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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가 더럽히는 우리 삶 (45) 커피숍

[우리 말에 마음쓰기 404] ‘찻집’을 버리고 ‘다방-다실’이라 하던 우리들

등록|2008.08.17 17:57 수정|2008.08.17 17:57

ㄱ. 커피숍(coffee shop) 1

.. 부르면 부를수록 뒷맛이 우러나는 이원수의 ‘봄시내’를 뒤로 하고 자리를 옮긴 곳은 읍내 한 커피숍 ..  <인권>(국가인권위원회) 2005년 7월호 30쪽

 “이원수의 ‘봄시내’를”은 “이원수가 지은 ‘봄시내’를”이나 “이원수 님 동요 ‘봄시내’를”로 손질합니다.

 ┌ 커피숍(coffee shop) : 주로 커피차를 팔면서, 사람들이 이야기하거나 쉴 수
 │   있도록 꾸며 놓은 가게
 │
 ├ 읍내 한 커피숍
 │→ 읍내 어느 찻집
 │→ 읍내에 있는 어느 찻집
 │→ 읍내에 있는 작은 찻집
 │→ 읍내에 있는 찻집
 └ …

 시골 읍, 면에는 아직도 ‘다방’ 간판이 걸린 가게가 많습니다. 어쩌다가 ‘커피숍’도 한두 군데 있을지 모르나 거의 ‘다방’입니다. 제가 사는 인천도 옛 도심지에는 ‘다방’이 많지, ‘커피숍’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 사는 어느 곳이든 “차를 마시는 집”은 있기 마련인데, 차를 마시는 집을 가리키는 이름은 세상 흐름에 맞추어 조금씩 바뀌어 가지 싶습니다.

 ‘다과점’이나 ‘제과점’이라 하다가 ‘베이커리’라 하듯, ‘다방’이나 ‘다실’이라 하다가 ‘커피숍’이라 합니다. 사이에 얼핏설핏 ‘빵집’이나 ‘찻집’이라고 가리키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리 안 많습니다. 더구나, ‘빵집’이나 ‘찻집’을 말하는 사람은 으레 바깥으로 밀려나 있습니다. 세상 한복판을 주름잡고 있는 사람들은, ‘제과점-베이커리’나 ‘다방-커피숍’일 뿐, ‘빵집-찻집’은 아닙니다.

 ┌ 층집 / 층층집
 └ 아파트

 처음 ‘아파트’라는 집이 우리 나라에 들어오고 지어질 때, 이 집을 가리키는 이름은 ‘층집’이나 ‘층층집’으로 고쳐써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었고, 국어순화자료집에 이런 낱말이 실리기도 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가 예부터 살아온 집은 ‘층을 이루지 않은 집’이었습니다. 아파트라는 곳은 ‘층을 이루고 있는 집’입니다. 그러니, 아파트라는 집이 생긴 모습 그대로, 또 아파트라는 집 얼거리 그대로 ‘층집-층층집’ 같은 낱말을 새로 지은 셈인데, 우리 사회에는 이 낱말이 두루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먼저, 정부 행정부서에서 받아들이지 않았고, 언론과 학교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으며, 다음으로는 아파트를 짓는 건설업체에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공사장에서 막일을 하는 분들이 쓰는 말은 일제강점기 때 들여온 ‘제국주의 일본 식민지 말’ 그대로입니다. 공사장뿐 아니라 책마을도 그러하고, 책마을뿐 아니라 군대도 그러하며, 군대뿐 아니라 우리 나라 공직사회와 학교와 회사와 온 동네 구석구석 일본말 찌꺼기를 말끔이 털어내고 살뜰히 쓰는 곳은 보이지 않습니다.

 ― 찻집 / 차가게 / 차쉼터 / 차마당 / …

 우리 삶터를 아우르는 낱말을 우리 스스로 우리 삶과 얼과 생각과 마음 고스란히 펼쳐 보이는 겨레말로 나타내거나 쓰고 있다면, 차를 사고팔거나 마시는 곳은 ‘찻집’입니다. 예나 이제나 앞으로나 찻집입니다. 그렇지만, 우리 삶터를 보듬는 낱말을 우리 스스로 빚어내지 않는 가운데 우리 삶과 얼과 생각과 마음을 우리 손과 발로 갈고닦지 않는다면, 차를 사고팔거나 마시는 곳은 앞으로도 ‘커피숍’이거나 ‘다방’입니다.


ㄴ. 커피숍(coffee shop) 2

.. 나도 제주도 갈 거야. 그곳에서 커피숍을 할 거야. 심심하면 들러. 커피는 공짜야. 맛있는 것도 사 줄게 ..  <김영갑-섬에 홀로 필름에 미쳐>(하날오름,1996) 120쪽

 “갈 거야”처럼 쓰는 일이 잘못이라고 보지 않습니다만, “갈 생각이야”나 “갈 테야”로 손보면 어떨까요. ‘공짜(空-)’는 저도 드문드문 쓰고는 있는데, “커피는 공짜야”라 하기보다는 “커피는 거저로 줄게”나 “커피는 그냥 줄게”나 “커피값은 안 받을게”처럼 적으면 한결 나으리라 봅니다.

 ┌ 커피숍을 할 거야
 │
 │→ 찻집을 할 테야
 │→ 커피집을 할 테야
 │→ 커피를 팔 테야
 └ …

 요사이는 커피 한 가지만 파는 집이 제법 늘었습니다. 어쩌면 앞으로 더 늘어날지 모릅니다. 커피 한 알 우리 땅에서 나지 않건만, 커피를 즐기는 사람은 끊이지 않습니다. 생각해 보면, 기름 한 방울 나지 않지만 자동차 몰기를 그치지 않는 우리들이잖아요. 우리 스스로 거두어들이지 않는 지구자원을 돈 몇 푼 치르면 어렵잖게 손에 쥘 수 있으니, 지구 삶터가 아파하거나 무너지고 있어도 살갗으로 느끼지 못합니다.

 살갗으로 느끼지 못하는 아픔이나 무너짐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날마다 쓰고 있는 말과 글이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슬퍼하고 어려워해도 하나도 못 느끼거나 안 느끼는지 모르겠습니다. 바늘로 허벅지를 쑤셔야만 아픔이 아니고, 은행계좌 남은 돈이 바닥이 나야만 고달픔이 아닐 텐데, 물질이 다 떨어지는 일만이 괴로움이나 고단함일까요. 마음이 무너지고 물과 바람이 더러워지는 일은 쓰라림이나 눈물남이 될 수 없을까요.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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