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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X 여승무원에 한번쯤은 귀 기울이고, 눈 마주쳐야"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강경호 신임 철도공사 사장한테 편지 보내

등록|2008.08.13 08:18 수정|2008.08.13 08:18

▲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 민주노총


"누군가 900일을 저토록 애달프게 외치면 한번쯤은 귀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군가 900일을 저토록 애절하게 바라보는데 한번쯤 눈을 마주쳐 주는 게 그게 인간의 도리 아닙니까."

이는 민주노총 부산본부 김진숙 지도위원이 신임 강경호 철도공사 사장한테 보낸 편지의 한 대목이다. 12일 부산본부는 김 지도위원이 강 사장한테 편지를 보냈다면서, 그 내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김 지도위원은 강 사장한테 보낸 편지에서 KTX 여승무원의 처지를 호소했다. 서울역에서 천막 농성하던 일부 KTX 여승무원들은 지난 7월 14일부터 부산역에서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현재까지 900일째 투쟁하고 있다.

김 지도위원은 철도공사와 인연은 없다. 단지 KTX 여승무원과 같은 해고자라는 게 같은 처지다. 그녀는 한진중공업에 용접공으로 입사했다가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전두환 정권 시절 해고되었다. 1986년 해고되어 23년간 노동운동을 해오고 있다.

김진숙 지도위원은 노동운동의 경험과 방향을 제시한 책 <소금꽃 나무>를 2007년 5월에 펴내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국방부는 이 책을 '불온서적'에 포함시키기도 했다.

"KTX 여승무원 동지들이 천막농성을 하는 부산역엘 다녀오고 잠을 잘 못 잤습니다"고 한 그녀는 "900일 그들이 싸우는 공간이 주로 서울이었기 때문에 피하면 굳이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어 있었습니다"고 소개.

김 지도위원은 "거의 900일 만에 다시 만난 그들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면서 "900일의 잔인한 시간이 그들로부터 제일 먼저 앗아간 건 웃음일 겁니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진숙 지도위원의 강경호 철도공사 사장한테 보낸 편지 전문이다.

제가 KTX 여승무원 동지들이 천막농성을 하는 부산역엘 다녀오고 잠을 잘 못 잤습니다. 900일 그들이 싸우는 공간이 주로 서울이었기 때문에 피하면 굳이 마주치지 않을 수 있는 거리가 확보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그들이 서울역에서 천막농성을 할 때도 여러 번 그들의 곁을 스쳐 지나다니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천막을 들쳐서 아는 척을 하기엔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었습니다.


몇 번이나 머리채가 잡히고 사지가 번쩍 들려 연행되었던 그들에게 그동안 안녕하셨냐고 물어야 하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어야 하나. 그들 중에는 부산이 집인 사람도 상당수 인데 푹신한 잠자리가 얼마나 그리울까. 엄마가 해주는 밥이 얼마나 먹고 싶을까.

그런 그들을 천막에 남겨두고 저혼자 집에 가겠다고 신발을 신고 나올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았습니다. 그런 생각에 부대끼다 결국 먼발치에서 끝내 돌아서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신문 한줄 못 읽고 내내 창밖만 내다보곤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산역에 천막을 쳤다는 소식을 듣고는 뭘 해도 마음이 편칠 않았습니다.

거의 900일 만에 다시 만난 그들은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그이들 해고되고 막 투쟁을 시작할 무렵에 만났던 그들은 산만했으나 참 반짝거렸습니다. 별 거 아닌 말에도 수십명이 밀물에 밀리는 자갈처럼 까르르 웃고 20대 여성들 수백명이 뒤섞인 농성장은 신록이 우거진 유월의 숲속처럼 싱그러웠고 푸르렀습니다.

농성장의 그 불편한 생활가운데도 틈만 나면 화장실 가서 화장 고치고 옷매무새 가다듬고 하루에도 몇 번씩 머리를 묶었다 풀었다 틈만 나면 휴대폰 거울을 보기 바빴습니다. 한달을 농성장에서 뒹굴어도 거울이 어디있는지도 모르는 저 같은 선수들 눈에 그들은 좀 한심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저러고 얼마나 갈래나' 걱정도 됐구요.

400여명이 둘러앉아 그 당시 한참 유행했던 십자수에 정신들이 팔려 있더군요. 휴대폰 고리 하나 만들면 끝날 거라 생각했던 투쟁이 책갈피로 이어지고 쿠션을 몇 개나 만들고 액자를 만들고 세계지도를 완성할 때까지도 싸움은 안 끝났고 40여명 남은 그들은 이제 아무도 십자수를 놓지 않습니다. 900일의 잔인한 시간이 그들로부터 제일 먼저 앗아간 건 웃음일 겁니다.

대신 습관적으로 한숨을 쉬었고 한숨을 쉴 때마다 영혼이 한줌씩 사그라들었던 건지 눈빛도 어깨도 한뼘씩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그 천막농성장 곁을 빨간 유니폼을 입은 여승무원들이 지나치더군요. 승객들은 오히려 호기심 때문에라도 가까이 지나치며 일별이라도 하는데 그들은 동선을 길게 잡아 저쪽으로 가면서 애써 시선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한때는 같이 밥을 먹고 같이 일을 하고 같이 웃기도 하고 그리고 투쟁이라는 난생처음의 산을 함께 넘었던 사람들 사이에 그렇게 머나 먼 거리가 생겨버린 겁니다. 생계문제 때문에 혹은 패배감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현장에 복귀한 사람들에게도 죄책감으로 혹은 열패감으로 상처는 오래 남겨 지겠지요.

