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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골목

[추억 떠올리기1] 추억과 그리움이 묻어 있는 골목길

등록|2008.08.21 15:00 수정|2008.08.21 15:00

▲ 골목은 놀이터이고 웃음이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 김현



골목은 추억입니다.
골목은 그리움입니다.
골목이 사라져가는 지금, 우연히 만난 골목은 반가움입니다.

느릿느릿 골목을 걷습니다. 어릴 적 숨바꼭질 같은 놀이도 하고, 땀냄새 흥건히 고여 있는 그 골목은 아니지만 골목을 걷다보면 왠지 마음이 포근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바쁘게 살아가는 것이 미덕이 된 시대입니다. 아니 바쁘게 살아가지 않으면 살아가기 힘든 시대입니다.

도심 속에서 살아가다 보면 하늘에 별이 떴는지 안 떴는지 바라볼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 마음의 여유는 어느 새 석기시대의 화석처럼 되어버렸습니다. 휴가라도 받아 모든 짐들을 다 버려버리고 한적한 산골이라도 가야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러니 골목길을 걷는다고 해서 절로 마음의 여유가 찾아오긴 힘듭니다.

▲ 토담길이 뻗어있는 골목 ⓒ 김현



여유도, 시간도, 그리움도, 추억도 스스로 찾으려 할 때 찾아지는 것 같습니다. 두드려야 문일 열리듯 말입니다.

전주에 한옥마을이라고 불려지는 곳이 있습니다. 가끔 어린 아들 녀석의 손을 잡고 그곳에 가곤 합니다. 그곳에 가면 정지한 시간들이 있습니다. 차량들이 북적이는 큰길을 조금만 비껴 안으로 들어가면 차향이 일고 가야금 뜯는 소리들이 그만그만하게 들려옵니다.

그곳에 골목이 있습니다. 골목을 한껏 여유를 부리며 느릿느릿 걷습니다. 고즈넉한 음악 소리가 들리고 차향이 이는 마당을 몰래 훔쳐봅니다. 빼꼼하게 반쯤 열려있는 대문 틈으로 얼굴을 살짝 밀어봅니다. 마당가엔 차향을 마시는 화초들이 음악소리에 가냘픈 허리를 살랑거립니다.

▲ 사람이 없는 골목은 쓸쓸함이다 ⓒ 김현



마당과 윤기가 반들반들한 마루를 훔쳐보다 어쩌다 주인 여자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얼른 고개를 돌려 딴청을 피웁니다. 그러면 인상 좋은 주인 여자는 배시시 미소를 보내줍니다. 그러면 난 간단한 목례를 하는 둥 마는 둥 하고 얼른 걸음을 옮깁니다.

사실 기억 속의 골목길이 모두 그리움의 공간만은 아닙니다. 무서움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어릴 적 시골의 골목은 미로와 같았습니다. 그 미로 속엔 귀신도 많았습니다. 몽달귀신도 있었고, 달걀귀신도 있었습니다. 그 귀신들은 대부분 음침한 골목 똥간(변소)에 살았습니다.

혼자 어두운 골목을 걸어갈 때면 언제 몽달귀신, 달걀귀신이 뛰쳐나올지 몰라 똥간 옆을 지나갈 때면 깨금발로 소리 안 나게 걸어가곤 했습니다. 그러다 그 옆을 무사히 지나쳤다 하면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똥빠지게 달려갔습니다. 한참을 달려서야 아무도 따라오지 않음을 확인하곤 겨우 안도의 한숨을 쉬곤 했습니다.

▲ 토담에 그려진 무늬 ⓒ 김현



골목이 사라지고 돌담길이 사라져가는 지금, 추억과 그리움이 있는 골목을 걷는다는 것은 작은 기쁨입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골목길에 소리가 들리지 않은 것입니다.

골목의 맛은 소리입니다. 아이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소리, 여자애들이 고무질치기 하며 노래하는 소리, 남자애들이 구슬치기 하거나 숨바꼭질하며 노는 소리, 이따금 생선장수 아줌마나 엿장수 아저씨의 가위질 소리들이 골목의 맛을 한껏 달궈줍니다.

이제 이러한 소리 대신 침묵이 골목을 대신 합니다. 대문은 굳게 닫히고 담벼락은 높기만 합니다. 아이들은 없습니다. 딱지치고 고무줄놀이 하고 땀 번들거리며 뛰놀아야 할 아이들은 학원에서 머리 박고 있습니다.

골목을 빠져나오면서 이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혹 골목이 사라지면서 아이들도, 마음의 여유도 사라진 걸 아닐까 하는 생각을.

▲ 골목길을 걷다 만나는 풍경 ⓒ 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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