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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는 여행이 주는 선물이자 마법!

967일의 여행기록 <길은 사람 사이로 흐른다>

등록|2008.08.16 12:51 수정|2008.08.16 12:51
실평수로 채 10평이 안 되는 임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김향미·양학용 부부. 가끔 이웃에서 그들의 집을 들여다보고는 "이 집은 왜 이리 넓어 보여요?"하고 묻는단다. 이유는 간단 명료. 이불장도 텔레비전도 없고, 냉장고도 식탁도 아담해서라고 한다. 배낭 두 개에 비하자면 10평 아파트도 무지 넓기 때문이다.

967일 동안 배낭 두 개에 살림살이를 메고 살았던 장기 여행자들은 돌아온 후에도 여전히 여행자의 모습이다. 부럽다. 좁은 집에서 넓게 사는 여유와 10년 전 약속을 지켜낸 부부여서 아주 부럽다. 신혼 초에 했던 약속을 전세금을 몽땅 털어 지킬 수 있는 용기 충전된 부부가 몇이나 될까?

▲ 김향미, 양학용 부부가 967일 동안 만난 사람들 이야기 ⓒ 예담



캐나다 식당에서 만난 일곱 나라 사람들

일용할 여행 기술 소개는 많지 않고, 사람 이야기만 수두룩한 이 책에는 읽다가 눈물을 찔끔 저리게 되는 대목이 몇 개 나온다. 캐나다에서 양학용씨가 4개월간 불법 노동자로 일했다는 '이스트 이즈 이스트'는 식탁 10개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게.

이곳에 세계 7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있다. 주인 자매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왔다. 억척스럽게 돈을 모으는 언니와 마음씨 따뜻한 동생의 꿈은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폐허 위에 학교를 세우는 것.

부시가 재선에 성공한 날, '미국인들이 한 번이라도 아프가니스탄에 와 본 적이 있다면 그런 결과는 없었을 것'이라며 오늘은 슬픈 날이니 한 잔 하자는 동생의 원망에 괜히 코가 찡했다.

지진으로 건물이 80% 가까이 무너진 이란의 오래된 도시 '밤'에서 만난 아이들은 안타까웠다. 모든 것이 '인샬라', 신의 뜻이라 믿고 사는 순진한 사람들에게 닥친 불행은 직접 보지 않아도 충분히 추워보였다. 엄마와 아빠를 잃은 아이가 슬리퍼 한 짝을 들고 서있는 모습을 묘사한 대목에서 가슴이 답답해졌다. 현장에 있던 여행자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책에는 길에서 만난 친구와 지구 반대편에서 두 번이나 일부러 만난 이야기도 나온다. 독일인 부부의 호의에 장장 20일을 독일 가정에서 신세진 이야기, 그 독일 친구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3주간 매끼 다른 한국식을 먹으며 감탄했다는 등 여행 후에도 이어지는 즐거운 인연도 소개됐다.

여행기를 읽다 보면 저자들의 가치관이나 취향을 엿볼 수 있는데 싸움닭 아저씨, 그리고 현지인과 각자의 언어로도 자연스레 소통하는 외계어 아줌마의 여행 궁합이 참 잘 맞는다.

볼리비아 우유니 사막에서 여행하다 현지 여행사의 횡포에 맞서 여행사 앞에서 2인 시위를 하며 페루까지 데려다 줄 것을 요구하는 장면. 까칠한 한국인을 자극한 여행사의 미련함이여! 저자는 노동조합에서 일하던 사람이었단 말이다. 스페인 부부의 중재로 협상은 타결됐고, 권리를 찾은 한국인은 무사히 볼리비아를 떠나왔다.

사람들과의 만남은 여행이 주는 선물이자 마법

이스라엘의 한 호스텔. 한국인 영생아저씨가 자비를 들여 여행자들에게 응원 밥을 제공해 주고 있었다. 고아 출신으로 자신이 비 피하고 굶지 않은 것을 예수님의 사랑 덕분이라고 생각한 영생아저씨는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예수님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을 주고 싶어 이스라엘에 온 사람이다. 젊은 여행자들에게 무료 급식을 해 주는 이 천사아저씨와 달리 호스텔 주인은 마치 자기네가 주는 것인양 선의를 가로챘다.

저자가 따지면서 영생아저씨의 밥을 먹는 여행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것을 요구하는 대목에서는 속이 다 후련했다. 착한 사람들 뒷통수 치는 인간들에게 한 방 날려주는 센스 가이, 짝짝짝!!!

긴 여행에서 돌아온 사람들의 이야기 보따리는 차고 넘칠 텐데, 이 책에는 겨우 28개의 에피소드만 나온다. 주연급 조연 28명이 등장하는데 무려 420페이지가 쓰였다. 소형 사전같은 두께지만 금세 읽힌다. 여기에 실리지 못한 남은 이야기가 궁금하다.

지난 5월부터 <오마이뉴스> 여행 면에 '유럽 중고차여행'으로 돌아온 양학용 기자의 여행기를 야금야금 읽게 된다. 중고차 여행도 이 책처럼 손에 쏙 들어오는 예쁜 표지의 여행기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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