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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부시 손잡고 기도'라 쓰면 국익손상? 도를 넘어선 청와대의 '사후 비보도' 요청

이 대통령의 거듭되는 '실언'... 청와대 '엠바고' 남발로 감추기 급급

등록|2008.08.14 17:17 수정|2008.08.14 17:17

▲ 12일 건국60주년 국외 이북도민 초청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이명박 대통령.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에서 쇠고기 먹던 사람들이 시위에 참가했다"고 말한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다. ⓒ 청와대


'사후 비보도(오프 더 레코드)' 요청을 남발하며 언론 보도를 통제하려는 청와대의 행태가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청와대가 지난 12일 "시위한 사람들은 미국에서 미국산 쇠고기를 먹던 사람들"이라며 촛불집회 참석자들을 폄훼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은폐하려고 했던 사실이 드러나면서 비난 여론이 고조되고 있는 것.

청와대는 풀(대표취재) 기자에게 이 대통령의 촛불집회 폄훼 발언을 빼달라고 종용하는가 하면, 풀 기자가 취재해서 전달한 자료에서 임의로 이 대통령의 발언을 삭제했다가 기자들의 항의를 받고 뒤늦게 수정했다.

"대통령 컴퓨터 '비번' 몰랐다" 발굴, 청와대 '사후 비보도' 덕?

사후 비보도 또는 엠바고(보도유예)를 통한 청와대의 언론 통제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청와대의 '사후 비보도' 시도는 기자단을 대표해 이 대통령이 참석하는 행사 등을 취재하는 풀 기자를 대상으로 빈번하게 이뤄지고 있다.

풀 취재를 하는 기자가 통상 2~3명 정도이기 때문에 청와대로서는 이들만 '통제'하면 비교적 쉽게 '비보도' 조치를 할 수 있다. 청와대가 이 대통령의 촛불집회 폄훼 발언 은폐를 시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실제 지난달 1일 이 대통령이 충청북도 업무보고를 받기 위해 충주를 방문하고 돌아올 때, 대통령 경호상 일반인의 접근이 통제된 충주역에 한나라당 당원·지지자 200여명이 몰려왔다. 이들은 "MB, 힘내세요"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촛불정국으로 위기에 몰려 곤욕을 치르고 있던 이 대통령을 응원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당시 이 대통령의 충북 방문을 동행취재한 풀 기자들에게 '당원 및 지지자들에 대한 기사를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한 상황에서 부정적인 여론을 상쇄하기 위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사전에 사람들을 동원했다는 오해를 받을 것이 우려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결국 이 내용은 언론에 보도되지 못했다.

지난 4월 열린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도 청와대는 보도 통제에 나섰다. 당시 회의에 앞서 가진 티타임 자리에서 이희범 무역협회장은 "이 대통령이 김원웅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고맙다'는 말을 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민주당 소속인 김원웅 위원장이 "한미FTA 비준안을 17대 국회에서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한 것에 대해 이 대통령이 감사의 뜻을 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당시 행사를 취재한 풀 기자에게 이희범 회장 발언을 빼달라고 종용했고, 실제 전체 기자들에게 전달되는 취재자료에서는 관련 내용이 빠졌다. 이 대통령이 전화를 건 사실은 나중에 김원웅 위원장의 입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다. 

정권 출범 초기 '이명박 대통령이 비밀번호를 몰라서 청와대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나와 대통령을 '웃음거리'로 만든 단초를 제공한 것이 청와대의 무분별한 '사후 비보도' 조치였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 대통령은 "청와대 들어온 뒤,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았고, 컴퓨터를 다시 작동하는 데 열흘이 걸렸다"고 토로했다. 전 정권과의 업무 인수인계가 제대로 안됐다는 점을 지적하는 취지였다.

문제는 청와대가 당시 행사를 취재한 풀 기자에게 이 대통령의 컴퓨터 관련 발언을 빼달라고 요구하면서 시작됐다. 청와대의 '비보도' 요청을 이상하게 생각한 풀 기자가 후속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대통령 부속실이 대통령에게 컴퓨터 패스워드를 뒤늦게 전달한 정황을 인지하게 된 것이다.

