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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에서 본 희망이 나를 돌아오게 했다"

[인터뷰] 캐나다에서 귀국, <백범> 출간한 소설가 김별아

등록|2008.08.15 14:50 수정|2008.08.15 14:50

▲ 김구의 일생을 다룬 역사소설<백범>울 출간한 소설가 김별아. ⓒ 홍성식


"지난해 12월 대통령선거 이후 한참동안을 절망과 열패감에 빠져 있었다. '경제 살리기'라는 미망에 빠져 국민이 사기당한 상황이 멀리서 보기에도 마음 아팠다. 하지만, 올 5월부터 시작된 촛불집회를 보면서 '그래, 아직은 희망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나 역시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아들과 함께 나가기도 했고.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결심을 전하니 거기서 만나 교류하던 친구들이 이렇게 묻더라. '서구식 합리주의와 안정된 민주주의가 있는 여기를 떠나 머리 아픈 그곳으로 왜 가냐'고. 그들 대부분은 정치적 후진성이 지긋지긋해 자신의 나라를 떠나온 중국과 대만 사람들이다. 하지만, 나는 돌아오고 싶었다. 내가 품은 희망이 실체를 가진 진실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지난 2005년 장편 <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후 아들과 함께 캐나다로 떠나 그곳에서 공부와 작품 활동을 병행해온 소설가 김별아(39)가 지난 7월 1일 귀국했다. 태평양을 건너 밴쿠버를 향한 날이 2005년 8월 22일이니 거의 3년만이다.

돌아온 그녀가 처음으로 한 일은 대표적 항일 독립운동가 중의 한 사람이자 국민적 존경을 받는 민족주의자 김구의 생애를 소설로 형상화해 독자들 앞에 선보인 것. 높은 관심 속에 출간된 책의 제목은 <백범>(이룸). 김구의 호(號)다.

2002년 <꿈의 부족>을 필두로 세계문학상 수상작인 <미실>, <영영이별 영이별> <논개> 등의 작품을 통해 고대 중국과 1500여 년 전 신라, 조선시대를 오가며 역사라는 골격에 소설적 살점을 덧붙여온 김별아의 노력이 이번에는 한국의 근대 '위인' 이야기로 이어진 것이다.

위인을 "끊임없이 자기 혁신과 자기 투쟁을 지속했던 사람"이라고 정의하는 김별아는 "수많은 사람들이 흠모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쓰는 건 부담스러웠지만, 나는 내 방식의 존경과 느낌으로 그를 표현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덧붙여 김구를 "솔직하고 스스로를 포장하지 않는 담백한 인간"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향후 한국의 근대사를 제대로 공부해 "태평양전쟁 시기를 드라마가 강한 소설에 담아내고 싶다"고 하는 김별아를 한여름 뜨거운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지던 13일 오후 서울 인사동 한 찻집에서 만났다.

시원한 차 한 잔씩을 앞에 두고 시작된 이야기는 캐나다에서의 생활, 신작소설 <백범>을 탈고하기까지의 에피소드, 최근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아오르게 만든 여러가지 정치·사회적 현안문제에까지 2시간 넘게 이어졌다. 아래는 그 대화를 요약한 것이다.

1999년, '무언가 다르게 쓰고 싶다'는 욕망이 역사소설로...

-<논개> 출간 기자간담회 이후 2년만이다. 얼마 전 귀국해서 아직 경황이 없을 텐데 어떻게 지내는지.
"아들이 캐나다에서 초등학교 6학년을 다니다 왔다. 대안학교(중학교)에 입학시키려 여러 가지 서류를 준비하고 면접 등을 하느라 동분서주했다. 7월은 그렇게 정신없이 보냈다. 현재는 <크로포트킨> <미하일 바쿠닌> 등 무정부주의자에 관한 책들을 읽고 있다. 9월부터 근대 아나키스트의 이야기를 소설로 쓸 생각인데 그 준비로 바쁘다."

-3년 전 떠날 때와 현재 한국사회는 어떻게 다른 것 같은가.
"시간이, 시계가 거꾸로 돌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치적 퇴행은 물론이거니와 사회의 다른 분야도 발전했다는 느낌이 별반 들지 않는다. 하지만, 긴 역사에서 볼 때 이런 퇴행의 시간은 아주 잠깐일 것이란 낙관을 가지려고 한다. 그 낙관의 근거는 지난 5월부터 광화문을 밝힌 촛불이었다. 내 귀국 결심이 그 촛불들에게서 읽어낸 희망 때문이라고 해도 틀린 이야기는 아니다."

-길건 짧건 캐나다에서 생활해본 사람으로서 거기와 한국의 가장 큰 차이를 뭐라고 보는지.
"캐나다 역시 사람 사는 곳이고 여러 문제점이 있다. 백인중심의 사고와 이민자들에게 대한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이 엄연히 존재한다. 이민자 대부분이 고학력자지만 거기서는 허드렛일 외에는 할 게 별로 없다. 하지만, 이런 차별과 불합리를 대놓고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게 한국과는 다른 것 같다. 그 사회에 정착된 개인주의와 합리주의가 최소한의 타인 존중은 실천케 하기 때문이 아닐까싶다."

▲ ⓒ 이룸


-몇 년째 역사소설에 천착하고 있다. 어떤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

"작가들 대부분은 자신의 이야기로 소설을 시작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1999년 <개인적 체험> 이후 '이젠 내 이야기가 아닌 다른 걸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새로운 게 뭐가 있을까라는 고민이 이어졌다. 아이를 키우며 시간을 쪼개 글을 써야하는 내 입장에서는 작품을 위한 취재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떠올린 게 책 속에서 소재를 찾아낼 수 있는 역사소설이었다. 시작은 이렇듯 소박했지만, 쓰다 보니 역사소설이란 장르가 미시적이고 구체적인 내 문체와 문장에도 잘 맞았다."   

