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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탐사대, 드디어 르웬조리 산에 오르다

[우간다 르웬조리 등반기 ④] 르웬조리 첫날 이야기

등록|2008.08.23 15:14 수정|2008.08.23 15:45
아침 8시 반, 평소 보다 일찍 일어난 오지탐사대원들은 르웬조리(Rwenzori)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울퉁불퉁한 길과 작은 초가집들을 지나 대원들이 도착한 곳은 산행의 시작점인 르웬조리 관리사무소(RWS, Rwenzori Mountaineering Services)였다. 이미 짐을 나를 포터들과 가이드들이 사무소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 르웬조리 관리사무소로 가는 도중 발견한 표지판. ⓒ 이지수


르웬조리 지역 아이들과의 짧고도 즐거웠던 만남

그런데 포터와 가이드 외에도 대원들을 기다린 사람들이 있었다. 사무소 밖에는 구경 온 이웃 사람들이 울타리 밖에서 얼굴을 내밀고 서 있었다. 울타리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허리에 닿을만한 키의 아이들이 먼발치에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 우간다 사람들에게나 우리는 신기한 존재인 모양이었다.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더니 아이들은 우리가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다른 대원들이 카고 백을 옮기는 동안 나는 아이들의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처음에는 경계하는 표정을 짓더니 사진을 보여주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과 사진 찍기 놀이를 했다. 아이들은 사진 찍는 것이 재미있는지, 몇 분 뒤에는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에게는 또 다른 친구들이 생겼다. 아이들이 내게 친구가 되고 싶다고 한 것이었다.

▲ 몇분 뒤, 아이들은 카메라 앞에서 스스로 포즈를 취했다. ⓒ 이지수


하지만 나도 오지탐사대원이기 때문에, 계속 아이들과 함께 있을 수는 없었다.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아이들과 아쉬운 작별인사를 나누면서, 나는 인정이 넘치는 아이들에게 왠지모를 미안함을 느꼈다.

관리사무소 직원 vs. 정태 오빠의 카고 백 무게 흥정

관리사무소 한가운데에서는 어떤 남자의 웃는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카고 백의 무게를 놓고 대원들과 관리사무소 직원이 한참 흥정을 벌이고 있었다.

▲ 관리 사무소 직원들과 대원들이 카고 백 무게를 확인하고 있다. ⓒ 이지수


마침 사람들은 커다란 저울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대원들은 카고 백을 자루에 담아 저울에 달았다. 저울 침의 흔들렸고, 대원들과 사무소 직원들의 눈이 뾰족한 저울 침 끝에 고정되었다. 짐에 드는 추가 비용을 내지 않으려면, 카고 백 하나 당 최대 무게인 12~13kg 이하가 나와야만 했다. 그런데 침이 가리킨 숫자는 17이었다.

"Seventeen(열일곱)."
사무소 직원이 말했다.

"No, no! Fifteen, fifteen(아닙니다, 열다섯이에요)!"
옆에 있던 정태오빠가 말했다.

"No, look. It's seventeen(아닙니다, 보세요. 열일곱이잖아요)."
직원이 다시 한 번 말했다.

"No, no, no. Fifteen(아니에요, 열다섯이라니깐요)."
정태 오빠도 지지않고 말했다.

사무소 직원은 정태오빠의 우격다짐에 크게 웃었다. 심지어 넉살 좋은 정태 오빠는 직원을 간질이면서 저울 침을 못 보게 하고, 그가 들고 있던 펜을 뺏기도 했다. 

결국 직원은 알았다는 듯 웃으면서 다음 카고 백을 주문했다. 다음도, 그 다음도 13kg가 넘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매우 간단한 영어가 오갔을 뿐이었지만, 정태 오빠 덕에 대원들은 무려 30kg의 추가 비용을 절약할 수 있었다.

르웬조리 산행, 드디어 시작!

이제 짐 문제는 모두 해결되고, 산행을 떠나는 일만 남았다. 대원들은 커다란 지도 앞에 앉아 관리사무소 직원의 설명을 들었다. 최소 일주일이 걸리는 산행인데다 고산병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기 때문에, 대원들의 표정은 꽤 진지했다.

▲ 관리사무소 직원의 설명을 듣고 있는 대원들의 모습. ⓒ 이지수


그 다음에는 대원들과 가이드와의 인사 시간이 있었다. 가이드들은 앞으로 산행 내내 대원들의 앞길을 인도해 줄 사람들이었다. 우리의 가이드는 총 5명이었다. 산행 전에는 너무 많다고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이들이 얼마나 중요한 사람들인지 알게 되었다.

