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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계천에는 신데렐라 호박마차가 있다

[도보여행] 청계천에서 중랑천 살곶이공원 지나 군자역까지

등록|2008.08.21 17:47 수정|2008.08.22 09:45

▲ ⓒ 유혜준


청계천을 걸었습니다. 어쩌다 청계광장 언저리를 둘러보긴 했지만 청계천 길을 걷기는 처음입니다. 청계천은 걷기 좋게 정비되어 있었고, 볼거리도 충분했습니다. 걷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곳이 없다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길 잃을 염려가 없고, 걷다가 지치면 아무 데나 주저앉아 쉬면 됩니다.

청계천 길의 길이는 5.3km입니다. 천천히 걸으면 한 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지요. 길이 끊어진 곳은 가운데 징검다리를 건너면 이어서 걸을 수 있습니다.

21일 청계천 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물론 청계천 길만 걸은 것은 아닙니다. 살곶이 공원에서 중랑천을 끼고 한양대역까지 걸었고, 거기에서 다시 군자 역까지 걸었습니다. 이렇게 걸은 거리는 14km쯤 됩니다. 이번 도보여행도 '인생길 따라 도보여행(인도행)' 회원들과 함께 했습니다.

군자역 가는 길에 송정길이 있습니다. 이 길은 양 옆으로 잘 자란 은행나무가 빽빽하게 늘어서 있습니다. 은행잎이 노랗게 물드는 가을에 걸으면 시심이 저절로 우러나올 것 같은 길입니다.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강추'입니다. 꼭 가을에 걸어 보시길.

청계광장에 소라 모양의 조형물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도보여행, 출발합니다. 청계광장, 아주 시끌벅적 합니다. 사람들도 아주 많지요. 하지만 일단 걷기 시작하면 그 혼잡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청계광장 소라에서부터 도보여행 시작~

▲ ⓒ 유혜준


청계천에 있는 다리는 몇 개? 모전교부터 시작해서 고산자교까지 전부 22개입니다. 모전교를 지나 장통교를 지납니다. 22개의 다리는 눈여겨 보지 않으면 어느 다리를 언제 지나쳤는지 모르게 지나갈 수 있습니다.

긴 바지를 허벅지까지 걷어 올리고 돌계단에 앉아 발을 청계천 물에 담근 사람들이 여럿 보입니다. 더운 여름날, 흐르는 물은 보기만 해도 시원한데 직접 발을 담그기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겠지요.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다리 아래에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가족과 함께, 친구와 함께, 연인과 함께 온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평일에도 이런데 주말에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지나가면 꽉 찰 것 같은 길 양쪽에는 풀이 잘 자라 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걷습니다. 옅은 보랏빛 벌개미취가 무리지어 피어 있습니다. 색이 참 곱습니다. 억세 보이는 강아지풀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나팔꽃도 보입니다.

능소화도 피어 있네요. 일부는 시들기도 했지만 아직은 피어 있는 게 더 많습니다. 풀이 우거지고 꽃이 핀 것만 보면 숲 속 오솔길을 걷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서울 시내 한복판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지요. 하지만 고개를 들어 위를 보면 고충 건물들이 얼른 시야를 가로 막습니다.

분수 옆을 지납니다. 분수의 물이 리듬을 타고 올라갔다가 내려옵니다.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다가 멈추기도 합니다.

길이 막혀 징검다리를 건넙니다. 돌 사이로 물이 흐르는 게 보입니다. 시골의 시내를 건너는 듯한 착각이 들기도 합니다. 물이 깊지 않아 빠져도 위험하지는 않겠지요?

걷는데 뒤에서 비켜달라는 소리가 들려 돌아보니 순찰차가 오고 있습니다. 무공해 차량이라고 차 뒤에 써 있습니다. 경차처럼 작습니다. 경적을 울리지 않고 운전자가 말로 비켜달라고 하는 게 마음에 드네요.

징검다리를 건너는 재미가 있네

▲ 청계천 수문 ⓒ 유혜준


황학교 아래에 수문이 여러 개 있습니다. 비가 많이 오면 수문을 연다고 합니다. 수문 모양이 재밌네요. 옛날 기와집 대문을 연상시킵니다. 수문이 열리고 물이 쏟아지는 걸 보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럴 기회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청계천은 출입금지 지역이 된답니다.

시민들이 소망이나 염원을 직접 쓴 타일을 붙여 만든 소망의 벽을 지납니다. 시간이 많다면 이것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좋겠지만 걸음을 재촉하느라 몇 개만 눈여겨보고 지납니다.

청계천에는 청계8경이 있답니다. 제1경은 청계광장이고, 2경은 광통교, 3경은 정조반차도, 4경은 패션광장, 5경은 청계천 빨래터, 6경은 소망의벽입니다. 7경은 존치교각과 터널분수, 8경은 버들습지입니다.

