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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험금 타려면 무조건 차에 앉아 있어라?

K보험사 '차량탑승 중 사고' 아니라며 보험금 지급거부 논란

등록|2008.08.22 14:05 수정|2008.08.22 14:05
부산 모 방송국 MC 조한나 씨는 사랑하는 남동생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당시 대학생(27세) 이던 동생이 몰던 차가 갑작스런 고장을 일으켜 편도 4차선 고속도로 2차로에서 멈췄다. 당황한 동생은 차에서 내려 밖으로 나왔고 그 순간 뒤 따라오던 승용차가 동생을  들이 받았다.

2006년 7월23일 오후 9시30분경, 경남 김해시 남해고속도로 순천방면 김해터널 140.6킬로 지점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슬픔이 복 받쳐 왔지만 마냥 슬픔에만 잠겨있을 겨를이 없었다. 처리해야 할 일이 산적해 있었기 때문이다. 동생을 들이받은 가해자 차주와, 보험 회사를 상대 하는 일 등이 조 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중, 보험회사 보상건과 관련, 조 씨는 어이없는 일을 겪게 된다. 어린 동생을 위해 어머니가 10년씩(월1만 8300원) 이나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입해 오던 보험회사에서 보상을 해 줄 수 없다고 나왔기 때문이다. 지난 8월19일 서울 서초동 법원 근처에서 조한나씨를 만났다.

“약관 한 줄 때문에 이럴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그래도 지금은 정신을 차려서 좀 차분해진 편이에요. 그때는 마음도 아프고 우리에게 닥친 상황이 너무 혼란스러워서 도대체 뭐가 잘 못됐는지도 몰랐어요”

조한나 씨는 이렇게 말하며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조 씨 어머님이 가입한 보험은 k보험회사 ‘무배당 알짜보험’ 이란 상품이다. 이 보험은 교통사고(무보험 차량, 뺑소니 차량까지) 로 사망 시 1억5천만원이나 보상해 주는 보장성 높은 상품이다. 하지만 약관에 있는 단 한 줄이 문제였다.

“약관에 ‘차량 탑승 중 교통사고’ 라는 글이 있었어요. 차량 탑승 중에 일어난 사고에 대해서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내용 있었어요. 보험 회사 직원이 약관 들이 밀 때는 기가 막혔어요. 도저히 납득 할 수가 없었어요. 차가 고장으로 고속도로에서 멈춰 서더라도 보험금 타 먹으려면 차 밖으로 나오지 말라는 얘기잖아요”

조 씨는 보험회사 약관 해석을 납득 할 수가 없어서 변호사를 선임, 보험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법원은 지난 2007년 4월20일 보험회사 손을 들어 줬다. 법원이 보험회사가 제시한 ‘약관내용’ 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판결문에는 “차량 탑승 중 이라 함은 운전자 또는 비운전자가 차량의 내부로 들어가는 시점부터 다시 차량 외부로 완전히 나온 시점까지의 상태를 의미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며 “이 사건은 위 약관에 정한 ‘차량 탑승 중 교통사고’ 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할 것이므로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다” 고 기재되어 있다.

약관 한 줄 때문에 보상금 받지 못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 사고당시 조한나씨 동생 차 ⓒ 이민선



“항소는 하지 않았어요. 사실, 항소가 뭔지도 몰랐구요. 변호사 사무실에서도 승산이 별로 없는 것처럼 말했어요. 저는 한번 지더라도 언제든지 다시 재판 할 수 있는 줄 알았어요. 정신이 없어서 법적인 부분 신경 쓸 겨를이 없었지요”

이렇게 말하며 법에 대해서 무지했던 것이 한스럽다고 가슴을 쳤다. ‘항소’ 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것.

판결문에는 ‘판결에 불복이 있을 때에는 이 정본을 발급받은 날로부터 2주 이내에 상소장 을 이 법원에 제출하여야 한다’ 라고 기재되어 있다. 하지만 조 씨는 그 당시 판결문을 받아 본적이 없다. 판결문을 받아 볼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던 것.

“시간이 지나고 정신이 들면서 법적인 문제 신경 쓰다가  알게 됐어요. 판결문도 요 근래 받아본 것 이구요. 항소기간 지나면 다시는 법으로 다툴 수 없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된 것이구요”

그랬다. 정말 무지 했던 것이다. 재판에 진 것이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해서 다시 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살펴보니 이미 시간이 지나도 한참 지났던 것. 항소 기간을 넘긴 사건은 다시 법정에서 다툴 수 없다.