모든 절차가 끝난 이후에는 드디어 산행이 시작되었다. 파이팅 소리와 함께, 대원들은 커다란 배낭을 메고 스틱으로 땅을 짚으며 발걸음을 옮겼다. 대원들 옆으로는 어린 아이들이 따라 왔는데, 마치 우리의 앞길을 배웅해 주는 것 같아 힘이 났다.

▲ 아이들은 마치 우리의 앞길을 배웅하는 것 같았다. 아이들과 오현호 대원의 모습. ⓒ 이지수


하지만 얼마 뒤에는 아이들이 사라지고 본격적인 산행길이 나타났다. 오른쪽 길옆으로는 커다란 계곡이 흘렀고, 다른 쪽 옆으로는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길은 끊임없이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했다. 처음부터 만만치 않은 코스였다.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는데...' 가이드의 과도한 배려

한번은 커다란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터널이 등장했다. 내 앞의 모든 대원들은 최대한 허리를 굽혀 그 사이를 통과했다. 그 다음에는 내 차례가 되었다. 어떻게 배낭을 메고 허리를 굽힐까 고민하고 있는데, 뒤에 있던 가이드 조엘(Joel)이 내 앞으로 왔다. 나뭇가지를 들어주려고 온 것이구나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그는 터널이 된 두꺼운 나뭇가지를 피켈로 내리치기 시작했다. 나는 깜짝 놀랐다. 한국의 산이라면 절대 불가능할 일이었다. 단지 지나가기 위해서 나무를 자른다니 배려가 너무 과했다. 어쨌든 나는 가이드 덕분에 그곳을 매우 쉽게 지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사건 이후로도 나는 조엘 덕을 아주 톡톡히 보게 되었다.

산행 도중 '세뿔달린카멜레온'을 만나다
 
르웬조리를 산행하는 것은 산행 그 자체로도 재미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볼 수 없는 희귀한 동물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열심히 걷고 있는데, 뒤에 있던 가이드가 무언가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카멜레온이었다.

앞에 가는 대원들을 보내고, 뒤에 있던 대원들은 신기하게 생긴 카멜레온 앞으로 다가갔다. 이름은 '세뿔달린카멜레온(Three Horned Chameleon)/이었는데, 습지에서 산다는 이 카멜레온은 이름 그대로였다.

▲ 아프리카 습지에 사는 '세뿔달린카멜레온(수컷)'. 화가 나면 몸이 검은색으로 바뀐다고 한다. ⓒ 이지수


그 이후에도 대원들은 산행 중에 또 다른 카멜레온과 손가락 굵기의 왕 지렁이를 발견했고, 일부는 까만 원숭이를 보았다고 했다. 가이드는 르웬조리에 심지어 코끼리도 사는데, 산행 길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어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역시 아프리카다웠다.

아득한 정상을 향해 다시 한번 각오를 다지다

첫날 도착지점인 냐비타바(Nyabitaba) 산장(2651m)에 도착했을 때는 산행이 시작된 지 5시간이 지나서였다. 나는 맨 뒤에 있던 두 명의 대원들과 늦게 도착했는데, 산장에서 쉬고 있던 대원들이 박수로 반갑게 환영해 주었다.

나는 곧바로 배낭을 풀고 산장을 둘러보았다. 초록색 산장은 생각보다 허술했다. 안에는 3층 침대뿐이었다. 물은 끓여 써야 했는데, 거의 대부분 식수로 써야 했기 때문에 제대로 씻을 수도 없었다.

▲ 대원들이 첫날 묵은 냐비타바(Nyabitaba) 산장(2,651m). ⓒ 이지수


그래도 산장 옆으로 보인 포탈(Portal) 산의 전경은, 마음만큼은 청결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곳까지의 거리는 정말 까마득해 보였다. 우리가 올라갈 마르게리타 봉(Margherita, 5109m)이 있는 스피크(Speke) 산은 구름에 가려 잘 보이지도 않았다. 아득함에 놀란 입이 쉽게 다물어지지 않았다.

대원들은 다음 날부터는 진흙길이 시작 돼서 첫날보다 힘든 산행이 될 거라고 말했다. 르웬조리 최고봉인 마르게리타에 오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거쳐야 하는 길이었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하지만 그보다 호기심과 모험심이 더 앞서는 건, 아마 내가 이곳에 있는 이유일 것이었다. 눈 앞의 산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한번 정상을 향한 마음을 굳게 다졌다.

▲ 포탈(Portal) 산의 전경. 르웬조리는 훨씬 더 먼 곳에 있다. 이 산들을 보며 나는 다시 한번 정상을 향한 마음을 굳게 다졌다. ⓒ 이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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