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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어째, 우리 동네에 국제중 생긴단다

영어학원 보내달라고 보채는 아이... 부모는 괴롭다

등록|2008.08.25 10:33 수정|2008.08.25 10:33

▲ 국제중학교 설립 신청서를 낼 예정인 학교법인 대원학원의 웹사이트. ⓒ 대원학원


"아빠 영어학원 보내주세요."

웬 영어 학원?

"민주야, 아빠한테 잘 설명을 해야지. 그냥 그렇게 말하면 어떡해."

아내가 말했다. 아이는 "아빠, 나 영어학원 다니면 안 될까요?" 재차 묻는다. 묻는 게 아니라 아예 보내달라고 조르는 것이다. 저녁 밥상을 물리고 아이에게 다시 물었다.

"민주야, 영어학원 왜 다니고 싶은데?"
"친구들이 자꾸 놀려요. 학원 안 다닌다고."

아이의 말은 영어학원 다니는 애들이 자기끼리 놀고 학원 안 다니는 애들은 놀린다는 것. 며칠 전 학교 영어 암송대회에서 차이가 더 크게 드러났을 것이고 아이는 마음에 상처를 입은 듯했다.

아내의 의견을 물어봤다. 주변 영어 학원은 최하 24만원. 지금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비가 19만원이니까 영어학원까지 다니면 43만원이라고. 좀 벅차기는 하지만 남들 다 보내는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단다.

한참동안 가족회의를 한 끝에 '여름방학 끝날 때까지 국어공부 열심히 해서 받아쓰기가 완전하면 그 때 다시 이야기 해보자'로 결론을 냈다.

그게 6월 말경에 있었던 일이다. 이제 개학도 가까워지고 아이는 다시 영어학원에 보내달라고 이야기할 게 뻔하다. 아. 어찌하면 좋을까?

초등학교 3학년 민주의 방학생활은 단조롭기 짝이 없다. 태권도와 피아노 학원가는 것 빼고는 대부분 집에서 생활한다. 놀러가라고 해도 놀 친구들이 없단다. 하루에 몇 개씩 다니는 학원이 시간을 달리하다 보니 같은 학원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는 것이다.

아이 성격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몇 번이나 등을 밀어도 금세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누구는 학원가고 누구는 어디 가고, 아무도 없다면서…. 학원이 뭔지도 모르던 촌놈 아빠와 서울에 살고 있는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방학 생활. 서로 이해 안 되기는 마찬가지다.

영어학원 안 가면 친구가 없다는데, 어찌 하오리까

▲ 영훈국제중이 내년에 문을 연다. 사진은 서울 미아동 영훈초등학교 학생들이 원어민 교사의 지도를 받으며 영어로 수업을 하고 있는 모습. ⓒ 권우성


오는 11월 서울에 2개의 국제중학교가 설립된다고 한다. '국제 경쟁력을 가진 인재 조기 발굴'이 목표라고 한다. 입학 등록금 70만원에 수업료는 연간 480만원이 넘지 않을 거라 한다. 뽑는 방법도 학교장의 추천을 받아 생활기록부를 검토하여 5배수를 뽑고 개별 면접과 토론을 통해 400명으로 줄인 뒤 최종합격자 160명은 무작위 추첨을 하는 방식이다. 수업은 국어와 국사를 제외하고는 영어로 이루어진다고 한다.

나는 이 기사를 접하고 "미쳤구나"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내가 사는 동네는 특히 빈부의 격차가 심한 곳이다. 건국대학교 야구장 부지를 중심으로 대규모로 들어선 호화 아파트들이 있고, 아파트 뒤쪽으로 오래된 아파트들이 자리하고 있다. 거기에서도 지하 월세방을 사는 사람들까지.

하늘과 땅 차이인 사람들이 한 곳에서 살아간다. 그렇다 보니 초등학교조차 빈부의 갈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현실에서 같은 구(區)안에 국제중학교(대원중학교)가 생긴다고 한다.

국제중 설립. 도대체 누구 머리에서 나온 발상일까? 160명씩 두개 학교 320명을 뽑기 위해 서울의 초등학생 전부를 줄을 세우려는 발상 말이다. 320명 안에 들어가기 위해 수천 수억이 지출되는 사회적 비용은 안중에도 없는 것인가?

영어학원이 난립하고 국제중 특별반까지 운영된다는데 '사교육을 부추기는 일은 없을 거'라는 교육 관료의 장담은 무지인가, 악의적 왜곡인가?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으로 정한 나라에서 성인 최저임금(85만원)의 무려 6개월치를 수업료와 등록금으로 내야 하는 학교를 만든다는데, 이것이 무슨 기회의 균등이고 공평한 경쟁인가?

▲ 서울 강남 대치동의 학원가. ⓒ 박상규

국제적 인재를 길러낸다는 것도 그렇다. 모든 수업을 영어로 해서 영어에 능통하다고 국제적 인재가 되는가?

생각해 보라. 쇠고기 협상에서 국민들의 먹을거리 안전이나 국내 축산업계의 몰락은 안중에도 없이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합의한 것이 능력에 문제인가, 가치관의 문제인가?

쇠고기 협상을 보면서 도대체 저 사람들은 조국에 뿌리를 두고 사는 사람들인가 의문을 지울 수 없었다. 그런 '국제적 인재 양성'이라면 차라리 미국에 위탁교육을 하는 것이 여러 모로 낫지 않겠는가?

기존의 과학고와 외고의 경우를 보자. 과학 영재가 되기 위해 지원하는 학생이 얼마나 되는가? 외고가 외국어 인재 양성이라는 측면에 얼마나 부합하고 있는가? 서울대, 소위 '일류대'를 가기 위한 학원의 역할에 더 충실한 것이 지금 특수목적고에 현실이 아닌가?

그런데 특수 목적중(국제중)을 만들겠다는 것은 특수목적고를 갈 수 있는, 남들이 침범할 수 없는 엘리트 통로를 만들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참, 부모 노릇하기 힘들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갈등과 고민을 하게 되지만 자식의 교육 문제만큼 판단이 쉽지 않는 문제도 없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부모인 나의 가치관과 부딪힌다면 어떡해야 할 것인가?

영어학원 문제만 해도 그렇다. 아직 국어 받아쓰기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기 싫은 게 솔직한 마음이다. 그러나 친구들이 놀린다는데 친구들이 놀아주지도 않는다는데, 부모인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부의 교육철학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아이를 영어학원에 보내고 국제중 대비 학원에 보내고, 아빠는 미친 듯이 설명회에 쫓아다니고 엄마는 젖먹이 막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파출부라도 나가야 되는 세상이 올바른 지 묻고 싶다. 안중근이 테러리스트가 되든 독도가 일본 땅이 되든 너 상관할 바 아니라면서, 그 시간에 영어 단어를 하나 더 외우라고 채근하는 게 맞는지 묻고 싶다.

초등학생을 자녀로 둔 부모로서 나는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되기를 가르쳐야 하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곤 자갈논 한 뼘도 없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초등학생 부모가 된 2008년은 참 힘들고 서글프다.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은 새로운 신분 사회. 마지막 탈출구 교육마저도, 없는 사람들에게는 문을 닫아 버리는 현실은 절망스럽다.

참, 부모 노릇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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