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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38) 스스로 자진

[우리 말에 마음쓰기 407] ‘스스로를 일깨우다가 자각하고’는 무슨 소리일까?

등록|2008.08.21 09:01 수정|2008.08.21 09:01

ㄱ. 스스로 자진하여

.. 그 직전인 8월 18일 일본 정부는 스스로 자진하여 연합군용 위안소 설치를 지시하였다 ..  《요시미 요시아키/이규태 옮김-일본군 군대위안부》(소화,1998) 212쪽

 “그 직전(直前)인”은 “그 바로 앞서”나 “그러기 앞서”나 “그에 앞서”로 손봅니다. “위안소 설치(設置)를”은 “위안소를 세우라고”나 “위안소를 만들라고”로 손질합니다.

 ┌ 자진(自進) : 남이 시키는 것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스스로 나섬
 │   - 자진 사퇴 / 자진 납부 / 자진 해산 / 학생들은 자진하여 헌혈에 나섰다
 │
 ├ 스스로 자진하여 지시하였다
 │→ 스스로 지시하였다
 │→ 스스로 발벗고 나서서 지시하였다
 │→ 시키지 않았어도 스스로 지시하였다
 └ …

 스스로 했다는 일이라면 ‘스스로’ 어찌어찌 했다고 할 때가 가장 낫습니다. “스스로 물러나는(자진 사퇴)” 일이고, “스스로 내는(자진 납부)” 일입니다. “스스로 헤치는(자진 해산)” 일인 한편, 피뽑기도 ‘스스로’ 합니다.

 ┌ 일본 정부는 스스로 자진해서 연합군용 위안소 설치를 지시하였다
 │
 │→ 일본 정부 스스로 연합군을 맞이할 위안소를 만들라고 했다
 │→ 일본 정부가 발벗고 나서며 연합군을 받아들일 위안소를 세우도록 했다
 │→ 일본 정부는 연합군 위안소를 알아서 세우려고 했다
 └ …

 시키지 않았어도 하는 일이니 ‘스스로’ 하는 일입니다. 누가 무어라 하지 않았어도 하는 일이니 ‘알아서’ 일입니다. 눈치를 살피며 ‘발벗고 나서며’ 하는 일입니다. 스스럼없이 ‘스스로’ 하고, 기꺼이 ‘알아서’ 하며, 가만히 있어도 ‘발벗고 나서며’ 합니다.


ㄴ. 스스로를 일깨우다가 자각하고

.. 깨어 있는 정신을 갖기 위해서는 매순간 스스로를 일깨우려는 노력을 쉬지 말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자각自覺이다. 자각이 없으면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질 수 없다 ..  《구 원/김태성 옮김-반 처세론》(마티,2005) 43쪽

 ‘정신(精神)’은 ‘얼’이나 ‘넋’으로 다듬고, “갖기 위(爲)해서는”은 “가지려면”으로 다듬으며, ‘매순간(每舜間)’은 ‘그때그때’나 ‘늘’로 다듬습니다. “노력(努力)을 쉬지 말아야”는 “쉼없이 애써야”나 “쉬지 말고 애써야”로 손질하고, “깨어 있는 정신을 가질 수 없다”는 “깨어 있는 넋일 수 없다”나 “깨어 있는 넋으로 살 수 없다”로 손질해 줍니다.

 ┌ 스스로를 일깨우려는 (o)
 ├ 자각自覺 (x)
 └ 자각 (x)

 우리는 얼마나 깨닫고 살고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가 쓰는 말을 얼마나 살갗으로 느끼면서 살고 있을까요. 말다운 말을 얼마나 하고 있는가요. 글다운 글은 얼마나 쓰고 있는가요. 어떤 사람이든 어디에 살든 말과 글 없이 살 수 없는데, 사람 삶에서 가장 밑바탕이 되는 말과 글을 어떻게 펼치거나 나누면서 지내는지요. 말과 글부터 올곧고 깨끗하고 살갑게 추슬러 내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는 일이나 놀이는, 공부와 연구와 과학과 문화는 뜬구름처럼 둥둥 떠 있는 노릇 아닌지요.

 ┌ 자각이 없으면
 └ 깨어 있는 정신

 스스로 깨우치는 일이 ‘자각’이고, 스스로 깨어 있는 넋일 때 ‘자각’이 있는 셈입니다. 이 말 저 말 오락가락하고 있는 이 보기글은, 줄줄이 겹치기입니다. 같은 말을 놓고 껍데기만 씌워서 뜻을 흐려 놓고 있습니다.

 ┌ 홀로깨침
 └ 혼자깨침

 스스로 일깨우려는 일을 ‘자각’이라는 한 낱말로 담아낼 수도 있습니다. 굳이 한자말로 담아내려고 한다면. 그런데, 우리들은 왜 우리들 생각과 삶과 이야기를 우리 말로, 우리들이 살아가며 늘 주고받는 말로는 나누려 하지 않을까요. 우리들 토박이말로는 우리 얼과 넋과 삶을 드러내 보일 수 없는가요.

 스스로 깨우치는 일이라면, ‘홀로깨침’이나 ‘혼자깨침’으로 가리킬 수 있습니다 ‘혼자깨우침’이나 ‘홀로깨우침’이라 해도 어울립니다. ‘스스로깨우침’이나 ‘스스로깨침’으로 적어도 괜찮아요. 스스로 깨우치니까 ‘스스로 + 깨침(깨우침)’이고, 혼자 깨우치니까 ‘혼자 + 깨우침’입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말을 사랑하고 아껴야, 우리 말과 글도 한결 살아나고 힘을 얻으며 아름다이 꽃피웁니다. 우리 스스로 돌보고 가꾸고 보듬어야, 우리 말과 글도 차츰 자라나고 거듭나며 새로워집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http://hbooks.cyworld.com (우리 말과 헌책방)
http://cafe.naver.com/ingol (인천 골목길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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