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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과 인간 99] 사람이라면 독립운동을 할 수밖에...

김갑수 항일역사팩션 제2편 '중경에서 오는 편지'

등록|2008.08.13 14:20 수정|2008.08.13 14:20
섬진강변의 김영세

늦은 오후가 되면서 구름이 차츰 두꺼워지고 있었다. 구름 밑에는 야트막한 야산, 그리고 야산 사이로는 진록색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김영세는 평사리 한산사에서 섬진강 하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벌써 그는 여러 시간째 그 강을 보고 있었다.

섬진강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려운 강이었다. 그저 보는 것으로 끝나야 되는 강이었다. 빠른 여울이 있는 화려한 강도 아니었고 도도하게 흐르는 대하는 더더구나 아니었다. 섬진강은 얕은 수심과 부드러운 모래와 둑길의 수풀과 함께 온건히 움직이는 강이었다. 섬진강은 이를테면 인간의 표정과 같이 흐르는 강이었다.

김영세는 걸음을 떼었다. 아주 오랫동안 우두커니 서서 강만 하염없이 내려다본 그는 강변 아래로 발걸음을 옮겼다. 강변에는 이름 모를 꽃들이 가득했다. 지리산에서 골을 타고 내려오는 선들바람이 남쪽에서 밀려오는 열기를 다소나마 식혀 주고 있었다. 바람은 기관지가 나쁜 그의 숨을 가쁘게 만들었지만, 강변의 무더기 진 꽃들에는 더 할 나위 없이 청량한 촉감이 되어 주고 있었다.

무릇 여름 더위는 강물을 느릿느릿 풀어 놓는 법, 김영세는 완연히 흰빛인 강펄을 보며 눈을 찡그렸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는 미소가 머금어 있었다. 하얀 강펄 위에서 정화의 얼굴이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강펄 너머의 한 가닥 산은 멀어질수록 많아져서 백 가닥 천 가닥의 산맥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이른바 첩첩산중, 그는 마이산과 백운산에 눈길을 두었다. 산은 강물에 그림자를 드리우면서 꿈같은 초가 마을을 자락에 품고 있었다.

낙조청강(落照淸江), 석양강두(夕陽江頭)란 말처럼 저녁의 강은 모두 아름답다고 했다. 하지만 섬진강은 유독 물녘이 더 아름답다고 했다. 강심에서 물오리 서너 마리가 우스꽝스럽게 뛰어가더니 마침내 물을 박차고 오르는 모습을 보며 김영세는 다시 미소를 머금었다. 아름다운 풍경이란 유별난 게 결코 아니었다. 그저 있어야 할 것들이 있고, 그것들이 제자리에 있는 자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승경(勝景)이었다.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고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이 끊이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따라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 꽃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준다.
김용택, <섬진강· 1>에서

어느새 구름이 하늘의 빈자리마저 모두 덮었고 이제는 이슬비가 내리고 있었다. 김영세는 이름 없는 주막에 앉아 뿌연 안개가 가득 찬 섬진강을 내려다보며 은어회로 안주를 삼아 탁주 사발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는 조카 문수를 걱정하고 있었다. 조카는 제 아비를 닮았음인지 식민지 현실에 전혀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김영세는 고향 고창에 다니러 간 김에 더 내려가 섬진강까지 이른 것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지키고 있었던 조상의 땅을 팔기로 했다. 그래서 그 돈으로 조카의 유학 자금을 보태려 하고 있었다.

정화가 빼 놓고 간 가락지

한편 아리랑고개의 김문수는 조순호를 생각하고 있었다. 벌써 그는 1년 가까이 직업 없이 지내고 있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기까지 내내 그는 만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 시대에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독립운동밖에 없다는 생각을 굳혀 가고 있었다. 그는 은밀하게 만주 독립군에 가는 방법을 알아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가기 전 조순호를 한 번 만이라도 만나고 싶었다.

작년 겨울 조순호는 북해도 홋카이도 국립대학에 유학을 떠났다. 김문수는 그래도 조순호가 떠나며 한 번쯤은 연락해 주겠거니 하고 내심 기다렸었다. 그러나 그녀는 아주 무정하게 흔적도 없이 가 버리고 말았다. 그는 여름 방학을 기다렸다. 부잣집 딸이니 방학이 되면 조순호가 조선에 올 거라고 생각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조순호를 보고 싶었다.

그런데 웬 여자가 김문수의 집에 찾아왔다. 김문수는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었다. 그는 한 번 보았던 사람을 다시 보게 되면 금세 알아차리는 법이 거의 없었다. 그는 찾아온 여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마터면 그의 입에서, ‘누구시더라?’ 라는 말이 나갈 뻔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찾아온 사람에게 큰 결례가 되는 말이기 때문이었다.

“들어오시지요.”

김문수는 그녀에게 알은 체를 하며 예의를 차렸다. 분명히 그녀가 구면인 것만은 틀림없었다.

“도련님, 저 정환 줄 아시지요?”

그제서야 김문수는 황망히 허리를 굽혀 그녀에게 절을 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김문수는 온갖 몸짓을 다하며 최대한으로 반가움을 표시했다. 정화는 수줍게 웃으며 대청으로 올라왔다.

“삼촌은 시골에 좀 다니러 가셨는데요.”

정화는 섭섭함과 동시에 어떤 안도감 같은 것을 느꼈다.

“그저 안부가 걱정되어 들렀습니다.”
“삼촌은 편지를 무척이나 기다리셨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사실은 그동안 제가 국내에 있어서 상해 소식을 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 국내에 오신 지 오래 되셨군요?”

정화는 국내에서 지냈던 자기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제 상해로 영구히 떠나며 한 번 뵙고 싶었을 따름이라고 말했다.

“조국이 독립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으려고 합니다.”

김문수는 가슴이 저리고 부끄러웠다. 그는 정화에게 자기도 독립운동을 하러 떠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부친 함자가 영 자, 호 자인데 어디에 계신지조차 모른다고 말했다.

“제가 상해에 가서 수소문을 한 번 해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삼촌은 워낙 방랑기가 있는 분이라서 언제 오실지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삼촌이 안 계시더라도 괜찮으시다면 하룻밤이라도 편히 묵고 가시지요.”

정화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안부 전해 주시고요. 저도 장담할 수는 없지만 가능하면 편지를 드리겠다고 말씀해 주십시오.”

그녀는 손가락에서 가락지를 빼냈다.

“선생님께 전해 주세요. 지난 번 선물의 답례를 드리고 싶었다고요.”

김문수는 가슴이 다시 저리고 아팠다. 그는 아무 말을 못하고 고개만 주억거렸다. 김문수는 아리랑고개 너머 돈암동까지 정화를 배웅했다. 돌아온 그는 다시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덧붙이는 글 식민지 역사를 온전히 청산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쓰는 소설입니다. 필자 김갑수는 최근 장편소설 <오백년 동안의 표류>(어문학사)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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