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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지 못한 내 동생보다 중요한 것은?

[서평] 유모토 카즈미 소설 <저녁놀 지는 마을>

등록|2008.08.13 08:36 수정|2008.08.13 08:47

<책표지>저녁놀 지는 마을 ⓒ 도서출판 바움

세 평 방에 세 사람이 살고 있었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두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들어왔다. 세 평 방에 살 수밖에 없는 세 사람은 생존을 위한 몸부림으로 세파에 시달리면서 상처투성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들은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이다. 

세 평 방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얘깃거리조차 형편없이 부족한 게 아니다. 제대로 풀어내면 끝없는 실타래고 구절양장이다. 하지만 작가는 독자들에게 실타래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게 아니다. 간결한 핵심만 들려줄 뿐이다. 그래서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면서 핵심이 주는 의미를 곱씹어 이해하고 행간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1970년대 남편과 이혼하고 아들과 함께 살아가는 엄마와 아들은 서쪽으로 서쪽으로 이사를 간다. 서쪽 하늘을 물들이는 저녁놀을 따라가듯이 가난은 끊임없이 엄마와 아들을 따라다닌다.

그러던 어느 날 짱구 영감이 완벽하게 지저분한 모습으로 찾아왔다. 머리에서 발끝까지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찾아온 게 아니라 끼어들었다. 돈을 벌어 가족들을 책임지기보다는 집에 있는 돈조차 들고 나갈 정도로 무책임했던 엄마의 친정아버지가 늙고 병들어 찾아든 것이다. 늙고 병들어 찾아든 아버지 앞에서 엄마는 두 가지 상반된 행동을 한다. 한밤중에 또각또각 손톱을 깎거나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준다.

경제 능력이 없고 병든 짱구 영감은 담배를 살 형편도 못된다. 그렇다고 담배를 끊지도 못해 외손자의 용돈에 의존해서 겨우 담배를 피운다. 잠잘 때도 편히 누워 자는 게 아니다. 벽에 기대어 잔뜩 웅크리고 잔다.

세 평 방의 가난을 온몸으로 감당하다 원치 않던 임신까지 한 딸, 그 딸에게 유산을 권해주던 아비, 늙고 병든 아비가 유산한 딸을 위해 소방서에서 양동이를 훔쳐 바닷가에서 피조개를 양동이에 가득 잡아 어깨에 메고 돌아왔다. 외할아버지의 행동을 보고 외손자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태어나지 못한 내 동생보다 중요한 것은 어머니가 입은 육체의 상처다."

유모토 카즈미 소설 <저녁놀 지는 마을>은 가족의 사랑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편한 대상이기 때문에 누구보다 거리낌 없이 대하며 살아온 사람들. 세 평 방에서 상처투성이로 살아가면서도 세 평 방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 가족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이 되어 되살아난다.

짱구 영감은 병원에서 죽는다. 가장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아버지의 역할도 하지 못한 짱구 영감의 주검 앞에서 딸은 마지막 말을 한다.

"오랫동안 수고 많으셨어요."

한밤중에 손톱을 또각또각 깎으면 부모의 임종을 지킬 수 없다는 말에도 불구하고 짱구 영감 앞에서 보란 듯이 손톱을 깎던 딸이 아비의 주검 앞에서 흐르는 세월만큼 높이 쌓아 두었던 감정을 거두어 들였다.

결코 많은 분량의 소설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식간에 휘익 읽고 말 책은 아니다. 행간에서 묻어나는 사랑의 의미가 진한 감동이 되어 다가오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유모토 가즈미 지음/이선희 옮김/도서출판 바움/2008.7.7/89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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