"
혜민이와 나는 국어국문학과 동급생이다. 우리는 전공 탓인지, 맞춤법 틀린 것이나 비표준어, 비문 등에 유난히 예민하다.
예를 들면 학교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차림표에 '김치찌개'가 아니라 '김치찌게'라고 쓰인 것 혹은 '식권 받읍니다'라고 쓰인 것을 보면 "우리가 주인 분에게 지적하고 고치자"며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들어보면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 국어국문학과 친구들 역시 이런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이처럼 자신의 전공과 관련해 예민한 부분이 있다든지 전공수업에서 배운 내용들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는 강박관념을 갖는 것을 '전공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다른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 친구들은 어떤 전공병이 있을까?
[통계학과] 버스 타러 갈 때도 '지수분포' 계산
경제학과를 전공하는 상원오빠(27)는 "우리 과 친구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경제학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어떤 현상을 봐도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원오빠가 들려준 '경제학 전공병'의 사례는 이런 것이었다.
친구가 휴대폰을 새로 샀는데, 너무 비싸게 샀다. "왜 그렇게 비싸게 샀어? 다른 곳을 찾아보면 더 싸게 살 수 있는데"라고 한마디 하면 친구는 이렇게 받아친다고 한다. "정보탐색 비용이 더 높아. 그냥 가까운 곳에서 바로 사는 게 더 싸게 사는 거야."
휴대폰 구매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귀찮았던 친구는 '돈을 더 많이 주더라도 마음 편하게 한 번에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정보탐색 비용'이라는 경제학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통계학과 찬의(23)는 "모든 것을 '계산'하려 드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찬의는 "집에서 버스를 타러 나갈 때도 지수분포(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을 나타내는 분포)를 이용해 시간을 계산해 '평균적으로 승강장에서 이 정도 기다리니까 이 때쯤 나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다"고 한다.
[시각디자인학과] 장동건보다 글씨체가 더 예쁘다
의상학과 동숙이(22)는 "주변의 모든 천에 관심이 간다"며 "의상학과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탁보 같은 것을 자연스레 살펴보고 평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숙이는 때로 "이건 와플 피켓의 식탁보구나" "이건 배트윙 스타일의 소매구나"라는 등 수업에서 배운 전문적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다가 친구들에게 "누가 의상학과 아니랄까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단다.
이중 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형복이(22)는 '타이포그래피'(이미 만들어진 문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디자인 기술)에 특히 관심이 많다. 형복이는 "글자 조판을 직접 하다 보니, 평소에 책이나 신문을 넘겨보다가도 '이 활자체는 윤신문체 9.5포인트 사이즈에 문단너비는 120%로 돼 있군'이라며 분석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형복이는 "지하철역에 장동건이 모델로 나온 디지털카메라 광고물이 붙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장동건 멋있다' '디카 좋아 보인다'고 할 때 나는 '아, 저 글씨체 동글동글하니 예쁜데 무슨 글씨체인가…' 생각했다"며 "'전공병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화학과] "낙엽이 지는군, 떨켜층이 생성됐어!"
이번에는 화학과 전공생들에게 물어봤다. 태호오빠(25)는 "다른 사람들은 술 마실 때 '건배'라고 하지만 우리 과는 '에탄올 에탄올 마셔보자 알콜!'이라고 한다"며 "평소에 장난치듯 화학용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유기화학 용어 중 '트랜스(trans)'와 '시스(cis)'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각각 '다른 편' '같은 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평소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비슷한 의견이 나오거나 말이 잘 맞으면 "우린 시스야", 그렇지 않으면 "우린 트랜스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정현이(22)는 "일상의 사소한 것도 화학적 현상으로 보인다"며 "바람이 불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일조량이 적어져서 떨켜층이 생성됐군'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고 했다.
[심리학과] 뒷담 듣다가 문득 '저 사람 가정환경은?'
학과 특성상 토론을 자주 하는 철학과 학생들의 전공병은 무엇일까? 철학과를 전공하는 상범 오빠(24)는 "철학과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술을 한번 존재론적으로 마셔볼까'라고 운을 떼고, 술의 본질에 대해 토론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술의 본질은 보리다"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다, 술의 본질은 알콜이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술은 '도수'에 따라 종류가 나뉘기 때문에 술의 본질은 도수다"라는 식으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고 한다.
심리학과 현나 언니(25)는 "우리 과 학생들은 사고를 많이 하는 경향이 생기고, 이해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언니는 "누가 다른 사람을 욕할 때에도, 그를 따라서 무턱대고 욕하기 전에 '저 사람은 무슨 가정환경이나 무슨 사고방식으로 그러는 걸까'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현나 언니는 "시험기간이 되면 전공병이 더 심해진다"며 "평소에 말을 하거나, 어떤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늦으면 안 되.'
메시지를 보자마자, 혜민이의 심기가 불편해진 이유를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안 되'가 아니라 '안 돼'인데….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에서 틀린 맞춤법이 혜민이 눈에 거슬렸던 것이다.
▲ 남자친구가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틀린 맞춤법을 발견한 혜민이는 심기가 불편해졌다. ⓒ 하민지
[국문과] '늦으면 안 되'라고 하면 안 돼
"아…얘 계속 틀려."
"으이구, 또 전공병 발동했네.(웃음)"
혜민이와 나는 국어국문학과 동급생이다. 우리는 전공 탓인지, 맞춤법 틀린 것이나 비표준어, 비문 등에 유난히 예민하다.
예를 들면 학교 주변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차림표에 '김치찌개'가 아니라 '김치찌게'라고 쓰인 것 혹은 '식권 받읍니다'라고 쓰인 것을 보면 "우리가 주인 분에게 지적하고 고치자"며 난리를 피우기도 한다.
