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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만 번 듣고, 불러도 가슴 흔드는 노래, 아리랑

광복절 맞아 한강변에 울려 퍼진 우리 음악

등록|2008.08.17 17:04 수정|2008.08.18 09:46

▲ 8월 15일 밤 마포구청 주최 광복절 기념 음악회에서 쏟아지는 비에도 아랑곳 않고 '안중근 열사가'를 열창하는 안숙선 명창과 김청만 명고. ⓒ 김기


새삼 아리랑이 가슴에 사무친다. 그것도 광복절에 듣는 아리랑이라 더욱 그렇다. 한돌의 홀로아리랑도 그렇거니와 김영임의 정선아라랑, 안숙선의 진도아리랑 등이 묵묵히 흐르는 강물 따라, 한강변에 모인 사람들의 입과 가슴까지  퍼져나갔다.

낮부터 서울 곳곳에 폭우소식도 들렸고, 공연을 두어 시간 앞두고는 제법 굵은 빗줄기가 강변을 적셔 관계자들은 하느냐 마느냐 걱정스러운 말들이 오가기도 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공연에 임박해서 비가 그쳐 천막과 비닐에 뒤덮여 을씨년스럽던 무대는 오색 조명이 켜지고 화사한 본디 모습을 되찾았다.

마포구청은 지난 8월 15일 밤 8시 한강공원 망원지구에서 '광복절 및 건국60년 큰 울림 한강축제'라는 긴 명칭의 음악회를 열었다. 큰 울림 한강축제는 비단 마포구청만 연 것이 아니다. 인기 대중가수들을 전면에 내세운 같은 이름의 공연이 한강변 여기저기 동시에 열렸다. 마포 구청의 공연에 관심이 몰린 건 이곳에서 유일하게 국악 중심의 광복절 기념 음악회를 열었던 까닭이다.

▲ 국악가의 눈에는 색다른 비보이팀이 발견되었다. 그저 의상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음악도, 주제도 한국 전통에서 찾아가는 기특한 젊은이 <플라잉 코리아>비보이팀의 남사당놀이를 연상케 하는 비보잉 공연. ⓒ 김기


보통은  정부단위 기념공연에 등장했을 국악계의 대 명인,명창이 모두 이곳에 모였다. 가야금 황병기 명인, 고수 김청만 명고, 판소리 안숙선 명창, 경기민요 김영임 명창 그리고 살풀이 김삼진 한예종 교수 등.

마포구청 외에 다른 4개 구청의 기념공연은 요즘 떠들썩한 대중가수들을 전면에 내세웠기에 구청 측에서는 걱정도 없지 않았다고 한다. 게다가 날씨까지 궂어 공연시간이 다가오면서 구청 관계자들의 표정도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건국이니 뭐니 다른 때와 달리 올해 광복절 행사는 국민들에게 혼란을 또 던져주었다. 그러나 이날이 광복의 날이 분명한 것은 한강변에 모인 3천여 청중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조선시대 후기 팔명창 중 하나인 박동실이 만든 창작판소리 '안중근 열사가'가 이날 무대처럼 절절하고 뜨겁게 청중들의 호응은 받은 걸 기억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마포구 내 두 곳 연합풍물패의 길놀이로 연 이날 음악회는 아주 독특한 비보이팀이 이어받았다. 공연제목도 경복궁타령과 오봉산타령인 비보이 <플라잉 코리아>는 개량한 한복에다가 한국전통 춤사위를 대폭 가미시켜 마치 남사당놀이를 연상케 하였다. 비보이는 흔히 보아왔으나 사당패 같은 비보이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국내 최고의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이 사이사이 퓨전국악연주를 들려주었다. 요르단, 콜롬비아, 멕시코 등 세계에 국악을 전파하고 있는 <다스름>은 창단 18년된 단체로 <슬기둥>과 함께 국악실내악단의 두 축을 이루고 있다. <다스름>은 창작국악과 더불어 최근 인기 높은 대중가요까지 연주해서 특히 젊은 청중들의 흥을 이끌어냈다.

▲ "비 오면 5분, 안 오면 10분"하며 무대에 올라 두 번의 중간박수까지 이끈 황병기 명인이 연주하는 '침향무'는 신비함 그 자체였다. ⓒ 김기


풍물패와 비보이로 한껏 뜨거워진 무대를 정돈하며 소란스러웠던 여름밤 한강변을 깊은 심연으로 이끈 황병기 가야금명인이 무대에 섰다. 무대에 오르기 전 '비 오면 5분 안 오면 10분'이라며 예의 선문답 비슷한 미소를 지었던 황병기 명인은 그러나 중간 박수까지 두 번씩 이끌어내며 그 10분을 넘겨 연주했다. 물론 비는 오지 않았다.

