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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통난 'KBS 차기 사장 시나리오', 이젠 어쩐다?

[백병규의 미디어워치] 김은구 카드 버리자니 전체 시나리오 뒤죽박죽

등록|2008.08.23 17:50 수정|2008.08.23 17:50
시나리오는 헝클어졌다. 처음부터 흥행은 염두에 두지 않았지만, 최소한의 복선도 깔지 않은 게 불찰이었다. 조금이라도 역량이 있는 작가였다면 알아챘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 결론이 뻔히 예측되는 시나리오로는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을.

그러나 그들은 시나리오 구성의 기본 원칙마저 무시했다. 흥행에는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던 만큼 어떻게든 빨리 끝내면 된다고 판단했을 터이다. 대충 끝내면 되는 서막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본격적인 시나리오는 가면서 다듬으면 될 일이었다. 이 정권의 KBS 사장 교체 시나리오 이야기다.

정연주 사장 해임까지는 그래도 시나리오대로 진행됐다. 억지와 무리로 일관된 시나리오였지만 조연들은 각본대로 움직였다. 법원이란 '최종변수'가 있었지만, 그 역시 예상대로였다. 새로운 권력의 기세에 반기를 들 자는 없었다. 판관들은 비켜서거나 편한 시종의 길을 선택했다.

너무나 뻔해 보여서였읕까. 서막이 끝나기도 전에 관중들의 야유가 빗발쳤다. 호객꾼마저 야유의 휘파람을 불었다. 결말이 그리 뻔해서야 어찌 호객에 나설 수 있겠느냐고 거칠게 몰아붙였다. 주연배역을 두고 막후 쟁탈전도 있었을 것이다. 세상의 이치가 그렇기에. 결국 예정됐던 주연 배우는 등장도 못해 보고 탈락했다. 시나리오는 헝클어지기 시작했다. 기획과 연출의 큰 축이 무너졌다.

▲ 21일 오전 여의도 KBS본관 3층 제1회의실앞에서 사장 후보 서류심사를 위한 이사회를 저지하기 위해 노조원과 사원행동 직원들이 청원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김인규 카드 버리고 김은구 카드 잡았는데... 또 들켰다 

긴급하게 시나리오 수정에 나섰다. 탈락한 주연배우의 대타를 찾는 게 급선무였다. 공개 오디션으로 관객과 시청자들의 야유를 잠재워볼 참이었다. 대타는 찾아놓았다. 주연으로서 카리스마는 떨어지지만 그럭저럭 맡은 배역은 소화할 만하다는 판단이 섰다. 공개 오디션이란 이벤트의 성패가 중요했다.

그런데 또 문제가 터졌다. 주연 배우 선발을 위한 은밀한 사전 오디션이 공개돼 버렸다. 누군가는 "귀신이 곡할 노릇"이라고 말했다. 벽에도 귀가 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일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것일까. 은퇴한 배우라도 꿈은 있기 마련이다. 아무리 무뎌진 감성이라도 가슴 한 편에 정의심은 살아 숨쉰다.

야비한 기획과 볼품없는 연출력은 여지없이 폭로됐다. 호객꾼들도 어이없어 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렇다고 판까지 깰 수도 없으니.

이제 어쩐다? 다시 주연 배우를 바꿔봐? 시나리오도 또 수정을 해? 그래서야 앞으로 어떻게 끌어간다? 그렇지 않아도 빈약한 대타 주연에 너덜너덜해진 시나리오이다. 그대로 가자니 당초 기획된 시나리오를 밀고 나가기 힘들게 생겼다. 다시 바꿔보자니 시나리오 전체가 뒤죽박죽 될 판이다.

그들로서는 이 작품이 사실상 첫 기획 작품이다. 나름대로 야심작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6개월 축하작품이기도 하다.

그런데 정말 볼품없이 돼 버렸다. 말하는 것하고 속내하고 180도 다른 뻔뻔스러움과 비열한 권력욕만을 벌건 대낮에 여지없이 드러낸 꼴이다. 거칠고 조급한, 허술하기 짝이 없는 기획력과 결과적으로는 실속도 챙기기 어렵게 된  형편없는 연출실력을 만 천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어떻게 할까.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그들 시나리오대로 될지는 의문이다. 지금까지 '짧은 시나리오'가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만 보더라도 분명하게 알 수 있는 일이다.

제대로 된 작가이고, 기획자며, 연출자라면 지금 이대로 역시 뜻 한대로 가기 어렵다는 것을 역시 알아챌 것이다. 하지만, 그들 중 그 누가 스스로 자신의 무덤을 파려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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