들어보면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주변 국어국문학과 친구들 역시 이런 경우가 꽤 많은 것 같다.
이처럼 자신의 전공과 관련해 예민한 부분이 있다든지 전공수업에서 배운 내용들과 연관시켜 생각하게 되는 강박관념을 갖는 것을 '전공병'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다른 학문을 전공하고 있는 친구들은 어떤 전공병이 있을까?
[통계학과] 버스 타러 갈 때도 '지수분포' 계산
경제학과를 전공하는 상원오빠(27)는 "우리 과 친구들은 일상생활에서도 경제학 용어를 자주 사용하고 어떤 현상을 봐도 경제학적으로 해석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상원오빠가 들려준 '경제학 전공병'의 사례는 이런 것이었다.
친구가 휴대폰을 새로 샀는데, 너무 비싸게 샀다. "왜 그렇게 비싸게 샀어? 다른 곳을 찾아보면 더 싸게 살 수 있는데"라고 한마디 하면 친구는 이렇게 받아친다고 한다. "정보탐색 비용이 더 높아. 그냥 가까운 곳에서 바로 사는 게 더 싸게 사는 거야."
휴대폰 구매에 관한 정보를 검색하는 것이 귀찮았던 친구는 '돈을 더 많이 주더라도 마음 편하게 한 번에 사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정보탐색 비용'이라는 경제학적 용어로 표현한 것이다.
통계학과 찬의(23)는 "모든 것을 '계산'하려 드는 것이 습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찬의는 "집에서 버스를 타러 나갈 때도 지수분포(어떤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을 나타내는 분포)를 이용해 시간을 계산해 '평균적으로 승강장에서 이 정도 기다리니까 이 때쯤 나가면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버릇이 들었다"고 한다.
[시각디자인학과] 장동건보다 글씨체가 더 예쁘다
의상학과 동숙이(22)는 "주변의 모든 천에 관심이 간다"며 "의상학과 친구들과 밥을 먹으러 가면 음식을 기다리는 동안 식탁보 같은 것을 자연스레 살펴보고 평가를 하게 된다"고 말했다. 동숙이는 때로 "이건 와플 피켓의 식탁보구나" "이건 배트윙 스타일의 소매구나"라는 등 수업에서 배운 전문적 용어를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다가 친구들에게 "누가 의상학과 아니랄까봐"라는 핀잔을 듣기도 한단다.
이중 전공으로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형복이(22)는 '타이포그래피'(이미 만들어진 문자를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디자인 기술)에 특히 관심이 많다. 형복이는 "글자 조판을 직접 하다 보니, 평소에 책이나 신문을 넘겨보다가도 '이 활자체는 윤신문체 9.5포인트 사이즈에 문단너비는 120%로 돼 있군'이라며 분석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했다.
형복이는 "지하철역에 장동건이 모델로 나온 디지털카메라 광고물이 붙어 있었는데, 사람들은 '장동건 멋있다' '디카 좋아 보인다'고 할 때 나는 '아, 저 글씨체 동글동글하니 예쁜데 무슨 글씨체인가…' 생각했다"며 "'전공병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 캠퍼스를 걷는 학생들. 대학생들마다 각 전공별로 다양한 '전공병'에 시달리고(?) 있다. ⓒ 이창욱
[화학과] "낙엽이 지는군, 떨켜층이 생성됐어!"
이번에는 화학과 전공생들에게 물어봤다. 태호오빠(25)는 "다른 사람들은 술 마실 때 '건배'라고 하지만 우리 과는 '에탄올 에탄올 마셔보자 알콜!'이라고 한다"며 "평소에 장난치듯 화학용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했다.
예를 들면, 유기화학 용어 중 '트랜스(trans)'와 '시스(cis)'라는 용어가 있는데 이는 각각 '다른 편' '같은 편'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평소에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비슷한 의견이 나오거나 말이 잘 맞으면 "우린 시스야", 그렇지 않으면 "우린 트랜스야"라고 말한다고 한다.
정현이(22)는 "일상의 사소한 것도 화학적 현상으로 보인다"며 "바람이 불어 낙엽이 우수수 떨어지면 '일조량이 적어져서 떨켜층이 생성됐군'하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고 했다.
[심리학과] 뒷담 듣다가 문득 '저 사람 가정환경은?'
학과 특성상 토론을 자주 하는 철학과 학생들의 전공병은 무엇일까? 철학과를 전공하는 상범 오빠(24)는 "철학과 친구들과 술을 마시면 '술을 한번 존재론적으로 마셔볼까'라고 운을 떼고, 술의 본질에 대해 토론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한 사람이 "술의 본질은 보리다"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아니다, 술의 본질은 알콜이다"라고 반박한다. 그러면 또 다른 사람이 "술은 '도수'에 따라 종류가 나뉘기 때문에 술의 본질은 도수다"라는 식으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간다고 한다.
심리학과 현나 언니(25)는 "우리 과 학생들은 사고를 많이 하는 경향이 생기고, 이해심이 많아지는 것 같다"고 했다. 언니는 "누가 다른 사람을 욕할 때에도, 그를 따라서 무턱대고 욕하기 전에 '저 사람은 무슨 가정환경이나 무슨 사고방식으로 그러는 걸까'하고 생각하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했다.
현나 언니는 "시험기간이 되면 전공병이 더 심해진다"며 "평소에 말을 하거나, 어떤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수업에서 배운 내용들이 작용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하민지 기자는 <오마이뉴스> 8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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