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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 실종사건을 어떻게 해결할까

[신간] 스티그 라르손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등록|2008.08.13 09:12 수정|2008.08.13 09:45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겉표지 ⓒ 아르테


스웨덴 작가 스티그 라르손(Stieg Larsson)의 2005년 작품 <밀레니엄: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은 무척 독특한 범죄소설이다.

이 소설은 북유럽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국가 스웨덴이 배경이다. 잔혹한 범죄와는 거리가 멀게 느껴지는 복지국가 스웨덴에서는 어떤 범죄가 있을까.

독특한 것은 공간적 배경이 아니라, 작품의 소재가 되는 사건과 그 사건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스티그 라르손이 이 작품을 쓴 것은 40대 후반이었고, 그때까지 그는 기자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장르문학 마니아이기도 했다.

작가는 그동안 자신이 읽어왔던 수많은 장르소설과는 차이가 있는 색다른 범죄소설을 써보자, 라고 다짐했는지도 모른다. 그 결과로 <밀레니엄>이라는 당당한 제목처럼, 새로운 천년의 초반을 화려하게 장식할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낸 것이다.

작품 속에서 '밀레니엄'은 1990년에 창립된 스웨덴의 시사경제 월간지의 이름이다. 주인공 미카엘 블롬크비스트는 이 잡지사에서 편집주간으로 근무한다. 40대 초반의 이혼남이고 16살 된 딸이 하나 있다. 자신의 원칙을 따르는 정직하고 완고한 인물이기도 하다.

난해한 제안을 받는 경제기자 미카엘

그가 세워둔 원칙이란 것은 기자의 역할에 대한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경제기자의 임무는 자본가들을 감시하는 일이다. 터무니없는 투기로 회사재산을 날린 임원은 그 자리에서 쫓겨나야 한다. 사리사욕을 위해 유령회사를 만든 사장은 감옥에 들어가야 한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런 태도 때문에 미카엘은 다른 언론사의 기자들과, 또는 자본가들과 여러차례 부딪친다. 명예훼손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고 감옥에 들어가기도 한다. 그런데도 미카엘은 자신의 원칙을 버리지 않는다. 말하자면 그는 자본이라는 풍차를 향해서 펜을 들고 돌진하는 현대판 돈키호테 같은 인물이다.

이런 미카엘에게 은퇴한 재벌 총수가 한 가지 제안을 해온다. 자신의 집안 연대기를 정리해서 책으로 집필하고 동시에 40여년 전에 실종된 손녀의 행방을 조사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재벌 총수는 1년간 미카엘의 삶을 사고 싶다면서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다.

1년 동안 노력하는 대가로 약 4억원을 지급하고, 실종사건 조사를 성공적으로 끝낼 경우 4억원을 더 주겠다는 것이다. 스웨덴이 잘사는 나라인만큼 물가도 비쌀테지만, 이 정도 조건이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은 심사숙고 해볼 것이다.

미카엘도 생각해보지만 성공할 가능성은 극히 적게 느껴진다. 40년 전에 있었던 실종사건을, 이제 와서 어떻게 다시 추적한다는 말인가. 당시에 수많은 경찰들이 수사하고 수색했는데도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면, 일개 기자가 이에 대한 진상을 지금에 와서 밝힌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사회부적응자처럼 보이는 리스베트

<밀레니엄>에는 또 한 명의 주인공이 있다. 24살의 여성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그 인물이다. 리스베트는 미카엘과는 대조적이다. 얼굴에는 항상 요란한 화장을 하고 다니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튀는 옷차림에 온몸에는 문신과 피어싱 투성이다.

외모처럼 그녀의 성격도 이상하기만 하다. 누구의 말도 들으려 하지 않고, 누구와도 대화하려 하지 않는다. 보안업체에 속해서 근무하지만 회사의 근무시간과 시스템을 노골적으로 무시한다. 대신에 자신이 맡은 일 하나는 똑부러지게 해낸다. 컴퓨터를 천재적으로 다루고 두뇌회전이 빠르다.

미카엘을 고용한 재벌총수는 리스베트에게도 일거리를 던져준다. 바로 미카엘의 뒷조사를 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사람은 서로 만나고 우여곡절 끝에 힘을 합치게 된다. 함께 실종사건을 조사하지만 처음부터 첩첩산중이다.

재벌 집안의 사람들은 그다지 협조적이지 못하고, 왠지 이 집안사람들 사이에는 결속력이나 애정이 없어 보인다. 조사의 범위를 확대해보니까 스웨덴에서 잔인하게 살해된 젊은 여성들의 숫자가 눈에 띄게 늘어난다. 이 일련의 살인사건들은 서로 연관된 것일까?

소설을 통해 바라보는 스웨덴의 모습

<밀레니엄>은 잔혹한 범죄를 추적하면서 동시에 먼 나라 스웨덴의 풍경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여준다. 재벌가의 집안은 '콩가루'처럼 변해 버렸고 한 갑부는 부정적인 방법으로 거액의 돈을 챙기려고 한다.

정신적 장애를 갖고 있는 사람들을 돌봐주는 후견인 제도는 또다른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 것 같다. 스웨덴의 감옥은 우리나라의 감옥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많은 차이가 있고, 2차대전때 나치에 협력했던 사람들은 아직도 유대인을 증오하고 경멸한다. 그리고 스웨덴 여성들은 살면서 한 번쯤은 남성으로부터 폭행의 위협을 당한다.

리스베트는 이런 폭력적인 관습이 만들어낸, 자기보호본능으로 똘똘 뭉친 극단적인 여성이다. 반면에 미카엘은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고 사회당 당원으로도 활동했던 작가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공통점이 없는 것만 같은 이 두사람이 서로 위태롭게 마주하고 있는 장면은 사건을 추적하는 것 못지않게 긴장과 재미를 던져준다.

이 작품은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밀레니엄 시리즈'의 첫 번째다. 스웨덴이라는 낯선 공간에서 벌어지는 흥미로운 사건, 그것을 풀어가는 개성적인 인물들이 적절히 뒤섞인 소설이다. <밀레니엄>이 북유럽 최고의 추리문학상인 '유리열쇠상'을 비롯해서 수많은 상을 휩쓴 것은 우연이 아니다.
덧붙이는 글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스티그 라르손 지음 / 임호경 옮김. 아르테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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