황병기 명인이 스스로 놀라운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올 만큼 일반시민들의 국악에 대한 애정은 매우 높아보였다. 그것이 이후로 진행된 순서에 따라 차츰차츰 고조되어갔다. 김삼진 무용단의 신 강강술래, 소프라노 유미숙의 신아리랑, 아름다운 세상을 위한 비나리 그리고 어린이 합창단 <예쁜 아이들>이 홀로아리랑, 독도는 우리 땅까지 숨 가쁘게 넘어갔다.

황병기 명인의 침향무가 음악회 분위기 변화를 이끌었듯이 이날 한강변의 국악음악회의 본색을 드러내기 위한 또 하나의 변화는 김삼진 교수의 살풀이였다. 음악회 프로그램을 뻔히 알았음에도 막상 무대에 선 하얀 한복의 살풀이를 보자 비로소 '그래 광복의 날에 살풀이 하나는 있어야지'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

광복의 감격을 위한 36년의 지독한 절망과 뜨거운 투쟁을 잊지 말아야 할 우리들에게 아낌없이 피와 땀을 흘린 선조들을 위한 살풀이는 어느 날보다 가슴 뭉클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청중석을 일순 함성으로 떠들썩하게 만든 김영임 명창의 아리랑 연창은 그 감동을 너나할 것 없는 모두의 것으로 묶어주었다.

▲ 그래도 광복절이라면 살풀이 하나쯤은 있어야 맞다. 일제강점기 36년도, 격동의 광복 후 63년도 묵묵치 지켜보는 한강변에 흩뿌려지는 살풀이 춤사위가 모두 말없음으로 우리 역사를 말하는 듯 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김삼진 교수의 살풀이. ⓒ 김기


가만 보아하니 음악회의 진행이 참으로 절묘하다. 이글이글 터질 것 같은 음악회의 감동은 마지막에 오른 안숙선 명창의 무대에서 폭발하였다. 김청만 명고와 함께 무대에 오른 안숙선 명창이 부른 '안중근 열사가' 한 대목 한 대목마다 청중들은 신음을 토했고, 이등박문을 무찌르는 대목에서는 예의 '얼씨구'하는 추임새 대신에 '와~'하는 함성이 터졌다.

안숙선 명창이 무대에 막 오르자 공연 내내 참았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기왕에 무대에 선 안숙선 명창이 비 따위 아랑곳 않고 열사가를 불렀고, 3천 청중들도 우비나 우산들 받쳐 들고 자리를 지켰다. 제자들과 함께 부른 '진도아리랑'을 중간 대목 빼먹지 않고 부르는 동안에도 빗줄기는 더욱 굵어졌으나, 누구 하나 자리를 뜨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성공적인 공연이었다. 수많은 행사와 공연이 열린 이날 이만한 성공은 어디도 없을 것만 같다. 세상에 나쁜 음악은 없다. 그러나 적어도 광복절 하루만은 우리노래, 우리음악이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백만 번을 들어도, 천만 번을 불러도 그때마다 아리랑의 한과 흥에 취하는 우리민족이 아닌가.

▲ 마지막 순서인 안숙선 명창이 무대에 오르면서 참아왔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주최측이 제공한 우비 등을 쓰고 3천 여 청중들은 꼼짝도 않고 광복절 음악회를 끝까지 지켰다. ⓒ 김기

한강변 국악음악회 만든 유은선
마포구청의 음악회마저도 없었다면 참 섭섭하고 죄스런 마음조차 들었을 것만 같은  생각에 미치자 이 음악회를 만든 총연출 유은선 씨를 공연 후 만났다. 사실 국악계 발 닿지 않는 곳 없을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해오고 있는 유 씨지만 사실 총연출로는 첫 작품이었다.

유은선 이력 첫 장에 기록되는 것은 국악작곡가이다. 국악계 최초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 대표, 공연기획, 방송진행자, 방송작가 등 팔색조의 면모를 드러내주는 이력들이 꼬리를 문다. 국악계에서 부지런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유은선이기에 한두 번 하고 이력을 장식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놀랍다. 무엇을 하건 그것이 본업 같이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민간 국악단체로는 최다 해외공연을 수행하고 있는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을 끌어가는 것 하나도 범인에겐 버거운 일인데 수퍼우먼이 따로 없다.

그토록 빠르고 잰 걸음의 유은선이기에 한곳에서 만나기 어려운 황병기, 안숙선, 김영임을 그것도 광복절이라는 중요한 날에 모두 불러올 수 있었다. 또한 오랜 방송 경험과 국립극장 창극단, 서울국악관현악단 등에서 경험한 공연기획으로 음악회를 만드는 솜씨가 처음이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세련되고, 완성도 높았다.

백 마디의 강변보다도 그저 노래와 음악 그리고 춤만으로 세간의 논란에 어떤 종지부를 찍은 유은선이 이제 본격적으로 공연과 축제 총연출자로 발돋움한다고 한다. 듬직하다. 모두가 의미도 취지도 뒤로 한 채 대중가수들을 앞세워 떠들썩한 공연을 만들 때, 홀로 국악중심의 공연으로 성공을 거둔 솜씨를 앞으로도 그대로 발휘해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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