▲ 정권 출범 초기 '이명박 대통령이 비밀번호를 몰라서 청와대 컴퓨터를 사용하지 못했다'는 보도가 나와 대통령을 '웃음거리'로 만들기도 했다. ⓒ 청와대


전방위적으로 자행되고 있는 '사후 비보도' 행태

청와대의 '사후 비보도' 요구는 풀 취재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대통령의 기자간담회, 대변인 브리핑 등 전방위로 자행되고 있다.

지난 4월 일본을 순방중이던 이 대통령은 동행취재 기자들과 조찬간담회를 열고, 방미·방일 성과와 소감 등을 피력했다. 1시간여 동안 진행된 이날 간담회가 끝난 뒤, 청와대는 기자들에게 무려 4가지 사안에 대해 '비보도'를 요청하고 나섰다. 청와대가 비보도를 요청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다음과 같다.

"도시 근로자가 세계에서 가장 값비싼 쇠고기를 먹는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된다. (쇠고기 협상은) 도시 근로자들이 질 좋은 고기를 값싸게 먹도록 한다는 점도 도움이 된다."
"오바마와 힐러리도 선거 때문에 한미FTA를 반대하는 것이지, 미국 대선이 끝나면 찬성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가) 동남아, 아프리카 (국가를) 깔보는데… (우리나라의) 국력도 많이 높아졌다고 생각했다."
"부시 대통령이 내 손을 잡고 기도하자고 하더라. 굉장히 축복을 많이 해줘서 나도 깜짝 놀랐다."

청와대는 '사안의 민감성'을 들어 이 대통령의 발언을 기사로 쓰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지만, 누가 봐도 국익과는 무관한 발언들이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3일 청와대 춘추관(출입기자실)을 방문, "일본도 위대한 지도자가 나오면 독도 문제가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한 발언에 대해 청와대가 '비보도'를 요청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시 이 대통령이 "위대한(큰) 지도자"라는 말을 3차례나 반복한 것은 즉흥적으로 한 실언이 아니라 나름대로 언론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의지가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 설사 이 대통령이 무심코 뱉은 '실언'이라고 하더라도, 평소 생각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이 알아야 하는 내용인데도, 청와대는 또 다시 명확한 근거도 없이 보도 통제에 나선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이 대통령의 '위대한 지도자' 발언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청와대 출입기자단으로부터 '출입정지 2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청와대의 '기사 삭제 압박'은 만천하에 공개돼 망신을 사기도 했다.

지난 5월, 김연세 당시 <코리아타임스> 기자는  전국에 생중계되고 있던 한승수 국무총리의 '한미 쇠고기협상' 대국민담화 발표 이후 질의응답에서 "미국을 순방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국보다 먼저) 한미 쇠고기 협상 소식을 전한 뒤 참석자들이 박수를 친 사실에 대해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비보도'를 요청했다"고 폭로했다.

김 기자는 이후 청와대 청와대 출입기자단으로부터 '출입정지 1개월' 징계를 받았고, 복귀한 뒤 보직이 바뀌자 결국 다니던 회사에 사표를 냈다.

▲ 춘추관에서 브리핑을 마친 뒤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는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 연합뉴스 박창기


"대통령의 경박한 말, 내버려 두는 참모진도 문제"

김창룡 인제대 언론정치학부 교수는 "안보나 국익의 손상이 현저하게 예상되거나, 국가 기밀사항의 누설이 예상되면 비보도를 존중해줘야 하지만 대부분 말 실수나 외부로 알려지면 곤란한 내용에 대해 비보도가 이뤄지고 있다"며 "사전에 서로 합의된 상태가 아닌 사후에 일방적인 비보도 요구는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창룡 교수는 청와대의 '사후 비보도' 남발의 근본 원인을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찾았다. "이 대통령이 대통령에 걸맞은 사고나 행동, 말을 하지 않는 것이 근본 문제"라며 "대통령의 경박한 말을 하게 내버려 두는 참모진의 행태와 시스템도 문제가 있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청와대에 언론계 출신 인사들이 많다는 점도 우려했다. 김 교수는 <동아일보> 출신인 이동관 대변인이 <국민일보> 편집장에게 전화해 자신의 땅투기 의혹과 관련한 기사 삭제를 요구한 사례를 언급하며 "청와대에 들어간 폴리널리스트(정치인+언론인)들은 언론계 후배들과 커넥션이 잘 돼 있고, 언론을 통제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구조를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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