잠시 천막에 앉아 있는 제 귀에도 천막을 스쳐가며 하시는 승객들의 얘기가 비수처럼 와서 박혔습니다. "야들 안죽도 이라고 있나?" 그이들은 도대체 하루에 그 얘기를 몇 번이나 들을까요.

같이 앉아 늦은 저녁을 먹는데 별 것도 아닌 제 얘기에 한 사람이 웁니다. 서울역 앞에서 일인시위를 하는 걸 본적이 있는데 피켓을 들고 왜 얼굴을 가리고 있냐는 제 철딱서니 없는 질문 때문이었습니다.

수백대 일의 경쟁률을 뚫고 승무원이 되었을 때 얼마나 자랑스러웠겠습니까. 원서를 내놓고 얼마나 무수한 시간들을 설레임으로 지새웠겠습니까. 마침내 합격통보를 받고 마침내 세상을 다 얻은 듯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그 행복이 무참히 깨지는 데 3개월 혹은 1년.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이 천리나 남아있고 아직 도달해보지도 못한 미래가 만리나 남아있는데 '귀하는 *월 *일 부로 해고되었습니다.' 문자메세지 하나가 도착을 하고 그날 이후 꿈도 청춘도 희망도 밥 먹고 잠자고 친구 만나서 수다 떠는 그 평범한 일상들이 그 자리에서 일제히 멈춰서버린 겁니다. 그렇게 멈춰선 시간이 900일입니다.

피를 말리고 청춘을 말리고 자존심을 말리고 존재감마저 바싹 말라 바스라져버린 잔인무도한 시간이 900일입니다. 이 투쟁에 앞장서면서 이름이 알려지고 텔레비전에 얼굴이 비쳤던 사람들은 이미 다 떠났습니다. 저런 사람이 있었나 싶은 사람들만 남았습니다.

저들이라고 왜 가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어디가서 뭘 하고 살더라도 천막농성을 하고 단식농성을 하는 것 보단 낫지 않겠냐는 생각이 왜 안들었겠습니까. 어느 직장을 가더라도 하루에도 몇 번 씩 울게 만드는 여기보다 나을 거란 생각이 왜 없었겠습니까.

한 사람이라도 남아 천막을 지키는 한 저들은 떠날 수가 없는 겁니다. 우리가 옳다는 진실이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데 어디로 떠나야 한단 말입니까. 900일을 저러고 있는 딸내미를 하루에도 몇 번씩 억장이 무너지고 천불이 치밀어 오르지만 속수무책으로 지켜봐야 하는 부모님들의 마음은 어떻겠습니까.

누군가 900일을 저토록 애달프게 외치면 한번 쯤은 귀 기울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누군가 900일을 저토록 애절하게 바라보는데 한번 쯤 눈을 마주쳐 주는 게 그게 인간의 도리 아닙니까.

제가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지 올해로 23년쨉니다. 해고자가 죽거나 제 자리로 돌아가지 않는 한 해고자 문제는 절대 해결되지 않습니다. 한진중공업에선 올해도 해고자복직문제로 적잖은 진통을 겪었습니다. 이제 40여명 남은 사람들도 시간이 흐르면 떨어져 나갈 것이고 그러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생각은 버리십시오.

60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기륭전자 노동자는 46K 몸무게가 35K 남았답니다. 34K 33K 32K…. 그렇게 하루하루 바닥이 나면 천막농성장을 함께 지키는 관에 담기겠지요. 노동자들이 때때로 목숨을 거는 건 그들의 목숨이 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남은 게 그것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사장님에게도 자식이 있을테고 저들에게도 부모가 있을진대 굽이굽이 서러워 하루에도 몇 번씩 주저앉고 싶은 이 길을 얼마나 더 가게 해야 겠습니까. 악몽인 듯만 싶은 이 무섭고 믿을 수 없는 날들이 얼마나 더 이어져야 겠습니까. 그만 울게 하십시오. 그만 숨게 하십시오. 제발 이제 그만 하십시오.

그리고 새파랗게 질린 채 오돌오돌 떨고 있는 민주주의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와 땟국물 흐르는 민주주의를 깨끗이 씻기고 새 옷을 입혀주신 촛불 여러분. 권력에 주눅들지 않아 사심없는, 눈밝은 아이들에 의해 켜진 촛불이 100일 쨉니다. 10년 후 닥칠 광우병의 공포로부터 생명을 지키기 위해 우린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공포는 당장 860만의 이 나라 노동자들이 당하는 생존의 위협입니다. 이 땅에 비정규직이 존재하는 한 우리 모두에겐 두 가지 선택만 남겨집니다. 언제 짤릴지 모르는 노동자와 이미 짤린 노동자. 비정규직은 신자유주의를 정직하게 비추는 불편한 거울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불편함이 아니라 불편함에 익숙해지는 것입니다. 거짓말 정권이 들어서니 기상청마저 거짓말을 밥먹듯이 합니다. 결국 기상청 야유회가는 날 비왔답니다. 무능함을 거짓말로 덮다보면 지발등 지가 찍게 돼있습니다.

어젠 KBS에 공권력이 투입되었습니다. 머리는 없고 주먹만 남은 정권의 말로가 어떠했는지를 저는 여러차례 목격했습니다. 당장 보기엔 우리가 밀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는 결코 거짓말 하지 않습니다. 역사는 힘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진실에 의해 움직여갑니다. 파르르 스러져 가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촛불을 여러분들이 함께 지켜주십시오. 그게 우리의 미래와 아이들의 미래를 지키는 길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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