이때부터 조 씨는 유족들 아픈 마음은 아랑곳없이 약관대로만 판결하는 법을 증오하게 됐다고 했다. 또, 교묘한 약관을 만들어 놓고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보상을 해 주지 않으려는 보험사를 상대로 싸움을 벌이기로 작심했다.

이제 와서 법으로 따질 수는 없지만, 싸운다고 보상금을 다시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없지만 ‘괘심한’ 보험사를 그냥 둘 수 없기 때문이다.

“사고가 나서 죽을 위험이 닥치더라도 차에 그대로 앉아 있으라는 약관이잖아요. 이게 말이 되나요? 그런 약관을 인정해준 법원은 또 어떻고요. 서민들이 안들을 수도 없는 보험인데......아플 때 사고가 났을 때 그나마 서민들이 믿을 것은 보험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이런 식이라면 차라리 보험회사가 없는 것이 더 나아요. 보험회사의 교묘한 약관 만들기 놀음을 그냥 둘 수가 없어요. 최소한 반성은 하게 해야 속이 풀릴 것 같아요”

조 씨는 현재 청와대와 금융감독원 에 보험사가 교묘한 약관으로 소비자 우롱하는 일이 없도록 나서 달라는 민원을 제기 했지만 아직 답변은 받지 못한 상태다.

괘심한 보험사 도저히 그냥 둘 수가 없다

보험회사 약관 문제는 심심찮게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사건이다. 주로 약관 해석을 둘러싼 소비자와의 다툼 때문에 뉴스거리가 되곤 한다. 조한나 씨 동생 사건에 대한 법조인 견해를 알아보기 위해 김남준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와 8월21일 오후 5시경 전화 인터뷰를 했다.

김 변호사는 조 씨 동생사건은 “약관대로 하면 보험회사 주장이 타당하다. 하지만 보험 가입시 약관 제대로 설명해 주었나 따져 봐야 하고 ‘차량 탑승’ 이란 내용이 약관 에 들어가야 할 합리적인 이유가 있나 판단해 보아야 한다” 고 말했다.

또, ‘약관’ 한줄 때문에 울고 웃는 것이 시민들인데 이 문제 사회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약관 때문에 시민들이 피해를 당하지 않는 방법은 무엇인가? 라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보험회사는 약관을 이용해서 위험에서 빠져 나가려는 경향이 있다. 이번 사건은 보험회사가 오히려 보상금을 그냥 주는 편이 장기적 관점에서는 이익이었을 듯하다. 위급할 때 보상금을 제대로 줬다는 사례를 남겼으면 신용이 더 높아 져서 영업에도 도움이 됐을 것이다”

보험 설계사와 소비자들에게도 당부의 말을 남겼다.

“보험 계약 할 때 소비자에게 충분히 설명해 주어야 하고 계약자도 약관 꼼꼼히 읽어 보아야 한다. 이런 부분이 외국에 비해 보험 신용 떨어지는 원인이 된다. 경쟁력 높이기 위해서라도 ‘차량탑승’ 같은 기습조항은 주의 깊게 읽어 보아야 한다”

k보험사 ‘무배당 알짜보험’ 은 현재 판매가 중지된 상품이다. k보험사 홍보팀 송 모 과장에 따르면 90년대 후반에 2~3년간 판매되다가 중지 됐다고 전한다. 또, 지금은‘차량 탑승 중 교통사고’ 라는 특약 사항이 있는 상품은 없다고 했다.

‘무배당 알짜보험’ 에 ‘차량 탑승 중 교통사고’ 라는 특약 사항이 꼭 필요한 사항이었나? 라는 질문에 “당시 이런 상품 각 보험사 마다 많이 있었다. 이 보험 보장성 이지만 저렴한 상품 이었고 저렴한 가격으로 하다 보니 보상 범위를 특화시키기 위해 그런 특약이 필요했다” 고 대답했다. 

서민들 입장에서 보험은 가입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사회 보장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고나 재해로 위급한 상황이 닥치면 그래도 믿을 것은 보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한나 씨 동생 사건을 보면 보험 상품을 취급하는 보험사나 소비자 모두 아직은 세련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보험에 가입할 때 약관을 꼼꼼히 읽어보고 가입 동의서에 서명해야 하는 것은 소비자 몫이다. 이런 점 에서 볼 때는 소비자인 조한나 씨 가족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더 중요한 책임은 보험사에 있다. 약관은 소비자와 합의해서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사에서 일방적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때문에 약관은 상식선에서 납득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생각해 보시라! 당신 이라면 차가 고장 나 편도 4차선 고속도로 2차로에 멈춰 있는데 밖으로 나오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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