-김구는 너무나 잘 알려진 인물이고,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위인이다. 소설로 형상화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백범>을 쓰면서 부담감은 없었는지.
"내가 가지고 있는 궁극적 계획은 태평양전쟁 시기를 드라마가 강한 소설로 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근대사 공부가 기본이다. <백범>은 한국 근대사 중 독립운동사를 살피는 과정에서 '이걸 거쳐야 다음 단계로 갈 수 있다'는 생각에서 집필을 결심한 작품이다. 물론 위인의 이야기를 소설화하는 것은 부담이다. 그러나, 나는 내 방식의 존경과 느낌이 있으니 그걸 표현하면 된다고 믿었다."

"백범은 자기를 포장하지 않는 담백한 사람"

-<백범>의 취재과정이 간단치 않았을 듯하다.
"2년 전 귀국했을 때 '김구'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은 모조리 사서 캐나다로 들어갔다. 50권쯤 됐던 것 같다. 그 외에도 서간도 항쟁사, 임시정부의 역사 등에 관한 책들을 읽었다. 본격적인 준비기간이 4개월쯤 걸렸고, 집필을 마치기까지 5개월 가량이 더 소요됐다. 내 경우 작업을 시작하면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는 그것에만 집중하는 스타일이다."

-생애를 소설로 써낸 사람으로서 백범을 어떻게 평가하는지.
"끊임없이 변화했고, 정도를 걷기 위해 자기갱신을 계속해온 사람이다. 어떤 측면에선 '문제적 인간'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기질적인 면에선 솔직하고, 스스로를 포장할 줄 모르는 담백한 사람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소설을 쓰면서 민족주의자에 대한 이해와 연민이 생긴 것도 내가 얻은 중요한 자산이다."

-책의 소제목이 대부분 '슬픔'(냉혹한 슬픔, 쓰라린 슬픔 등)인 이유는 뭔가.
"작품을 쓰면서 1년여를 백범과 함께 살았다. 그 시간을 통해 그의 생이 슬픔으로 채워져 있다는 걸 느꼈다. 그래서 '슬픔'이라는 키워드로 김구를 읽어내려 했다. 범상한 사람이 아닌 이의 슬픔은 그 슬픔까지도 범상치 않았다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미시적인 부분까지 백범의 생에 접근해본 사람이다. 우리가 그에 관해 가지고 있는 선입견은 뭐라고 보는지.
"단순히 '위인'으로만 보고 있는 게 아닌가한다. 많은 사람들이 백범에 관해 자세히 알지 못하면서도 자세히 알고 있다고 막연하게 믿고 있다. 이번 책을 통해 김구라는 인물에 입체적으로 접근해보고 싶었다. 미력하나마 이 노력이 그에 관한 선입견을 일부라도 깨줬으면 좋겠다."

-귀국 후 보게 된 한국의 상황이 편치만은 않을 것 같다. 이른바 '건국절 논란'을 비롯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촉발된 촛불시위, 경색된 남북관계, 난파선 같은 경제상황, 정연주 사장 축출로 이어진 'KBS 사태', 국민들의 실망을 부른 외교협상력 등등.
"언급된 모든 일을 볼 때면 화가 난다기보다 황당하다. 건국절이란 표현은 임시정부에서도 쓰지 않았다. 그럼에도 굳이 건국절을 고집하는 건 대한민국의 역사적 정통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이는 역사를 이벤트로 생각하는 오만하고 무지한 처사가 아닌가. 이런 발상은 정권의 오만함에서 나온 것 같다.

철학이 사라진 보수는 위험하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게 아닌가싶다. 쿠데타가 아닌 선거를 통해 민주적으로 탄생한 정부임에도 자신이 가진 힘을 어디에 써야할지를 모르는 것 같다. 논의하고, 합의하고, 설득하려는 태도를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지경이니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 "작가가 들 수 있는 가장 크고 환한 촛불은 소설을 쓰는 것..." ⓒ 홍성식


작가가 들 수 있는 '가장 큰 촛불'은 소설을 쓰는 것 하지만...


-사회가 20년 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떠돈다. 어떤가? 이 시점에서 작가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전부터 말해왔지만 작가는 온전한 개인이다. 물론, 시대적·사회적 요구에 의해 시인과 소설가가 거리로 나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시대는 불행한 시대다. 그런 불행이 반복되지 않았으면 한다. 비유로 이야기하자면 지금 상황에서 내가 들 수 있는 가장 환하고 큰 촛불은 소설을 쓰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다시피 불가피하게 거리에 서야한다면 거부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불행한 일일지라도."

-소설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평상시엔 소설의 독자이기도 할 것이다. 최근 인상 깊게 읽은 책은 어떤 것인가. 독자들을 위해 추천해달라.
"캐나다에서 읽은 영문판 중국소설 <1937: 난징 러브스토리>가 좋았다. 난징대학살의 와중에 피어나는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개인적으로 중국 소설이 내 취향에 맞는 것 같다. 내가 쓰고 싶은 소설도 이런 류의 것이다. 한국에 돌아와선 김원일의 <오마니별>을 읽었다. 나는 쉬지 않고 꾸준히 작품을 쓰는 성실한 작가를 존경한다. 그런 면에서 김원일 선생은 작품과 더불어 문학적 태도도 존경의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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