'존치교각'이라니 뭐 대단한 것 같지만 청계고가도로를 철거하면서 교각 3개를 기념으로 남겨둔 것이랍니다. 하나는 온전한 것으로, 또다른 하나는 윗부분 일부가 부서졌고, 나머지는 기둥만 짧게 남아 있지요. 아무 생각 없이 존치교각을 보면 철거가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착각을 하기 딱 알맞게 되어 있거든요.

길바닥에 방향을 알려주는 동그란 표식이 붙어 있습니다. 상왕십리역으로 가는 방향, 용두동으로 가는 방향은 서로 반대입니다. 중심점은 무학교이고. 길을 걷노라면 '이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하는 생각을 저절로 하게 됩니다. 물론 목적지가 있으니 그곳에 도착하는 것으로 여정은 끝납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지요.

'인생이라는 길 끝에는 무엇이 있으며, 그 곳에 도착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이 더불어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어라, 저게 뭐지? 신데렐라의 호박마차가 서 있네요. 물론 진짜 호박으로 만든 건 아닙니다. 마차 앞쪽에 계단이 놓인 것으로 봐서 사진을 찍으라고 일부러 만들어 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옆에는 해바라기 꽃이 장식되어 있는 의자도 있습니다. 그 뒤의 돌담에는 담쟁이 넝쿨이 매달려 있지요. 걷다가 힘들면 의자에 잠시 앉아 카메라를 향해 포즈를 취하는 것도 기분이 전환이 되겠지요?

▲ ⓒ 유혜준


청계천에는 신데렐라의 호박마차가 있다

분홍색 줄이 그어진 청혼의 벽이 보입니다. 그 옆의 나무 길을 따라 올라가니 '청계천문화관'이 보입니다. 청계천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상설전시관입니다. 예전에 청계천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만들어 놓기도 했습니다.

청계천문화관 길 건너편에는 판잣집 네 채가 서 있습니다. 어떤 분은 그곳이 '해우소'인 줄 알았다고도 합니다만 옛날 판잣집 모습을 재현한 것이지요. 그냥 건물만 세운 것이 아니라 옛날 물건들도 더불어 전시하고 있습니다.

'또리 만화' 간판을 보니 어렸을 때 드나들던 만화가게가 생각납니다. '또리 만화' 가게 안에도 만화책이 있긴 한데, 박봉성 만화도 있네요. 나 어렸을 때는 방봉성 만화가 없었답니다. 만화가게에 드나들면서 본 만화가 족히 천 권은 넘을 텐데 기억나는 게 거의 없습니다. 순정만화를 즐겨보긴 했던 것 같은데….

만화가게 옆 가게에서 물건을 팝니다. 추억의 과자는 단돈 100원, 종이인형과 딱지는 30원이랍니다. 요즘 아이들은 100원으로 무엇을 살 수 있을까요? 나 어렸을 때는 라면땅이 10원이었는데…. 누가 '쫀드기'를 손에 쥐어줍니다. 이런, 이거 불량식품인데….

청계천문화관을 마지막으로 청계천 길은 끝입니다. 이곳에서 중랑천의 살곶이 공원을 향해 걸어갑니다. 돌다리를 건너니 걷기 좋은 길이 이어집니다. 길은 길을 따라 이어집니다. 그래서 계속해서 걸을 수 있는 것이지요.

길 한쪽에 잘 자란 대나무가 늘어서 있습니다. 대나무 사이로 담쟁이 넝쿨이 보입니다. 용답역으로 가는 길이 나오고, 조금 더 걸으니 머루 넝쿨이 벽을 타고 올라가는 게 보입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잘 익은 머루가 잔뜩 매달려 있네요. 사다리가 있다면 대놓고 올라가 따먹으면 좋으련만.

가을에는 은행나무 길을 걷자

▲ ⓒ 유혜준


살곶이 다리를 지나 살곶이 공원을 지납니다. 벽화가 그려진 다리 아래도 지납니다. 이곳에서 군자역까지 3km가 조금 넘습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판판한 돌을 박아 만든 걷기 좋은 길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길옆에는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이런 길을 볼 때마다 누가 이런 길을 만들었을까, 궁금해집니다.

길옆에는 비비추가 무리지어 피어 있고, 길은 폭신한 흙길입니다. 길 끝에는 쉬기 좋은 평상이 놓여 있습니다. 그 길을 지나니 은행나무 길이 나타납니다. 아직은 여름이라 잎이 푸르지만 가을이 오면 나뭇잎은 온통 노란빛으로 물들겠지요. 그리고 초겨울이 되면, 그 노란 잎들이 바람에 한꺼번에 떨어져 길 위에 수북이 쌓일 것이 분명합니다. 아, 생각만 해도 가슴이 설렙니다.

이날의 도보여행은 군자역에 도착하는 것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걸어보니 청계광장에서 군자역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니더군요. 한 번쯤 걷고 싶은 유혹이 안 느껴지시는지요?

청계천은 해가 진 뒤에 걷는 것도 좋다고 합니다. 낮과 밤의 청계천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 보는 것도 좋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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