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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87)

― ‘엄마의 젖’, ‘엄마의 말’, ‘엄마의 얼굴’ 다듬기

등록|2008.08.13 11:04 수정|2008.08.13 11:04

ㄱ. 엄마의 젖

.. 엄마 젖은 어떤 맛일까 너무 궁금하고 정말 맛있을 것도 같아요. 엄마의 젖을 마땅히 먹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  《<원희-아기에게서 온 편지>(내,2006) 115쪽

 “너무 궁금하고”는 “참 궁금하고”나 “몹시 궁금하고”로 다듬어 주는 편이 낫습니다. 뒤이은 “정말(正-) 맛있을”은 앞말과 이어 “참 궁금하고 맛있을”로 다듬고요. ‘-ㄹ 것도 같아요’라는 말투가 요즘 들어 널리 쓰이는데, ‘맛있겠지요?’처럼 끝막음하거나 ‘맛있으리라 생각해요’처럼 끝막으면 어떨는지요. ‘당연(當然)히’를 안 쓰고 ‘마땅히’로 쓴 대목은 반갑습니다.

 ┌ 어미젖 (o)
 ├ 엄마젖 (o)
 ├ 어머니젖 (o)
 │
 └ 엄마의 젖 (x)

 아기를 낳은 어머니가 자기 젖을 먹이는 일은 마땅하고 자연스러웠습니다. 그렇지만 서양 문물이 들어오면서 어미소가 새끼소, 그러니까 송아지한테 먹이는 소젖을 먹이는 문화가 들어오고, 소젖이나 가루젖을 아기들한테 먹이게 되었습니다. 아마, 이렇게 먹여야 아이들이 더 무럭무럭 자란다고 생각했겠지요.

 요즘은 사람 아기한테 가장 좋은 젖은 어머니젖이라고 새삼 깨닫는 분이 늘면서, ‘엄마젖 먹이기’를 운동처럼 벌이기도 해요. 이러는 가운데 제법 널리 퍼지는 말이 ‘엄마젖’입니다. 예전부터 ‘어미젖’이라는 말도 썼지만, ‘어미젖’은 사람이 아닌 짐승들한테나 쓰는 말처럼 여기기도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말 ‘어미젖’을 쓰면 미친놈처럼 여기고 ‘모유(母乳)’라고 자꾸 써 왔지 싶은데요, 그동안 써 온 ‘어미젖’도 살리면서 ‘엄마젖’과 ‘어머니젖’을 함께 쓰면 좋겠어요. 그러면 우리 스스로 우리 낱말에 잘못 품는 생각이나 치우친 생각도 씻을 수 있습니다.

 아기한테는 아기가 가장 좋아할 어미젖, 또는 엄마젖, 또는 어머니젖을 먹입니다. 우리들은 우리 삶에 가장 알맞을 우리 말을 씁니다.


ㄴ. 엄마의 말

.. 엄마의 말에 따르면 내가 어렸을 때는 김치를 곧잘 먹었다고 한다 ..  <린다 수 박/최인자 옮김-뽕나무 프로젝트>(서울문화사,2007) 9쪽

 “엄마의 말에 의(依)하면”처럼 쓰지 않고 ‘따르면’을 쓰니 반갑습니다만, “(누구)의 말에 따르면”처럼 쓰는 말투는 우리 말투가 아닌 번역 말투입니다. 여기에다가 토씨 ‘-의’를 붙인 대목이 아쉽습니다.

 ┌ 엄마의 말에 따르면
 │
 │→ 엄마가 말하길
 │→ 엄마가 말하는데
 │→ 엄마가 하는 말을 들으면
 │→ 엄마는 (무엇무엇이라고) 말한다
 └ …

 “아빠가 말하길”이나 “누나가 말하는데”처럼 써도 되고, 말차례를 크게 다듬어, “엄마는 내가 어렸을 때는 김치를 곧잘 먹었다고 말한다”처럼 적으면 한결 낫습니다.

 보기글을 쓴 분은 미국에서 미국말로 문학을 하는 분입니다. 번역은, 옮겨서 읽는 나라 사람들 문화와 삶에 맞추어야 하는 만큼, 어설픈 말투에 매이지 말고 우리 말투와 말씨를 잘 헤아리며 담아내면 고맙겠습니다.


ㄷ. 엄마의 당황한 얼굴

.. 거울 속에서 엄마의 당황한 얼굴이 움직였다 ..  <스에요시 아키코/이경옥 옮김-별로 돌아간 소녀>(사계절,2008) 21쪽

 “거울 속에서”는 “거울을 보니”나 “거울에”로 손봅니다. ‘당황(唐慌)한’은 ‘어쩔 줄 몰라 하는’이나 ‘허둥지둥하는’으로 손질합니다.

 ┌ 엄마의 당황한 얼굴이 움직였다
 │
 │→ 엄마 얼굴이 당황해 하며 움직였다
 │→ 어쩔 줄 몰라 하는 엄마 얼굴이 움직였다
 │→ 엄마가 허둥지둥하는 모습이 보였다
 │→ 엄마는 무척이나 허둥지둥했다
 └ …

 어머니 얼굴, 아버지 얼굴, 누나 얼굴, 언니 얼굴, 동생 얼굴, 할아버지 얼굴, 할머니 얼굴, ……이지만, 사이에 토씨 ‘-의’를 붙여서 “어머니의 얼굴”이나 “할머니 얼굴”처럼 쓰는 분이 퍽 많습니다.

 ┌ 어머니가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 (o)
 └ 어머니의 당황해 하는 얼굴 (x)

 한 번 잘못 붙여 버릇하던 토씨는 다른 말씨와 말투로 번집니다. 처음부터 잘못 쓰던 말투나 말씨는 아니었을 터이나, 한 번 쓰고 두 번 쓰고 세 번 쓰는 동안 시나브로 손에 익고 귀와 눈에도 익숙해집니다.

 한 번 잘못 붙였을 때 스스로 못 느꼈다면, 둘레에서 바로잡아 주거나 다잡아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둘레에서 바로잡아 주는 손길이 없었다면, 오래도록 굳어가다가 끝내 돌이키지 못할 만큼 뿌리내리기까지 합니다.

 ┌ 허둥지둥하는 엄마 얼굴이 보인다 (o)
 └ 허둥지둥하는 엄마의 얼굴이 보인다 (x)

 말하기와 글쓰기뿐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누구나 잘못을 저지를 수 있습니다. 때때로 엇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잘못을 저지르거나 엇나갔을 때, 따순 손길로 껴안아 주거나 다독여 주는 사람이 없다면, 외려 지나치게 꾸짖거나 다그치기만 한다면, 뿔난 마음에 더 뿔이 돋으며 마구잡이로 비뚤어지기도 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원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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